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7월 11일, 독일의 법학자•정치학자 카를 슈미트 (Carl Schmitt, 1888 ~ 1985) 출생
카를 슈미트 (Carl Schmitt, 1888년 7월 11일 ~ 1985년 4월 7일)는 나치에 협력한 독일의 법학자이자 정치학자이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플레텐베르크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소상공인 요한 슈미트 (Johan Schmitt)의 아들로 태어나, 가톨릭 문법학교에서 수학한 후 1900년부터 1906년 졸업할때까지 아텐도른 문과 김나지움에 있을 때도 가톨릭 신학생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다. 대학은 베를린 대학교, 뮌헨 대학교, 스트라스부르 대학교를 옮겨다니며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하다 1915년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33년에 베를린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같은 해에 나치 당에 입당한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나치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나치히틀러의 독재 체제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의 주권에 대한 저작은 상당히 날카로운 관점을 가지고 있어, 발터 베냐민, 자크 데리다, 조르조 아감벤 박사 등과 관련된 논의에서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논쟁적인 저서가 되어 있다.

– 카를 슈미트 (Carl Schmitt)
.출생: 1888년 7월 11일, 독일 Plettenberg
.사망: 1985년 4월 7일, 독일 Plettenberg
.영향을 준 인물: 토머스 홉스, 막스 베버, 임마누엘 칸트,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등
.배우자: 듀스카 토도로비치 (1925 ~ 1950년), Pavla Dorotić (1916 ~ 1924년)
.영향을 받은 사람들: 한나 아렌트, 레오 스트라우스, 발터 벤야민, 자크 데리다 등
카를 슈미트 (Carl Schmitt)는 독일의 법학자이다. 그는 헌법의 수호자 논쟁, 헌법학에서의 결단주의로 알려져 있다. 나치와의 연관으로 악명이 높다. 슈미트는 독일의 불안정한 의회주의를 비판하였다. 슈미트에게 권력의 활동은 제도가 아니라 결단이며, 친구와 적의 구별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의 저서는 발터 베냐민, 레오 스트라우스, 위르겐 하버마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사상적 측면에서 전체주의자이며, 행위가 아닌 사상 때문에 전범재판으로 단죄당한 몇 안 되는 확신범으로서의 극우다. 따라서 자칫 우파적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개요의 인명록을 보면 알겠지만 경제학으로서의 그의 통찰은 진영을 떠나 영향이 있었지만 정치학과 법철학은 우파에게는 전혀 인기가 없으며, 오히려 사회주의 계열 지식인들에게 크게 인정받아 전후에도 크나큰 영향력을 끼쳤다. 그가 떠올린 구상체계 전체는 역겨울지는 몰라도 모두가 헛점이 찔렸다고 생각할만한 통찰을 보여주기는 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그의 정치학,법철학적 관념의 목표 때문이었다. 이 사람은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바이마르 공화국이 독일 사회의 주된 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이 정부체제를 타파하기 위한 법철학을 전개하였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에 깔고있는 우파 지식인들에게는 그의 통찰이 인기가 전혀없을 수 밖에 없다. 반면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라 칭하며 타도하길 바라던 좌파 계열 인사들에게 전폭적인 환영을 받고 그 모티브와 사상적 관념을 전승하였던 것이다.
극우가 어떻게 좌익 사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흔히 통용되는 극우 극좌라는 말은 이론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라는게 가장 간단한 정답이다. 그러나 이것이 대중적으로 이해를 시킬 수가 없는 일이기에 굳이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수 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치즘이라는 사상의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나치스는 독일의 주요 정치사상이던 국가주의(정)와 사회주의(반)를 인종주의(합)로 종합한 사상이다. 따라서 나치스 이념 자체를 자세히 뜯어보면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이 당연히 녹아 있다. 나치스의 공식 당명 자체가 국가 사회주의 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이다. 정당의 약자를 줄여 나치당이라고 불러서 그 공식 명칭을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이 정당의 이름에 사회주의, 노동자당이라는 이름이 괜히 들어간게 아니다.

