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1월 22일, 독일의 심리학자 현상학자로 게슈탈트 심리학을 처음 형성한 볼프강 쾰러 (Wolfgang Köhler, 1887 ~ 1967) 출생
볼프강 쾰러 (Wolfgang Köhler, 1887년 1월 22일 ~ 1967년 6월 11일)는 독일의 심리학자 현상학자로 막스 베르트하이머, 쿠르트 코프카와 함께 게슈탈트 심리학을 처음 형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치 정권 하에서 유태인 교수 해고에 항의하며 1935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스와스모어 대학교에서 교수 업무를 하며 연구를 했다.

– 볼프강 쾰러 (Wolfgang Köhler)
.출생: 1887년 1월 21일, 에스토니아 탈린
.사망: 1967년 6월 11일, 미국 뉴햄프셔 엔필드
.직업: 심리학자
.부모: 빌헬미네 기르겐손, 프란츠 쾰러
.형제자매: 빌헬름 라인홀트 월터 코흘러, 크리스틴 뮐러
.학력: 베를린 훔볼트대학 (1909년), 본 대학교, 튀빙겐 에버하르트 카를 대학교
.업적: 게슈탈트 심리학 처음 형성
독일의 심리학자. 베를린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처음에는 음향심리의 연구가로서, ‘유인원의 지혜’ (1917)에 의하여 1920 ~ 1933년까지 베를린대학 교수로 있었다.
종래 유일한 학습이론이었던 시행착오설에 대신하는 ‘통찰’이론을 제창하였다.
계시대비, 기억 등의 실험적 연구를 통하여 지혜-사고-기억현상의 통일적 설명을 게슈탈트심리학파의 입장에 서기도 하였다.
나치스의 인종정책에 반대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사망할때까지 스워스모어대학에서 교수로 있었다.
만년에도 시행착오.도형잔효 등의 실험으로 현상과 뇌고정의 동형설을 주장하는 동시에 게슈탈트심리학의 이론 발전을 위하여 중요한 저작을 발표하였다.
주요저서로 ‘게슈탈트심리학’ (1929), ‘심리학의 역학설’ (1940) 등이 있다.

○ 생애 및 활동
쾰러는 1887년 러시아 제국 에스토니아 현의 항구 도시인 레발 (현재 탈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독일계 (발트 독일인)였으며, 그가 태어난 직후 독일로 이주했다. 젊은 시절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쾰러는 대학 교육 과정에서 튀빙겐 대학교 (1905–06), 본 대학교 (1906–07), 그리고 베를린 대학교 (1907–09)에서 공부했다. 베를린 대학교 재학 중 그는 물리학과 심리학 사이의 연관성에 집중했으며, 이 과정에서 당시 이 분야의 선구적인 학자인 막스 플랑크와 카를 슈툼프에게 각각 사사했다. 그는 1909년에 카를 슈툼프를 지도교수로 하여 심리음향학의 특정 측면을 다룬 논문 (제목: ‘음향 연구’ (Akustische Untersuchungende))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게슈탈트 심리학
1910년부터 1913년까지 그는 프랑크푸르트 심리학 연구소에서 조교로 일하며, 동료 심리학자 막스 베르트하이머와 쿠르트 코프카와 함께 연구했다. 그는 코프카와 함께 베르트하이머의 유명한 가현 운동 (또는 파이 현상) 연구에 피험자로 참여했으며, 이를 통해 시각의 본질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 기여했다. 이들은 쾰러의 스승이었던 슈툼프와, 베르트하이머가 프라하 대학교에서 강의를 들었던 크리스티안 폰 에렌펠스의 초기 연구에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학문적 배경 속에서 그들은 게슈탈트 심리학 (독일어로 “모양” 또는 “형태”를 의미하는 Gestalt에서 유래)이라는 새로운 전체론적 심리학 이론을 함께 정립했다.
