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7월 5일, 폴란드계 유대인 하프시코드 연주자•피아니스트 완다 란도프스카 / 반다 란도프스카 (Wanda Aleksandra Landowska, 1879 ~ 1959) 출생
반다 알렉산드라 란도프스카 (폴: Wanda Aleksandra Landowska, 1879년 7월 5일 ~ 1959년 8월 16일)는 폴란드 하프시코드 연주자이자 피아니스트로서 그의 연주, 교육, 저술, 특히 그녀의 많은 녹음은 20세기 초 하프시코드의 인기를 되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하프시코드로 녹음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1938년에 귀화한 프랑스 시민이 되었다.

– 반다 란도프스카 (Wanda Landowska)
.출생: 1879년 7월 5일
.사망: 1959년 8월 16일
.국적: 폴란드, 프랑스
.직업: 하프시코드 연주자, 피아니스트
.특이: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하프시코드로 녹음한 최초의 사람
란도프스카는 바르샤바에서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언어학자였다.
그녀는 4살에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얀 클레친스키 와 알렉산데르 미하우프스키에게 사사했다. 그녀는 신동으로 여겨졌다. 베를린의 하인리히 어반 에게서 작곡과 대위법을 공부했고 파리에서 모리츠 모슈코프스키에게 수업을 받았다.
그녀는 파리에서 공연 경력을 시작했으며, 파리와 다른 유럽 도시에서 그녀의 리사이틀은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바흐의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의 음악에는 하프시코드를 위한 작품이 1903년 그녀의 리사이틀에 포함되어 슈바이처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녀는 피아노가 아닌 하프시코드에 자신의 경력을 바치기로 결정했다. 1908 ~ 09년에 그녀는 회사가 파리 박람회에서 전시한 1889년 모델과 유사한 하프시코드로 러시아를 여행했다. 1900년 파리에서 폴란드 민속학자이자 민족음악학자인 Henry Lew와 동거하고 결혼한 후 그곳의 Schola Cantorum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다 (1900 ~ 1912).
베를린 예술대학교(1912 ~ 1919)에서 하프시코드를 가르쳤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그녀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억류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녀의 남편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녀는 1923년에 미국 데뷔를 했고 하프시코드를 가지고 주요 도시를 순회했다. 이것들은 16피트 스탑 (정상 피치보다 한 옥타브 낮은 현 세트)이 있는 크고 무겁게 제작된 하프시코드였으며 피아노 구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공 했을 때 란도프스카는 학생이자 동거인 Denise Restout와 함께 도주했다. 1940년 Saint-Leu를 떠나 그녀의 친구인 조각가 아리스티드 마욜이 살고 있는 프랑스 남부의 코뮌인 Banyuls-sur-Mer에 체류한 후 그들은 리스본에서 미국으로 항해했다. 나치의 위협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믿고 그녀는 여행 가방 두 개만 가지고 떠났다. 그녀는 7일 뉴욕에 도착했다. 진주만 공습 일인 1941년 12월. Saint-Leu에 있는 그녀의 집은 약탈당했고 그녀의 악기와 원고는 도난당하여 본질적으로 자산이 없는 상태로 미국에 도착했다.
1942년 뉴욕 시청에서 열린 바흐의 ”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는 하프시코드로 연주된 것이었다.
그녀는 1949년 코네티컷주 레이크빌에 정착하여 미국에서 공연자와 교사로 다시 자리를 잡았고 광범위한 순회 공연을 펼쳤다. 그녀의 마지막 공개 공연은 1954년이었다. 그녀의 파트너인 Denise Restout은 1964년 사후에 출판된 Musique ancienne 및 Landowska on Music을 포함하여 음악에 관한 그녀의 글의 편집자이자 번역가였다.

○ 생애 및 활동
반다 란도프스카는 1879년, 폴란드이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1959년 8월 16일, 미국의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20세기 최고의 음악가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미 잊혀지고 있었던 낡은 악기인 쳄발로를 현대에 부활시킨 공로가 매우 컸으며, 또한 그녀의 문하(門下)에서는 이자벨 네프, 랄프 커크패트릭(Ralph Kirkpatrick) 등 뛰어난 쳄발로 연주가들이 배출되었다.
그녀의 부친은 유태계의 법률학자이며 음악애호가였고, 모친은 언어학자여서 매우 교양높은 집안이었다.
반다 란도프스카는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바르샤바 음악원에 입학해서는 미할로프스키에게 사사하였다.
14세에 졸업한 뒤, 바르샤바에서 바흐의 <영국 모음곡>으로 데뷔하였다.
그뒤 1896년에 베를린 고등음악학교에 진학하여 유르반에게서 작곡을 배웠다.
1900년에 파리로 가서 헤브라이 민요연구가인 헨리 레프(Henry Lew)와 결혼했다.
같은 해에 21세라는 젊은 나이로 파리 스콜라 칸토룸의 교수가 되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바흐를 좋아했는데, 이 무렵부터 쳄발로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고, 드디어는 챔발로 주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1903년에 쳄발로에 의한 최초의 공개연주회를 열었고, 계속해서 유럽 순회연주를 하였다.
1909년, 남편과의 공저(共著)로 <고대음악>이란 책을 출판하였고, 1912년에는 플레이엘에게 그녀의 설계에 의한 새로운 쳄발로를 제작케 했다.