○ 생애 및 활동
1888년 7월 11일 베스트팔렌주 플레텐베르크 (Plettenberg)에서 태어났다. 1910년에 박사학위를, 1914년 교수자격을 취득하였다. 1921년 그라이프스발트 (Greifswald)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하여, 본 대학 (1921년), 베를린 상과대학 (Handelshochschule Berlin, 1928), 쾰른 대학 (1933년)에서 교수직을 역임했고,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베를린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 (현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전범재판을 받고 교수직을 상실한 후 고향에서 은둔생활을 하다가 1985년 4월 7일 사망했다. 97세까지 장수했다.
○ 배경
사회주의와 국가주의를 합쳐서 인종주의가 나왔는데, 어느 쪽에 중점을 두던지 간에 세 사상 전부 독일 내에서 가장 강한 전통이자 익숙하기 그지없던 프로이센적 군사주의에 걸맞는 전체주의 이념이다. 따라서 영미권에서 발원한,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인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극도로 혐오한다. 이를 법철학적 관점에서 내용을 전개하다보니 자유민주주의를 선호하는 우익 학자는 극혐하고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좌익 학자들은 칭송하는 행태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근원적으로 근세 영미권은, 어쩌다보니 거대 제국이 된 대영제국의 미래상을 두고 제국을 유지해서 얻는 이익 때문에 도덕적 딜레마를 등한시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 식민지인과 본국인 사이의 관계 등을 둘러싸고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사상관계를 진행하였다. 그래서 근대 자유론의 거의 대부분이 나온다.
반대로 독일권역은 중앙정부가 사실상 명목만 남은 채로 영방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래서 일찍이 민족국가 체제를 갖춘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 둘러쌓여 이권과 영토를 차근차근 무력하게 빼았기고 있었다. 독일계 지식인들은 ‘어떻게 하면 독일인이 단결할까, 독일인을 모두 통괄하는 강력한 중앙집중권력을 어떻게 구현할까’에 관심이 쏠려 있었고, 근대 전체주의의 대부분이 여기서 나온다. 그 전체주의 이념 중 법철학 부분을 담당하는 게 카를 슈미트이다.
정리하자면 독일과 영국의 상반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지식인들의 요구가 이런 상반된 전통으로 나타난 것이다.
○ 내용
- 정치신학
특정하게 정치적인 구분이란 정치적 행동과 동기들의 원인이 되는데, 그것은 친구와 적의 구분이다.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것은 규범과 정상성을 창출하는 내부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같은 구분을 행하는 단위는 오로지 “국가”이다.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본질인 “정치적인 것”들을 윤리나 경제에 종속시킨다. 개인주의는 정치적인 것을 부정한다. 따라서 그들은 국가이론,정치이론을 만들지 못하고 오로지 개별적인 정책만을 비평할 뿐이다.
- 결단주의
이러한 법 실증주의의 모순은 칼 슈미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그들은 헌법조문을 쓰여진 활자가 튀어나와서 법을 실행한다고 가정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법조문은 사실상 정상상태의 관리의 의미밖에 없으며 그 관리조차도 법조문을 제정하는 자의 “결단”의 권위에 의존한다.
또한 현실의 상황과 법조문과는 당연한 괴리가 있으며 현실은 법전이 담을 수 없는 수많은 예외상태를 발생시킨다. 이때 이 “결단”하는 자는 정상상황을 “결단”한 만큼 “예외상황”도 “결단”할 수 있으며 이 정치행위에 헌법은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다.
이 결단하는 자는 당연히 “주권자”이다. 거꾸로 해도 똑같이 비상상태를 규정하는 자가 “주권자”이며 이는 법 실증주의와는 달리 현행 법조문과 관련하여 주권자가 취하는 행동과 개정 양자 모두에 대하여 어떠한 정당화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핵심이다.
거칠게 줄이자면 소위 바이마르 공화국을 지지한다는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들은 정치적 행위를 규정하지조차 못함을 헤겔인식론을 이용해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이들이 정치의 개념조차 규정하지 못하니 이들은 정치의 근원적인 것을 “주관”을 떠나 “객관”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뜻이니 무능한게 아니라 불능하다는 이야기다. 이건 법 실증주의를 비평하는 이야기다.