캐럴 프랫은 그의 저서 『게슈탈트 심리학의 과제』 서문에서, 쾰러가 자신의 유명한 구절 “전체는 부분의 합과 다르다”가 잘못 해석되는 것에 대해 언짢아했다고 언급했다. 흔히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라고 인용되곤 하는데, 이는 단순한 번역 오류일 수도 있지만, 쾰러의 본래 의도와는 차이가 있다. 쾰러가 ‘다르다’고 표현한 것은,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들의 단순 합계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들 간의 ‘관계’ 자체가 전체의 중요한 특성을 형성한다는 의미이다. 즉,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룰 때, 부분들의 합만으로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질적 특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모든 부품이 차고 바닥에 흩어져 있을 때는 단순히 부품의 집합일 뿐 자동차가 아니지만, 이 부품들이 특정 방식으로 ‘조립’되어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자동차라는 전체가 되는 것과 같다.

- 문제 해결
1913년, 쾰러는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 섬에 있는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 유인원 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되어 6년간 머물렀다. 그는 주로 1914년 첫 6개월 동안 테이버 (Tawbor) 씨와 함께 연구를 진행했으며, 침팬지에게 풀기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은 문제들을 제시했다. 이 시기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1917년, 문제 해결에 관한 중요한 저서인 ‘원숭이의 심성’을 출간했다. 이 연구는 사고 심리학의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쾰러의 연구는 침팬지가 단순히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상황 전체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갑자기 깨닫는 통찰(Insight)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당시 동물의 학습이 시행착오와 효과의 법칙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본 에드워드 손다이크 등의 주장과는 다른 혁신적인 발견이었다. 쾰러는 침팬지들이 목표 (예: 손이 닿지 않는 바나나)를 달성하기 위해 주변 환경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예를 들어, 침팬지들은 높은 곳에 매달린 바나나를 얻기 위해 주변의 나무 상자들을 쌓아 사다리처럼 사용했으며, 우리 밖에 놓인 먹이를 가져오기 위해 막대기를 도구로 사용하여 자신의 팔 길이를 늘리기도 했다.
쾰러는 유인원의 뇌 구조가 인간과 유사하다는 점과 지능적 행동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침팬지를 연구 대상으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는 연구를 통해 유인원의 지능적 행동과 뇌 발달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했으며, 인간과 마찬가지로 침팬지 개체들 사이에서도 지적 능력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인지했다. 또한 침팬지들이 일상적인 놀이를 통해 주변 사물을 다루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힌다는 점도 관찰했다.
나아가 쾰러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교육 심리학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당시 심리학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와 정신 질환을 가진 아이의 발달 정도를 특정 상황에서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테스트를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유인원 연구에서 활용된 방법론이 아동 발달 연구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내성법 비판
볼프강 쾰러는 자신의 저서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독일 심리학계를 주도했던 내성법을 비판했다. 구조주의 심리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내성법은 개인이 자신의 의식적인 생각과 감각을 스스로 보고하는 방식으로 정의되었다. 내성법 지지자들은 의식을 기본적인 구성 요소로 나누어 분석하면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쾰러는 이러한 접근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내성법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연구 결과의 신뢰도를 검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빨간색’을 느꼈다고 묘사하는 방식은 다른 사람의 묘사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쾰러가 지적한 내성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특정 실험 결과를 일관되게 재현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특정 감각에 대해 보고하면, 그 내용은 추가적인 검증 없이 학문 공동체 내에서 공유되고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쾰러는 내성법이 인간이 직접 경험하는 즉각적인 문제들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경험 과학의 중요한 목표는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객관적인 결과를 얻는 것이라고 믿었다. 쾰러에 따르면, 내성주의자들은 이러한 객관적인 경험을 과학적 탐구의 핵심으로 삼지 않았다.
