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7월 27일, 대한민국의 화가 이봉상 (李鳳商, 1916 ~ 1970) 출생
이봉상 (李鳳商, 1916년 7월 27일 ~ 1970년 8월 4일)은 대한민국의 서양화가이다. 아호는 석정 (石鼎)이다.

○ 생애 및 활동
경성부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전신인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여 1929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유화 작품을 입선시키면서 등단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친일 미술단체인 단광회에 참여했고, 관제 전시회인 결전미술전에도 〈진격〉, 〈짧은 휴식〉 등의 작품을 출품하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미술 부문에 선정되었다.
한국 전쟁 중에는 1952년 이중섭 등과 함께 피난지인 부산에서 기조전 (其潮展)을 열었고, 이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와 학과장을 지냈다.
서양화 구상 계열에서 대한민국 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미술평론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젊은 화가들을 위해 설치한 앙가주망 작업실에서는 이만익, 윤명로 등의 화가가 배출되기도 했다.
이봉상은 비교적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화풍에도 시기에 따른 변화를 보였다.
초기에는 사실주의에 입각한 인상파적 작품을 남겼고, 1950년대 이후에는 야수파를 연상시키는 대담한 붓질과 색채로 표현주의적인 성향을 보였다.
후기에는 설화적 소재를 도입하면서 점차 추상성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흰색으로 두터운 바탕을 먼저 만든 뒤 그 위에 이미지를 구성하는 기법도 선보였는데, 이는 박수근이 시도한 기법과 유사하다.

- 활동
13세인 1929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풍경」으로 입선한 이래 총 6회 입선 또는 특선을 함으로써 화단의 주목을 끌었으며, 일본의 신문부성전람회에도 여러 차례 입선하여 각광을 받았다.
초기에는 인상파적 사실주의의 회화경향을 보였으나, 1950년대 김환기 (金煥基), 유영국 (劉永國), 김병기 (金秉麒), 박고석 (朴古石) 등과 교유하면서 강렬한 색채, 거친 필치, 대담한 생략 등을 특징으로 하는 야수파적이며 표현주의적인 경향으로 바뀌었다.
‘50년 미협’을 필두로 ‘기조전 (其潮展)’, ‘창작미협 (創作美協)’, ‘신상회 (新象會)’, ‘구상회 (具象會)’ 등의 창립에 가담하여 미술운동의 리더로서 활약하였다.
또한 미술교과서 편찬과 비평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후진양성에도 앞장섰다.
1952년 이래 이화여자대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에 출강하였으며, 1953년부터 1966년까지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1954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의 추천작가·초대작가·심사위원 등을 지내며 활동하였다.
1960년대에는 주로 나무와 수풀, 산과 새·달 등의 소재에 한국적인 설화성을 가미한 주제를 즐겨 다루었으며, 화면도 중후한 마티에르와 더불어 양식화된 구상세계를 보였다.
구상계열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대표작으로 「도자기와 어항」 (1955), 「고궁에서」 (1958), 그리고 「나무」 (1962년) 등이 있다.
이봉상은 제3회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지병인 만성 신장염이 악화하여 1970년 8월 4일 별세했다.
이를 안타까워한 동료들이 그해 11월 이상봉의 작품 60여 점을 모아 유작전을 열었다.
- 인간 관계
서양화가 임응구 (林應九, 1907년 9월 13일 출생 ~ 1994년 사망)의 아우인 사진작가 임응식 (林應植, 1912년 11월 11일 출생 ~ 2001년 1월 18일 사망)과 오랜 친구 관계를 맺었다.





참고 =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