○ 가톨릭주의자
슈미트는 “나에게 가톨릭 신앙은 조상 때부터의 종교이다. 나는 단지 신앙고백의 점에서 가톨릭일 뿐만 아니라 출신으로부터나 감히 말한다면 인종으로부터 보아도 가톨릭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철저한 가톨릭 주의자였다.
그의 헌법이론의 근저는 철저하게 가톨릭 주의에 따랐다. 그의 가톨릭 주의는 가톨릭 신학에서 말하는 성과 속의 통일성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타나 있다. 성과 속의 통일성 관념은 그의 모든 이론과 저작에서 면밀히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정치신학은 성과 속의 이원론적 대립을 기초로 하는 프로테스탄트 신학과 국법학에 전면석으로 대항하는 가톨릭 주체의식의 학문적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의 가톨릭주의는 이러한 성과 속의 통일체인 가톨릭 교회를 모범으로 하여 헌법이론을 구성하는 태도에서도 명백히 나타난다. 슈미트가 세속화 시대의 대안으로서 내놓은 것은 가톨릭 교회였고 그 다음은 가톨릭 교회를 모범으로 하며 그 병렬로서 형성된 근대 절대주의 국가의 질서였다. 이러한 모델에서 묘사된 포괄적인 질서 원리가 ‘대표’ (Reprasentation)였다. 이것은 그의 헌법사상, 정치이론 그리고 기타의 문화이론을 지배하는 원리였다.
슈미트는 가톨릭의 자의식을 선명히 가지면서 자신의 학문적 만족의 장을 헌법학에서 발견하고, 공법적 형상인 가톨릭 교회의 파악을 통해서 법학과 신앙을 결합시켰다. 거기서 그는 가톨릭 주의를 거점으로 하여 헌법학적 결론을 도출하였다. 그는 결단주의적 법질서인 국가의 모범을 가톨릭 교회에서 찾았다.
○ 나치에 대한 협력
슈미트는 1933년 5월 1일 나치당에 입당한다. 헤르만 괴링 의장은 곧 그를 프로이센 추밀원의 고문관으로 임명했고, 11월엔 독일사회민주당 법학자 연맹의 장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나치의 이념적 기반으로 생각했고, 국가의 총통 (Führer)의 정당화가 특히 독재자 (auctoritas)의 개념을 통한 법철학에 대한 고려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보았다.
1934년 6월에 슈미트는 독일 법학자 신문의 편집장이 되었고, 같은 달에 그는 ‘장검의 밤’에 일어났던 정치적 살인을 “가장 고결한 행정적 정의의 형태” (höchste Form administrativer Justiz)라고 정당화했다.
슈미트는 스스로를 급진 반유대주의자로 생각했으며 베를린에서 1936년 10월에 있던 법학자들의 집회에서 그 장으로 활동했다. 이 집회에서 그는 “독일 법이 유대 정신 (jüdischem Geist)의 오염에서부터 깨끗해져야 한다”고 말했으며, 그 집회 이후 “유대인 학자가 발표하는 모든 논문에는 유대인임을 상징하는 작은 심볼이 부착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두달 뒤인 12월에 SS가 발표한 ‘암약하는 반체제 조직’ (Das schwarze Korps)에서 그는 기회주의적 존재이자 가톨릭에 기반한 헤겔주의적 국가사상가이며 그의 반유대주의는 단순한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점이 그가 초기에 발표한 나치의 급진 이론을 비판한 발언들의 인용을 통해 비판 받았다. 그 뒤, 슈미트는 그의 주요한 공직들을 잃었으며, 나치의 주도적 법학자의 지위에서부터 은퇴했다. 다만 베를린 대학의 교수직은 유지할 수 있었다.
1945년 슈미트는 미군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1년여간의 수용소 생활 끝에 그의 고향인 플레텐베르크로 1946년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이후에 그는 플레텐베르크-파젤의 그의 부인 (?, housekeeper)인 안니 슈탄트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학계나 정계의 주류로터 고립되어 있었음에도 그는 특히 국제법에 대한 연구를 1950년대부터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노쇠할 때까지 그의 친구 및 젊은 지식인들의 끊임없는 방문을 받았는데, 방문객 가운데에는 에른스트 융거. 야코프 타우베스, 알렉상드르 코제브 등의 인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슈미트는 1985년 4월 7일에 97세를 일기로 별세했으며 그의 시신은 플레텐베르크에 매장되었다.
