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8월 23일, 제2차 상하이 사변의 2번째 국면 우쑹 전투 (吴淞戰鬪, 1937년 8월 23일 ~ 9월 13일) 시작
1937년 8월 23일부터 9월 13일까지 벌어진 제2차 상하이 사변의 2번째 국면으로 상하이 북부의 우쑹 (吴淞)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 한국식 독음으로 오송 전투, 오송 크리크로도 알려져 있다. 베르됭 전투 이래 최대 격전으로 불렸다.
- 배경
1937년 8월 9일 훙차오 공항 사건을 계기로 제2차 상하이 사변이 개막되었다. 8월 13일부터 일본군은 중국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으나 일본군에 비해 10배나 되는 수적 우세를 자랑하던 중국군은 일본군의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일본군을 섬멸하기로 결정, 8월 14일부터 클레어 셰놀트가 지휘하는 항공대와 함께 일본군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을 실시했다. 이어 천청이 장제스에게 “일본군의 전력을 양분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여 상하이를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장제스는 서남, 화중, 화남의 대규모 부대를 상하이로 집결시켜 일본군과의 일전을 준비하였다.
한편 일본 제국은 8월 13일에 상하이에 대한 증원을 결정, 3사단과 11사단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마쓰이 이와네를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참모본부는 마쓰이 이와네에게 임참명 73호를 통해 목표를 “해군과 협력하여 상하이 부근의 중국군을 소멸, 상하이와 북방지구의 요선을 점령하여 일본인을 보호하는 것”으로 한정하였다. 그러나 마쓰이는 이를 묵살하고 8월 18일 육군대신 관저에서 열린 참모총장, 육군대신, 교육총감 3장관 송별식에서 난징 공략을 주장하였다.
한편 8월 18일, 경호경비사령 겸 9집단군 사령관 장즈중의 반격으로 중국군은 일본 해군특별육전대를 거세게 밀어붙였으나, 중화기의 부족으로 일본군을 결정적으로 섬멸하진 못했다. 상하이 전투가 시작된 지 열흘 후, 마침내 증원군이 상하이에 도착하였다.
- 진행
8월 23일 일본군은 상하이 내의 조계지에서 전투중인 해군 특별육전대를 지원할 목적으로 3사단과 11사단을 각각 우쑹과 촨사전에 상륙시켰다. 이들은 상륙 초에 중국군의 맹렬한 방어에 엄청난 피해를 보고, 특히 3사단은 불과 1달 후 전 병력의 30%가 넘는 사상자를 낸다. 이들은 자폭공격을 동원해 어찌어찌 조금씩 전진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달해 곧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에 놀란 일본 수뇌부는 3개 사단을 다창전에 증파하기로 결정, 그 3개 사단 역시 상하이 북부에 상륙하지만 중국의 방어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한다. 일본의 제공권, 제해권 우세에도 불구하고 중국군은 분투해 3달 넘게 상하이를 일본으로부터 지켜냈다. 하지만 이것도 11월 일본군 수만명이 항저우만으로 우회상륙해 끝이 났다.
- 결과
우쑹을 점령한 일본군은 타이완의 시게후지 지대와 본토에서 증원받은 3개 사단을 동원, 다창전을 공격하기로 결정하면서, 2차 상하이 사변은 다창전 전투로 이어져 3번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