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1년 8월 25일, 스위스의 의사•노벨 의학상 수상자 에밀 테오도어 코허 (Emil Theodor Kocher, 1841 ~ 1917) 출생
에밀 테오도어 코허 (Emil Theodor Kocher, 1841년 8월 25일 ~ 1917년 7월 27일)는 스위스 출신의 의학자이자 내과의사다. 그는 생리학, 병리학, 갑상선에 대한 연구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에밀 테오도어 코허 (Emil Theodor Kocher)
.출생: 1841년 8월 25일, 스위스 베른
.사망: 1917년 7월 27일, 스위스 베른
.국적: 스위스
.부모: 제이콥 알렉산더 쾨허, 마리아 쾨허
.수상: 노벨 생리학·의학상
.직업: 의학자, 내과의사
.분야: 생리학, 병리학, 갑상선
.설립조직: 코허 연구소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에서 태어난 그는 취리히, 베를린, 런던, 빈에서 공부를 마친 뒤 스위스로 돌아와 1865년 학위를 취득했다.
1872년 베른 대학교 외과학 교수직, 외과 병원장이 된다.
갑상선 외에 몸의 울혈과 살균치료법을 통한 외과 치료 등을 연구하기도 했다.
골수염과 총상 치료법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그가 발표한 갑상선 치료 연구는 논쟁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갑상선종의 치료법에 성공함으로써 사망률을 줄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후에 노벨상을 수상한 후에는 베른에 코허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 갑상선 수술의 최고 실력자, 코허 박사
19세기 유럽의 의학계는 한창 ‘갑상선과의 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우리 목 안에 있는 ‘갑상선’이라는 기관이 질환으로 부어오르는 것에 대한 적절한 치료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커진 갑상선이 기도를 막아 질식해 죽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의학계는 이 문제에 대한 궁여지책으로 갑상선을 아예 떼어내 버리는 수술을 생각해냈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수술이었다.
갑상선은 수술할 때 특히 피가 많이 나는 부분인데다가 염증도 쉽게 생기는 부위라서 수술 사망률이 무려 75%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 의학학회에서는 의사들에게 갑상선 수술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고심에 빠져있던 의학계에 스위스의 한 외과의사가 혜성처럼 떠올랐다. 그는 바로 스위스 베른 대학에서 외과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에밀 테오도어 코허 (Emil Theodor Kocher)’ 박사였다.
당시 의사들은 갑상선 전체를 완전히 떼어낼 수 있는 의사가 거의 없었던데 반해, 코허 박사는 부갑상선만 남겨둔 채 갑상선을 완전히 떼어내는 대담한 수술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 수술을 받은 환자의 사망률은 겨우 13%밖에 되지 않아, 사망률이 75%에 달했던 학계에는 코허 교수가 큰 희망으로 여겨졌다.
순식간에 갑상선 수술의 권위자로 떠오른 코허 박사에게 수술을 받기 위해 환자들이 몰려들었고, 그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 갔다.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던 코허 박사는 어느 날 동료 의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듣게 됐다. 1882년 제네바 의학학회에서 갑상선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환자들이 몇 개월 뒤 심각한 부작용을 앓는다는 사례가 발표된 것이다.
소식을 들은 코허 박사는 자신에게 수술받은 환자들도 부작용이 일어나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상선 일부만 떼어낸 환자들은 괜찮았지만, 갑상선을 완전히 떼어낸 환자들의 경우에는 절반 이상이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갑상선은 우리 몸의 에너지와 대사 조절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만들어내고, 저장하는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중요성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갑상선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코허 박사는 최대 위기에 처했다. 자신의 수술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동안 쌓아온 명성과 명예가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생명이 걸린 일을 모른 척 덮어버릴 수도 없었다.
코허 박사의 선택은 놀라웠다. 코허 박사는 바로 다음해인 1883년 4월, 갑상선을 완전히 떼어내는 자신의 수술법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인정하는 설명회를 열었다.
그동안 갑상선 수술의 권위자로 여겨지던 그가 자신의 입으로 ‘내 수술법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의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코허 박사는 자신의 수술법이 잘못된 것을 인정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설명회 이후 올바른 갑상선 수술법을 연구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자신이 연구한 올바른 수술법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더 이상 갑상선 수술의 부작용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
코허 박사의 노력 끝에 올바른 갑상선 수술법이 다시 전파됐고, 수술 후 생존율은 크게 높아졌다. 또한 갑상선이 우리 신체에서 얼마나 중요한 기관인지에 대한 인식도 널리 퍼지게 됐다.
코허 박사는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갑상선의 올바른 수술법을 전파한 지 26년 후인 1909년 외과의사로서는 최초로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만일 코허 박사가 당장의 명예와 권위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숨겼다면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코허 박사에게 노벨상을 안긴 것은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자세’에 있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