슈미트가 나치 치하에서 했던 행위들에 대한 최근의 몇몇 변명에도 (그가 살아있는 동안 어떠한 변명도 스스로가 하지는 않았다), 나치 치하의 그의 행위는 초기 하이데거의 행위와 함께 기억된다. 슈미트는 그의 나치 체제에서 유력한 지위를 누렸으며, 나치의 권력 강탈에 대해 사법적 외관 (façade)을 제공해 준 인물이기도 하다. 슈미트의 매우 통찰력있는 정치적 마인드는 나치의 진정한 본성과 그들의 리더십에 관해 실수를 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슈미트는 명백하게 심지어 독재적 권력까지 가진 강력한 권력을 선호했으나, 그러한 권력의 형태가 히틀러 총통의 체제를 지향하는 것인지 아니면 권위주의적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체제를 지향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질문이 열려 있다. 만일 우리가 관대한 쪽으로 기울어질 경우, 그가 히틀러를 비스마르크로 착각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대한 의견은 슈미트의 ‘독재론’을 읽어 보았을 때 의심받게 된다. 그는 계엄적 독재의 장을 위한 비난을 주권적 독재에 반대하기 위해 행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슈미트의 논의 가운데 꽤나 역설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인데, 그는 나치가 승리하는 시기까지만 해도 그가 궁극적으로 그와 같은 사람의 역할이 줄어드는 체제를 지원할 것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나치당 안에서 그의 지위는 그를 나치 독일 내의 법철학의 최고 권위로 만들기 위해 슈미트 스스로가 사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 영향
조르조 아감벤과 상탈 무페를 비롯한 많은 저자들에 따르면 칼 슈미트는 오늘날 우파에게 필수적인 참고 대상인 만큼 좌파에게도 그런 인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의 논의는 슈미트의 위치에 대한 해석에서뿐만 아니라 그가 현재 정치학의 문제에 매우 적절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외 상태의 문제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연설 속에서는 리처드 닉슨이 외친 주장이 메아리치고 있는데, 이 속에는 전쟁상태에서의 사법적인 예외적 관리 권력에 대한 주장이 담겨 있다. 이와 같은 권력은 영장 없는 전자적 감시 금지법의 범주를 제한할 수 있다거나 그와 같은 감시의 모든 불법성이 다만 겉으로 보이는 것에 불과해 사실을 합법적일 수 있다는 논의를 이끌어 내고 있다. 이는 외국 스파이 감시 법안 (the Foreign Intelligence Surveillance Act)과 같은 법의 내용에 대한 위반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법에서의 전쟁상태 하의 최고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의 헌법적 권위와 대통령이 어쨌든 의회에 의해 군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된 절대적 권위를 받았다는 점에 의해 뒷받침된다. 좀 더 슈미트주의자다운 말로 하자면, 주권이 존재하는 장소는 사법적 질서의 안과 바깥 모두이며 주권은 그의 권력을 어떠한 법률로도 제한할 수 있다고 간주될 수 없는 권력이다. 단일 권력자 이론에 기초한 비슷한 논증이 최근 하원과 상원에서 통과된 고문 금지법에 붙은 공식적 성명에서 또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감벤과 무페의 독자들은 슈미트의 작업에 담긴 정신과 그 내용에서부터 끌어내어져 나온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논쟁에 들어가게 된다.
슈미트의 영향력은 또한 최근의 정치 신학 (정치적 개념인 세속화된 신학적 개념에 영향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슈미트의 논증)에 대한 관심의 결과로도 보인다. 좋은 예로 유대계 독일 철학자인 야코프 타우베스는 슈미트에 대한 성 바울의 연구에 광범위하게 참여했다 (The Political Theology of Paul, Stanford Univ. Press, 2004 참조). 그러나 타우베스의 정치신학 이해는 슈미트의 것과는 크게 달랐고, 정치적 요구를 종교에서 끌어내는 것보다는 신학적 요구가 가지는 정치적 관점을 오히려 강조했다.
