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7월 8일, 미국의 건축가 필립 존슨 (Philip Cortelyou Johnson, 1906 ~ 2005) 출생
필립 코텔유 존슨 (Philip Cortelyou Johnson, 1906년 7월 8일 ~ 2005년 1월 25일)는 미국의 건축가이다. 그의 빽빽하고 둥근 틀의 유리와 함께 존슨은 수십 년간 미국 건축에서 가장 눈에 띄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 필립 존슨 (Philip Johnson)
.출생: 1906년 7월 8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
.사망: 2005년 1월 25일(98세), 미국 코네티컷주 뉴케이넌
.국적: 미국
.출신 대학: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업적: 건축물 IDS 타워, PPG 플레이스, 수정교회
.수상: 프리츠커상 (1979년)
필립 존슨 (Philip Cortelyou Johnson)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두 이끈 20세기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다.
1930년 뉴욕시에 있는 현대 미술 박물관에 디자인과 건축부를 설립했고, 1978년에는 이사로서 미국 건축 협회 금메달을 수상했으며, 1979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제1회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으로 유럽의 국제주의 양식을 미국에 소개했으며, 고착화된 모더니즘의 틀을 깨고 역사적 요소를 차용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 생애 및 활동
필립 존슨은 1906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클리브랜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로 매우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려서 뉴욕의 유명고등학교를 다니고 하버드대에 입학하여 철학 등 인문학을 전공한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유럽의 건축여행을 떠난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건축, 프랑스의 유명 고딕건축 성당들을 둘러본다. 이때 헨리러셀 히치코크 hitchcock 의 소개로 르 코르뷔지에와 발터 그로피우스의 건축도 접하게된다.
1928년 미스 mies vdr 가 작업 중이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설계도 보게된다. 미스와의 인연이 시작되는 계기였다.
1930년 뉴욕 현대미술관 moma의 건축담당 큐레이터로 일하게된다. 24세. 당시 코르뷔지에와 그로피우스의 미국 방문도 준비한다.
1932년 (26세) 모마 moma 에서 유럽에서 본 신건축들을 미국 대중에게 소개하는 건축전을 연다. 히치코크와 알프레드 바 a.barr 와 함께 준비한다. 정말 미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보지 못한 신건축이다. “인터내쇼날 스타일: 1922년 이후의 건축” 이다. 동명의 책도 발간한다. 이 책의 표지 사진으로 미스의 빌라 투겐트하트 를 사용하기도 했다.
필립 존슨은 1936년 잠시 모마 moma를 그만두고 히틀러의 나치즘에 빠져 독일의 나치 시위들을 루이지애나 지방 신문기자로서 독일 현장에서 직접 취재한다. 잠시의 외도였다. 귀국후 FBI의 조사를 받았으나 경미하다고 판단되어 기소되지 않았다. 필립 존슨도 경거망동이었다고 사과를 했다.

유럽에서 귀국한 후, 다시 모마 moma 에 큐레이터로 복귀한다.
1937년 독일 나치의 정권 장악으로 미스 mies vdr 가 미국으로 망명한다. 이때 존슨이 행정수속등 도와주어 순조롭게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스는 아머 인스티튜트 (IIT의 전신)의 학장으로 시카고로 향한다. 동부 쪽으로 향한 바우하우스의 마르셀 브로이어도 존슨이 같이 도와주었다.
1941년 존슨은 건축공부를 하기위해 다시 하버드 GSD에 입학한다. 35세. 거기서 월터 그로피우스와 마르셀 브로이어 밑에서 사사한다. 아버지한테서 이미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존슨은 하버드대 근처에 인터스타일의 작은 집을 지었다. 그리고 석사논문 졸업과제로 사용했다.
2차대전에 참전한 후,1946년 모마 moma 에 복귀한다. 40세. 미스mies vdr 의 건축전을 준비하면서 미스가 설계중인 판스워스 하우스의 설계도를 보게된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자신이 직접 살기위한 주택을 코네티컷의 뉴케이넌에 짓는다. 소위 그 유명한 “글래스하우스” 이다.
