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8월 6일, 마지막 신성로마황제 프란츠2세 (Franz II, 1768 ~ 1835)가 황제칭호 포기하며 신성로마제국 멸망
프란츠 2세(Franz II, 1768년 2월 12일 ~ 1835년 3월 2일)는 1806년 8월 6일에 나폴레옹의 협박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칭호를 포기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었다.

프란츠 2세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오스트리아의 황제(프란츠 1세),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국왕(페렌츠), 보헤미아의 국왕(프란티셰크 1세)으로 재위했다.
1768년 2월 12일 토스카나 대공국(현재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훗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는 레오폴트 2세와 스페인의 마리아 루도비카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부인 요제프 2세로부터 정치 교육을 받았다. 1792년 아버지가 죽자 왕위를 계승해 프랑스 대혁명의 문제를 떠맡게 되었다.
이에 다른 유럽 국가들과 동맹을 맺어 반프랑스 정책을 펼쳐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을 지원했으나 1797년 캄포포르미오 조약으로 롬바르디아와 라인 강 왼쪽 땅을 상실했고 1799년~1801년에 걸쳐서 프랑스에게 크게 패배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자 자신도 이에 대항해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높이고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만들어 다시 대항했다. 그러나 1805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하면서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이 해체되었고 1806년에는 나폴레옹의 협박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칭호를 포기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오스트리아의 황제 ·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국왕 · 보헤미아의 국왕, 프란츠 2세 (Franz II, 1768 ~ 1835) 개관
프란츠 2세 (독: Franz II, 1768년 2월 12일 ~ 1835년 3월 2일)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오스트리아의 황제,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국왕, 보헤미아의 국왕으로 재위했다.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1세 (독: Franz I), 보헤미아의 국왕 프란티셰크 1세 (체: František I.),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국왕 페렌츠 (헝: Ferenc, 슬: František II. 프란티셰크 2세, 크: Franjo II. 프라뇨 2세)에 해당한다.

– 프란츠 2세 (Franz II & I)
휘: 프란츠 요제프 카를
출생: 1768년 2월 12일, 토스카나 대공국 피렌체
사망: 1835년 3월 2일 (67세), 오스트리아 제국 빈
매장지: 오스트리아 빈 황가납골당
가문: 합스부르크로트링겐가
부모: 부) 레오폴트 2세, 모) 마리아 루도비카 폰 슈파니엔
종교: 로마가톨릭
*오스트리아의 황제
재위: 1804년 8월 11일-1835년 3월 2일
전임: (신설) / 후임: 페르디난트 1세
*헝가리 사도왕, 보헤미아 국왕, 크로아티아 국왕
.재위: 1792년 3월 1일-1835년 3월 2일
대관식: 1792년 6월 6일 (헝가리), 1792년 8월 9일 (보헤미아)
전임: 레오폴트 2세 / 후임: 페르디난트 5세
*롬바르디아-베네치아 국왕
재위: 1815년 6월 9일-1835년 3월 2일
전임: (신설) / 후임: 페르디난트 1세
*신성로마황제, 독일왕
재위: 1792년 7월 5일-1806년 8월 6일
대관식: 1792년 7월 14일
전임: 레오폴트 2세 / 후임: 나폴레옹 1세 (라인 동맹)