그녀는 이 악기로써 브레슬라우의 ‘바흐 음악제’에 나아가 연주함으로써 쳄발로 음악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다.
이런 노력에 의해 그녀의 쳄발로 연주는 급속히 인정되었고, 1913년 베르린 고등음악학교는 란도프스카를 초빙하여 세계 최초의 쳄발로과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제 1 차 세게대전으로 활동은 중단되었고, 남편마저 교통사고로 잃었다.
1920년 그녀는 파리로 돌아왔고,1923년에는 미국 순회연주를 하였다.
그녀의 레코드 녹음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란도프스카는 1925년 이래 파리 근교의 생-르-라-포레에 정주하면서, 그녀 자신의 고전음악학교를 설립하여 고전음악의 연주양식에 관한 계발(啓發)과 쳄발로의 기본교육에 헌신했다.
그러다가 1940년에 프랑스 시민권을 얻었으나, 이듬해에 독일군이 침공해 왔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갔다.
그녀는 1942년 2월, 뉴욕에서의 연주회를 필두로 세상을 떠날때 까지 연주회와 교육활동에 몸을 바쳤다.
란도프스카의 연주는 화려하며 힘이 넘치고, 깊은 정감을 담은 표현이다.
생기발랄한 리듬은 옛 악기와 옛 음악에 새생명을 불어 넣었고, 스케일이 큰 음악가의 면모를 항상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곡에 대한 공감은 정말 경청할 만한 것이었다.

란도프스카는 수 없이 많은 레코딩을 했지만 LP로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는 비고 지휘, 비고 실내관현악단 연주에 의한 바흐의 <쳄발로 협주곡 제 1 번>, 헨델의 <쳄발로 협주곡> 결합반,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바흐의 <쳄발로곡집>, 헨델의 <쳄발로 모음곡집>, 라모의 <쳄발로 모음곡집>, 스카를라티의 <쳄발로 소나타집> 등을 꼽을 수 있다.
란도프스카는 골드베르그 변주곡과는 떼어 놓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다.
그녀의 통찰력과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이 곡이 오늘날과 같은 인기를 누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는 유학당시 쳄발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1903년에 처음으로 쳄발로 연주회를 가지기도 하였다.
1906년부터는 유럽과 미국, 아프리카 등으로 순회공연을 다니기 시작하였으며, 피아니스트로서 보다는 쳄발리스트로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의 이러한 노력으로 당시까지 보잘 것 없는 악기로 인식되던 쳄발로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하였으며, 음량이 작은 단점을 보완한 개량 쳄발로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당시의 유명한 작곡가들도 란도프스카의 노력으로 쳄발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팔랴나 풀랑 같은 작곡가들도 쳄발로를 위한 현대곡을 작곡하였다.
그녀는 1913년에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현대적인 쳄발로 연주에 관한 강의를 하였고, 1919년에는 바젤에서 20세기 처음으로 바흐의 <마태수난곡>의 쳄발로 통주저음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1920년부터 파리의 소르본대학에서 쳄발로 강의를 담당하였으며, 수많은 각국의 학생들이 이 강좌를 거쳐갔다.
그는 파리에서 고음악과 고악기에 관한 수많은 자료들을 모아 이후의 정격연주가 태동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찌의 파리침공으로 그는 파리를 떠나 스위스를 거쳐 1941년에 미국에 정착하게 된다.
뉴욕에서 1947년까지 거주하다 레이크빌로 이주한 다음, 1959년 사망할때까지 여기서 여생을 보내었다.
란도프스카는 실로 현대 쳄발로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릴만한 인물이었다.
그녀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쳄발로라는 악기는 물론 바로크음악의 수많은 쳄발로 곡들이 아직까지도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소수의 사람들에 의한 연구대상으로만 남아있었을 것이다.
개량쳄발로 제작을 통해 기존의 쳄발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노력 또한 쳄발로의 현대화에 상당한 공헌을 한 것이라 평가받을 만 하다.
비록 오늘날에는 이 개량쳄발로의 음색에 반기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다시 옛 악기로 돌아가는 경향이 농후하지만, 란도프스카가 활동하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쳄발로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부분이다.

○ 앨범
1.Johann Sebastian Bach – Goldberg-Variationen / Wanda Landowska
2.Bach – Concerto For Two Violins In D Minor • Sonata For Harpsichord Concertante And Violin In E / Georges Enescu, Yehudi Menuhin, Wanda Landowska, Orchestre Symphonique De Paris, Pierre Monteux
3.Mozart – Sonata No. 4, In E-Flat, K.282 • Sonata No.9, In D, K.311 • Country Dances, K.606 / Wanda Landowska
4.A Treasury Of Harpsichord Music / Wanda Landowska
5.J.S. Bach – Das Wohltemperierte Klavier I&II (The Well Tempered Clavier) / Wanda Landowska
6.Johann Sebastian Bach – Italienisches Konzert BWV 971 • Chromatische Fantasie Und Fuge BWV 903 • Partita B-Dur BWV 825 • Toccata D-Dur BWV 912 / Wanda Landowska
7.J. S. Bach – The Well-Tempered Clavier: Book 1 & Book 2 • Preludes And Fugues Nos. 9 To 16 / Wanda Landowska
8.Domenico Scarlatti – Sonatas, Volume 2 / Wanda Landowska
9.Dances Of Ancient Poland / Wanda Landowska
10.Landowska At The Piano – Mozart • Haydn / Wanda Landowska
11.Great Recordings Of The Century: Bach – Cembalo Concerto No. 1 In D Minor BWV 1052 • Händel – Cembalo Concerto In B Flat Major Op. 4 No. 6 / Wanda Landowska
12.Scarlatti – Sonates Pour Clavecin / Wanda Landowska
13.Wanda Landowska Joue Mozart – Rondo KV 511 • Sonate Pour Piano KV333 • Concerto Pour Piano KV 482
14.Legendary Performers – Bach; Goldberg Variations BWV 988 / Wanda Landowska, Harpsichord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