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1월 19일, 두 번째 ‘밸푸어 선언’ (Balfour Declaration)
밸푸어 선언 (Balfour Declaration)은 영국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이 담긴 문서로, 1917년과 1926년 2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 첫 번째 ‘밸푸어 선언’ (1917년)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상 아서 밸푸어 (Arthur James Balfour)가 유대인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였던 베이론 로스차일드 (Baron Rothschild)에게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밸푸어는 편지에서 유대인들이 영국의 전쟁 수행을 지원하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의 모국을 세우는 데 호의를 베풀 것이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 두 번째 ‘밸푸어 선언’ (1926년)
1926년의 밸푸어 선언 (Balfour Declaration of 1926)은 아서 밸푸어가 선언한 것으로, 대영 제국이 완전한 자치국임을 선언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유대 국가를 영국 제국의 자치령으로 간주하고 있다.
1867년에 영국에 자치령이라는 개념이 생긴 이래 영국 본국과 대영제국의 자치령의 관계는 현재의 중국 중앙정부 – 홍콩 정부 관계와 비슷하게 내정에서는 자치령 정부가 전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외교권과 군사권은 영국 본국의 정부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외 관계에서 영국 본국 정부와 자치령 정부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또한 자치령의 권한은 온전히 영국 의회가 성립시킨 법률에 의존하고 있어서 만약 이 법을 없애버린다면 영국은 합법적으로 자치령의 자치 권한을 회수할 수 있었다.
대영제국의 자치령들은 주권이 없는 영국의 자치 지역으로서, 영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자 별다른 절차 없이 자동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치령은 큰 희생을 치렀고, 이들은 그 보답으로 자치권 확대를 요구했다.
1926년에 캐나다 자치령 총리 매켄지 킹 (자유당)은 당시 캐나다 총독 줄리언 빙 (Julian Byng)에게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빙 총독은 이를 거부했다. 총독은 본국을 대리하는 직책으로서 재량에 따라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었다. 이 사건은 자치령 내의 ‘최종적인 헌법적 권한’ (ultimate constitutional authority)이 총독에 있느냐, 총리에 있느냐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의회 해산은 무산되고 매켄지 킹은 총리직을 사임했으나, 같은 해에 그 다음 총리 아서 미언에 의해 의회는 해산되었고, 여기서 자유당이 승리해 매켄지 킹은 총리 자리를 되찾았다. 매켄지 킹은 이 일을 계기로 1926년에 있었던 제국회의 (Imperial Conference)에서 남아프리카 연방 총리 제임스 배리 무니크 헤르초크 (J. B. M. Hertzog)와 함께 영국 내 자치령의 지위를 재정의해야 한다는 의제를 올렸다.
이에 대해 1926년에 제국회의를 주재하던 아서 밸푸어 추밀원장의 이름으로 발표된 선언이 1926년의 밸푸어 선언이다.

- 내용
이 선언은 영국과 대영제국의 자치령의 관계를 재정의하여, 영국 본국이 군사권과 외교권을 가지고 나머지 내정은 각 자치령 정부에 위임하던 체제에서 벗어나 각 자치령을 영국 본국과 동등한 주체로 승격시켜 군사권과 외교권을 위임하도록 제안하는 것이 그 골자였다. 1차대전에서 큰 희생을 치른 대영제국의 식민지와 자치령은 그 보답으로 자치권 확대를 요구했는데 이 보고서는 그 요구를 영국 정부 차원에서 공식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영국 본국과 대영제국의 자치령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었다.
… autonomous Communities within the British Empire, equal in status, in no way subordinate one to another in any aspect of their domestic or external affairs, though united by a common allegiance to the Crown, and freely associated as members of the British Commonwealth of Nations.
… 대영제국 내의 자치공동체는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내정과 외교에 있어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되지 않으나, 국왕에 충성함으로써 단결하며, 영연방 (British Commonwealth of Nations)의 일원으로써 자유로이 결합되어 있다.
이 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였지만 이 권고는 즉각 효력을 발휘했다. 밸푸어 선언의 권고에 따라 자치령은 외교권을 갖게 되었고, 이를 이용해 캐나다는 1927년에 미국 워싱턴 D.C.에 최초의 자국 대사관을 개설했다. 사상 처음으로 캐나다만의 독자적인 외교에 나선 것이다.
또한 이 선언을 통해 영국 정부는 각 자치령의 총독의 역할을 ‘영국 본국을 대표하는 직책’에서 ‘영국 국왕을 대리하는 직책’으로 축소하고, 그 대신 각 자치령에 자국 정부를 대표하는 직책인 고등판무관 (High Commissioner)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이미 영국 정부와 각 자치령 정부의 위치가 동등해졌으므로, 고등판무관은 다른 나라의 대사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각 자치령간에도 고등판무관을 파견하게 되면서, 영연방 국가간 파견된 대사가 ‘고등판무관’이라고 불리는 계기가 되었다.
밸푸어 선언의 주요 내용은 1931년의 웨스트민스터 헌장 제정을 통해 법률로 실현되었다. 이를 통해 영국 정부는 자신의 법률을 통해 각 자치령 정부에 간섭할 권리를 잃었으며, 각 자치령 정부는 군사권과 외교권도 가져 사실상 독립국이 되어갔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