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7년 12월 13일, 이탈리아 수학자 니콜로 타르탈리아 (Niccolò Fontana Tartaglia, 1499 ~ 1557) 별세
니콜로 폰타나 타르탈리아 (이: Niccolò Fontana Tartaglia, 1499년 ~ 1557년 12월 13일)는 이탈리아의 수학자다.

– 니콜로 폰타나 타르탈리아 (Niccolò Fontana Tartaglia)
.본명: 니콜로 폰타나(Nicolo Fontana)
.출생: 1500년, 이탈리아 브레시아
.사망: 1557년 12월 13일, 이탈리아 베니스
.부모: 미셸 폰타나
.업적: 3차 방정식 해법 발견
.저서: Metallurgy, Ballistics and Epistemic Instruments: The Nova Scientia of Nicolò Tartaglia. A New Edition
.유명한 제자: 오스틸리오 리치, 잠바티스타 베네데티
부모: 미셸 폰타나
본명은 니콜라 폰타나 (Nicola Fontana)이다. 어린 시절 프랑스 군대가 침입해 와 만행을 저지를 때 아버지를 잃었다.
프랑스 병사에 의해서 혀에 부상을 입고 말더듬이가 되어 tartaglia (말더듬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 생애 및 업적
16세기 초, 이탈리아의 브레시아라는 마을에 프랑스군이 침입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교회안으로 피했으나 군인들은 교회 안까지 들어와 죄 없는 사람들을 마구 죽였다.
이 와중에서 아버지의 품에 안겨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진 니콜로 폰타나 (Nicolo Fontana)라는 6살난 꼬마가 있었다. 너무 가난하여 치료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던 꼬마의 어머니는 자식의 상처를 혀로 핥아 주며 정성껏 치료를 하였다. 그러나 꼬마는 끝내 턱의 상처 때문에 말을 더듬게 되었다. 그 후로 니콜로라는 이름 대신에 ‘타르탈리아 (1499 ~ 1557, Tartaglia, 이탈리아 말로 ‘말 더듬는 사람’이라는 뜻)’로 불리웠다.
전쟁 때문에 아버지까지 잃은 타르탈리아는 학비가 없어 학교에 다닐 수 없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친구의 헌 책을 빌어 혼자서 공부를 했다. 종이를 살 돈조차 없었던 그는 아버지의 묘비에 돌멩이로 글씨를 쓰면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피나는 노력 끝에 그는 30살이 되기도 전에 베니스의 수학 교수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수학 경기라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두 명의 수학자가 같은 수의 문제를 내고 정해진 기간 동안 누가 더 많이 푸는가를 겨루는 시합이었다. 이 경기에는 돈과 명예가 뒤따랐으므로 수학자들은 신중하게 경기에 임했다. 이때 주로 출제되는 문제가 아직 미해결 상태에 있던 삼차방정식이었다.
여러 수학 경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535년에 있었던 플로리도와 타르탈랴 간의 시합이었다. 당시 볼로냐 대학의 교수이면서 플로리도의 스승이었던 페로는 특수 형태의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것을 제자인 플로리도에게만 가르쳐주고 세상을 떠났으므로 전 유럽에서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아는 사람은 플로리도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타르탈리아는 혼자 열심히 연구하여 마침내 시합 열흘 전에 같은 형태의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알아냈다. 경기는 모두 30문제를 50일 동안에 푸는 것이었는데, 타르탈리아가 두 시간만에 문제를 다 푼 것에 반해 플로리도는 한 문제도 풀지 못했다. 스스로 노력하여 얻은 것과 남에게 손쉽게 얻은 것의 차이를 보여주는 결과였다.
타르탈리아는 이 승리를 기념해 손수 시를 지을 만큼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계속 정진하여 마침내 1541년, 삼차방정식의 가장 일반적인 해법을 발견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해법을 알려고 몰려들었지만 그는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세상에 발표하지도 않았다. 이는 당시의 풍조 때문이기도 했지만 훗날 그가 대수학에 관한 책을 쓸 때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그 해법을 소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적당한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중요한 발견을 혼자서만 알고 있던 대가를 너무도 가혹하게 치르게 된다.
타르탈리아와 같은 시대에 밀라노에는 카르다노 (Cardano)라는 수학자가 있었다. 그는 변호사의 사생아로 태어났는데 그의 본래 직업은 의사였다. 밀라노에 한 병원을 차린 후 수학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한 카르다노는 마침내 밀라노의 수학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별난 인물이어서 점성술을 연구하기도 하고, 도박을 즐기고 사기도 치는 등 온갖 못된 짓을 일삼았다. 특히 그는 대수학과 도박에 관심이 많아서 그 방면의 책을 쓰기도 했는데, 도박에 수학적 지식을 도입하여, 게임에 이길 확률을 계산하기도 하였다. 그는 타르탈리아가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타르탈리아에게 그 내용을 보여달라고 간청하였다. 마음 약한 타르탈리아는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받은 후 카르다노에게 그 해법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카르다노는 1545년에 “위대한 기술”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타르탈리아의 3차방정식의 풀이법을 자신의 것인 양 발표해 버렸다. 화가 난 타르탈리아가 항의했지만 소용없었고, 그래서 타르탈리아와 4차방정식의 풀이법을 발견한 카르다노의 제자인 페라리와 논쟁했으나 패하고 말았다. 그 후 타르탈리아는 시름시름 앓다가 1557년경에 세상을 떠났다.

