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5년 2월 6일, 잉글랜드의 왕 찰스 2세 (Charles II, 1630 ~ 1685) 타계
찰스 2세 (Charles II, 1630년 5월 29일 ~1685년 2월 6일)는 1660년부터 1685년까지 영국을 통치한 왕이다.
찰스 1세의 아들로 아버지가 청교도 혁명으로 처형된 후 스코틀랜드에서 즉위하였으나, 던바 · 워스터 전투에서 올리버 크롬웰에게 패한 후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1660년 왕정 복고에 따라 귀국하여 이듬해 즉위하였다. 그는 비국교도를 탄압하고 왕권을 확대하는 정책을 취하였으며, 1666년 네덜란드와의 전쟁, 전염병, 런던의 큰 화재 (런던 대화재)로 시달렸다.
1670년 프랑스의 루이 14세로부터 군비를 지원받아 제2차 네덜란드 전쟁을 일으켰다. 후에 의회와 대립이 심해져서 의회는 로마 가톨릭 교도들의 공직 진출을 제한하는 법인 ‘심사율’, ‘인신 보호법’을 제정하여 왕의 전제 정치에 대항하였다.
1685년 5월 29일, 향년 55세로 사망했다.

– 찰스 2세 (Charles II)
.본명: Charles II
.출생: 1630년 5월 29일, 영국 런던 세인트제임스궁
.사망: 1685년 2월 6일, 런던 화이트홀궁
.장례식: 1685년 2월 14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가문: 스튜어트
.부친: 찰스 1세
.종교: 로마 가톨릭
.배우자: 카타리나 드 포르투갈 왕녀 (1662 ~ 1685년)
.자녀: 제1대 몬머스 공작 제임스 스콧, Charles Lennox, 1st Duke of Richmond
.형제자매: 제임스 2세, 잉글랜드 왕녀 헨리에타, 오라녜 공비 프린세스 로열 메리
*잉글랜드 국왕, 스코틀랜드 국왕
.재위: 1660 ~ 1685년
.전임: 찰스 1세 / 후임: 제임스 2세
찰스 2세는 과학과 연극에 관심이 많아 이를 보호 · 육성하였다.
찰스 2세도 1630년대의 어린 시절에는 여장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1685년 찰스 2세는 고지혈증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동생 제임스 2세가 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 생애 및 활동
1630년 찰스 1세와 앙리 4세의 딸 프랑스의 공주 앙리에타 마리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이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장남이었다.
동생으로는 제임스 2세, 여동생으로 네덜란드 총독 오렌지 공 빌렘 2세의 아내가 되는 메리 헨리에타와 루이 14세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 필리프의 아내가 되는 헨리에타 앤이 있다.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 잉글랜드 국내가 위험해지자 어머니, 동생과 함께 1646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1648년에는 네덜란드로 가서 매제인 빌럼 2세의 지원을 받아 함대를 출항시켰으나 별다른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도로 네덜란드로 돌아왔다.
1649년 아버지 찰스 1세가 의회군에 붙잡혀서 처형당하자 네덜란드 의회의 압력으로 프랑스로 옮겨갔다.
1649년 2월 5일, 혁명에 반대하던 스코틀랜드가 찰스 2세를 왕으로 추대하자 6월 스코틀랜드에 상륙, 1651년 1월 1일 스콘에서 대관식을 받고 스코틀랜드 왕위에 올랐다.
그 후 올리버 크롬웰의 군대와 맞서 싸웠으나 던바 전투, 우스터 전투에서 연이어 참패하자 다시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그는 크롬웰 정권이 붕괴될 때까지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던 1658년 올리버 크롬웰이 죽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호국경이 된 아들 리처드 크롬웰이 잉글랜드 내부의 반크롬웰파 세력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실각해 크롬웰의 잉글랜드 연방 공화정 정부가 몰락하여 1660년, 왕정복고가 이루어지자 왕위에 올랐다.
크롬웰 독재 정권에 질릴대로 질린 잉글랜드의 백성들이 찰스 2세가 잉글랜드로 귀국하여 말을 타고 들어오자 그를 보고 남녀노소 모두 환호, 교회의 타종과 “국왕 폐하 만세”라고 소리치며 그의 귀국을 환호했다.
왕위에 오른 찰스 2세는 1661년 찰스 1세 처형 12주년을 맞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올리버 크롬웰을 부관참시했다.
머리를 참수하고 몸통을 네 조각내어 시가지에 걸어놓아 온갖 수치를 당하게 했다.
크롬웰은 사망 당시 왕실이나 귀족 또는 명사들이 별세했을 때 쓰인 장례 예법대로 장기와 뇌를 꺼내고 약품에 절여 방부처리 되어 관에 봉안되었다고 하는데 이 방부처리가 잘 되어 있어 이후 찰스 2세의 명령에 따라 효수하기 위해 머리를 자르는데 30번이나 내리쳐야 했다고 한다.
뒤이어 크롬웰의 추종자들 중 찰스 1세의 사형을 주도한 자 26명에게 줄줄이 교수형을 내렸다.
그래도 역할이 미미했거나 당, 여론에 휩쓸려서 찰스 1세의 사형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찬성한 정치인들의 경우 처벌하지 않았거나 사형이 아닌 징역형 등 낮은 수준의 처벌을 내렸는데, 새 왕이 당연히 아버지의 원수들에게 복수할 것이라고 여기면서 벌벌 떨던 사람들 상당수 찰스 2세의 지지자가 되었다.
한편 왕이 된 찰스 2세는 의회와 대립하여 청교도 혁명을 초래하여 목이 날아가버린 전왕이자 아버지 찰스 1세와 달리 귀족층과 의회와 협의를 하며 통치를 했다.

그러나 당시 잉글랜드 의회의 위세가 크롬웰의 독재 정치를 겪으면서 크게 실추되어 있었기에 찰스 2세 역시 의회를 압박하거나 해산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버지이자 부왕이던 찰스 1세와 달리 의회 세력들을 완전히 적대하거나 배척하지 않으며 왕실-의회와의 협력 체계를 유지했다.
1679년에 의회는 자유에 관한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인신 보호 영장’이 그것이었다.
한국어로 번역되기 전 원제는 Habeas Corpus Act이며, ‘몸을 가지다’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따온 것으로, 판사가 고소당했음을 명시하기 전에 죄수들이 영장을 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재판이 있기 전에는 죄수를 무기한으로 억류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이었는데, 이로 인해 영국의 군주들은 단순히 자신에게 반대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간단히 감옥에 넣거나 사형시키는 등의 처벌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재위중 두 차례의 영란전쟁을 벌였으나 기습한 2차와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밀약을 맺었던 3차까지 모두 대패했다.
또한 표면상으로는 잉글랜드 성공회 신자였으나 실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었는데 실제로도 가톨릭 신앙을 몰래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죽기 직전에 가톨릭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죽기를 원해서 몰래 신부가 궁정에 들어와서 임종을 지켰다.
당시 비밀이었던 왕의 진짜 신앙을 알고 있었던 프랑스 출신의 애첩이 제임스 2세를 통해 중개했다고 한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