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 3월 30일, 독일의 경제학자•사회학자 프란츠 오펜하이머 (Franz Oppenheimer, 1864 ~ 1943) 출생
프란츠 오펜하이머 (Franz Oppenheimer, 1864년 3월 30일 ~ 1943년 9월 30일)는 독일의 경제학자·사회학자이다.
처음에는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으나, 후에 경제학에 관심을 가져 베를린 대학에서 경제학·사회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국가는 종족간의 투쟁에 의한 정복 관계에 따라 성립한다는 ‘사회적 국가론’을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국가론》, 《사회학 체계》 등이 있다.

– 프란츠 오펜하이머 (Franz Oppenheimer)
.출생: 1864년 3월 30일, 독일 베를린
.사망: 1943년 9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국적: 독일
.직업: 경제학자·사회학
.자녀: 힐렐 오펜하이머, 루트비히 예후다 오펜하이머
.학력: 홀슈타인 킬
.영향을 받은 사람들: 머리 로스바드, 알렉산더 뤼스토, 버틀러 D. 샤퍼
.영향을 준 인물: 루트비히 굼플로비치, 데이비드 리카도, 헨리 조지
.저서: The State, System der Soziologie, Theorie der reinen und politischen ökonomie
프란츠 오펜하이머 (Franz Oppenheimer)는 1864년 3월 30일에 태어나서 1943년 9월 30일에 사망했다.
생애 초기엔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다. 그러다가 후에 경제학 쪽으로 눈을 돌려 베를린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해 학자가 되었다.
국가는 사회간의 투쟁에 의한 정복 관계에 따라 성립한다는 ‘사회적 국가론’을 주장하였고, 이러한 이론은 군프로비치의 사회 투쟁론에 영향을 주었다.

○ 생애 및 활동
독일의 경제학자·사회학자인 프란츠 오펜하이머 (Franz Oppenheimer)는 1864년 3월 30일, 독일 베를린에 태어났다.
유대인 설교자 겸 종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처음에는 의학을 공부하여 프롤레타리아가 많은 베를린 북부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9년간 ‘무료 진료소 의사’로 활동하였다. 이 경험은 그로 하여금 독일을 진단하게 하였고, 사회주의자가 되게 하였다.
의사를 그만둔 1896년 베를린 대학에서 경제학과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자유저술가로 활동하였고, 1908년 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09년부터 강사로 일하면서 1919년부터 1929년까지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직을 역임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루드비히 에르히르트의 스승이기도 했던 그는 프랑크푸르트암 마인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창시자가 되었고, 1929년 정년퇴임 후 시사평론가로 활동했다.
나치 독일에 설 곳이 없자, 그는 1934년 팔레스타인에서 노동운동 교육과정을 열었으나 정착하지 못하고, 1938년 말 일본과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1943년 9월 3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생을 마쳤다.
이론과 실천의 연결을 중요시한 그는 ‘자유사회주의’ 모델을 발전시켜 토지 문제의 해결과 신주거단지 계획에 집중하였으며, 국가는 종족간의 투쟁에 의한 정복 관계에 따라 성립한다는 ‘사회적 국가론’을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국가론》, 《사회학 체계》 등이 있다.

○ 사상
그는 사회학을 인간사회의 역사적 발전과 관계되는 보편과학으로 보고 개개의 사회과학을 결합한 원리과학으로 간주하여 사회학을 사회과정의 이론이라고 정의하였다.
또 그의 국가관은 L. 굼플로비츠ㆍG. 라첸호퍼의 정복국가론을 계승한 것으로, 정치적 수단이 가지는 의미를 중시한다.
그리고 사회발전의 과정을 경제적 사관에만 의지하는 것을 배제하여 정치적 수단에 의해 발전이 진행됨으로써 머지않아 국가적 권력 조직이 없는 무지배사회, 즉 ‘자유시민사회’가 도래한다고 하였다.
- 국가 탄생의 두 가지 신화 : 사회계약설 VS 국가정복설
모든 사람이 국가를 우상시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를 몸과 마음을 바쳐 숭배해야 하는 신으로 여긴다.
반면에 일부 사람들은 국가가 피지배계급을 착취하기 위한 양의 탈을 쓴 악마이기 때문에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진실은 이 두 극단 사이의 어디쯤 있는 것일까?
국가 탄생 신화의 두 개의 주요 변종은 국가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맺은 “사회계약”에서 생겨났다는 신화와, 한 민족이나 인종 집단이 다른 집단을 정복하고 강제한 것에서 탄생했다는 신화다.
오펜하이머는 “모든 국가는 여전히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의 경제적인 부를 착취하는 정치수단의 제도화이며, 정복에 의해 생겨났다”고 지적한다. 이 사회제도의 단 하나의 목적은 패배한 집단에 대한 승리한 집단의 지배를 질서정연하게 해서, 내부로부터의 반란과 외부로부터의 공격에서 자신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다.” – <국가론> 중에서