비슷하게, 영향력있는 정치철학자인 레오 스트라우스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비평(이 비평은 한국어판에도 포함되어 있다)에 참여했고 그의 제자들에게 슈미트의 법적, 정치적 시각과는 다른 그의 시각을 전했다.
○ 동시대 학자
2010년 현재 한국의 헌법학에서는 켈젠 (1881년생), 스멘트 (1882년생), 슈미트 (1888년생)를 자주 언급하는데, 이 세 교수는 모두 히틀러 시대의 동년배 학자들이다. 법실증주의의 켈젠은 스위스로 망명을 가서 나중에 미국인이 되었으며, 통합주의의 스멘트는 히틀러로 부터 소외되었고, 결단주의의 슈미트는 히틀러의 헌법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2010년 현재 한국 독일의 이론과 판례는 모두 스멘트의 통합주의가 통설이다. 스멘트의 한국인 제자로 허영 (헌법학자)이 있어서 권영성과 최근까지 쌍벽을 이루었다.
○ 어록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 정치신학 中 ‘주권의 정의’
모든 정치적인 개념, 관념과 용어들은 논쟁적인 의미를 가진다. … 이 논쟁적인 성격은 무엇보다 ‘정치적’이라는 말 자체의 사용법까지도 지배한다. 즉 적을 (세상을 모른다, 구체성을 결여한다는 의미에서) ‘비정치적’이라고 부르는 경우이든, 반대로 적을 ‘정치적’이라고 하여 격하시키려고 고발하려고 하는 경우이든, 자기 자신은 순수하게 현실적이고, 순수하게 학문적이며, 순수하게 도덕적· 법률적· 미학적· 경제적이라는 의미에서, 또는 유사한 논쟁적 순수성을 근거로 ‘비정치적’이라면서 적 위에 올라서려는 경우이든 마찬가지이다. – <정치적인 것의 개념>. 쉽게 말해, 논적더러 정치적이라고 힐난하는 (그러면서 자신은 정치중립적인 양 행세하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것.
독일 법이 유대 정신 (jüdischem Geist)의 오염에서부터 깨끗해져야 한다. – 1936년 10월, 법학자들의 집회에서; 카를 슈미트는 본인 스스로 반유대주의자임을 자처했고, 또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고 한다.
- 정치적인 것의 개념 (김효전, 정태호 옮김)
국가의 개념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전제로 한다. – 제 1장 국가와 정치
정치적인 행동이나 동기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특정한 정치적 구별이란 적과 동지의 구별이다. – 제 2장 정치적인 것의 규준으로서의 동지와 적의 구별
정치적인 대립은 가장 강도 높고 극단적인 대립이다. 어떠한 구체적인 대립도 그것이 적과 동지의 편 가르기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점점 정치적인 것이 된다. – 제 3장 적대관계의 현상형태로서의 전쟁
극단적인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전쟁은 모든 정치적 개념의 기초에, 이러한 적과 동지의 구별이라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을 드러낸다. – 제 3장 적대관계의 현상형태로서의 전쟁
모든 정치적인 개념, 관념과 용어들은 논쟁적인 의미를 가진다. – 제 3장 적대관계의 현상형태로서의 전쟁
국가는 하나의 통일체이며 더구나 결정적인 통일체라는 것은 국가의 정치적인 성격에 근거를 둔다. 다원론은 사회적 단체들의 연합에 의해 통일체에 이르는 국가의 국가이론이거나, 아니면 단지 국가의 해체나 부정의 이론에 불과할 뿐이다. – 제 4장 정치적 통일체로서의 국가와 다원론
적과 동지의 구별이 사라지면, 정치생활도 없어진다. 정치적으로 실존하는 국민은 서약적인 선언에 의해서 이러한 숙명적인 구별을 피할 수는 없다. – 제 5장 전쟁과 적에 대한 결단
어떤 국민이 정치적인 것의 영역에서 자신을 유치할 힘이나 의사를 잃는다고 해서 이 세계에서 정치적인 것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약한 국민만이 사라질 뿐이다. – 제 5장 전쟁과 적에 대한 결단
- 슈미트 관련 어록