- 3차방정식 해법 발견
3차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하였으나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카르다노의 요청으로 3차 방정식의 해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지 않는 조건으로 알려줬다.
하지만 카르다노가 저서 (아르스 마그나)에 3차방정식의 해법을 실어 이후 “3차방정식의 해법”은 “카르다노의 공식”으로 불렸다.
포술학도 연구하였다.
유명한 카르다노와의 일화가 있다. 카르다노는 해법을 알아내기 위해 타르탈리아를 설득하였는데, 앞서 수학 대결이 성행한 시기인 만큼 자신의 해법을 알려주는 것을 매우 꺼렸기에 타르탈리아는 계속해서 거절하였다. 그러나 카르다노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해법을 알려주었고, 카르다노는 제자인 페라리와 연구하여 일반적인 3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알아낸 다음 이걸 세상에 발표한다.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한 타르탈리아는 카르다노를 비난했으나, 페라리는 카르다노는 타르탈리아가 아닌 페로의 제자에게서 근의 공식을 알아낸 것이며 도리어 타르탈리아가 페로에게서 훔친 것이라고 역으로 비난했다.
결국 1548년 페라리와 대결이 성사되었고 4차방정식의 근의 공식까지 알아내는 능력을 가진 페라리였기에 타르탈리아는 참패한다. 이후 3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은 카르다노의 공식이라 불리며 타르탈리아는 명예를 잃은 채 쓸쓸하게 사망한다.
카르다노는 뛰어난 점성가가 되기도 하였는데, 1576년 자살하게 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별점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였는데 죽음의 날에 죽지 않게 되자 자살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뛰어나고 다재다능했던 것만은 분명하며, 확률 등 수학의 발달에 기여한 바도 크다.

○ 저서
주요저서로 Metallurgy, Ballistics and Epistemic Instruments: The Nova Scientia of Nicolò Tartaglia. A New Edition 등이 있다.
Tartaglia, Niccolò, General Trattato di Numeri et Misure, Part I (Venice, 1556)
Tartaglia, Niccolò, General Trattato di Numeri et Misure, Part II (Venice, 1556)
Tartaglia, Niccolò, General Trattato di Numeri et Misure, Part III (Venice, 1556)
Tartaglia, Niccolò, General Trattato di Numeri et Misure, Part IV (Venice, 1560)
Tartaglia, Niccolò, General Trattato di Numeri et Misure, Part V (Venice, 1560)
Tartaglia, Niccolò, General Trattato di Numeri et Misure, Part VI (Venice, 1560)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