- 행동주의에 대한 견해
쾰러는 당시 북미에서 영향력이 컸던 행동주의 심리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졌다. 행동주의는 관찰하고 측정하기 쉬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행동주의자들은 자극이 주어지고 행동이 나타나기까지의 내면적 과정, 즉 생각이나 감정 등은 일종의 블랙 박스처럼 접근할 수 없고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오늘날 인지 심리학에서 다루는 이러한 내면 세계는 심리학 연구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쾰러는 행동주의자들이 직접 경험의 가치를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행동주의자들은 직접 경험이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없어 인간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쾰러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또한 쾰러는 겉으로 보이는 명백한 행동과 자율신경계 반응 같은 은폐된 행동 사이의 구분을 강조했다. 그는 행동주의자들이 인간의 심리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 명백한 행동에만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지적했다. 생리학 지식을 바탕으로, 쾰러는 심박수나 혈압 변화와 같은 은폐된 행동이 인간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생리학 연구의 발전과 함께 은폐된 행동을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들이 개발되었음을 언급하며, 행동주의자들이 이러한 도구를 제대로 활용하여 인간 행동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쾰러는 직접 경험을 측정하거나 활용할 수 없다는 행동주의의 주장에 반박했다. 그는 물리학자들이 검류계 (전류 측정 기기)를 사용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전류를 측정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추론하는 예를 들었다. 쾰러에 따르면, 행동주의자들 역시 관찰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후속 연구를 진행하는데, 이는 물리학자가 검류계를 통해 객관적인 측정을 하듯, 행동주의자 역시 관찰 대상 (행동)을 연구하며, 이 과정 자체가 직접 경험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쾰러는 행동주의자들이 직접 경험을 부정하면서도 실제 연구에서는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적인 입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 베를린 심리학 연구소
쾰러는 1920년 독일로 돌아와 곧 베를린 대학교 심리학 연구소의 소장 대행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카를 슈툼프의 후임으로 교수가 되어 1935년까지 그곳에 재직했다. 이 15년 동안 그는 학교의 명망 있는 심리학 대학원 프로그램의 소장을 맡았고, 지각 심리학에 관한 영향력 있는 학술지인 ‘심리 연구’ (Psychologische Forschung|프시홀로기셰 포르슝 deu: Journal of Psychology and its Neighboring Fields)를 공동 창립했으며, 특히 미국 독자를 위해 쓰여진 초기 저서 ‘게슈탈트 심리학’ (1929)을 저술하는 등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초, 이 연구소는 심리학 연구의 정점에 달했으며, 쾰러 외에도 많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활동했다. 막스 베르트하이머는 1916년부터 프랑크푸르트로 자리를 옮긴 1929년까지 연구소에 있었고, 쿠르트 레빈은 1933년 사임할 때까지 연구소에 머물렀다. 쾰러는 또한 여러 유명한 조교들을 두었는데, 카를 둥커는 문제 해결과 유도된 운동 연구에 집중했고, 폰 라우엔슈타인은 시간 오류와 기억 연구로, 폰 레스토르프는 고립 효과와 회상 이론에 대한 쾰러와의 공동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 나치 독일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은 1933년 1월 30일에 권력을 장악했다. 나치 정권은 즉시 유대인에 대한 차별 정책을 시행하며, 유대인 배경을 가진 교수들을 독일 대학에서 해고하기 시작했다. 저명한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유대인 교수들의 해고를 막기 위해 히틀러에게 직접 청원하며 그들의 과학적 기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유대인 과학자들의 해고가 현대 독일 과학의 멸망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몇 년 동안 과학 없이 지낼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쾰러는 1933년 4월 말까지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그달 초까지만 해도 그는 정권이 가하는 위협의 심각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동료 실험 물리학자인 카를 플랑크의 해고를 강요당한 후, 나치에 적극적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1933년 4월 28일, 쾰러는 “Gespräche in Deutschland” (독일에서의 대화)라는 제목의 글을 ‘도이체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기고했다. 이 글은 나치 정권 통치 기간 동안 나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마지막 기사로 여겨진다.