○ 생애 및 활동
1768년 2월 12일 토스카나 대공국 (현재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훗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는 레오폴트 2세와 스페인의 마리아 루도비카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부인 요제프 2세로부터 정치 교육을 받았다. 1792년 아버지가 죽자 왕위를 계승해 프랑스 대혁명의 문제를 떠맡게 되었다.
이에 다른 유럽 국가들과 동맹을 맺어 반프랑스 정책을 펼쳐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을 지원했으나 1797년 캄포포르미오 조약으로 롬바르디아와 라인 강 왼쪽 땅을 상실했고 1799년~1801년에 걸쳐서 프랑스에게 크게 패배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자 자신도 이에 대항해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높이고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만들어 다시 대항했다. 그러나 1805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하면서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이 해체되었고 1806년에는 나폴레옹의 협박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칭호를 포기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었다.
오스트리아의 1807년 제4차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하여 맞서 싸우지만 역시 패배했고 1809년 제5차 대프랑스 동맹 역시 아스펜-에슬링 전투와 바그람 전투에서 크게 패해 해체되었다. 1810년에는 자신의 딸 마리 루이즈를 나폴레옹과 결혼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크게 패해 쇠퇴하자 1813년 다시 제6차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해 1814년 프랑스 제국을 붕괴시키고 1815년 빈 회의 이후 재상 메테르니히 총리를 지지했다.
보수주의적 정치 체계를 펼쳤고 자유주의를 억압하고 나폴레옹 전쟁으로 약화된 로마 가톨릭 교회를 키우는 데 힘쓰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과 과학을 후원했다. 신기술도 적극 도입해 도나우 강에 증기선을 띄우고 철도를 건설하고 했다. 1835년 3월 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사망했다. 이후 그의 일생과 업적을 담은 V. 비볼의 <프란츠 황제>가 1938년에 출간되었다.
프란츠 1세는 프랑스 제1제국의 나폴레옹에 의해서 지금의 독일 지방에서 영향력을 잃어갔다.
– 결혼과 자식
프란츠 2세는 뷔르템베르크 공녀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1녀 (총 1명),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사이에서 4남 8녀 (총 12명)의 자녀가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루도비카, 바이에른 공주 카롤리네 아우구스테와의 사이에선 자녀가 없었다.

○ 가족
– 직계 조상
할아버지: 프란츠 1세 (1708년 12월 8일 ~ 1765년 8월 18일)
할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1717년 5월 13일 ~ 1780년 11월 29일)
아버지: 레오폴트 2세 (1747년 5월 5일 ~ 1792년 3월 1일)
어머니: 마리아 루도비카 (1745년 11월 24일 ~ 1792년 5월 15일)
– 아내와 자녀
총 4명의 아내로부터 4남 9녀의 자녀를 두었고, 2남 5녀만 성년 (20세)이 될 때까지 생존했다. 아래는 성년 자녀만 서술.
첫 아내: 뷔르템베르크의 엘리자베트 (1767년 4월 21일 ~ 1790년 2월 18일)
두 번째 아내: 마리아 테레사 (양시칠리아, 1772년 6월 6일 ~ 1807년 4월 13일)
차녀: 마리 루이즈 (1791년 12월 12일 ~ 1847년 12월 17일)
사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769년 8월 15일 ~ 1821년 5월 5일)
사위: 나이페르크 백작 (1775년 ~ 1829년)
장남: 페르디난트 1세 (1793년 4월 19일 ~ 1875년 6월 29일) – 제위 계승, 자녀 없음.
며느리: 마리아 안나 (1803년 ~ 1884년) – 샤르데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1세의 3녀.
5녀: 마리아 레오폴디나 (1797년 1월 22일 ~ 1826년 12월 11일) – 3남 4녀.
사위: 페드루 1세 (1798년 ~ 1834년) – 포르투갈과 브라질의 왕.
6녀: 클레멘티나 (1798년 3월 1일 ~ 1881년 9월 3일) – 1녀.
사위: 살레르노 공작 레오폴도 (1790년 7월 2일 ~ 1851년 3월 10일)
7녀: 마리아 카롤리나 (1801년 4월 8일 ~ 1832년 5월 22일) – 자녀 없음.
사위: 작센 국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797년 5월 18일 ~ 1854년 8월 9일)
3남: 프란츠 카를 (1802년 12월 17일 ~ 1878년 3월 8일) – 4남 1녀.
며느리: 바이에른의 조피 (1805년 1월 27일 ~ 1872년)
8녀: 마리아 안나 (1804년 6월 8일 ~ 1858년 12월 28일) – 독신.
세 번째 아내: 오스트리아-에스테의 마리아 루도비카 (1787년 12월 14일 ~ 1816년 4월 7일) – 자녀 없음.
네 번째 아내: 바이에른의 카롤리네 아우구스테 (1792년 2월 8일 ~ 1873년 2월 9일) – 자녀 없음.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