- 부를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 경제수단 VS 정치수단
오펜하이머는 사람들이 소득이나 부를 얻을 수 있을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한 가지 방법은 자신이 직접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해 갖거나, 이 생산물을 다른 사람의 생산물과 자발적으로 교환하는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이러한 부의 획득 방법을 “경제수단”이라고 부른다. 다른 수단은 강도질, 즉 다른 사람의 생산물을 그의 동의 없이 강제로 약탈하거나 몰수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생적인 수단이다. 부의 이러한 길을 오펜하이머는 “정치수단”이라고 불렀다.
정치수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기본적인 정치수단이고 또 하나는 조직화된 정치수단이다. 하나는 훔치거나 빼앗는 것으로, 한 부족이 이웃 마을이나 다른 부족을 습격해 대대적으로 약탈해 사람을 죽이고 곡식과 가축을 강탈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약탈한 것을 노예제도나 세금부과처럼 조직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진화하면서 약탈은 점점 더 큰 규모로 또 조직적으로 행해져 마침내 국가가 탄생한다.
국가는 정복집단이 피정복집단에게 강요한 조직으로서, 그 목적은 정복자의 이익을 위해 피정복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 결과 지배계급의 욕구는 최소의 노동으로 최대한 충족된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는 착취기구, 즉 조직화된 정치수단이다. – <국가론> 중에서

- 국가 탄생의 6단계
오펜하이머에 따르면, 국가는 보통 여섯 단계를 거쳐 나타난다. 첫 번째 단계는 목축민 부족이나 바다 유목민들에 의한 농민 집단의 약탈이다. 이 단계에서 농민들은 때로는 반항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패한다. 농민들이 수많은 저항의 실패를 통해 길들여지고 자신들의 운명에 순응하며 모든 저항을 포기했을 때, 두 번째 단계가 나타난다.
이 두 번째 단계에서는 죽인 농민에게는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의식하고, 약탈자들은 순순히 복종하는 농민의 경우 그의 집, 농사 기구, 다음 번 수확 때까지의 양식은 남겨 놓고 그 나머지만을 빼앗는다. 굴복한 농민들이 여분의 생산물을 유목민들에게 정기적으로 공물로 바치면 세 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네 번째 단계는 점령이다. 정복자집단과 피정복자집단 간의 영토 합병이 이루어진다. 원주민들의 반란이 예상되는 곳에는 정복자들이 야영지나 성 또는 도시를 세운다. 이 네 번째 단계에 도달하면 다섯 번째 단계로는 빠르게 넘어간다. 정복자집단이 피정복자들에 대해서 권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한다. 이웃 사람들 간에 또는 인접한 마을들 간에 분쟁이 일어날 경우, 지배자들은 주민들이 폭력을 사용하며 싸우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지배자들은 분쟁 해결에 중재인으로서 개입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자신들의 판결을 양측에 강제한다. 결국 그들은 각 마을이나 행정구역에 자신들이 임명한 대리인을 파견해 권력을 행사하게 한다. 대리인은 담당 구역과 관련된 모든 일(군대를 위한 성인 남자들의 징집, 세금 납부, 도로나 다리의 건설을 위한 부역 지시, 재판 등)을 감독한다. 피지배자들의 작업 능력과 공물 제공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고 잘 보존하기 위해, 지배자가 개입하고 조정하고 처벌하고 강제할 필요성이 점점 더 늘어난다. 이렇게 하면서 마지막 여섯 번째 단계로 넘어간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가를 형성한다. 전에는 국제관계였던 정복자집단과 피정복자집단 간의 관계가 지금부터는 국내관계가 된다. 전에는 두 집단이 한 지역에 나란 히 있었지만, 이제는 서로 뒤섞인다. 두 집단은 공간적으로 서로 침투하고 관습이나 풍습, 언어와 종교에서 하나의 통일체로 융합한다. 이 과정에서 피도 섞이면서 국민의식이 발전한다. 마침내 형식과 내 용에서 원시국가가 완성된다. – <국가론> 중에서

