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6월 29일, 스위스의 화가 ‘추상회화의 시조’ 파울 클레 (Paul Klee, 1879 ~ 1940) 별세
파울 클레 (Paul Klee, 1879년 12월 18일 ~ 1940년 6월 29일)는 스위스 화가이다. 국적은 독일이다.

– 파울 클레 (Paul Klee)
.출생: 1879년 12월 18일, 스위스 Münchenbuchsee
.사망: 1940년 6월 29일, 스위스 Muralto
.부모: 한스 빌헬름 클레, 이다 마리 클레
.형제자매: 마틸드 클레
.배우자: 릴리 클레 (1906년–1940년)
.자녀: 펠릭스 클레, 펠릭스 폴
.예술 사조: 표현주의, Abstract art, 초현실주의, 근대 미술, 독일 표현주의, 입체주의, Bauhaus style 등
.주요 작품: Sumpflegende, Twittering Machine, Angelus Novus
그의 작품은 표현주의, 입체파, 초현실주의 등 여러 다양한 예술 형태의 영향을 받았다.
그와 그의 친구인 러시아 화가 칸딘스키는 예술과 건축의 학교인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 생애 및 활동
1879년, 스위스의 수도 베른 교외의 뮌헨부흐제 (Münchenbuchsee)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에서 이주한 주립 사범학교의 음악교사, 어머니는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배우는 음악가 집안이었다. 파울 클레 스스로도 7세 때부터 바이올린 교습을 받은 프로급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1906년에 결혼한 부인도 피아니스트였다. 이들 부부는 곧잘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의 만년 작품인 소나타 등을 듣고 또 연주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으며, 음악이 클레의 그림을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음악이 아닌 그림의 길을 선택하여, 1900년에는 뮌헨의 미술학교에서 상징주의의 대가 프란츠 폰 슈투크 (Franz von Stuck)의 지도를 받았다. 슈투크는 또한 칸딘스키의 스승이기도 했다.
3년 후 그는 이탈리아로 연구 여행을 떠나서 제노바· 나폴리· 피렌체· 로마 등지에 체재하였다. 그러나 이 여행의 수확은 고대 로마나 르네상스의 미술보다도 해항도시 (海港都市)의 풍경과 나폴리 수족관의 풍물이었다. 내륙지방에서 자라온 그의 회화의 모티브로 배나 고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 여행의 체험에서 유래한 것이다.
1906년까지 베른에서 세기말적인 환상과 풍자에 입각한 동판화와 유리화 등을 시도하였고, 또한 이론적인 수법의 유화를 남겼다.
1906년 이후로는 다시 뮌헨으로 돌아가 당시 바야흐로 발흥의 기운이 움튼 표현주의의 분위기 속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마르크, 마케 쿠빈, 칸딘스키 등과 사귀어 이윽고 블라우에 라이터의 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당시의 제작은 흑백의 판화나 또는 단채 (單彩)의 파스텔· 수채· 구아슈· 템페라 등으로 한정되어 그 표현은 기괴하고 환상적인 소묘가 (素描家) 알프레트 쿠빈 (1877∼1959)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흑백 또는 단채에 의한 대상의 도식화를 통하여 ‘예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의 재현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굳혀 갔다.
클레는 1906년 뮌헨 ‘분리파전’에 동판화를 출품하였고, 1910년에는 베른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칸딘스키, 마르크 등과의 ‘청기사전’은 제2회부터 참가하였다.
1914년 봄부터 여름까지 튀니지와 카이루안을 여행하였다. 이 여행에서 감명을 받아 선명한 색채를 자각하고, 작풍을 바꾸었다. ‘빛깔이 나를 갖는다. 나와 색은 일체이다. 나는 화가이다’라고 자각한 바를 일기에 적은 것도 그 때의 일이며, 파울 클레의 색체가 풍부한 작품은 대부분 이 여행 이후의 것이다.
1916년부터 1918년까지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였다.
1919년 이후 색체에 대한 자각은 독특하게 실현되어 간다.
1920년 비평가 레오폴트 츠안 및 빌헬름 하우젠시타인 등이 맨 처음으로 비평을 발표하였다. 일찍이 아동화의 모방이라 냉소를 받은 클레의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몰락의 위기에 허덕이던 유럽문화의 전통에 색다르게 청신한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것으로 기대되었던 것이다. ‘화가가 일찍이 현상계에서 정신계로 가지고 가버린 것을 반대로 정신계에서 현상계로 돌이키려고 한다’라는 클레의 독특한 추상에 대한 사고가 시대의 지지를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1921년부터 1931년까지는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에 초대를 받은 클레는 글라스화 (畵)의 공방을 담당하여 후진을 지도하는 한편, 파이닝거와 칸딘스키를 이 곳에서 재회하여 활발한 제작 활동을 하였다. 《자연연구의 길》과 《교육적 스케치북》 등 이론적인 저술도 바우하우스에서의 활동을 통하여 정리되었다.
1931년에는 뒤셀도르프의 미술학교에서 교수가 되었고, 나치스에 의하여 자유가 박탈되어 가던 독일에서 추방되어 1933년 고향 베른으로 돌아와 수 년간을 지냈다.
만년에는 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 난치병에 걸렸으나, 등받침이 있는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클레는 1940년 6월 29일 무랄토 로카르노에서 사망하였다.
클레의 평생을 통한 작품은 9천 점이란 다수에 이른다.
