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년 7월 19일, 스위스의 소설가 고트프리트 켈러 (Gottfried Keller, 1819 ~ 1890) 출생
고트프리트 켈러 (Gottfried Keller, 1819년 7월 19일 ~ 1890년 7월 15일)는 스위스의 소설가이다. 시적 사실주의의 대표적 존재로서 ‘스위스의 괴테’라고 일컬어진다.

– 고트프리트 켈러 (Gottfried Keller)
.출생: 1819년 7월 19일, 스위스 취리히
.사망: 1890년 7월 15일 (70세), 스위스 취리히
.직업: 소설가
.학력: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뮌헨 미술원
.형제: 레굴라 켈러
스위스의 시인이다. 대표작으로는 시골의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und Julia auf dem Dorfe) 등의 여러 단편작이 있다.
그는 프랑스 혁명 이래의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1824년에 사망하고 켈러는 아버지의 소원에 따라 6살에서 12살 사이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지어진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1834년에 교사 배척사건과 연루되어 퇴학 당한다.
그리고 그는 화가로 일하고 살다가 그 뒤 소설을 쓰기 시작해 시인이 됐다. 녹색의 하인리히에 착수하면서 베를린으로 나가 극작가가 되기를 지망하나 실패하였다. 그 후 초판본 (初版本, 1855)과 젤트빌라의 사람들 제1부(1856) 등의 두 작품을 남기고 작가활동을 중단한 후 주정부의 서기관이 된다. 하지만 1890년 7월 15일에 향년 70세의 나이로 스위스 취리히에서 별세한다.

○ 생애 및 활동
프랑스 혁명 이래의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아버지에게서 1819년 7월 19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요절한 부친의 유지를 이어 공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교사 배척사건에 연루되어 퇴학 (1834) 당한다. 보수적인 농민에 대항하여 자유주의적 목사 다비드 슈트라우스의 취리히 초빙 (1839)에 찬성하는 등 자유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독일 뮌헨으로 가서 풍경화가가 되려 했으나 실패하고 귀향하여, 자연시, 정치 소네트, 연애시 등을 기고하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다.
1848년 취리히 주정부 장학금으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여기서 철학자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적 무신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후 5년간 베를린에서 살면서 『신시집』 (1851),『초록의 하인리히』 초판(1855)을 출간하고, 『젤트빌라 사람들』의 작업에도 착수한다.
1855년 취리히로 돌아온 켈러는 1861년 마흔두살의 나이에 취리히 주정부의 총서기로 선출되어 공직 생활을 시작한다.
이 기간 중에도 『일곱개의 전설』 (1872)과 『젤트빌라 사람들』(1874) 같은 노벨레 연작집을 발표하는데, 예리하지만 풍부한 인간애가 흐르는 이 작품들은 독일 노벨레 문학의 백미로 손꼽힌다.
작가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취리히 노벨레』(1877)와 『초록의 하인리히』 개정판 (1879), 『경구』(1882), 『마르틴 잘란더』 (1886)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1890년 71세의 나이로 취리히에서 별세했다.

- 작품활동
선천적인 자연애 (自然愛)와 화재 (畵才)를 지녀 풍경화가를 지망하고 뮌헨으로 나아갔다 (1840년). 이곳에서의 생활은 고통스러운 것이어서 2년이 채 못 되어 귀향, 정치시를 신문·잡지 등에 발표하며 지방의 보수파에 대항했다.
그즈음 문학에 관심을 쏟게 되어 1847년 스위스가 시민혁명에 성공하자 주정부 (州政府)의 장학금을 얻어서 하이델베르크로 가서 (1848 ~ 1850년), 포이어바흐의 <종교의 본질에 관한 강연>에 큰 감명을 받았다.
신 (神)을 인간의 힘과 의욕의 결집 (結集)이라고 보는 현세적 인간주의로서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녹색 (綠色)의 하인리히> (초판)에 착수하면서 베를린으로 나가 극작가가 되기를 지망하나 실패하여 다시 귀향했다.
그 후 앞서의 초판본 (初版本) (1855)과 <젤트빌라의 사람들> 제1부 (1856) 등의 두 작품을 남기고 작가활동을 중단한 후 주정부(州政府)의 서기관이 되었다. 재차 창작활동을 시작한 것은 퇴관 (1876)을 전후한 50세를 넘어서부터로 젊었을 때의 사상태도에 입각하여 시민사회에의 참여, 시민적 윤리의 확립을 항상 문제로 삼았다.
그러나 그의 묘사만은 현실을 냉혹하게 폭로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성이 풍부하며 재미있고, 예리한 점은 있으나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장편에는 <녹색의 하인리히>외에 미완성의 사회소설 <마르틴 살란더> (1886)가 있으며 가까운 장래의 사회개혁과 인간혁명의 가능성을 묘사하고 있다. 수많은 단편이 <일곱 개의 전설> (1872), <젤트빌라의 사람들> (제1부 1856, 제2부 1874) 등에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젤트빌라>는 지극히 스위스적인 가공의 소읍 (小邑) 풍속을 풍자와 유머로 묘사하여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구하고 있다.

