1536년 5월 19일, 헨리8세의 두 번째 부인 · 엘리자베스1세의 어머니 앤 불린 (Anne Boleyn, 1501 ~ 1536) 별세
앤 불린 (Anne Boleyn, 1501년? ~ 1536년 5월 19일)은 헨리 8세의 제1계비이며 엘리자베스 1세의 생모이다. 헨리 8세는 앤 불린과 결혼하려고 민족주의 성격의 종교개혁을 일으켜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 가톨릭교회와 결별시켰다.

– 앤 불린 (Anne Boleyn)
.출생: 1501년 7월 ~ 1507년 사이
.사망: 1536년 5월 19일, 런던탑
.왕조: 튜더
.가문: 불린
.부모: 토머스 불린 위트셔 백작, 엘리자베스 하워드 대부인
.배우자: 헨리 8세
.자녀: 엘리자베스 1세
.종교: 로마 가톨릭교회 → 성공회
*잉글랜드 왕비 / 아일랜드 대부인
.재위: 1533년 5월 28일-1536년 5월 17일
.전임: 카탈리나 다라곤 왕녀 / 후임: 제인 시모어
딸 엘리자베스를 낳은 후, 불륜과 이단, 모반 등의 혐의를 받아 1536년 5월 19일 사형당했다.
그로부터 11일 후에 헨리 8세는 앤 불린의 상궁출신이었던 제인 시모어와 결혼하였다.
후일 헨리 8세의 다섯 번째 왕비가 되는 캐서린 하워드는 그녀의 외사촌 여동생이었다.

○ 생애 및 활동
앤 불린의 아버지는 외교관 토머스 불린, 어머니는 명문집안인 하워드 가문의 엘리자베스였다. 생년월일은 명확하지 않으나 초여름에 노포크 지방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기록들에 의하면 앤 불린은 1499년에서 1512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보이나 학계에서는 1501년이나 1507년을 가장 신빙성 있게 보고 있다. 후에 헨리 8세의 다섯 번째 왕비가 되는 캐서린 하워드는 그녀의 외삼촌 에드먼드 하워드 경의 딸이었다.
그녀의 자매 메리 불린 역시 헨리 8세의 정부였다. 윌리엄 캐리의 미망인으로 한때 헨리 8세의 정부였던 언니 메리 불린은 윌리엄 스태포드와 재혼하였다.
총명하고 재치있는 성격으로 어렸을 때부터 프랑스 궁정에서 수업을 받으며 예법을 닦았고 프랑스어와 라틴어에 능숙했다. 프랑스의 루이 12세의 왕비 메리 튜더의 시녀가 되었다가 루이 12세가 승하하고 프랑수아 1세가 즉위하자 그의 정비 클로드의 시녀로 간택되었다. 오랜 프랑스 생활로 프랑스 문화에 동화된 앤 불린은 이후로도 프랑스식 옷차림, 문학, 음악, 그리고 종교개혁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1521년경 앤 불린은 오몬드 공작과의 혼담을 위해 잉글랜드로 돌아와 헨리 8세의 정비 아라곤의 캐서린의 시녀가 된다. 지참금 문제로 오몬드 공작과의 혼담이 무산되자 앤 불린은 노섬브리아 공작의 후계자 헨리 퍼시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분 차이와 토머스 울지 추기경의 반대로 퍼시와의 결혼은 무산되었다. 이에 낙심한 헨리 퍼시는 궁정을 떠났다.