기사가 발표된 후 쾰러는 즉시 체포될 것을 예상했지만, 나치 정권은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심지어 기사가 처음 실린 지 4개월이 지난 후에도 재인쇄되어 계속 배포되었다. 쾰러는 그의 용기에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유대인과 비유대인 모두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았다. 나치에 대한 저항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쾰러는 동료들의 도움을 구했지만, 실망스럽게도 많은 동료들이 반나치 운동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일부는 나치가 복잡한 독일 정치 시스템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안일하게 예측했고, 또 다른 일부는 쾰러의 저항이 자신들의 영향력 범위를 벗어난 문제라고 주장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1933년 11월 3일, 나치 정부는 모든 교수에게 강의 시작 전 나치식 경례를 하도록 요구했다. 쾰러는 이것이 자신의 신념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학생들에게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의 설명은 나치 동조자와 반대자 모두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이 발언 이후 연구소에서의 상황은 더욱 빠르게 악화되었다. 1933년 12월에는 나치 관리들이 쾰러의 세미나실 밖에 서 있다가, 학생들이 나오자 그들을 멈춰 세우고 학생증을 검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쾰러는 그 자리에선 직접 개입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연구소 학장인 오이겐 피셔에게 연락하여 예고 없는 급습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의견 충돌과 학생들에 대한 추가적인 예고 없는 조사가 있은 후에도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자, 쾰러는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결국 1934년 5월에 연구소에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이 일은 내무부의 관심을 끌었고, 내무부는 마침내 1934년 7월 쾰러와 학장 간의 상호 작용, 그리고 독일 학생 단체로부터 쾰러가 받은 개인적인 공격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결국 이러한 상황 속에서 쾰러는 1935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스워스모어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 후반 생애
베를린 대학교 심리학 연구소의 중요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줄 동료 연구자들을 잃게 되자, 쾰러는 더 이상 연구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1935년, 그는 베를린 대학교 심리학 연구소에서 공식적으로 사임하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쾰러는 스워스모어 대학교의 교수로 초빙되어 이후 20년간 재직했다. 1956년에는 다트머스 대학교의 연구 교수가 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내에서 자유롭게 강연 활동을 펼치는 한편, 매년 베를린 자유 대학교를 방문하여 교수로 활동했다. 그는 이곳에서 심리학자들과 협력하여 연구하고 열정적으로 토론함으로써 미국 심리학과 유럽 심리학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쾰러는 1967년 뉴햄프셔주 엔필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 가족
쾰러는 1912년 화가이자 조각가인 테클라 아헨바흐와 결혼했다. 그들은 독일에서 두 자녀 [클라우스 (1912년생), 마리안네 (1913년생)]를 낳았고, 테네리페에서 살면서 두 명 [페터 (1915년생), 마틴 (1918년생)]을 더 낳았다. 이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1927년 그는 릴리 하르레만을 만나 결혼하여 딸 카린 (1928년생)을 낳았다.
○ 업적 및 수상
1928년,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국제 명예 회원으로 선출됨.
1939년, 미국 철학회 회원으로 선출됨.
1947년,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됨.
1956년, 미국 심리학회에서 수여하는 뛰어난 과학적 공헌상을 수상함.
1967년, 미국 심리학회는 그에게 금메달을 수여할 계획이었으나, 수여 전에 사망함.
볼프강 쾰러 영장류 연구 센터는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의 프로젝트로 라이프치히 동물원에 설립되었으며, 마이클 토마셀로와 호세프 칼이 이끌고 있음.

○ 주요 연구활동
- 유인원 침팬지의 재미있는 실험
쾰러는 1913년부터 1917년까지 유인원을 연구하여 ‘유인원의 지능’ (1925)이라는 책을 발표했다. 쾰러는 유인원이 장애물에 봉착했을 경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연구했는데, 그가 연구한 문제 해결이란 목적물 또는 상황과 도구의 관계성을 발견하는 것이며, 관계를 잘 발견할 수 있는 정도가 바로 지능이라는 것이다.
행동주의가 조건 형성을 통한 학습을 지나치게 연구하고 강조한 것에 대한 반발로, 쾰러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침팬지의 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일련의 실험을 하였다. 쾰러는 유인원 연구소장으로 있을 때 술탄이라는 똑똑한 침팬지를 만났는데 술탄은 쾰러가 연구한 침팬지 중에서 가장 똑똑했으며, 그의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술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예로 들어보자. 술탄은 창살로 된 우리에 갇혀 있다. 술탄은 창살에서 애를 쓰지만 짧은 막대로는 창살 밖에 있는 과일을 잡을 수가 없다. 약 2m 가량의 더 긴 막대가 창살 밖에 창살과 평행으로 있다. 그것은 손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작은 막대로는 끌어당길 수 있다.
술탄은 처음에는 두 막대 중에서 더 작은 막대로 과일을 끌어당기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막대가 너무 짧아 과일을 끌어당기는 데 실패했다. 그러자 술탄은 우리는 닫고 있는 철사를 끊으려고 시도했지만 그것 역시 실패했다. 술탄은 한참 동안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작은 막대를 다시 잡고, 긴 막대기를 뜰어당겼다.