글래스하우스는 존슨 자신이 설계하고 자신이 살 집이라 공사를 빨리 진행시켜 판스워스하우스보다 더 빨리 준공되었다. 1949. 43세. 언론에 크게 홍보되자 미스는 매우 화가 났다고 한다. 물론 형태는 다르지만 첫번째 글래스하우스는 원래 판스워스가 되어야하는데 도둑맞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래스하우스의 가구는 미스의 바르셀로나 체어와 테이블이다. 아직도 엄청 미스를 존경하고 좋아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대로 보관 중이다. 존슨이 글래스하우스는 물론 단지캠퍼스 전체를 사후에 뉴케이넌 시에 기증하면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물려받은 존슨은 코네티컷의 작은 마을 뉴케이넌 new canaan 외곽 숲속의 땅을 사기 시작했다. 처음 글래스하우스를 지을 당시는 작은 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더 사들여 현재의 캠퍼스처럼 엄청 커졌다. 조각공원과 조각관, 연못과 파빌리온, 미술관, 브릭하우스, 수영장풀, 유명 조각들과 설치물 등, 현재는 완전 야외미술공원을 가진 대규모 뮤지엄 수준이다.
유명 건축가는 물론 예술가 등 저명인사들을 초청하는 사교장으로도 사용하였다. 글래스하우스는 사랑방처럼 사교장이었다. 프랭크로이드 라이트, 미스 mies 도 다녀갔다. 미스가 글래스하우스를 보고 핫도그스탠드 같다고 훗날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프랭크 게리의 설치물과 유명 조각가의 작품들도 설치되어있다. 별관의 지하 벙커 미술관에는 회전식 벽걸이로 프랭크 스텔라 등 유명화가의 작품들이 쌓여있다. 앤디 워홀도 자주 드나들었다. 완전 사교장이었다. 하도 파티가 많아 하얀 천정이 담배연기로 시커멓게 그을렸다고 한다.
1952년 뉴욕 시그램빌딩의 설계자로 미스가 선택이 된다. 존슨이 시그램회장의 딸 필리스 램버트를 설득하여 르코르뷔지에 와 프랭크로이드라이트를 제치고 미스로 결정되는 데 약간의 역할을 했다고한다. 미스는 대가로 시그램 내의 포시즌스 레스토랑 인티리어 설계를 존슨에게 맡긴다.
1956년 시그램은 불후의 명작으로 준공이 된다.

1953년에는 친정이라고 할 수 있는 맨해턴 모마 moma의 스컬쳐가든을 설계한다. 링컨센터의 뉴욕스테이트씨어터를 설계하며 미스의 그늘에서 벗어나며 여러 주요 작품들을 설계하기 시작한다. 인디애나 뉴하모니의 루프리스교회, 텍사스 포트워스의 에이먼카터뮤지엄 1961, 휴스턴의 펜조일 플레이스1975 등 존슨의 특징을 보여주는 건축이 등장한다. 존버지 john burgee 와 파트너가 된 필립존슨은 일취월장하며 미국 전역을 누비는 메이저 스타 건축가가 되었다. 캘리포니아 가든그로브의 크리스탈교회 1980 는 150여년전 영국 런던의 크리스탈 팰리스를 연상시키는 스페이스프레임의 대형 유리건물이었다.
로버트 벤츄리의 CCIA에 많이 동감을 표시한 존슨은 자신이 미국의 일반대중에게 처음 소개한 모더니즘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특히 70년대 후반에 불어다친 포스트모던 열풍에 필립존슨도 미스의 모더니즘 철학을 외면하기 시작한다. 제임스 스털링, 마이클 그레이브스 등의 포스트모던 작품들을 옹호하기 시작한다. 벤츄리의 안티모던 개념이 더욱 힘을 얻기 시작했다.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말썽많은 포모 pomo (postmodern) 스타일의 포틀랜드빌딩 1979 도 심사위원이었던 존슨의 큰 지지가 있어 가능했다.