전기작가 안토니아 프레이저에 따르면 헨리 8세가 앤 불린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1526년경이라고 한다. 앤 불린은 전통적인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미인은 아니었으나 흑발에 까만 눈의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당시 유럽 유행의 최첨단을 걸었던 프랑스 궁정에서 받은 교육 덕분에 세련된 기품이 배어 있었으며 화술도 뛰어났다. 이미 앤의 누이 (언니인지 동생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메리가 언니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메리 불린을 정부로 두었던 전력이 있는 헨리 8세는 앤마저 정부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앤은 왕의 유혹을 거절하며 정식 결혼을 요구했다. 왕비 캐서린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했던 헨리 8세는 젊은 앤 불린이 왕자를 낳아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1527년 헨리 8세는 캐서린과의 이혼을 시도하였다. 캐서린의 거센 저항과 로마 교황청의 끈질긴 반대에 부딪히자 헨리 8세는 결국 종교개혁을 일으켜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시키고 나서 스스로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529년부터 앤은 왕의 총애를 받으며 잉글랜드 궁정에서 출세가도를 걷는다. 하지만, 앤 불린은 신실한 캐서린 왕비를 왕궁에서 쫓아낸 여자라고 백성의 반감을 샀다.
1532년 헨리 8세는 앤에게 펨브로크 후작 (Marquess of Pembroke)의 지위를 내려 그녀의 신분을 격상시켰다. 미혼 여성이 직접 작위를 하사받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같은 해 크랜머 대주교가 헨리 8세와 캐서린의 결혼을 성경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무효로 했다.
1533년 1월경 헨리 8세와 앤 불린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앤은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 같은 해 6월 1일 앤 불린은 호화로운 예식을 통해 잉글랜드의 왕비로 즉위했다.
1533년 9월 7일 앤은 딸 엘리자베스를 낳았다. 헨리 8세는 실망했으나 곧 아들도 생길 것이라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앤이 수차례에 걸쳐 유산을 반복했고, 부부 사이의 말다툼이 잦아지자 왕의 마음도 앤에게서 멀어졌다. 대신 왕은 앤 불린의 시녀 제인 시무어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한다. 앤 불린의 정적 토머스 크롬웰은 제인 시무어를 지지하면서 왕비와 불린 가의 추락을 획책했다.
1536년 앤 불린과 남동생 로시포드 공작 조지 불린, 그리고 두 사람과 가까운 귀족 청년들 몇몇은 간통과 반역, 근친상간 혐의로 런던 탑에 감금되었다. 심지어 앤 불린은 마법으로 왕을 유혹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했으나 앤 불린은 두 차례에 걸친 재판에서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다. 본래 앤은 화형당하기로 판결되었으나 나중에 헨리 8세에 의하여 참수로 감형되었다. 참수형이 확정되자 앤은 자신의 시녀에게 “내 목이 가늘어서 다행이다.”라고 씁쓸한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앤의 사형 집행은 그때 당시 참수에 흔히 쓰이던 도끼 대신 잘 드는 칼을 사용하기로 결정되었고 왕은 앤의 참수를 위해 프랑스에서 칼을 쓰는 노련한 사람을 특별히 고용했다.
동생 로시포드 공작이 처형당한 지 이틀 후인 5월 19일, 앤 불린은 런던 탑에서 참수되었다. 사형장에서 앤 불린은 구경꾼들에게 왕에게는 잘못이 없으니 충성을 다해 섬겨달라고 부탁하는 연설을 남겼다. 앤 불린의 마지막 말은 “주님께 제 영혼을 맡깁니다.” 였다. 앤 불린의 사형 집행은 단칼에 마무리되었다.

– 헨리 8세의 여섯 왕비들
.카탈리나 다라곤 왕녀 : 아라곤의 캐서린 (Catherine of Aragon, 1485년 12월 16일 ~ 1536년 1월 7일)은 아라곤 국왕 페란도 2세와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의 넷째 딸로 잉글랜드 왕 헨리 8세의 첫번째 왕비였으며 잉글랜드의 여왕 메리 1세의 어머니이다. 스페인어로 카탈리나 다라곤 (스: Catalina de Aragón)이다.
.앤 불린 : 앤 불린 (Anne Boleyn, 1501년? ~ 1536년 5월 19일)은 헨리 8세의 제1계비이며 엘리자베스 1세의 생모이다. 헨리 8세는 앤 불린과 결혼하려고 민족주의 성격의 종교개혁을 일으켜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 가톨릭교회와 결별시켰다.
