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8월 26일, 한국의 소설가 나도향 (羅稻香, 1902 ~ 1926) 별세
나도향 (羅稻香, 1902년 3월 30일 한성부 ~ 1926년 8월 26일)은 일제 강점기의 한국 소설가이다.

– 나도향 (羅稻香)
.본명: 나경손(羅慶孫)
.필명: 나빈(羅彬)
.본관: 나주 나씨
.출생: 1902년 3월 30일, 한성부 서서 용산방 청파1계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1가 56번지)
.사망: 1926년 8월 26일 (24세), 경기도 경성부 남대문통5정목 32번지 (현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학력: 배재고등보통학교 (졸업), 경성의학전문학교 (2학년 / 중퇴), 와세다대학 (영문학 / 중퇴)
.호: 도향(稻香)
본명은 나경손 (慶孫)이며 필명은 나빈 (彬)이다. 호는 도향 (稻香)이다.
한성부 용산방 청파계 (지금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중퇴한 뒤 영문학부에 입학하기 위해 일본에 건너가 고학으로 공부하였다.
그러나 학비 부족으로 귀국하여 1920년에는 경상북도 안동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22년 《백조》의 창간호에 소설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였다. 이상화, 현진건,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파라는 낭만파를 이루었다.
≪백조≫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했다. 같은 해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을 발표한 뒤, ≪동아일보≫에 장편 ≪환희≫를 연재했고, 이어 <옛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를 발표했다.
여기서 장편 《환희》를 통해 19세의 소년 작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 때부터 작품 경향을 바꾸어 자연주의적 수법이 보이기 시작했다.
1923년에 <은화 백동화>, <17원 50전>, <행랑자식>을, 1924년에는 <자기를 찾기 전>, 1925년 《여명》 창간호에 《벙어리 삼룡이》를 발표하였는데, 한국 근대 문학사상 가장 우수한 단편 중의 하나로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날카로운 필치로 많은 작품을 써서 천재 작가로 알려졌으나 폐병으로 인해 2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초기에는 주로 작가의 자전적 측면에 연관된 내용을 소설로 썼기 때문에 주관적이고 낭만적인 감정 토로, 감상적인 예술가형 주인공이 주로 등장하는 작품을 많이 썼다.
그러나 곧 습작기의 이런 서툰 창작 형태를 벗어나 <행랑자식>, <자기를 찾기 전> 등의 작품을 발표하는데, 이후의 작품은 빈곤, 사회적 계급 관계 등 현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낭만주의를 벗어난 사실주의적 성격을 뚜렷이 보여준다.
장편 소설 ≪환희≫는 ≪동아일보≫의 청탁에 의한 것인데, 작자 자신도 “사색과 구상에 들어서 조금도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붓이 내려가는 대로” 썼다고 고백했듯이, 통속 소설의 취향을 따르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사건을 자세히 묘사하기보다는 모호한 내면, 환상, 영탄을 사용하는 등 비극적 운명에 대한 감상주의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이러한 나도향의 낭만적 감상주의풍은 <여이발사>를 발표하면서 소설적인 간결함과 냉정한 시선, 객관성을 확보한 문체와 구성으로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초기 소설의 단점을 극복해 낸 이런 소설적 성취는 나도향의 작품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한다. 즉, 낭만주의적인 감상성, 미학주의와 현실 비판의 냉정한 관찰력이 결합된 그의 소설은 인간의 욕망, 내면을 중요시하는 낭만주의적인 것과 그런 욕망이 사회 속에서 드러내는 행태에 대한 객관적 묘사와 관찰을 동시에 보여준다.
생에 대한 원초적 의지와 욕망이 사회적인 제 관계 속에서 드러내는 현상에 대한 그의 고찰은 낭만적 열정과 사실주의적인 ‘관계성의 냉정한 분석’을 포함한 것이다.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뽕> 등의 토속성과 원시적 건강성, 생명력이 낭만주의적인 것이라면, 이 세 작품이 암시하는 욕망의 실패와 좌절은 사회적 관계의 부조리가 원인이 된 것이다.
결국, 낭만적 이상이 지닌 건강성은 현실의 타락한 관계, 환경에 의해서 일그러지고 왜곡된다.
나도향의 소설은 이런 일그러진 원초성, 문명 이전의 건강성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점에서 또한 중요한 특징과 가치를 지닌다.
주요작품으로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 등이 있는데, 민중들의 슬프고 비참한 삶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다. 작품들 중 《벙어리 삼룡이》,《뽕》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917년 공옥학교 (攻玉學校)를 거쳐, 1919년 배재고등보통학교 (培材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경성의학전문학교 (京城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에 뜻을 두어 할아버지 몰래 일본으로 갔다.
그러나 학비가 송달되지 않아서 귀국하였고, 192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22년 현진건 (玄鎭健)· 홍사용 (洪思容)· 이상화 (李相和)· 박종화 (朴鍾和)· 박영희 (朴英熙) 등과 함께 『백조 (白潮)』 동인으로 참여하여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에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에 이어 11월부터 장편 「환희 (幻戱)」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는 한편, 「옛날의 꿈은 창백 (蒼白)하더이다」를 발표하였다.

1923년에는 「은화백동화 (銀貨白銅貨)」 · 「17원50전 (十七圓五十錢)」 · 「행랑자식」을, 1924년에는 「자기를 찾기 전」, 1925년에는 「벙어리 삼룡 (三龍)」 · 「물레방아」 · 「뽕」 등을 발표하였다.
1926년 다시 일본에 갔다가 귀국한 뒤 얼마 되지 않아서 요절하였다.
초기에는 작가의 처지와 비슷한 예술가 지망생들로서 주관적 감정을 토로하는 데 그쳐, 객관화된 ‘나’로 형상화되지 못한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는 일종의 습작기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행랑자식」· 「자기를 찾기 전」 등을 고비로 빈곤의 문제 등 차츰 냉혹한 현실과 정면으로 대결하여 극복의지를 드러내는 주인공들을 내세움으로써, 초기의 낭만주의적 경향을 극복하고 사실주의로 변모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변모의 현실화로 나타난 작품이 대표작으로 꼽히는 「벙어리 삼룡」· 「물레방아」· 「뽕」이다.
이 작품들에는 본능과 물질에 대한 탐욕 때문에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객관적 사실 묘사에 의하여 부각되어 있다.
특히, 이들 후기의 애정 윤리와 궁핍의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과 객관적인 관찰은 적극적인 대결로 나아가지는 못하였으나 당대 현실과 사회를 부정적으로 예리하게 묘사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등장인물의 치밀한 성격 창조를 기반으로 한국 농촌의 현실과 풍속을 보였다는 관점에서, 1920년대 한국 소설의 한 전형으로 꼽히기도 한다.

○ 작품
– 소설
추억 (1921년)
젊은이의 시절 (1922년)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 (1922년)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 (1922년)
환희 (1922년)
십칠원 오십전 (1923년)
속 모르는 만년필 장사 (1923년)
춘성 (1923년)
여이발사 (1923년)
은화 백동화 (1923년)
행랑자식 (1923년)
자기를 찾기 전 (1924년)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 (1924년)
뽕 (1925년)
의사의 고백 (1925년)
계집 하인 (1925년)
물레방아 (1925년)
꿈 (1925년)
한강변의 일엽편주 (1925년)
지형근 (1926년)
화염에 싸인 원한 (1926년)
벙어리 삼룡이 (1926년)
청춘 (1926년)
당착 (撞着)
어머니

참고 =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