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 2월 17일, 죽음 앞에서도 신념을 지킨 이탈리아의 사상가 조르다노 브루노 / 부르노 (Giordano Bruno, 1548 ~ 1600) 별세
조르다노 브루노 (Giordano Bruno, 1548년 ~ 1600년 2월 17일)는 이탈리아의 사상가이며 신비술사 · 철학자이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스스가 가진 우주론적 신념을 지키고 기존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행하다가 화형을 당한 지식의 순교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 그는 근대 합리론의 시원적 개념을 제공한 인물 중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신학적으로는 인격신, 성모 마리아 예배, 삼위일체 등을 부정하고, 천체론에서는 태양중심설을 제기하면서 당시 절대적 권위를 누리던 카톨릭에 정면 도전함으로써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철학자이다.

– 조르다노 브루노 (Giordano Bruno)
.출생: 1548년, 이탈리아 놀라
.사망: 1600년 2월 17일, 이탈리아 로마 캄포 데 피오리
.본명: Filippo Bruno
.영향을 준 인물: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
.영향을 받은 인물: 갈릴레오 갈릴레이,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나폴리 근처의 놀라에서 태어난 브루노는 1565년에 도미니쿠스 교단에 입단하여 신학공부를 하지만, 예수와 성모마리아 예배에 대해 의심을 품는 비정통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교단과 갈등을 빚고, 1576년에 나폴리 교회에 의해 이단자로 고발되고 만다. 결국 브루노는 도미니쿠스 교단 및 카톨릭 교회를 떠나 도피생활을 하게 된다.
제네바를 거쳐 프랑스 툴루즈로, 다시 파리로 간 브루노는 프랑스 왕 앙리 3세의 보호를 받으며 기억술에 관한 3권의 책과 이탈리아어로 쓴 희극 ‘양초제조공’을 출판한다. 1583년 브루노는 런던으로 가서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강의를 하며 교수직을 얻고자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저술활동에 몰두한다. 이때 그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게 되는데, 1585년까지 런던에 머물면서 ‘성회 수요일 만찬’, ‘원인과 원리와 일자’, ‘무한자와 우주와 세계’ 등을 포함한 6편의 대화록을 발표한다.
1591년 모체니고의 초청을 받아 베네치아로 간 브로노는, 종교에 대한 그의 거침없는 태도 때문에 이단으로 고발되고 결국 종교재판소에 의해 체포된다. 이후 로마로 인도된 브루노느 로마 교황청 감옥에 수감되어 7년 동안 재판을 받는다. 심문과정에서 그가 삼위일체와 인격신을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당당히 설명하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자, 교황 클레멘스 8세는 그를 회개할 줄 모르는 완강한 이단자로 선고한다.
1600년 2월 8일 브루노는 캄포데이피오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형당하고 만다.
브루노의 이론은 17세기의 과학, 철학 사상에 영향을 미쳤으며, 18세기 이후에는 많은 현대 철학자에게 받아들여졌다. 또한 그는 사상의 자유를 상징하며 19세기 유럽 자유주의 운동에 영감을 불어넣은 인물로, 서구사상사의 주요인물이자 현대문명의 선구자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 생애 및 활동
브루노는 1548년 나폴리왕국의 놀라(Nola)라는 곳에서 직업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례명은 필리포였다.1562년 나폴리로 가서 그리스·라틴의 고전문학, 논리학, 변증론 (논증법)을 연구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도미니코회의 수사로 활동했으나, 후에 개신교인 칼뱅파로 개종했다 (그러나 이후 기독교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되어 무신론적 범신론으로 기울게 된다).
가톨릭교회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1576년에 나폴리를 떠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전설을 말하거나 학문을 가르쳤다.
라틴어 · 희랍어에 능통하였고 다방면에 박식하였다.
그는 신플라톤주의의 피치노나 피코 등의 영향을 받고 있어 마술이나 점성술에도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591년 베네치아 공화국 (현재의 이탈리아의 일부)에서 잡혀 8년 간의 감옥 생활을 했다.
그는 몇몇 사소한 신학적 오류를 시인했지만, 자신의 기본 교의의 신학적 성격보다는 오히려 철학적 성격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을 변호했다.
종교재판소의 재판관들은 브루노에게 자신의 이론을 무조건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브루노는 그러나 자신의 견해가 신과 창조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견해와 양립할 수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은 철회할 것이 전혀 없다고 자신의 과학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로마 교황청 이단 심문소로부터 이단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로마에서 공개적으로 화형에 처해졌다.
브루노는 1600년 2월 8일 사형 선고를 받을 때 “말뚝에 묶여 있는 나보다 나를 묶고 불을 붙이려 하고 있는 당신들 (그를 사형하려는 로마 교황청측) 쪽이 더 공포에 떨고 있다” 라는 내용의 발언으로 유명하다.