술탄의 눈이 긴 막대기에 머무는 순간 술탄의 행동은 전체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런 행동은 확실히 최종 목적과 관련 있는 고민의 시간을 보낸 후에 갑자기 찾아왔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종 행동에 즉각적으로 연결되었다. 술탄의 행동 관찰은 나중에 통찰 학습으로 체계화되었다.
그리고 쾰러는 테네리페 섬에서 유인원만 연구한 것이 아니라 닭도 연구했다. 그는 유인원과 닭이 개개의 절대 자극이 아니라 자극간의 상대적 관계를 파악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가령 100룩스의 조도와 150룩스의 조도인 두 가지 밝기를 구분해서 밝은 쪽에 반응하는 것을 학습하였다면, 다른 밝기인 150룩스와 200룩스에서는 200룩스의 조도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유기체가 지각을 상대적으로 하고 있다는 지각의 상대성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 원숭이를 통한 실험
사람들은 세상을 무조건적인 결합이나 행동상의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배우지는 않는다. 인간은 수동적인 면도 있지만, 능동적으로 세상에 대해 알려고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쾰러는 새로운 학습이론을 제안했다. 그의 학습 이론은 인간의 의식과정과 추리능력을 무시한 채 인간을 검은 상자로 보는 행동주의적 관점과는 달리, 인간의 의식 과정과 추리 능력 같은 인지 능력을 인정한다.
그는 인간은 “아하! 그렇구나”하고 탄성을 지르면서 아는 것과 같이 ‘아하! 경험’을 통해 학습을 하며, 이 과정은 비약하듯이 한순간에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 학습을 비약적인 인지 과정으로 일어나는 학습이라고 해서 ‘통찰 학습’이라고 한다.
쾰러는 원숭이 실험을 통해서 통찰 학습의 예를 보여 주고 있다. 쾰러는 원숭이가 닿을 수 없는 높이에 맛있는 바나나를 매달아 놓고 그 주변에 상자와 막대기, 끈을 흩뜨려 놓았다.
바나나에 접근하기 전에 원숭이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원숭이는 문득 무슨 생각이 난 듯이 끈으로 막대기를 연결하고는 상자에 올라서더니 바나나를 따먹었다. 원숭이는 ‘아하’의 경험을 통해 마침내 바나나를 따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와 같이 통찰 학습은 시행착오 학습처럼 직접적인 경험을 거치지 않고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인식에 도달하는 학습이다. 사람들도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그 해결을 하기 위한 고민을 하는데 이때 상상 속에서 인지적인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된다. 시행착오 학습에서의 시행착오란, 경험을 통해 직접적이고 행동적으로 겪게 되는 것임에 반해 통찰 학습에서의 시행착오는 인지과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게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리고 시행착오는 점증적으로 일어나는 데 비해 통찰 학습은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다르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유레카 (나는 알았다)”를 외쳤듯이 우리는 어떤 순간에 해결책을 찾는데, 이런 학습을 통찰학습이라고 한다. 통찰 학습은 손다이크의 시행착오 학습처럼 단편적인 조각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적 지각을 수반한 통찰에 의해 일어나고 있었다. 이 연구에서 쾰러는 베르트하이머와 같이 형태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임을 분명히 하였다.

- 심리학과 자연과학의 상관관계
쾰러는 1922년 ‘물리적 형태’라는 책의 가치를 인정받아 베를린 대학 교수가 되었다. 쾰러는 자연과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심리학의 모든 이론은 심리학의 영역에만 국한될 수 없고 생물학, 궁극적으로는 물리학적인 개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쾰러는 물리학적 과정과 생리과정, 중추신경 간에도 상응하는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리적 형태는 서로 연결된 관을 흐르는 물이나 자기장에 통하는 전류와도 같은 것으로 물리적인 힘의 분포는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관계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강도의 수준 변화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쾰러의 주장을 수용해서 형태주의 심리학은 전체를 논하고, 전체는 각 부분에서, 그리고 각 부분은 다른 부분에 의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역학적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입장을 취했다. 마치 금속으로 이루어진 망에 전류를 통하게 하는 것과 같이 일부의 변화는 다른 전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역학적 상호 관계가 이루어지는 영역을 장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장의 개념은 사회심리학자인 레빈에 의해 사회적 장의 개념으로 확장되어 집단 역학, 사회심리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쾰러는 지각 과정의 기초로써 신경학적 이론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의 형태적 기능은 전류에 의해 이루어지며, 전류는 연속적 전도체인 뇌조직에 분포되어 지각의 조직적 과정에 특수한 영향을 미친다. 뇌의 물리적 형태와 생리적 기능의 형태, 심리적 과정의 형태가 서로 대응한다는 이런 관점을 동형이질설이라 한다.
