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0월 3일, 이라크 (Iraq)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라크 공화국 (Republic of Iraq)은 서아시아에 있는 공화국이다. 1918년부터 1932년까지 대영 제국에 속했으며, 1932년 10월 3일에 대영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32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는 중립지대의 면적이 924 km2이고, 내해까지 포함하면 43만5052 km2가 추가된다.

– 이라크공화국 (The Republic of Iraq)
위치: 아시아 서남부 아라비아 반도 동북부
인구: 3705만 6169명 (2015년 기준)
면적: 43만 8317㎢
수도: 바그다드
정치형태: 대통령중심제, 내각제 가미한 민주공화제, 제헌의회
언어: 아랍어, 쿠르드어
종교: 이슬람교, 기독교
수도는 바그다드이며, 인구는 4천만여 명이다. 남쪽은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서쪽은 요르단, 북서쪽은 시리아, 북쪽은 터키, 동쪽은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1968년 아랍 사회주의 정당인 바트당이 정권을 장악하였으며, 바트당을 이끈 사담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과 걸프 전쟁을 일으켰지만 모두 실패했고 유엔의 경제제재를 받게 되었다.
2003년에 일어난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은 미국의 주도로 붕괴되었으며, 내전이 끝났지만 치안 상태가 매우 불안정하여 대한민국에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 나라에 입국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 역사
이라크 지역은 서기전 4000년부터 수메르 · 바빌로니아 · 아시리아 등의 고대왕국이 세워졌던 곳으로 7세기 중엽부터 이슬람화되었다.
1638년부터 20세기 초 제1차세계대전 때까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모술, 바그다드 및 바스라의 세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차 대전 종전 후 영국령이 되었으며, 1932년에 독립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친독일 정권 수립으로 추축국 으로 참전하였다가, 오킨렉 장군 휘하의 영국군이 바스라에 상륙, 바그다드를 점령하며 패전하였다.
1958년에 군주제가 쿠데타로 붕괴되고 또한 일련의 쿠데타가 계속된 끝에 1968년 이슬람 사회주의 정당인 바트당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1979년 7월에 정권을 장악한 사담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년-1988년)을 일으켰으나,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무승부로 끝났다. 1990년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걸프 전쟁이 발발했고, 이라크는 유엔의 경제제재를 받게 되었다.
2003년에 일어난 이라크 전쟁으로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었다. 2004년 6월 29일부터 아랍어와 쿠르드어가 공용어가 되었으며, 2008년에 징병제를 폐지했다.

– 사회 및 종교
종족구성은 아랍인 75%, 쿠르드인 16%, 페르시아인 3%, 터키인 2%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는 아랍어와 쿠르드어를 사용한다.
이라크 주민의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믿으며, 이 중 시아파가 64%, 수니파가 30%이다. 소수 종교로는 기독교와 야지디교 등 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3% 내외이다.
종교구성 (2015년 기준)은 이슬람교(시아파) 64.4%, 이슬람교(수니파) 30.9%, 야지디교 · 영지주의 3.4%, 기독교 1.21%, 그 외 0.09%이다.
이라크 기독교인들은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예배 허용 등 일정 부분 종교적 자유를 존중받았지만, 기묘하게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부터 아랍 민족주의가 격해지면서 극우 무슬림들의 공격 표적이 되고 있다.
– 정치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과도정부 수립부터는 의회 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며 통합 이라크 연맹, 쿠르드 연맹, 이라크 민족당, 타와푸크연합 등 여러 정당이 있다.
이라크의 병역은 징병제로서 이라크의 유명 가수가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군가를 부르는데 이는 동원령이라는 의미로 이후 모든 이라크의 예비역이 현역으로 복귀하게 된다.

– 외교 : 한국 · 북한과의 관계
한국과는 1989년 7월 9일 수교하고, 1981년 7월 바그다드에 총영사관을 설치하였고, 이라크도 같은 시기서울에 총영사관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걸프전이 발발하면서 1991년 1월 15일 대사관을 잠정 폐쇄하였다가 2009년 현재 상주공관을 설치하고 있다.
양국은 1982년 5월 뉴스교환 협정, 1983년 3월에 무역 및 경제기술과학협력, 1985년 5월에 항공 협정, 1987년 8월에 외교공관부지교환 협정, 1997년 1월에 뉴스교환협정체결연장협정, 2005년 8월에 석유개발기술협력양해각서, 2007년 1월에 유전개발협력양해각서, 2007년 2월에 건설협력양해각서 등을 체결하였으며, 이라크의 기술 훈련생이 한국에서 연수를 받았다.
이라크는 한국의 해외건설에서 가장 큰 건설시장의 하나로, 1977년 3월 진출 이래 1억 달러 이상의 대형 공사를 많이 수주하였고, 건설인력 진출도 활발하였다.
그 동안 이라크에서의 건설공사 가운데에서 1982년 8월 착공된 유전지대 키르쿠크(Kirkuk)와 하디타(Haditha) 간의 441㎞ 철도부설 공사는 성공적으로 끝마친 초대형 공사였다.
한국의 대 이라크 수출액은 2015년 현재 14억 3,000만 달러로 주종목은 자동차, 기계류, 철구조물 등이고, 수입액은 62억 6,000만 달러로 주종목은 원유 등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48명의 이라크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2015년 석유공사 등의 업체가 진출해 있고, 약 1,300여 명으 재외국민이 거주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1968년 1월 30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나, 이란과의 전쟁발발 후 북한이 이란을 지원하자 1980년 10월 10일 단교한 뒤 현재까지 단교상태에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