○ 우주관
브루노의 발언이나 주장 가운데 가장 이단으로 여겨진 부분은 그의 세계관과 우주관이었다.
그의 우주관은 말하자면, “우주는 무한하게 퍼져 있고 태양은 그 중에 하나의 항성에 불과하며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들도 모두 태양과 같은 종류의 항성이다”라는 무한 우주론을 주장했다.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당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할지라도 무한 우주론을 부정하는 로마 가톨릭교회 주도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쉽게 주장할 수 없었다.
브루노의 무한 우주론은 지동설과 같지 않지만, 지동설의 기본 전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간접적인 관계가 있다.
브루노의 화형은 이탈리아에서 자유로운 문화 활동이 가능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것이다.
- 무한 우주론
16세기 후반, 코페르니쿠스의 모형은 유럽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 브루노는 코페르니쿠스가 관찰보다 수학적 일관성을 중요시한 것을 비판했지만,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 코페르니쿠스에 동의했다. 그렇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이론 안에 있는 “천구는 불멸하며, 지구, 달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브루노가 활동하던 시기의 코페르니쿠스 모형은 아직 논리적 결함이 많았고, 천동설이 더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 동의하는 천문학자는 거의 없었다. 이 시기의 요하네스 케플러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아직 젊은 사람들이었다. 브루노는 천문학자는 아니었지만, 가장 빠른 시기에 지구 중심설과 천동설을 배척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세계관을 받아들였다.
브루노의 주장에서 가장 획기적이었던 것은 “지구 자체가 회전하고, 따라서 지구상에서는 천체가 회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브루노는 우주가 유한하지 않다고 주장했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세상의 중심은 지구 또는 태양이다”라는 논리를 초월하여 3세기 플로티노스와 같은 사상, 즉 우주의 중심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당대 천동설과 지동설을 주창하던 양 측이 보편적으로 따르던 “우주는 유한하다”는 믿음에 반하는 생각이었다. 브루노는 태양 주위의 행성들, 즉 태양계와 같은 시스템은 우주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라고 생각했다.
브루노는 하느님이 무한한 존재인 이상, 무한한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우주와 시간은 무한하며, 무한히 넓은 우주에 지구가 아닌 곳에도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는 오로지 지구만이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당시의 그리스도교적 우주관을 뒤집는 것이었다.
브루노는 천구에서 움직이지 않는 별들이 바로 항성이라고 주장하였고, 빛과 열을 발산하는 항성과 그 주위를 돌며 빛과 열을 받는 행성을 구분하였다. 브루노는 고대 원소설(물, 공기, 불, 흙)은 믿고 있었지만, 우주가 특별한 물질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와 똑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지구상에서 보여지는 운동 법칙이 우주 어디에나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우주의 중심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오늘날의 빅뱅 우주론이 주장하는 것과 일치한다.
오늘날 인류는 밤하늘의 별들은 실제로 태양과 같은 항성이며, 외계 행성이 실제로 존재하며, 태양계 밖 천체들도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지구와 같은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고, 이는 브루노의 주장 중 일부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다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전통적으로 믿어왔던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우주의 항성과 항성 사이에 있는 무수한 거리는 에테르에 의해 충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마법과 점성술, 신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우주가 수학적 계산을 통해 분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별들의 의지에 의해 운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애니미즘적 우주관은 브루노 우주론의 특징 중 하나이다.

○ 재판과 처형
로마에서 그는 7년 동안 재판을 받으면서 감옥에 갇혔고, 마지막에는 노나 탑에 갇혔다. 그는 8년 동안 가혹한 심문을 당하며 산탄젤로 성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예수회의 추기경인 로베르토 벨라르미노가 주재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그는 벨라르미노 추기경에게 “나는 내 주장을 철회해야할 이유가 없고, 그러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철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마침내 사형 선고가 내릴 때, 그는 조금도 기가 꺾이지 않은 채 자신을 기소한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 형량이 선고되는 것을 듣는 당신들의 두려움이 나의 두려움보다 오히려 더 클 것이다” 선고가 내려진 직후 예수회 사제들은 브루노의 턱을 쇠로 된 재갈로 채우고, 쇠꼬챙이로 혀를 꿰뚫었으며, 또 다른 꼬챙이로 입 천장을 관통시켰다. 1600년 2월 19일 일요일. 브루노는 망토를 입은 ‘자비와 연민단’이라는 무리가 이끄는 수레에 실린 채 구경거리가 되어 로마 거리를 돌아다녔다. 예수회 사제들은 그를 발가벗긴 뒤 불태워 죽였다.
심리 과정의 일부 중요한 문서들은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어떤 문서는 남아있으며, 그 중 하나는 1940년 발견된 요약집이다. 그가 지은 책과 그가 증언했던 데 대한 혐의를 받고 있었으며, 죄목에는 신성모독, 비윤리적 행동, 교리에 대한 이단적인 해석, 그리고 그의 철학과 우주론에 대한 이론들에 대한 것이었다. 루이지 피르포 (Luigi Firpo)는 다음과 같은 목록을 전한다.
.기독교 믿음과 교리에 배치되는 의견.
.삼위일체를 부인함.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함.
.그리스도에 대한 다른 의견.
.성체와 미사에 대한 다른 의견
.복수의 세상이 있으며, 그들의 영원성을 주장함.
.윤회와 인간 영혼이 짐승에게 들어간다고 믿음.
.마법을 연구하고 점을 침.
.마리아의 처녀성을 부인함.
브루노는 베네치아에서 변호에서 교회의 교리적 가르침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철학을 유지하는 방법을 썼다. 특히 브루노는 세상이 하나뿐이 아님을 믿었으나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그 생각을 포기하라고 강요당했다.