- 볼프강 쾰러는 통찰 학습에 관해 어떤 연구를 실시했을까?
볼프강 쾰러는 베르트하이머와 가장 가까운 동료 중 하나였다. 1913년부터 1920년까지 쾰러는 북서부 아프리카 연안의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 섬에 있는 유인원 연구 센터의 소장을 맡았었다. 처음에는 잠시 동안만 머물 생각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몇 년 동안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테네리페에 있는 동안 쾰러는 침팬지의 문제해결 능력에 대한 중요한 연구를 실시했다. 그는 바나나 여러 송이를 침팬지의 손에 닿을락 말락 한 곳에 놓고 침팬지들이 어떻게 바나나를 잡는 문제를 해결하는지 관찰했다.
모든 침팬지들이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침팬지의 지능도 각기 다르다는 증거다) 성공한 침팬지들은 모두 유사한 행동을 보였다. 대개 침팬지들은 처음에 단순히 뛰거나 손을 뻗어 바나나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바나나를 잡을 수가 업자 소리를 지르거나 벽을 차며 절망감을 드러냈다. 그러다 방 전체를 살펴본 후 갑자기 근처에 있는 물체를 도구로 삼는 해결책을 생각해내는 것이었다. 한 침팬지는 바나나 아래에 상자를 끌어다 놓고 그 위에 올라가 바나나를 잡기도 했다. 어떤 침팬지들은 여러 상자들을 쌓은 후에야 바나나를 잡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침팬지는 나뭇가지 두 개를 이어 바나나에 닿을 정도로 긴 가지를 만들기도 했다.
- 이 연구는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
이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동물들이 주변 환경 전체를 살펴본 후에 해결책을 생각해냈다는 점이다. 동물들은 한 가지 물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전체적인 것을 모두 고려했다. 둘째, 행동주의자들이 예상했던 바와 달리 침팬지들의 문제 해결 방법이 보상과 처벌을 통한 시행착오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침팬지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완벽한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다시 말해 단편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방식으로 해결했다는 것이다. 쾰러는 이런 전체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통찰 학습이라고 불렀다.
- 볼프강 쾰러는 어떻게 유인원을 이용해서 통찰 학습을 연구할 수 있었을까?
볼프강 쾰러는 앞서와 같이 침팬지의 문제 해결 방식을 살펴본 연구를 실시했다. 그는 바나나 한 송이를 침팬지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고 침팬지들이 바나나를 어떻게 손에 넣는지 관찰했다. 처음에는 좌절하기만 했던 침팬지들이 결국 주변에 있는 물체를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통찰은 일종의 아하! 의 순간처럼 갑자기 깨닫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침팬지는 나뭇가지 두 개를 연결해 바나나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기다란 도구를 만드는가 하면 또 다른 침팬지는 상자 세개를 쌓아 올려 천장에 달린 바나나를 끌어내렸다. 이 연구는 이런 동물들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점 외에도 마음이 완벽한 문제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낸다는 게슈탈트 이론을 뒷받침해주었다. 이것은 오직 시행착오를 통해 조금씩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가능하다는 행동주의자들의 가정을 뒤엎는 것이었다.

– 좋은 형태
볼프강 쾰러는 지각 수준과 지각의 바탕을 이루는 신경심리 수준 모두에서 작용하는 장력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일반적으로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리적인 사실들이 생물학적 수준에서 대응물을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들 생물학적 대응물은 소위 정신- 물리과정이라 불리는 것으로 중추신경계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예를 들어, 특정 시각 장은 후두엽에서의 모종의 처리 분포에 의해 생물학적으로 표상된다. 더욱이 뇌과정은 지각 표상과 동형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덕분에 여러 가지 지각 현상들로부터 뇌의 기능을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주로 그림 잔상 효과에 대한 실험들과 지각집단화원리들에 기초하여 사변적 신경심리학을 계속 발전시켜 갔다. 형태주의심리학의 사망시간을 앞당긴 것을 무엇보다도 이러한 쾰러의 사변적 측면이라 말하기도 한다.
