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4년 9월 4일, 프랑스의 천문학자•지도제작자 세사르프랑수아 카시니 (César-François Cassini de Thury, 1714 ~ 1784) 별세
세사르프랑수아 카시니 (César-François Cassini de Thury, 1714년 6월 17일 ~ 1784년 9월 4일)는 프랑스 천문학자이자 지도 제작자로 그의 가문은 4대에 걸쳐 프랑스 지도 제작에 힘쓴다.

– 세사르프랑수아 카시니 (César-François Cassini de Thury)
.출생: 1714년 6월 17일, 프랑스 듀히-쑤-끌레몽
.사망: 1784년 9월 4일, 프랑스 파리
.부모: 자크 카시니, Suzanne Françoise Charpentier de Charmois
.자녀: 장 도미니크 카시니 백작
.손주: 앙리 카시니
.저서: Description géométrique de la France
.기관: 파리 천문대
카시니 가문은 4대 100년에 걸쳐 프랑스 국토를 측량하고 지도 제작에 힘쓴다. 세사르프랑수아 카시니 (César-François Cassini de Thury, 1714 ~ 1784)는 카시니 III세다.
그의 증조부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 (Giovanni Domenico Cassini)는 1673년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귀화해 이름을 장 도미니크 카시니 (Jean-Dominique Cassini)로 바꾸었다. 그가 카시니 Ⅰ세이고, 그의 아들 자크 카시니 (Jacques Cassini, 1677 ~ 1756)가 카시니 Ⅱ세, 손자 세자르 프랑수아 카시니 드 튀리 (César-François Cassini de Thury, 1714 ~ 1784)가 카시니 Ⅲ세, 증손자 장 도미니크 카시니 (Jean-Dominique, comte de Cassini, 1748 ~ 1845)가 카시니 Ⅳ세로 불린다.

○ 카시니 (Cassini) 가문의 프랑스 지도 제작사
16세기 이후 유럽의 국가들은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경제 활성화와 전제군주제 성립에 따라 많은 지도가 제작되었으나, 대부분 중세 이래의 오래된 지도를 수정 보완하는 수준이어서 지도의 내용이 매우 부정확했다.
프랑스의 경우도 점차 왕권이 안정되고 국토의 범위가 획정됨에 따라 국토 전체에 대한 정확한 지도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1666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재무총감 콜베르 (Jean-Baptiste Colbert)의 조언에 따라 과학아카데미를 설립하고 파리천문대 건설과 프랑스 국가 지형도 제작을 추진했다.
이 일을 위해 외국의 우수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초빙하는 한편 루이 14세는 지도제작을 위해 교황청에 천문학자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 (Giovanni Domenico Cassini) / 장 도미니크 카시니 I세 (Jean-Dominique Cassini, 1625 ~ 1712)
이때 초빙된 사람이 이탈리아 천문학자가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 (Giovanni Domenico Cassini, 1625 ~ 1712)이다.
제노바공화국의 페리날도 (Perinaldo) 출신인 카시니는 볼로냐 대학에서 천문학을 가르쳤고, 그가 연구한 목성의 위성 움직임으로 경도를 결정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1669년 고액의 연봉과 파리천문대장 직을 약속받고 파리에 도착한 카시니는 프랑스 천문학의 대가인 장 피카르 (Jean F. Picard) 신부와 네덜란드의 과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Christiaan Huygens) 등과 만나고 2년 뒤인 1671년 파리천문대장 직에 올랐다.
카시니는 프랑스의 과학기술 진흥에 감명 받고 1673년 프랑스로 귀화해 이름도 장 도미니크 카시니 (Jean-Dominique Cassini)로 바꾸었다. 그가 카시니 Ⅰ세이다.
국가의 정확한 지도제작을 위한 과학아카데미의 역할은, 첫째 주요 지점의 지리적 좌표의 정밀한 결정을 위해 국토의 주위, 특히 항구의 천문학적 위치 결정, 둘째 삼각쇄 (三角鎖, triangulation chain) 측량법에 따르는 자오선 호장의 측정, 셋째 삼각쇄 측량과 결합한 삼각측량에 근거해 계속적으로 전국의 지도를 만들기 위해 우선 파리 주변의 지도를 시험적으로 제작하는 것이었다.
루이 14세는 과학자들에게 파리천문대로부터 프랑스의 동쪽과 서쪽 경계를 확실히 하고 프랑스 지도의 부정확한 점을 바로 잡으라는 명을 내렸다.
피카르의 주도 아래 파리와 그 주변지역의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삼각측량을 시작했다. 삼각측량을 위한 기준선인 자오선 측량은 1668~1670년 사이에 파리천문대를 기준으로 북쪽은 아미앵 (Amiens) 근처의 소르동 (Soudron)과 파리 남쪽의 말부아진 (Malvoisine)을 잇는 자오선을 측량했다.
1681년 피카르는 과학아카데미에 요망서를 제출했다. 그중에는 지도제작을 위한 세부측량을 위해서는 전국을 삼각망으로 구축할 필요성을 제기해 그 시작으로 측량한 삼각쇄를 북쪽은 됭케르크 (Dunkerque), 남쪽은 스페인 국경에 가까운 페르피냥 (Perpignan)까지 연장하는 것을 제안했다.
피카르의 이러한 계획은 그가 죽은 다음해인 1683년 카시니 Ⅰ세에 의해 시작되었다.
– 자크 카시니 Ⅱ세 (Jacques Cassini, 1677 ~ 1756)
카시니 Ⅰ세와 그의 아들 자크 카시니 II세는 피카르의 측량을 연장하고, 파리를 통과해 프랑스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삼각쇄를 설치해 측량했다. 이 사업만 1683년부터 1718년까지 35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 후 자크 카시니의 아들 세자르 프랑수아 카시니 드 튀리가 동서로 횡단하는 삼각쇄를 측량해 이것을 기초로 프랑스 전역을 커버하는 총 800개의 삼각형과 기선 19개를 완성했다.
그리고 1744년까지 18매의 측량도가 제작되었다. 이 측량도는 지형을 세부적으로 묘사한 지도가 아니라 주요한 각 지점의 위치를 나타낸 것이었다.
다음 단계는 삼각측량을 기초로 한 지형측량이었다. 그러나 측량을 시작한 지 8년이 경과되었으나 지도는 고작 파리 (Paris)와 보베 (Beauvais)의 지도 두 장뿐이었다.

