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2월 12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여성 문필가•사회운동가•정치가 쉬광핑 (許廣平, 1898 ~ 1968) 출생
쉬광핑 (許廣平, 许广平, 1898년 2월 12일 ~ 1968년 3월 3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여성 공산주의 혁명가, 정치가이다. 필명 (筆名)은 쉬징쑹 (許景宋), 쉬샤 (許霞)이다. 청나라 광둥성 광저우 부 판위 구역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청나라 광둥성 산터우 부 청하이 구역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다.

– 쉬광핑 (許廣平)
.출생: 1898년 2월 12일, 청나라 광둥성 광저우 부 판위 현
.사망: 1968년 3월 3일 (70세),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
.학력: 중화민국 허베이 성 톈진 즈리 제1여자사범학교 전문학사, 중화민국 허베이 성 베이징 여자사범대학교 교육학과 학사
.경력: 중국공산당 문예행정집무위원
.정당: 중국공산당
.배우자: 루쉰
.자녀: 저우하이잉 (아들)
.친인척: 저우쭤런 (시제), 저우젠런 (시제), 쉬잉쭝 (친정 할아버지), 쉬충하오 (친정 사촌 오빠), 쉬충즈 (친정 사촌 오빠), 쉬사오슝 (친정 조카손자)
*중국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
.임기: 1961년 7월 26일 ~ 1962년 8월 26일
.주석: 류사오치 / 부주석: 둥비우 / 총리: 저우언라이
쉬광핑 (許廣平, 1898 ~ 1968)은 중국의 현대 문학가, 사회운동가이자 정치가로, 중국 근대 문학의 거장 루쉰 (魯迅)의 반려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 생애 및 활동
쉬광핑은 중국 공산당이 창설한 중국 좌익 작가 연맹의 지도자, 문학 평론가, 프로 문학 혁명가, 문필가로 활동한 루쉰 (魯迅)의 제자이며, 그의 두 번째 부인으로서 1926년 상하이에서 루쉰과 결혼하였다.
1932년에는 작가로 첫 입문하였고 1936년에는 루쉰이 마오쩌둥의 중화소비에트공화국과 옌안 중국 공산당의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에 투신하던 중에 사망하면서 그와 사별하였다.
1949년 중국 본토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성립하는 데 참여하여 중국공산당 민주촉진회 부주석, 부녀연합 부주석, 문련 부주석, 중국공산당 인민정치협상회의 상임위원, 중국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 등 고위직에서 프로 문학 혁명가 루쉰의 유지를 받들면서 마오둔, 궈모뤄 등과 함께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등의 문학 공작을 지도하였다.
항미원조 운동, 티베트, 신장 위구르, 삼반오반운동 등을 포함하여 중국 전국 각 지역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주의 문예 노선을 선전하는 여성 간부로 활동하였으며 소비에트 연방, 동독 등지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 정부 초기, 항미원조 운동, 반우파운동의 기간에는 당시 탄압을 받은 중국민주동맹에 대한 조사조 인원으로 가담하여 당시 중화인민공화국 내 친한파 (親韓派) 정치가로 활동한 장둥쑨 (전 칭화 대학 정치인, 교육자, 1947년 4월 5일에는 탕융퉁 초청으로 국립 베이징 대학에서 철학 특강 교수 역임)을 비롯하여, 뤄룽지, 펑원잉 등의 중국 내 사회주의 민주계 인사들을 중국의 정치권에서 제거하는 데 가담하기도 하였다.
중조 우호 협력 상호 원조 조약이 체결된 해인 1961년 6월 6일을 기해서는 마오쩌둥, 저우언라이가 직접 나서 입당을 비준하고 공표한 중국의 공산주의자로 중국 공산당의 여성 당원 간부로서도 활동하였다.
문화 대혁명이 시작된 이후에는 사별한 전 남편이자, 프롤레타리아주의 문예 혁명가였던 루쉰의 각 저술과 서신의 친필 원본을 호신의 용도로 요구하는 홍위병들의 간섭에 직면하기도 하였으며, 전 남편 루쉰으로 인하여 갖가지로 고초를 겪는 중국 공산당 치하의 지식분자들과 중공의 동료 정치가들을 지켜보면서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 주요 활동
루쉰과의 관계: 1923년 베이징여자사범대학 학생 시절 스승이었던 루쉰을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17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웠으며, 1927년부터 상하이에서 동거를 시작해 루쉰이 사망할 때까지 함께했다.
문학적 동지: 단순한 아내를 넘어 루쉰의 문학 활동을 돕는 든든한 조력자였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나중에 《양지서(兩地書)》라는 제목의 서간집으로 출간되어 당시 지식인들의 고뇌와 사랑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사회 및 정치 활동: 루쉰 사후에는 그의 원고를 정리하고 출판하는 데 힘썼으며, 신중국 성립 이후에는 정무원 부비서장, 전국부녀연합회 부주석 등 고위직을 역임하며 여성 운동과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
독립적인 인물상: 오늘날에는 루쉰의 그늘에 가려진 인물이 아니라, 봉건적 인습에 맞서 자신의 삶과 사랑을 스스로 개척한 ‘신여성’이자 독립적인 사회운동가로 재조명받고 있다.