뇌의 전기적 활동이 장과 관련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던 신경심리학자들은 그러한 결과를 쾰러 개인의 독특한 신경-연역적인 시도의 실패로 그치지 않고 형태주의 이론 자체를 폐기처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형태주의 심리학의 핵심에 놓여있는 확고한 시각현상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쾰러는 에스토니아의 레벨에서 태어나 튀빙엔 대학과 본 대학에서 학생시절을 보냈다. 그 후 베를린의 수툼푸 아래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곳에서 코프카를 만났다. 그가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것은 1910년이었는데 그때는 베르트하이머가 파이현상에 대한 실험을 하기 얼마 전이었다. 그곳에서 쾰러는 코프카와 함께 베르트하이머의 실험에 참가하였다.
1913-1920년 사이에 있는 테네라이프 섬에서 병아리와 침팬지의 행동을 연구했다. 그는 문제해결 연구에 형태주의 개념들을 적용하여 원숭이의 지성이란 꽤 영향력 있는 책을 썼다. 그는 동물들이 학습하는 것은 자극과 반응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사건들 사이의 관계이며 동물들도 통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침팬지가 손이 닿는 음식을 먹기 위해 나무상자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관찰하고 이 결과를 동물들이 통찰능력이 있다는 근거로 삼았다. 동물을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 가장 놀라운 현상은 완벽하고 정확한 해결책이 갑자기 떠오른다는 것이다.
쾰러는 테네라이프레서 돌아온 후 다시 지각연구를 시작해 비누거품이나 자기작용과 같은 물리적 전처리와 지각현상를 더욱 확고하게 연결 지으려 하였다. 그는 물리적 형태에 관해 저술했던 책 덕분에 1922년 베를린 대학의 심리학 과장에 임명 되었다. 1935년에 그는 베를린 대학을 떠나 스와스모어 칼리지로 옮겼다. 그는 그곳에서 심리학 탐구의 편집을 맡아 보았으며 다른 한편으로 매우 왕성한 실험활동을 하였다. 그가 스와스모어 칼리지에서 실시한 실험들은 지각, 특히 형태 잔상 효과에 관한 것이다. 형태주의 삼총사 중에서 가장 젊었던 쾰러는 그들 가운데 미국 생활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하였다. 그는 1959년에 미국심리학회 회장이 되었다.
쾰러의 초상화 역시 앞서 소개된 동료들의 초상화와 동일한 모티브로 구성되었지만 이번에는 얼굴의 윤곽을 터진 원들이 이뤄 내는 장으로 처리하였다.

– 쾰러 (Köhler)가 알려주는 침팬지가 바나나를 먹는 법
독일의 심리학자로 형태주의 학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형태주의는 ‘게슈탈트’ (Gestalt)로도 불리며, 유기체가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구조화하고 조직함으로써 형태를 구성한다고 본다.
쾰러는 1913년에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섬에서 6년간 머물며 행동주의 학습이론에서 말하는 자극-반응의 연합에 의한 학습을 거부하고, 침팬지의 문제 해결능력을 알아보는 실험을 통해 ‘통찰’ (insight)학습을 연구한다.
그는 침팬지 우리 속에 상자들과 막대기를 넣어놓고 천정에 손이 닿지 않도록 바나나를 매달아 놓았다. 이 상황에서 침팬지들은 여러 가지 행동들을 해 보다가 포기하는 듯했지만 결국에는 올바른 해결책을 찾아냈다.
침팬지들은 막대로 과일을 쳐서 떨어뜨리거나, 상자를 바나나 아래로 끌고 가서 받침대로 삼아 올라가서 바나나를 땄다.