.제인 시모어 : 제인 시모어 (Jane Seymour, 1508년 ~ 1537년 10월 24일)는 헨리 8세의 제2계비이다. 제1계비 앤 불린의 상궁으로 있었을 때 왕을 사로잡는다. 1536년 5월 17일 앤 불린이 사형을 당한 후 11일 만에 헨리 8세와 결혼한다.
.아나 폰 클레페 공녀 : 클레페의 앤 (독: Anna von Kleve, 1515년 9월 22일 ~ 1557년 7월 16일)은 잉글랜드의 헨리 8세의 4번째 왕비이다. 앤은 뒤셀도르프에서 클레페 공작 요한 3세의 딸로 태어났다.
.캐서린 하워드 : 캐서린 하워드 (Catherine Howard, 1523년 ~ 1542년 2월 13일)는 헨리 8세의 제4계비 (재위 1540년 ~ 1542년)였다. 제3계비 클레페의 앤의 시녀로 있다가 헨리 8세를 사로잡았다.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 헨리 8세의 정부였던 메리 불린의 외사촌이었다.
.캐서린 파 : 캐서린 파 (Katherine Parr, 1512년 ~ 1548년 9월 5일)는 잉글랜드의 헨리 8세의 제5계비이자 마지막 왕비이다.

○ 기타
– 일화들
푸르쿠아 (Pourquoi: 프랑스어로 “왜?”라는 뜻)라는 하바니즈 개가 있었다. 하바니즈 개가 마치 질문을 하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앤 불린과 친해지고 싶었던 리슬 부인 (Lady Lisle)이 선물했다. 리슬 부인은 그 후로도 앤에게 노래하는 꿩을 보내는 등 여러 노력을 했지만 왕비와 친구가 되지는 못했다. 앤은 푸르쿠아를 무척 귀여워했지만, 1534년 12월 푸르쿠아는 “창문에서 추락사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시녀들은 앤이 충격을 받을까 봐 헨리 8세에게 이 소식을 왕비에게 대신 전해 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앤을 싫어했던 신성로마제국 대사 샤푸이 (차푸이스)는 매우 즐겁게 이 소식을 편지에 전했다. 그 때문에 샤푸이가 푸르쿠아를 죽였다는 소문도 있는데, 신빙성은 없다. 우리안 (Urian)이라는 그레이하운드도 길렀는데, 앤이 행차하는 도중 우리안이 멋대로 뛰쳐나가 근처 소를 물어뜯어 죽인 사건이 벌어졌다. 왕과 왕비는 소의 주인에게 보상금을 지불했다.
헨리 8세가 앤에게 보낸 연애 편지는 남아 있으나 앤의 답장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없다.
앤의 시도서 (the Book of Hours)에 앤의 친필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다. 최후의 심판에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삽화 밑에 “그 때가 올 것이다”라고 라틴어로 적었다. 그 다음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 삽화 옆에는 “희망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적었다. 다른 시도서에는 헨리 8세가 여백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당신이 기도하며 내 사랑을 생각해 준다면, 나는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토록, 헨리.”라는 문구를 적었고, 그 밑에 앤이 답으로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상냥한 태도로 대한다는 증거를 매일 보실 수 있을 거에요”라고 적었다.
– 전설
앤 불린의 왼손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거나 얼굴에 큰 사마귀가 있었다는 소문은 앤이 마녀로 몰려 사형당한 사실에서 비롯된 유언비어로 추정된다. 왕족이 아닌 한 신체적으로 큰 결함이 있는 여성이 왕비가 되는 일은 드물었다. 1857년에 앤 불린의 유골이 발견됨에 따라 그녀의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는 소문은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런던 탑에는 밤마다 머리 없는 앤 불린의 유령이 떠돌아다닌다는 전설이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