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2년 7월 25일, 프랑스의 의사 “구급대의 아버지” 도미니크장 라레 (Dominique-Jean Larrey, 1766 ~ 1842) 별세
도미니크장 라레 (Dominique-Jean Larrey, 1766년 7월 7일 ~ 1842년 7월 25일)는 프랑스의 의사로, “구급대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 도미니크장 라레 (Dominique-Jean Larrey)
.별칭: 구급대의 아버지
.출생: 1766년 7월 7일
.사망: 1842년 7월 25일 (76세)
.국적: 프랑스
.직업: 의사 (군의관)
신발 직공의 집에서 태어난 라레는 13살 때 부모를 여의고 툴루즈의 군 병원을 창설하기도 한 의사인 작은 아버지 알렉시스에 의해 양육되었다.
라레는 1787년에 프리깃 비질란테 함의 의사로 군의관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각지를 전전하였고 프랑스 대육군의 의료 책임자로까지 승진하였다.

○ 생애 및 활동
프랑스의 의사로 ‘구급대의 아버지’라 불리는 도미니크 장 라레 (Dominique-Jean Larrey)는 1766년 7월 7일 신발 직공의 집에서 출생했다.
라레는 13세 때 부친을 잃고 외과 의사였던 숙부에게서 의학교육을 받았다.
1787년부터 해군 순양함의 군의관직을 지냈고, 돌아온뒤로는 파리의 큰 병원 오텔 디외에서 의학 공부를 하였다.
베르사이유 궁전 습격에도 참가한 적이 있던 그는 공화국 군대에 자원하여 라인 전투에서 군의관으로 전장에 나섰고 이후 신설된 군의관 학교의 해부학 교수로 재직하던 중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에 파견되면서 나폴레옹을 알게 된다.
1797년부터 나폴레옹을 도와 참전했고, 1805~1815년까지 페르시의 뒤를 이어 그랑 다르메의 외과 총지휘관을 역임한 군의관이다.
말과 마차로 이루어진 이동식 야전병언을 창설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창설한 날아다나는 앰뷸런스 부대 (AMBULANCES VOLANTES)는 마부, 위생병, 들것병으로 편성됐는데 전장을 누비며 부상병들을 구조하여 신속한 치료를 받게 하였다.
라레는 나폴레옹의 원정 대부분을 참가혔고 25번의 전쟁에 참가하여 대규모 전투 60회, 소규모 400회 이상의 전투를 치렀다. 3번의 부상을 당했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 남작 서훈을 받았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중 말에 채여 오른쪽 무릅이 부어오른 나폴레옹을 치료하여 완쾌시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원정 중 아부키르에서 할 1900명 진료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러시아 침공 중에는 보로디노 전투에서 전장인 들판에서 48시간 동안 200차례의 절단 수술을 진행했고, 평균 4분에 1회의 수술을 끝냈다는 전설적인 외과의사였다.
최초의 유방절제수술을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고관절 절단수술에 성공한 외과의사이기도 했다. 당시 외과의사 실력의 척도인 수술 속도에서도 17초만에 팔 절단 수술을 해낼 정도였다. 말 두마리가 끄는 앰뷸런스를 타고 직접 전선에 나가 부상병을 수술했다.
역사가들은 그가 전장에서 수술을 하고 빠른 수술 시간으로 인하여 감염의 기회를 줄였던 것으로 평가한다. 바그람 전투에서는 그가 수술한 부상자의 완치율을 90%정도까지 기록했다고 한다. 스몰렌스크에서는 11명의 상지절단술 환자 중 9명이 회복했고 2명은 소화불량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러시아 원정에서는 추위가 감염을 억제하는 마취효과가 있음을 알고 봉랍을 하지 않고 파리 샤리테 병원의 드소가 주장하던 데브리망 즉 찢어지거나 뭉개진 조직, 이물질, 뼈 조각등을 상처 부위에서 깨끗이 제거하고 반창고와 붕대만으로 상처 면이 서로 닿도록 당겨 붙여주는 방법을 사용했으며, 가능한 상처를 덜 건드리고 안정을 취하는 방식으로 감염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였다고 한다.
영국의 웰링턴 장군은 그를 존경하여 부상자를 수습할수 있도록 라레가 있는 방향으로 사격하지 말라고 지시했을 정도였으며 라레가 워털루에서 총에 맞아 포로가 되어 군사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풀려났다.
예전 그가 가르친 독일인 군의관이 풀어주었다와 프러시아 육군 원수 블뤼허의 아들이 프랑스 포로 신세였을때 수술해가면서 살려준 은혜를 갚았다는 소리가 있다.
워털루 전투 이후 공직에서 물러나고 5권으로 된 “군진외과론”을 저술하였다.