- 국가 발전의 양축
첫째는 사회통합이다. 이 과정에서는 국가 내의 여러 집단들이 지닌 다양한 방언이나 신앙이 하나의 언어, 하나의 종교로 합쳐지며 외면적인 용모도 어느 정도 비슷해진다. 혈통이 다르다는 기억은 사라지고 “국가의식”, “국민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체의식이 생겨난다.
다른 하나는 사회분화이다. 자신들의 특수이익에 따른 강력한 집단감정이 형성되어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은 제각기 “집단의식”, 즉 계급의식을 발달시킨다. 이제부터는 두 집단이 집단적인 이익투쟁에 돌입한다. 그리고 집단투쟁은 국가의 국내정치를 움직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가 발전의 최종단계는 입헌국가이다.
이 입헌국가에서는 관리계급이 새로운 요소로 나타나 국가 운영의 중심 역할을 맡는다.
이들이 국가이익을 계급이익으로부터 어느 정도 지켜내지만, 입헌국가 역시 형식이나 내용에서 그 이전 단계의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관리들은 근본적으로 지배계급의 대리자로서 계급정치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 <국가론> 중에서
- 미래의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
역사는 국가가 해체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오펜하이머는 예상한다.
즉 국가는 더 이상 “조직화된 정치수단”이 아니라 자치에 의해 관리되는 사회인 “자유시민사회”가 될 것이다.
형식면에서는 공동이익의 수호자로서 관리계급에 의한 행정이 펼쳐질 것이며, 내용면에서는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의 경제적 착취가 더 이상 행해지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계급국가가 사라지고 경제수단이 지배할 것이다. – <국가론> 중에서

○ 주요 생애 및 업적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프란츠 오펜하이머 (Franz Oppenheimer)는 국가의 기원과 성격에 대한 독창적인 이론으로 현대 정치학에 큰 자취를 남겼다.
그의 핵심 업적은 다음과 같다.
1.국가의 ‘정복 기원설’ 확립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 《국가 (Der Staat)》에서 국가가 사회적 계약이 아닌 ‘폭력과 정복’을 통해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유목 민족이 농경 민족을 정복한 뒤, 지속적인 착취를 위해 세운 기구가 바로 ‘국가’라는 시각이다.
이는 나중에 막스 베버와 자유지상주의 (Libertarianism)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2.경제적 수단 vs 정치적 수단
그는 부를 얻는 방법을 두 가지로 엄격히 구분했다.
경제적 수단: 노동과 교환을 통해 정당하게 부를 창출하는 것.
정치적 수단: 국가의 권력을 이용해 타인의 노동력을 강제로 탈취하는 것 (세금 등).
그는 국가를 ‘정치적 수단의 조직화’로 정의하며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다.
3.자유주의적 사회주의 (Liberal Socialism)
그는 자본주의의 폐단과 공산주의의 독재를 모두 반대하며 ‘제3의 길’을 모색했다.
토지의 사적 독점을 폐지하면 국가라는 강제적 기구 없이도 자유로운 공동체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스라엘의 집단 농장 체제인 ‘키부츠 (Kibbutz)’ 모델의 이론적 기초를 닦은 인물이기도 하다.
4.프란츠 오펜하이머의 제자
그는 학문적으로도 뛰어난 스승이었다. 현대 독일 경제의 기틀을 닦은 ‘사회적 시장경제’의 설계자이자 서독 총리였던 루드비히 에르하르트가 그의 제자다.

○ 저서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프란츠 오펜하이머 (Franz Oppenheimer, 1864 ~ 1943)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국가》 (The State / Der Staat)다. 그는 이 책에서 국가가 평화적인 계약이 아닌 정복과 지배라는 ‘정치적 수단’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사회적 국가론을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는 《국가 The State》, 《사회학 체계 System der Soziologie》(1922), 《순수경제와 정치경제의 이론 Theorie der reinen und politischen Okonomie》(1924) 등이 있다.
오펜하이머는 자본주의를 착취의 체제로 보면서도, 그 원인을 자유 시장 자체가 아니라 국가의 개입과 지배에서 찾았다. 그의 사상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Ludwig Erhard)와 같은 서독의 경제학자들과 머레이 로스바드 (Murray Rothbard) 같은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대표 저서
《국가: 사회학적 연구》(The State: Its History and Development Viewed Sociologically) (1908년 초판 발행): 오펜하이머의 사상이 집대성된 대표작으로, 국가의 기원과 성격, 미래의 변화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 주요 저서 및 논문
《사회학 체계》 (System der Soziologie) (1922~1935): 총 4부 8권으로 구성된 그의 방대한 학문적 업적으로, 일반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이론 및 사회사를 포괄한다.
《국가 우상 숭배》 (The Idolatry of the State) (1927).
《역사와 사회학》 (History and Sociology) (1927).
《마르크스의 사회 이론에 대한 기본 원칙》 (Das Grundgesetz Der Marxschen Gesellschaftslehre) (1903).
《토지 개혁》 (Die Siedlungsgenossenschaft) (1896): 유대인 정착촌 건설 등 그의 초기 사회 개혁적 관심을 담고 있다.
Freiland in Deutschland. Berlin, W.F. Fontane & Co., 1895.
Der Staat. 1929.
Gesammelte Schriften. Berlin
.Theoretische Grundlegung. 1995
.Politische Schriften. 1996
.Schriften zur Marktwirtschaft. 1998







참고 = 위키맥과, 나무위키,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