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6월 23일, 영국 국왕이자 인도 제국의 황제였던 에드워드 8세 (Edward VIII, 1894 ~ 1972) 출생
에드워드 8세 (Edward VIII, 1894년 6월 23일 ~ 1972년 5월 28일)는 1936년 1월 20일부터 1936년 12월 11일까지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의 국왕 겸 인도 제국의 황제 (King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Emperor of India)였다.

– 에드워드 8세 (Edward VIII)
.휘: 에드워드 앨버트 크리스천 조지 앤드루 패트릭 데이비드 윈저 (Edward Albert Christian George Andrew Patrick David Windsor)
.출생: 1894년 6월 23일, 대영제국 서리주
.사망: 1972년 5월 28일 (77세), 프랑스 파리
.매장지: 영국 버크셔주
.가문: 윈저 왕가
.부모: 부) 조지 5세, 모) 테크의 메리
.배우자: 윈저 공작 부인 월리스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국왕
.재위: 1936년 1월 20일 ~ 1936년 12월 11일
.전임: 조지 5세 / 후임: 조지 6세
.총리: 스탠리 볼드윈 백작
*인도 황제
.재위: 1936년 1월 20일 ~ 1936년 12월 11일
.전임: 조지 5세 / 후임: 조지 6세부왕
.인도 부왕 겸 총독: 프리맨 프리맨 토마스, 빅토르 호프
*웨일스 공
.재위: 1910년 5월 6일 ~ 1936년 1월 20일
.대관식: 1911년 6월 23일
.전임: 조지 프레드릭 어니스트 앨버트 / 후임: 찰스 필립 아서 조지
본명은 에드워드 앨버트 크리스천 조지 앤드루 패트릭 데이비드 윈저 (Edward Albert Christian George Andrew Patrick David Windsor)이다.
미국 출신의 이혼여성인 월리스 워필드 심슨 (Wallis Warfield Simpson)과 결혼하고자 했으나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자 왕위를 남동생인 조지 6세에게 물려주고 에드워드 8세에서 윈저 공으로 신분이 바뀐 사건으로 유명하다.
정치적으로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적성국가인 나치 독일을 지지하여 영국 왕실에서 에드워드 8세 부부를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소환하였다.

○ 생애 및 활동
1894년 당시 왕세손인 조지 5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3년 군에 입대하여, 총사령관, 보병장 등을 거쳤다. 1916년 예편 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했고 1919년 교사, 약제사, 육군교관, 연방행정관, 라디오 뉴스 해설자, 국방행정관 등으로 일했으며 그 뒤에는 스탠리 볼드윈의 재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역임했고 헤럴드 맥밀런, 네빌 체임벌린, 오스틴 체임벌린, 허버트 헨리 애스퀴스, 해럴드 윌슨, 스탠리 볼드윈 등과 교류했다.
1926년 에든버러 대학총장을 거쳐 1932년 해군장관을 거쳐 1934년 병원 의사가 되었다. 1936년 군주가 되었으나 사퇴하고 윈저 공작이 되었으며, 월리스 심슨과 결혼했다. 그 당시 월리스 심슨과의 결혼은 기념비적인 세기의 로맨스였다. 월리스 심슨 부인은 미국 출신의 이혼녀 신분이었고, 에드워드 8세는 왕위 계승순위 제1순위의 후계자였다. 왕위 계승이 확실시 되었던 에드워드 8세는 왕권에 대한 책임을 지는 대신 사랑을 선택하여 왕좌를 버렸다. 두 사람은 오랜 비밀 관계가 영국 국민과 정치인들에게 들통나자 프랑스로 거처를 옮겨 국제적 인사로 상류사회를 순회하며 살았다.
또한 그는 1937년 군수로 일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나치 관료들과 히틀러의 환영을 받았으나 윈스턴 처칠과 밀약을 맺고, 유화 정책을 비판하였다. 또한 영국, 프랑스, 뉴질랜드, 미국을 방문하는 모습을 보였다. 1944년 체코슬로비키아에서 회담을 나누고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을 사귀기도 했다. 1952년 동생이 사망한 이후에는1953년 영국을 방문하여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여했으며 루스벨트와도 밀약을 맺었다. 그 뒤 험프리 부통령, 존슨 대통령과 함께 베트남전쟁을 지지하고 닉슨 사임을 요구했는데 현관 제막식 때도 영국을 방문했다. 1972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 칭호 및 작위
즉위했을 때의 공식적인 칭호는 다음과 같았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와 해외 영국 자치령의 왕, 신앙의 수호자, 인도의 황제이신 에드워드 8세 폐하 (His Majesty, Edward the Eighth, by the Grace of God, of Great Britain, Ireland, and of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King, Defender of the Faith, Emperor of India)’
요크의 에드워드 공자 전하 His Highness Prince Edward of York (1894년 6월 23일 ~ 1898년 5월 28일) / His Royal Highness Prince Edward of York (1898년 5월 28일 ~ 1901년 1월 22일)
콘월과 요크의 에드워드 공자 전하 His Royal Highness Prince Edward of Cornwall and York (1901년 1월 22일 ~ 1901년 11월 9일)
웨일스의 에드워드 공자 전하 His Royal Highness Prince Edward of Wales (1901년 11월 9일 ~ 1910년 5월 6일)
콘월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Cornwall (1910년 5월 6일 ~ 1936년 1월 20일)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Rothesay
웨일스 공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Prince of Wales (1910년 6월 23일 ~ 1936년 1월 20일)
국왕 폐하 His Majesty The King (1936년 1월 20일 ~ 1936년 12월 11일)
에드워드 왕자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Prince Edward (1936년 12월 11일 ~ 1937년 3월 8일)
윈저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Windsor (1937년 3월 8일 ~ 1972년 5월 28일)