쾰러는 바나나를 점점 더 높이 매달아 놓았는데, 그러자 침팬지들은 상자 위에 또 상자를 쌓아서 바나나를 따는 행동까지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손다이크의 ‘문제상자’ 실험에서 보여진 고양이의 시행착오적 행동과는 아주 다른 것이 었는데, 이를 통해 마침내 쾰러는 시행착오가 아닌 ‘통찰’로 침팬지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확증한다.
이에 더해 침팬지들은 한 과제에서 배운 것을 다른 과제에까지 전이 (transfet)시킬 수도 있었다. 처음 통찰행동을 보인 침팬지를 보면서 다른 침팬지들에게 그 행위가 퍼져 나간 것이다.
쾰러에 따르면 학습은 맹목적인 시행착오나 무의식적 충동의 발산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장면에 대한 ‘통찰’ (insight)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형태주의에서 말하는 통찰은 문제에 대한 부분적 해결이 아니라 전체적 해결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학습이 전체적인 장을 고려하여 학습자에게 한 번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통찰학습에서 학습자는 항상 ‘아하 현상 (AHA Phenomenon, AHA effect)’ 을 경험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아르키메데스가 외친 ‘유레카’ 도 통찰에서 나온 것이다.
쾰러는 게슈탈트 심리학파의 입장에서 계시대비 (繼時對比), 기억 등의 실험적 연구를 통하여 지혜, 사고, 기억 현상의 통일적 설명을 시도하였다.
그는 형태주의적 관점에서 가치론을 다루고, 과학, 심리학 등에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접근을 시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저서
주요저서로 ‘게슈탈트심리학’ (1929), ‘심리학의 역학설’ (1940) 등이 있다.
‘유인원의 마음’ (‘Intelligenzprüfungen an Anthropoiden’, 1917): 1917년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출판되었으며, 1921년 ‘Intelligenzprüfungen an Menschenaffen’이라는 제목으로 제2판이 나왔다. 엘라 윈터가 제2판을 영어로 번역하여 1925년 런던의 케건, 트렌치와 뉴욕의 하코트, 브레이스 앤 월드에서 출판했다. 리버라이트 1976년 재판.
‘게슈탈트 심리학’ (‘Gestalt Psychology’, 1929): 뉴욕 리버라이트에서 출판되었고, 1930년 런던 Bell에서도 출판되었다. 대폭 수정된 독일어 번역본 ‘Psychologische Probleme’는 1933년 베를린 Springer에서 출판되었다.
‘사실 세계에서의 가치의 위치’ (‘The Place of Value in a World of Facts’, 1938): 뉴욕 리버라이트에서 출판되었다. 노턴 재판 1976.
‘심리학의 역학’ (‘Dynamics in Psychology’, 1940): 뉴욕 리버라이트에서 출판되었다.
‘게슈탈트 심리학: 현대 심리학의 새로운 개념 소개’ (‘Gestalt Psychology: An Introduction to New Concepts in Modern Psychology’, 1947): 뉴욕 리버라이트에서 출판된 1929년 저서의 개정판이다. 노턴 1992년 재판.
‘게슈탈트 심리학의 과제’ (‘The Task of Gestalt Psychology’, 1969): 프린스턴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판되었다.
‘볼프강 쾰러의 선별된 논문’ (‘Selected Papers of Wolfgang Köhler’, 1971): 메리 헨레 (Mary Henle)가 편집하여 뉴욕 리버라이트에서 출판되었다.
- Books by Köhler (These are the editions in English)
- The mentality of apes, transl. from the 2nd German edition by Ella Winter. London: Kegan, Trench and New York: Harcourt, Brace and World. Original was Intelligenzprüfungen an Anthropoiden, Berlin 1917. 2nd German edition was titled Intelligenzprüfungen an Menschenaffen, Berlin: Springer 1921. Liveright 1976 reprint.
- Gestalt psychology. New York: Liveright. London: Bell 1930. A heavily revised translation into German, Psychologische Probleme, was published in 1933 by Springer, Berlin.
- The place of value in a world of facts. New York: Liveright. Norton reprint 1976:
- Dynamics in psychology. New York: Liveright.
- Gestalt psychology: an introduction to new concepts in modern psychology. New York: Liveright. A revised edition of the 1929 book. Norton 1992 reprint:
- The task of gestalt psycholo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 Henle, Mary (ed). The selected papers of Wolfgang Köhler. New York: Liveright.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