– 세사르프랑수아 카시니 III세 (César-François Cassini de Thury, 1714 ~ 1784)
1756년 4월 자크 카시니가 세상을 뜨자 카시니 Ⅲ세가 바통을 이어 받았는데, 그해 여름 카시니 Ⅲ세는 루이 15세를 알현하고 발행한 보베 지도를 바쳤다.
그러나 루이 15세가 왕실에 재정이 부족해 지원할 수 없다고 하자 카시니 Ⅲ세는 자금 댈 주주 50명을 모아 ‘프랑스지도협회’를 조직해 측량을 계속했다.
1756년 첫 번째 발행한 파리 지도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놀라운 성과였다. 지도는 동판조각에서부터 인쇄까지 최상의 재료가 사용되었고, 특히 인쇄용 검정 잉크는 특별 주문한 독일산 잉크를 사용해 지도의 선명성은 물론 부드러운 은빛을 띠는 미려함마저 돋보였다.
이와 같은 지도의 독창적인 정확성과 예술성은 이후 모든 지도의 표준이 되었다.
파리 지도의 제목은 ‘왕의 명령에 의한 최초의 프랑스 지도’라는 뜻의 ‘Carte de France Levee par ordre du Roy Premiere Feuille’이고 도엽번호는 No. 1, 축척은 1:86,000, 지도의 크기는 가로 92cm, 세로 59.2cm이다. 지도 하단 중앙에는 지도 축척을 나타내는 스케일 바가 그려져 있다.
경위선은 그려져 있지 않으나 파리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과 위선만 그려져 있다.
한눈에 보더라도 지도의 전체적인 형태는 매우 정밀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시가지는 적색으로, 공원과 녹지는 나무 무늬에 녹색을 채색해 입체감을 주었고, 산지는 우모식 (羽毛式, hachuring) 기법으로 지형의 고저를 표현했다.
기호는 경계선· 도로· 하천 외에 성당· 성 (城)· 수도원· 주교관· 풍차 등의 각종 기호를 상징적으로 묘사했는데, 여자 수도원은 깃발을 왼쪽, 남자 수도원은 오른쪽으로 그렸고, 주교관은 종탑에 주교의 지팡이를 그려 구분했다.
– 도미니크 카시니 IV세 (Jean-Dominique, comte de Cassini, 1748 ~ 1845)
1784년 카시니 Ⅲ세가 세상을 뜨자 그의 아들 카시니 Ⅳ세가 뒤를 이어 측량을 계속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시점에는 세부측량이 완료되고 총 182장의 지도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1793년 9월 전쟁사무국에서 지도원판과 발행된 지도를 압수하고 이듬해 카시니 Ⅳ세는 왕실과 친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다.
카시니 가문이 4대에 걸쳐 100년 넘게 프랑스 국토를 측량하고 제작한 프랑스 지도는 이렇게 역사 속에 묻히고 말았다. (최선웅 _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한국지도제작연구소 대표, 한국산악회 자문위원)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