○ 평가
프랑스 혁명 이래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목공’을 아버지로 하여 취리히에서 태어난 켈러는, 젊었을 때의 사상적 태도에 입각하여 시민 사회 참여와 시민 윤리 확립을 항상 문제로 삼았다.
그의 묘사는 현실을 냉혹하게 폭로하기보다는 인간성이 풍부하고 재미있으며, 예리하면서도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하트만은 켈러의 명성을 주로 15편의 단편 소설에 두고 있는데, 이 소설들은 질서 정연한 부르주아적 삶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의 운명과 유머러스한 관계, 특이하고 강인한 인내와 과묵함의 유형을 보여준다.
1819~90 독일어권 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가 가운데 한사람으로 ‘스위스의 괴테’라고 불렸다.
그는 작가의 상상력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풍자와 유머를 작품에 도입하였다.
유머를 통한 그의 현실 묘사는 단순한 묘사가 아닌 작가의 문학적 관점이 반영된 인간 본성의 추구의 결과로 평가된다.
자전적 장편소설 《녹색의 하인리히》는 고전 교양소설로 현재까지 널리 읽히고 있으며, 스위스의 가상 도시 젤트빌라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집 《젤트빌라의 사람들》 (1·2부)은 독일의 시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그 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신시집》, 《취리히 단편집》, 《일곱 개의 전설》, 《마르틴 잘란더》 등이 있다.

○ 사상과 문학적 특징
고트프리트 켈러는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목공을 아버지로 하여 취리히에서 출생해,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공업학교에 입학했으나 교사 배척 사건에 연루되어 퇴학당했다 (1834년).
켈러는 자유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는데, 보수적인 농민에 대항하여 자유주의적 목사 다비드 슈트라우스의 취리히 초빙 (1839년)에 찬성하기도 했다.
선천적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켈러는 풍경화가를 지망하여 뮌헨으로 갔다 (1840년).
그러나 그곳에서의 생활은 고통스러웠고, 2년이 채 못 되어 귀향하여 정치시를 신문·잡지 등에 발표하며 지방의 보수파에 대항했다.
그즈음 문학에 관심을 쏟게 되었고, 1847년 스위스가 시민혁명에 성공하자 주정부 (州政府)의 장학금을 얻어 하이델베르크로 가서 (1848 ~ 1850년) 포이어바흐의 <종교의 본질에 관한 강연>에 큰 감명을 받았다.
켈러는 신 (神)을 인간의 힘과 의욕의 결집 (結集)이라고 보는 현세적 인간주의를 바탕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Grüner Heinrich 녹색의 하인리히’ (초판)에 착수하면서 베를린으로 가 극작가가 되기를 지망했으나 실패하고 다시 귀향했다.
그 후 초판본 (1855년)과 ‘Die Leute von Seldwyla 젤트빌라의 사람들’ 제1부(1856년) 등의 두 작품을 남기고 작가활동을 중단한 후 주정부 (州政府)의 서기관이 되었다.

다시 창작활동을 시작한 것은 퇴관 (1876년)을 전후한 50세를 넘어서부터로, 젊었을 때의 사상과 태도를 바탕으로 시민사회에의 참여, 시민적 윤리의 확립을 항상 문제로 삼았다.
그러나 그의 묘사는 현실을 냉혹하게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성이 풍부하며 재미있고, 예리한 점은 있으나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장편으로는 ‘Grüner Heinrich 녹색의 하인리히’ 외에 미완성의 사회소설 ‘Martin Salander 마르틴 살란더’ (1886년)가 있으며, 가까운 장래의 사회개혁과 인간혁명의 가능성을 묘사하고 있다.
수많은 단편이 ‘Sieben Legenden 일곱 개의 전설’ (1872년), ‘Die Leute von Seldwyla 젤트빌라의 사람들’ (제1부 1856년, 제2부 1874년) 등에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Die Leute von Seldwyla 젤트빌라’는 지극히 스위스적인 가공의 소읍 (小邑) 풍속을 풍자와 유머로 묘사하여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구하고 있다.
몇몇 소설은 독일 문학에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며, 자국에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상을 구현한 것으로서 독일인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받았다. 작은 스위스의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인물의 발달을 서술하며, 관료주의적이지 않은 시민 생활과 사업적 독자성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의 《시집》 (1883)과 소설 《마르틴 살란더》 (1886)도 주목할 만하다.

○ 작품
- Works in English translation
Legends of Long Ago (1911, translated by Charles Hart Handschin).
Seldwyla Folks (1919, translated by Wolf von Schierbrand).
The People of Seldwyla, and Seven Legends (1970, translated by M.D. Hottinger).
A Village Romeo and Juliet (1952).
Green Henry (1960, translated by A.M. Holt).
Martin Salander (1963, translated by Kenneth Halwas).
Two Stories (1966, edited by Lionel Thomas).
The Banner of the Upright Seven, and Ursula; Two Novellas (1974, translated by Bayard Quincy Morgan).
The Misused Love Letters & Regula Amrain and Her Youngest Son; Two Novellas (1974, translated by Anne Fremantle and Michael Bullock).
Perspectives on People: Five Stories (1977, translated by Lawrence M. Washington).
Stories (1982, edited by Frank G. Ryder).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