슈미트의 중요성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현상들이 어떤 일회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20세기의 수많은 전쟁과 다양한 법-정치적 변동들을 16세기 이래의 정치변동과 사상사 속에 자리배김함으로써 거시적이고 근원적인 성찰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슈미트를 읽는 까닭인 셈이다. 물론 그 성찰은 때론 불편하고 불쾌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진리’나 ‘당위’를 그 개념의 발전사 속에서 상대화하고 재검토하는 깊은 통찰은 ‘적의 혜안’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 김항, 〈옮긴이 서문〉(2010), 칼 슈미트, 《정치신학》
적과 동지의 구별은 결합 내지 분리, 연합 내지 분열의 가장 강도 높은 경우를 나타내며, 그 개념은 규범적인 대립이나 순수하게 정신적인 대립도 아니며 은유나 상징으로서 해석해서도 안 되며, 구체적·존재적인 의미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 전쟁은 슈미트 정치이론의 핵심을 이루는 비상사태의 극치에 해당되는 것이며, ‘예외는 모든 것을 증명’하기 때문에 전쟁이 모든 것을 규정한다. … 적과 동지의 구별이라는 슈미트의 개념 규정에 대해서는 일찍이 이 책의 발간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적과 동지에서 구하는 발상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며, 이미 사물논리적으로 내재하는 개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것은 역사를 아 (我)와 비아 (非我)의 투쟁으로 보는 신채호 (1880 ~ 1936)의 역사관에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 김효전, 〈옮긴이 서문〉(1992), 카를 슈미트, 《정치적인 것의 개념》
조 전 장관의 대담집 ‘진보집권 플랜’을 보면 그의 정치관은 진보 대 보수, 개혁 대 수구, 아 (我)와 적 (敵) 사이의 치열한 투쟁을 통한 권력 쟁취를 지향한다. … 그것은 칼 슈미트의 정치 이론과 깊숙이 닿아 있다. … 정치가 친구와 적으로 양분되면 도덕적 판단, 불편부당성, 정의, 공정성 같은 구분은 무의미해지거나 애매해진다. – 최장집, 〈최장집 “한국 진보, 도덕적·정신적 파탄… 민주주의 위기”〉
나치에 협력했던 헌법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의 본질을 적과 동지의 구별에서 찾았다. 정치적인 행동이나 동기의 연원은 결국 피아 (彼我)의 구분이라는 말이다. 권력정치의 관점이다. 그러나 정치란 설득과 포용의 산물이기도 하다. 정치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 갈등을 최소화하고 관리하며 조정해 내는 것이 정치다. 권위주의 시대에 일상화되었던 정치적 배제는 탈정치에서 연유한다. 민주주의의 권력 원천은 투표다. 여당 의원들의 투표로 선출한 원내대표를 몰아내려는 것은 또 다른 정치적 배제다. 대통령의 국회에 대한 비판은 또 다른 삼권분립 시비를 불러올 수도 있다. 탈정치와 정치적 배제는 군사권위주의시대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대통령과 집권당 원내대표를 대척에 두고 논한다는 자체가 한국적 대통령제에서는 가당치 않다. 더구나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를 대립 각으로 설정한다는 것은 한국정치에서는 비현실적이다. 메르스 정국에서 거부권 정국으로 쟁점 축 변경을 통한 국면전환이 진정한 승부수인지 무리수인지 권력정치적 관점에서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배신의 정치’가, 적과 동지를 구별해서 그 적에 대한 ‘배제의 정치’를 하려는 것이라면 ‘승부수’와 ‘무리수’는 백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 최창렬, 〈‘배신의 정치’ ‘배제의 정치’〉, 한국일보, 2015.06.30
칼 슈미트 등 일부 이데올로그들이 헤겔을 배격한 하나의 이유는 세습적 입헌군주정을 주장하는 헤겔의 논지가 히틀러의 평민출신성과 결정적으로 상치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큰 이유는 헤겔에 대한 칼 슈미트 같은 ‘정상급’ 나치 이데올로그들의 컴플렉스였을 것이다. 이 점은 다음 절 (節)에서 살펴보겠지만 칼 슈미트가 헤겔을 공개 배격하면서도 내용적으로 헤겔의 여러 논리를 훔쳐 쓰고 있는 점에서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 황태연, 《계몽의 기획: 근대정치사상 연구》(2004), p. 290

○ 저서
- 한국어로 번역된 저작
정치 신학 外, 슈미트의 논문 10개 수록, 김효전 옮김, 1988년, 법문사.
