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년 5월 9일, 프랑스의 화학자 루이 조제프 게이뤼삭 (Joseph Louis Gay-Lussac, 1778 ~ 1850) 별세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 (프: Joseph Louis Gay-Lussac, 1778년 12월 6일 ~ 1850년 5월 9일)은 프랑스의 화학자 겸 물리학자로, 게이뤼삭의 법칙을 발견했다.

–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 (Joseph Louis Gay-Lussac)
.출생: 1778년 12월 6일, 프랑스 왕국 생레오나르
.사망: 1850년 5월 8일 (71세), 프랑스 제2공화국 파리
.국적: 프랑스 왕국 1778~1792, 프랑스 제1공화국 1792~1804, 프랑스 제1제국 1804~1814, 부르봉 왕정복고 1814~1815, 프랑스 제1제국 1815, 부르봉 왕정복고 1815~1830, 7월 왕정 1830 ~ 1848, 프랑스 제2공화국 1848~1850
.직업: 화학자
.분야: 화학, 물리학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 (Joseph Louis Gay-Lussac, 1778 ~ 1850)은 기체의 성질과 화학적 조성 연구에 혁신적인 공헌을 한 프랑스의 저명한 화학자이자 물리학자다
프랑스의 화학자 겸 물리학자로, 기체들이 서로 반응하여 새로운 기체를 만들 때 기체들의 부피 변화에 관한 실험을 통해 “부피결합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기체 반응 법칙을 발견하였다.
1804년에 기구를 타고 약 7,000m 상공까지 올라가 대기 성분과 지구 자기장을 측정하는 선구적인 기상 관측 실험을 수행했다.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장을 역임했으며, 프랑스 상원 및 하원 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정계에서도 활약했다.

- 이름의 표기
그의 이름은 [ʒɔzɛf lwi ɡɛlysak]으로 발음된다.
프랑스 사람이므로 프랑스어 표기법을 따라 발음대로 표기하면 ‘게뤼사크’인 셈이다.
다만 국립국어원에서 ‘게이뤼삭’을 관용명으로 존중하기로 하였다.
외래어 표기법의 제1장 제5항을 보면,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고 되어 있다.
국립국어원은 ‘게이뤼삭’이라는 관용적 표기가 이미 굳어져 바꾸기 힘들다고 판단해, ‘게뤼사크’를 버리고 ‘게이뤼삭’을 취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어 표기 규칙대로 되돌려 ‘게뤼사크’로 쓸 필요 없이 관용대로 ‘게이뤼삭’으로 쓰면 된다.
맥아더를 ‘매카서’라 쓰지 않고, 대처를 ‘새처’라 쓰지 않는 것과 같은 셈이다.

○ 생애 및 활동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 (Joseph Louis Gay-Lussac)은 1778년 12월 6일, 프랑스 왕국 생레오나르에서 출생했다.
생레오나르 출신으로 프랑스의 공대 명문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배우고 베르톨레의 조수로 일했다.
샤를 법칙과 기체 반응 법칙을 발견하여 근대 화학사에서 중요한 업적을 두 개나 남겼다.
정작 당대에는 원자설로 기체 반응의 법칙을 설명할 수 없었고, 존 돌턴이라는 원자학의 창시자가 있었던 탓에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그의 기체 반응의 법칙은 아메데오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이 제창된 후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1804년 지상 7,000m 이상의 상공에 기구를 타고 올라가 지구 자기 및 대기의 성분을 조사하여, 산소와 수소가 1:2의 부피 비율로 화합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1808년 기체 반응의 법칙을 발견했고, 유기 분석법의 개량 등에 공헌했다.
공업에 있어서는 항생제 만드는 법을 개량하였고, 사이펀 청우계· 알코올 계를 발명했다.
그 밖에 붕소 분리법, 칼륨·나트륨 제조법 등을 발견하여 화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황산 제조법을 개량하고, 게이뤼삭의 탑을 고안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동갑인 험프리 데이비가 플루오린화수소로부터 플루오린을 정제하는 실험에 참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플루오린을 분리하면서 플루오린이 백금과 반응하여 누출되는 바람에 데이비와 함께 플루오린을 들이마셨고, 두 사람 다 즉사는 면했지만 이후 상당히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냈다고 전한다.
데이비는 1829년 51세에 세상을 떠났고 게이뤼삭은 21년이나 더 살다 1850년 5월 8일 (71세), 프랑스 제2공화국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 업적
오트비엔주의 생레오나르에서 태어나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배우고 베르톨레의 조수로 일하였다.
1804년 지상 7,000m 이상의 상공에 기구를 타고 올라가 지구 자기 및 대기의 성분을 조사하여, 산소와 수소가 1:2의 비율로 화합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1808년 기체 반응의 법칙을 발견하였고, 유기 분석법의 개량 등에 공헌하였다.
공업에 있어서는 항생제 만드는 법을 개량하였고, 사이펀 청우계·알코올 계를 발명하였다.
그 밖에 붕소 분리법, 칼륨·나트륨 만드는 법 등을 발견하여 화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황산 제조법을 개량하고, 게이뤼삭의 탑을 고안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 Achievements
Gay-Lussac and Biot ascend in a hydrogen balloon, 1804. Illustration from the late 19th century.
1802 – Gay-Lussac first published the law that at constant pressure, the volume of any gas increases in proportion to its absolute temperature. Since in his paper announcing the law he cited earlier unpublished work on this subject by Jacques Charles, the law is usually called Charles’s Law, though some sources use the expression Gay-Lussac’s Law. This law was independently and nearly simultaneously stated by John Dalton.