○ 평가
루쉰을 만난 쉬광핑은 맹렬한 기세로 외세와 구습에 도전하던 투사의 모습을 접고 루쉰의 그늘에서 내조에 주력한다.
근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는 루쉰이 아내에게 한 달 내내 나가서 고생스럽게 일하고 월급을 받아 봐야 자기가 글 두 편 쓰면 벌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니 집에서 자기를 도와 달라고까지 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물론 루쉰이 죽은 뒤에는 쉬광핑이 다시 여성계ㆍ문화계의 대표 격으로 새로운 중국의 건설에 앞장서며 활발한 활동을 보였지만, 당 지도부 안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동안에도 안타까울 정도로 한결같이 공산당 영도하의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믿음을 노래했다.
카미유 클로델처럼 거목인 남편이나 연인에게 눌려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정당한 평가도 받지 못한 여성의 예가 많다.
그런데 서구 여성과 쉬광핑의 처지에는 차이점이 있다. 서구 여성들은 망국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구국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갖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 세계사에서 중국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떠올려 보자. 중국뿐 아니라 한국 등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서구 여러 나라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희생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여성들은, 여성으로서 강한 자의식이 있었다 해도 구국을 위해 여권을 혁명에 종속시키며 살 수밖에 없었다. 오늘 한국에 사는 독자들이 쉬광핑에게 눈길을 주어야 하는 이유, 쉬광핑의 삶이 독자들의 아쉬움과 함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캉유웨이가 주도한 개혁 운동인 무술변법부터 신해혁명, 5ㆍ4운동, 중국공산당 창당, 국공합작, 만주사변, 상하이사변, 7ㆍ7사변, 일본의 항복, 국공내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등을 거쳐 문화대혁명까지. 쉬광핑의 생애는 중국 근현대사의 격변과 맞물려 있기에,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곧 중국의 오늘을 만든 역사를 알아 가는 과정이다.
쉬광핑은 일찍이 자신이 전근대 여성과 신시대 여성 사이의 과도적인 인물이라 과감히 앞서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여성운동, 항일운동, 민주 운동에 기여한 업적 외에도 유소년기로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 자체만을 놓고 보아도 근대 이후 중국 여성의 선구적인 삶의 한 형태를 보여 주는 것으로 의미가 깊다.
20세기 후반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 여성이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바탕에는 쉬광핑과 같은 이들의 삶이 밑거름으로 쌓여 있기 때문이다.
○ Pen names
Xu Guangping worte under the pen names including Jing Song (simplified Chinese: 景宋; traditional Chinese: 景宋), Ping Lin (simplified Chinese: 平林; traditional Chinese: 平林), KP, Lu Mei (simplified Chinese: 陆寐; traditional Chinese: 陸寐), Xu Xiu (simplified Chinese: 许秀; traditional Chinese: 許秀), Gui Zhen (simplified Chinese: 归真; traditional Chinese: 歸真), Shang Shi (simplified Chinese: 伤时; traditional Chinese: 傷時), Huang Bing (simplified Chinese: 黄竝; traditional Chinese: 黃竝), Zhou Hao (simplified Chinese: 周浩; traditional Chinese: 周浩), etc. Jing Song was the most frequently used one.

○ 가족 관계
남편: 루쉰(魯迅, 1881년 9월 25일 ~ 1936년 10월 19일, 중국의 작가. 前 중국 베이징 대학 교수)
아들: 저우하이잉(周海婴, 1929년 9월 27일 ~ 2011년 4월 7일, 前 중국공산당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상임위원)
시동생: 저우쭤런(周作人, 1885년 1월 16일 ~ 1967년 5월 6일, 중국의 작가. 前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 대학 명예교수)
시동생: 저우젠런(周建人, 1888년 11월 12일 ~ 1984년 7월 29일, 前 중화인민공화국 저장성 성장.)
친정 할아버지: 쉬잉쭝(許應騤, 1830년 2월 ~ 1903년 7월 22일, 중국 청나라 왕조의 관료)
친정 사촌 오빠: 쉬충하오(許崇灝, 1881년 출생 ~ 1957년 사워원회 원원회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前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 문예사박물관 고문.)
친정 사촌 오빠: 쉬충즈(許崇智, 1886년 10월 26일 ~ 1965년 1월 25일, 중화민국의 군인, 정치인. 前 중국국민당 최고위원)
친정 조카손자: 쉬사오슝(許紹雄, 1948년 1월 2일 홍콩 출생.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특별행정구의 영화배우)

○ 작품 목록
- 주요작품
《공원과 소년》《신보》에 실린 백화문 시론 형식의 글, 내용상 5.4이후 베이징 시기 초기의 쉬광핑의 관심사를 보여줌.
《동행자》발간 당시 필명“平林”을 사용, 루쉰이 편집한 《국민신보(国民新报)》의 부록으로 실림.
《야기》 루쉰의 1934년부터 1936년까지의 잡문 13편을 정리하여 발간한 것.
<여성의 입장에서 ‘신여성’을 이야기함> 가정주부로서 쉬광핑이 느낀 회한을 가장 직접적으로 밝힘. 루쉰의 반대 때문에 살림살이와 보조역에 매몰되면서 느낀 비애감을 토로하며 일반적인 여성의 문제로 일반화함. 여성이 가정에 매몰된 것은 사회 전체의 문제이므로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
《조난전후(遭难前后)》 1941년 쉬광핑이 일본 헌병에게 잡혀가 고문을 당한 일을 바탕으로 쓴 책.
- Literary Works
Letters from Two Places (两地书, 1933)
Before and After the Disaster (遭难前后, 1947)
A Gratifying Commemoration (欣慰的纪念, 1951)
Letters of Lu Xun (鲁迅书简, 1953)
Memoirs of Lu Xun (鲁迅回忆录, 1961)
Collected Works of Xu Guangping (许广平文集, 1998)
Collected Works of Xu Guangping consists of three volumes, and the editor includes a total of 389 works by Xu Guangping from 1917 to 1966.
Ten years of sharing hardships together: Xu Guangping recalls Lu Xun (十年携手共艰危:许广平忆鲁迅, 2001)
Lu Xun and I (我与鲁迅, 2019)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