○ 브루노의 동상 건립
빅토르 위고, 헨리크 입센, 무정부주의자 바쿠닌 등의 지식인들은 1899년 사상의 자유를 위해 순교한 브루노를 기리며 그가 화형 당한 로마의 캄포데 피오레 광장에 동상을 건립했다.
이에 분개한 교황 레오 13세는 노구의 몸을 이끌고 항의의 금식기도를 했다.
브루노의 동상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브루노에게.
그대가 불에 태워짐으로써 그 시대가 성스러워졌노라.”
○ 저서들
희극 ‘양초제조공’
성회 수요일 만찬
원인과 원리와 일자
무한자와 우주와 세계

– Works
De umbris idearum (The Shadows of Ideas, Paris, 1582)
Cantus Circaeus (The Incantation of Circe, 1582)
De compendiosa architectura et complento artis Lulli (A Compendium of Architecture and Lulli’s Art, 1582)
Candelaio (The Torchbearer or The Candle Bearer, 1582; play)
Ars reminiscendi (The Art of Memory, 1583)
Explicatio triginta sigillorum (Explanation of Thirty Seals, 1583)
Sigillus sigillorum (The Seal of Seals, 1583)
La cena de le ceneri (The Ash Wednesday Supper, 1584)
De la causa, principio, et uno (Concerning Cause, Principle, and Unity, 1584)
De l’infinito universo et mondi (On the Infinite Universe and Worlds, 1584)
Spaccio de la bestia trionfante (The Expulsion of the Triumphant Beast, London, 1584)
Cabala del cavallo Pegaseo (Cabal of the Horse Pegasus, 1585)
De gli eroici furori (The Heroic Frenzies, 1585)
Figuratio Aristotelici Physici auditus (Figures From Aristotle’s Physics, 1585)
Dialogi duo de Fabricii Mordentis Salernitani (Two Dialogues of Fabricii Mordentis Salernitani, 1586)
Idiota triumphans (The Triumphant Idiot, 1586)
De somni interpretatione (Dream Interpretation, 1586)
Animadversiones circa lampadem lullianam (Amendments regarding Lull’s Lantern, 1586)
Lampas triginta statuarum (The Lantern of Thirty Statues, 1586)
Centum et viginti articuli de natura et mundo adversus peripateticos (One Hundred and Twenty Articles on Nature and the World Against the Peripatetics, 1586)
De Lampade combinatoria Lulliana (The Lamp of Combinations according to Lull, 1587)
De progressu et lampade venatoria logicorum (Progress and the Hunter’s Lamp of Logical Methods, 1587)
Oratio valedictoria (Valedictory Oration, 1588)
Camoeracensis Acrotismus (The Pleasure of Dispute, 1588)
De specierum scrutinio (1588)
Articuli centum et sexaginta adversus huius tempestatis mathematicos atque Philosophos (One Hundred and Sixty Theses Against Mathematicians and Philosophers, 1588)
Oratio consolatoria (Consolation Oration, 1589)
De vinculis in genere (Of Bonds in General, 1591)
De triplici minimo et mensura (On the Threefold Minimum and Measure, 1591)
De monade numero et figura (On the Monad, Number, and Figure, Frankfurt, 1591)
De innumerabilibus, immenso, et infigurabili (Of Innumerable Things, Vastness and the Unrepresentable, 1591)
De imaginum, signorum et idearum compositione (On the Composition of Images, Signs and Ideas, 1591)
Summa terminorum metaphysicorum (Handbook of Metaphysical Terms, 1595)
Artificium perorandi (The Art of Communicating, 1612)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