존슨은 곧이어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뉴욕 맨해턴의 “치펜데일 하이보이” AT&T빌딩1982의 설계를 공개하면서 세상을 놀라게한다. 1932년 모마 moma 에서 자신이 시작하고 자랑했던 인터내쇼날스타일의 모더니즘과 결별한다고 선언한 꼴이다. less is a bore. 이제 완전 변신하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필립존슨이 더 이상 아니었다. 포모 pomo 의 추종자가 되었다. 프랭크 게리도 주위에 어른거렸다. 한쪽에서는 모더니즘의 변절자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하지만 존슨의 포모는 계속되었다. 곧이어 고딕스타일의 휴스턴 리퍼블릭 뱅크 1983 도 합세했다. 피츠버그의 피피지 ppg 플레이스 1984 도 가세했다. 뉴욕 맨해턴의 립스틱빌딩1986도 출현한다.
필립 존슨의 평가는 엇갈린다. 1980년대 표절시비도 있었다.
2005년 그가 평생 만들어온 뉴케이넌 new canaan의 글래스하우스에서 영면한다.
1978년 AIA골드메달을 받고, 1979년 프리츠커상 초대 수상자인 미국 현대건축의 대부가 드디어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필립 존슨 (Philip Johnson)은 2005년 1월 25일, 미국 코네티컷주 뉴케이넌에서 별세했다. 향년 98세

- 주요 생애 및 업적
필립 존슨 (Philip Cortelyou Johnson)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두 이끈 20세기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입니다. 1979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제1회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으로 유럽의 국제주의 양식을 미국에 소개했으며, 고착화된 모더니즘의 틀을 깨고 역사적 요소를 차용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출생 및 사망: 1906년 7월 8일 ~ 2005년 1월 25일 (향년 98세)
주요 경력: 뉴욕 현대미술관(MoMA) 초대 건축·디자인 부서장 (1930년)
주요 수상: 제1회 프리츠커 건축상 (1979년), AIA 골드 메달 (1978년)
건축 철학: “건축은 한 가지 스타일에 갇혀서는 안 되며 시대 정신을 반영해야 한다.”
미술 평론가 및 큐레이터 활동 (1930년대):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MoMA의 초대 건축 부서장을 맡았다. 1932년 헨리 러셀 히치콕과 함께 《국제주의 양식》 전시를 기획하여 미국 전역에 모더니즘 건축을 전파했다.
뒤늦은 건축가로의 변신 (1940년대): 30대 중반의 나이에 하버드 건축대학원 (GSD)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설계 공부를 시작했다. 1949년 글래스 하우스를 선보이며 단숨에 스타 건축가 반열에 올랐다.
스타일의 경계를 허문 실험 (1970~1990년대): 모더니즘의 거장으로 꼽혔음에도 형태의 파괴와 역사적 장식을 과감히 도입했다. 말년에는 해체주의 (Deconstructivism) 경향까지 수용하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 대표 건축물
글래스 하우스 (Glass House, 1949) : 미국 코네티컷주 뉴카난에 위치한 그의 자택이자 최고 걸작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아 벽을 모두 투명한 유리로 처리했다. 내부 공간 구분을 최소화하여 자연과 건축이 하나로 연결되는 모더니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시그램 빌딩 (Seagram Building, 1958) :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와 공동으로 설계한 뉴욕의 랜드마크다. 철골과 유리를 극대화한 ‘국제주의 양식 (International Style)’의 표준을 정립했다.
AT&T 빌딩 (현 550 매디슨 애비뉴, 1984) : 건물 꼭대기를 전통 가구 모양인 ‘치펀데일 (Chippendale)’ 스타일의 페디먼트로 장식했다. 기능주의에 갇혀있던 모더니즘을 탈피하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선언한 상징적 초고층 빌딩이다.
크리스탈 가톨릭 교회 (Crystal Cathedral, 1980) :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대형 교회로, 거대한 유리 별 모양의 외관이 특징이다. 1만 개가 넘는 유리 판넬을 사용해 내부 공간에 극적인 빛의 효과를 연출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