정치적인 것의 개념, 원저는 1932년, 김효전 옮김, 1995년, 법문사.
대지의 노모스, 최재훈 옮김, 1995년, 민음사.
독재론, 원저는 1921년, 김효전 옮김, 1996년 4월, 법원사.
파르티잔-그 존재와 의미, 김효전 옮김, 1998년, 문학과지성사.
*Works
- English translations of Carl Schmitt
The Concept of the Political. George D. Schwab, tran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expanded edition 2007, with an introduction by Tracy B. Strong). Original publication: 1st edn., Duncker & Humblot (Munich), 1932; 2nd edn., Duncker & Humblot (Berlin), 1963. (The 1932 text is an elaboration of a 1927 journal article of the same title.)
Constitutional Theory. Jeffrey Seitzer, trans. (Duke University Press, 2007). Original publication: 1928.
The Crisis of Parliamentary Democracy. Ellen Kennedy, trans. (MIT Press, 1988). Original publication: 1923, 2nd edn. 1926.
Dictatorship. Michael Hoelzl and Graham Ward, trans. (Polity Press, 2014). Original publication: 1921, 2nd edn. 1928.
Four Articles, 1931–1938. Simona Draghici, trans. (Plutarch Press, 1999). Originally published as part of Positionen und Begriffe im Kampf mit Weimar – Genf – Versailles, 1923–1939 (1940).
Hamlet Or Hecuba: The Intrusion of the Time Into the Play. David Pan and Jennifer R. Rust, trans. (Telos Press, 2009). Originally published 1956.
The Idea of Representation: A Discussion. E. M. Codd, trans. (Plutarch Press, 1988), reprint of The Necessity of Politics (1931). Original publication: 1923.
Land and Sea. Simona Draghici, trans. (Plutarch Press, 1997). Original publication: 1954.
Legality and Legitimacy. Jeffrey Seitzer, trans. (Duke University Press, 2004). Original publication: 1932.
The Leviathan in the State Theory of Thomas Hobbes: Meaning and Failure of a Political Symbol. George D. Schwab & Erna Hilfstein, trans. (Greenwood Press, 1996). Original publication: 1938.
The Nomos of the Earth in the International Law of the Jus Publicum Europaeum. G.L. Ulmen, trans. (Telos Press, 2003). Original publication: 1950.
On the Three Types of Juristic Thought. Joseph Bendersky, trans. (Praegar, 2004). Original publication: 1934.
Political Romanticism. Guy Oakes, trans. (MIT Press, 1986). Original publication: 1919, 2nd edn. 1925.
Political Theology: Four Chapters on the Concept of Sovereignty. George D. Schwab, trans. (MIT Press, 1985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University of Chicago edition, 2004 with an Introduction by Tracy B. Strong. Original publication: 1922, 2nd edn. 1934.
Roman Catholicism and Political Form. G. L. Ulmen, trans. (Greenwood Press, 1996). Original publication: 1923.
State, Movement, People (includes The Question of Legality). Simona Draghici, trans. (Plutarch Press, 2001). Original publication: Staat, Bewegung, Volk (1933); Das Problem der Legalität (1950).
Theory of the Partisan. G. L. Ulmen, trans. (Telos Press, 2007). Original publication: 1963; 2nd ed. 1975.
The Tyranny of Values. Simona Draghici, trans. (Plutarch Press, 1996). Original publication: 1979.
War/Non-War: A Dilemma. Simona Draghici, trans. (Plutarch Press, 2004). Original publication: 1937.

- Works in German
Über Schuld und Schuldarten. Eine terminologische Untersuchung, 1910.