라레가 페르시의 구호 부대를 개선하여 마차에 대포 대신 의무지원 차량을 연결시켰는데 이 “날아다니는 앰뷸런스”는 2개의 큰 바퀴와 튼튼한 스프링이 장착된 말 두마리가 끄는 마차가 주력이었다
이 경량 앰뷰런스로는 2명을 운송할수 있었다. 험한 지형에서는 6마리 말이 끄는 바퀴 4개짜리 중량형 모델은 8명의 인원을 운송했다.
이들 앰뷸런스에서는 들것, 부목, 약품, 음식물 등을 운반하는 역활도 담당했다. 이집트에서는 말 대신 낙타를 사용하여 환자를 수송하기도 했다.
그랑 다르메는 전열의 끝에 수백 대의 앰뷸런스를 배치하여 전선의 병사들에게 부상을 당하더라도 의무부대가 구원할 것이라는 위안을 주었다.
라레는 전쟁터에서 부상자들의 부상정도에 따라 전상자 분류법을 만들었습니다. 즉 의료진이 부족할때 부상의 정도에 따라 치료의 우선순위를 분류함으로써 검은색 카드 : 가망 없음 / 붉은색 카드 :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함. 1순위 / 노란색 카드 : 필요하면 당장 치료할수 있도록 관찰. 2순위 / 초록색 카드 : 시간이 지나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음. 3순위 / 흰색 카드: 의사의 처치는 필요없고 응급처치 후 바로 복귀 가능. 이렇게 분류하였다. 이런 분류법을 트라이이지라고 한다.
때로는 가벼운 치료를 요하는 환자를 먼저 치료하여 전장에 복귀시키는 역 트리아지 방법도 있는데 이는 러시아 육군에서 도입한 방법이라고 한다.
성격이 까탈스러웠던 나폴레옹 마저도 “만약 그랑 다르메가 감사의 뜻으로 동상을 세운다면 그건 라레의 동상이어야 할 것”이라고 했으며 “프랑스군 최고의 의사 라레에게 10만 프랑을,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고결한 인물 이었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세인트헬레나에서 사망한 나폴레옹의 유해가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 옛 군복차림으로 마중하여 주변사람을 감동시켰다.
도미니크장 라레 (Dominique-Jean Larrey)는 1842년 7월 25일에 별세했다. 향년 76세

- NATO award
The Dominique-Jean Larrey Award is the North Atlantic Alliance’s highest medical honour. It is bestowed annually by NATO’s senior medical body, the Committee of Chiefs of Military Medical Services in NATO (COMEDS), which is composed of the Surgeons General of NATO and partner nations. It is awarded in recognition of a significant and lasting contribution to NATO multi-nationality and/or interoperability, or to improvements in the provision of health care in NATO missions in the areas of medical support or healthcare development.
○ Works
Relation historique et chirurgicale de l’expédition de l’armée d’orient, en Egypte et en Syrie. Demonville, Paris 1803.
Mémoires de chirurgie militaire, et campagnes. J. Smith, Paris 1812. (digitalized books: Volume1, Volume 2, Volume 3)
Richard H. Willmott: Memoirs of military surgery. Cushing, Baltimore 1814. (volumes 1–3, digitalized book)
John C. Mercer: Surgical memoirs of the campaigns of Russia, Germany, and France. Carey & Lea, Philadelphia 1832. (volume 4, digitalized Book)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