1804 – He and Jean-Baptiste Biot made a hydrogen-balloon ascent; a second ascent the same year by Gay-Lussac alone attained a height of 7,016 metres (23,018 ft) in an early investigation of the Earth’s atmosphere. He wanted to collect air samples at different heights to record differences in temperature and moisture.
1805 – Together with his friend and scientific collaborator Alexander von Humboldt, he discovered that the composition of the atmosphere does not change with decreasing pressure (increasing altitude). They also discovered that water is formed by two parts of hydrogen and one part of oxygen (by volume).
1808 – He was the co-discoverer of boron.
1808 – Discovery and announcement of the law of combining volumes of gases; published in 1809.
1810 – In collaboration with Louis Jacques Thénard, he developed a method for quantitative elemental organic combustion analysis by measuring the CO2 and H2O evolved when an organic compound is fully oxidized by potassium chlorate. He also summarised the equation of alcoholic fermentation.
1811 – He recognized iodine as a new element, described its properties, and suggested the name iode.
1815 – He synthesized cyanogen, determined its empirical formula, and named it.
1824 – He developed an improved version of the burette that included a side arm, and coined the terms “pipette” and “burette” in an 1824 paper about the standardization of indigo solutions.

– 주요 업적과 발견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 (Joseph Louis Gay-Lussac, 1778 ~ 1850)은 기체의 성질과 화학적 조성 연구에 혁신적인 공헌을 한 프랑스의 저명한 화학자이자 물리학자다.
그의 주요 업적과 발견은 다음과 같다.
- 주요 과학적 법칙
기체 반응의 법칙 (부피 결합의 법칙): 1808년에 발표된 법칙으로, 일정한 온도와 압력에서 기체들이 반응하여 새로운 기체를 형성할 때 각 기체의 부피 사이에 간단한 정수비가 성립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후에 아보가드로의 법칙이 탄생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게이뤼삭의 법칙 (압력-온도 법칙): 기체의 부피가 일정할 때, 기체의 압력은 절대 온도에 정비례한다는 법칙이다.
샤를의 법칙 공식화: 모든 기체가 온도 상승에 따라 동일한 비율로 팽창한다는 사실을 정밀한 실험으로 증명했다. 그는 이 발견의 공을 앞서 연구했던 자크 샤를에게 돌려, 오늘날 이 법칙은 샤를의 법칙 또는 샤를-게이뤼삭의 법칙이다.

- 화학 및 분석 기술의 발전
원소 발견 및 분리: 루이 테나르와 함께 붕소(Boron)를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칼륨과 나트륨을 제조하는 새로운 화학적 방법을 개발했다.
분석 기구 발명: 현대 화학 실험에서 필수적인 뷰렛(Burette)과 피펫(Pipette)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초기 형태를 설계하여 정량 분석법(적정법)을 확립했다.
응용 화학: 황산 제조 공정을 개선하기 위한 게이뤼삭 탑을 고안하였으며, 알코올 도수를 측정하는 ‘게이뤼삭 도수’ 단위를 만들어 오늘날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 기타 활동
기구 탐사: 1804년에 기구를 타고 약 7,000m 상공까지 올라가 대기 성분과 지구 자기장을 측정하는 선구적인 기상 관측 실험을 수행했다.
사회적 지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장을 역임했으며, 프랑스 상원 및 하원 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정계에서도 활약했다.

○ Awards and honors
Along with Thénard, Gay Lussac received 30,000 francs from Napoleon in the third edition of the Galvanism Prize in 1809 for their research.
In Paris, a street and a hotel near the Sorbonne are named after him as are a square and a street in his birthplace, Saint-Léonard-de-Noblat
In Australia, the “Gay-Lussac Room” at AB Mauri STC, Sydney was named after him in honor of his work with yeast fermentation.
Academic lineage
○ Publications
Chemistry courses of the École Polytechnique, Vol.1&2
Lessons of Physics, Faculty of Sciences in Paris, (November 6, 1827, March 18, 1828)
Gay-Lussac, L. J. and A. von Humboldt. 1805. “Expérience sur les moyens oediométriques et sur la proportion des principes constituents de l’atmosphère.” J. Phys. LX.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