○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도 버린 에드워드 8세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 없이는 국왕의 책무를 다할 수 없습니다. 조금 전 저는 왕위를 포기했습니다.”
1936년 12월 11일 라디오에 둘러 앉아 국왕 에드워드8세가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다’는 선언을 들은 영국인들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로맨스의 여주인공은 월리스 심프슨. 영국인도 아닌 미국인에 평민 출신으로 두 번 이혼했던 그녀다. 왕위에 오르기 전 에드워드 8세와의 사랑은 뜨거웠지만 영국 왕실은 그녀를 백안시했다. 수려한 외모에 깔끔한 매너, 훌륭한 패션 스타일까지 두루 갖춰 인기가 높았던 에드워드 8세는 왕위에 올라도 심프슨을 잊을 수 없었다. 사랑과 왕위 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던 그는 사랑을 택한다. 국민에겐 충격이었다.
왕에서 물러나 ‘윈저 공’으로 강등된 그는 “내게 가장 가까운 이는 나를 말렸지만 나 홀로 직접 결정을 내렸다”고 연설에서 여러 번 말했지만 사람들은 믿을 수 없어했다.윈저 공은 이듬해 6월 3일 프랑스 투르 지방의 고성 ‘샤토 드캉데’에서 심프슨과 결혼했다. 연미복에 미소를 머금은 윈저 공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심프슨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사진은 세기의 로맨스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결혼식은 쓸쓸했다. 하객은 단 16명, 그중 5명은 기자였다. 영국 왕실은 한 명의 하객도 안 보냈다. 윈저 공의 어머니 메리 왕비는 심프슨에게 ‘윈저 공작부인’ 이외의 어떤 왕실 존칭도 허락하지 않았다. 왕실은 윈저 공작 부부의 영국 정착을 금지했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살았다.
영국 왕실 전문 저술가인 휴고 비커스는 최근 더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당시 신문은 윈저 부부의 결혼식을 기본적 사실만 짤막하게 보도한 반면 왕실 가족들이 한가로이 경마를 즐기는 사진은 크게 실었다. 또 결혼식 주례였던 성공회 앤더스 자딘 목사가 자신의 교구를 벗어나 주례를 섰음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렸다”고 했다.
심프슨은 그러나 강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기 길을 걸었다. 결혼식에도 자기 색을 맘껏 드러냈다. 푸른 눈동자의 심프슨은 순백의 전통 웨딩 드레스 대신 푸른색 드레스를 입었다. 드레스를 디자인한 프랑스의 디자이너 멩 루소 보셰는 드레스 색을 ‘월리스 블루’라 불렀다. ‘월리스 블루’는 케이트 미들턴이 입은 원피스 색과 비슷해 또 주목을 끌었다. 원피스를 디자인한 브라질 출신 다니엘라 이사 헬라옐은 “심프슨 부인이야말로 내 컬렉션의 뮤즈(영감을 주는 존재)”라고 했다.
○ 비판
아돌프 히틀러를 지지하여 나치를 옹호하기 위해 1937년, 나치 전당대회에 가족들을 데리고 참석해서 나치 지지연설을 했는데 이 때 아직 어린이였던 엘리자베스 2세에게 나치식 경례를 시켰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