Gesetz und Urteil. Eine Untersuchung zum Problem der Rechtspraxis, 1912.
Schattenrisse (published under the pseudonym “Johannes Negelinus, mox Doctor”, in collaboration with Dr. Fritz Eisler), 1913.
Der Wert des Staates und die Bedeutung des Einzelnen, 1914.
Theodor Däublers ‘Nordlicht’: Drei Studien über die Elemente, den Geist und die Aktualität des Werkes, 1916.
Die Buribunken, in: Summa 1/1917/18, 89 ff.
Politische Romantik, 1919.
Die Diktatur. Von den Anfängen des modernen Souveränitätsgedankens bis zum proletarischen Klassenkampf, 1921.
Politische Theologie. Vier Kapitel zur Lehre von der Souveränität, 1922.
Die geistesgeschichtliche Lage des heutigen Parlamentarismus, 1923.
Römischer Katholizismus und politische Form, 1923.
Die Rheinlande als Objekt internationaler Politik, 1925.
Die Kernfrage des Völkerbundes, 1926.
Der Begriff des Politischen, in: Archiv für Sozialwissenschaft und Sozialpolitik vol. 58, no. 1, 1927, 1–33.
Volksentscheid und Volksbegehren. Ein Beitrag zur Auslegung der Weimarer Verfassung und zur Lehre von der unmittelbaren Demokratie, 1927.
Verfassungslehre, 1928.
Hugo Preuß. Sein Staatsbegriff und seine Stellung in der dt. Rechtslehre, 1930.
Der Völkerbund und das politische Problem der Friedenssicherung, 1930, 2., erw. Aufl. 1934.
Der Hüter der Verfassung, 1931.
Der Begriff des Politischen, 1932 (elaboration of the 1927 essay).
Legalität und Legitimität, 1932.
Starker Staat und gesunde Wirtschaft, 1933
Staat, Bewegung, Volk. Die Dreigliederung der politischen Einheit, 1933.
Das Reichsstatthaltergesetz, 1933.
Der Führer schützt das Recht, 1934.
Staatsgefüge und Zusammenbruch des Zweiten Reiches. Der Sieg des Bürgers über den Soldaten, 1934.
Über die drei Arten des rechtswissenschaftlichen Denkens, 1934.
Der Staat als Mechanismus bei Hobbes und Descartes, 1936.
Der Leviathan in der Staatslehre des Thomas Hobbes, 1938.
Die Wendung zum diskriminierenden Kriegsbegriff, 1938.
Völkerrechtliche Großraumordnung mit Interventionsverbot für raumfremde Mächte. Ein Beitrag zum Reichsbegriff im Völkerrecht, 1939.
Positionen und Begriffe im Kampf mit Weimar – Genf – Versailles 1923–1939, 1940 (collection of essays).
Land und Meer. Eine weltgeschichtliche Betrachtung, 1942.
Der Nomos der Erde im Völkerrecht des Jus Publicum Europaeum, 1950.
Donoso Cortes in gesamteuropäischer Interpretation, 1950.
Ex captivitate salus. Erinnerungen der Zeit 1945/47, 1950.
Die Lage der europäischen Rechtswissenschaft, 1950.
Das Gespräch über die Macht und den Zugang zum Machthaber, 1954.
Hamlet oder Hekuba. Der Einbruch der Zeit in das Spiel, 1956.
Verfassungsrechtliche Aufsätze aus den Jahren 1924–1954, 1958 (collection of essays).
Theorie des Partisanen. Zwischenbemerkung zum Begriff des Politischen, 1963.
Politische Theologie II. Die Legende von der Erledigung jeder Politischen Theologie, 1970.
Glossarium. Aufzeichnungen der Jahre 1947–1951, edited by Eberhard Freiherr von Medem, 1991 (posthum).
Das internationale Verbrechen des Angriffskrieges, edietd by Helmut Quaritsch, 1993 (posthum).
Staat – Großraum – Nomos, edited by Günter Maschke, 1995 (posthum).
Frieden oder Pazifismus? Edited by Günter Maschke, 2005 (posthum).
Carl Schmitt: Tagebücher, edited by Ernst Hüsmert, 2003 ff. (posthum).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