베른에 돌아온 후에도 제작욕은 왕성하였고 만년에는 독특한 천사의 상이 눈에 많이 띈다. 그의 단순한 표현은 형태 그것보다도 형태를 만드는 일을 주안점으로 한 것이며, 보는 자로 하여금 그 형성의 과정을 좇아 체험하여 가는 것을 그는 바랐던 것이다. 그의 작품은 통상의 캔버스에 유체로 그린 것은 적고, 신문지, 판지, 천, 붕대 등에 유채, 수채, 텐페라 등의 여러 그림 재료를 사용하여 그렸다. 크기가 작은 작품이 많은 것도 특색이다.
2005년 6월에는 고향인 베른에 그의 업적을 집대성한 파울 클레 센터 (Zentrum Paul Klee)가 세워졌다.

○ 평가
매우 독창적인 회화 언어로 사물의 본질적이고 정신적인 의미를 전하려고 한 천재적인 추상화가로, 독자적으로 활동했지만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들은 공상적인 상형문자와 자유로운 선묘로 말미암아 때때로 아동 미술을 연상하게 한다.
- 세계관
파울 클레의 사회비판적 경향에 대해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는 예술행위를 통해 당시 시대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가 칸딘스키를 포함한 지인들과 주고 받은 서한들에 의하면 1차 대전 초기만 해도 전쟁에 반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추된다. 그는 대다수의 독일인들처럼 하루 빨리 독일이 전쟁에 승리하여 미술후원과 미술시장의 정상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동료 마케가 전쟁터에서 사망하자 파울 클레는 전쟁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당시 파울 클레는 전쟁을 주제로 한 14점의 작품을 남긴다. 클레는 전쟁에 대한 자유주의적 원칙주의자에서 전쟁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당시 자신의 심경을 예술관을 통해 피력한다.
“나는 추상의 세계로 이동하려고 한다. 비애가 깃들지 않은 차가운 낭만주의는 이전에 나오지 않았던 미술양식이다. 이 세상이 끔찍할수록 예술은 더욱 추상화되고, 반대로 세상이 살만하다면 예술은 현실과 밀착될 것이다.”
이러한 파울 클레의 가치관은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한 물질적 풍요를 독점하던 미국의 미술시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미소 냉전시대라는 긴장관계 속에서도 미국은 1960년대 이후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국가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시점에서 팝 아트가 탄생하며,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대중문화를 소재로 한 미술작품들을 제조업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양산한다. 만일 미국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패전국의 상황이었다면 대량 소비문화를 의미하는 팝 아트는 또 다른 예술적 형태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 예술가와 이데올로기
파울 클레는 1921년부터 1931년까지 바우하우스 교수로 임명된다. 독일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에 초대받은 클레는 글라스화의 공방을 담당하여 후진을 지도하는 한편 미술가 파이닝거와 칸딘스키를 바우하우스에서 재회하여 변함없는 미술활동을 영위한다. 그는 저술활동에도 활발했는데 ‘자연연구의 길’과 ‘교육적 스케치북’ 등 예술이론적인 저술도 바우하우스에서의 활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파울 클레는 당시 좌파정치를 수용했으며 좌파 세력 또한 파울 클레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공산주의 세력을 비난하던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가 세력을 잡기 이전에 시행된 파울 클레의 바우하우스 임명은 당시 독일의 정치 상황에 있어서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바우하우스는 1919년 독일 작센 대공국 예술공예 학교에 취임한 건축가 월터 그로피우스에 의해 세워졌다. 본래 바이마르에 있던 학교를 1925년 데사우로 이전하면서 그로피우스는 학생들에게 완벽한 작업 환경을 만들어주는 동시에 모더니즘 건축의 정수를 구현하는 본관 건물을 설계할 기회를 잡았다.
바우하우스 건물은 작업실과 거주 공간의 기능을 모두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 모더니즘 원칙에 충실하면서 건물의 기능에 따라 공간개념도 차별화해야 한다고 그로피우스는 믿었다. 그는 공간을 세 개의 윙, 즉 학교, 작업실,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스튜디오로 나누었다.
1933년 나치는 바우하우스를 폐쇄한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건물은 공습으로 심각하게 파손된다. 오늘날 바우하우스는 다시 복원되어 연구와 디자인을 목적으로 한 기관으로 문을 열었다. 바우하우스는 지금까지 존재한 모더니즘 건축물 중 가장 크고 가장 혁신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다.
바우하우스 시대와 마감한 파울 클레는 1931년 뒤셀도르프의 미술학교에서 교수가 되었으나 다시 나치스에 의해 독일에서 추방된다. 그는 1933년 고향 베른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낸다. 만년에는 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 난치병에 걸렸으나, 등받침이 있는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파울 클레는 히틀러가 총통으로 집권하는 1933년 ‘아이의 흉상 (Bust of a child)’이라는 작품을 완성한다.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에서 아이의 입은 굳게 닫혀 있다. 이는 파울 클레가 좌파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독일에서 예술가로서 지녔던 대학교수직과 명예를 함께 잃었던 시절의 그늘진 심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럽 근대미술이 정치적으로 좌파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던 독일 사회주의당의 탄압은 수많은 독일 거주 지식인들과 예술가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이후 클레는 그의 예술이 정치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믿는 나치로 인해 요주의 감시 대상이 된다.
1937년 7월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퇴폐미술전’이라는, 정치적 민족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작가들을 탄압하는 제도를 시행한다. ‘퇴페미술전은’ 현대미술의 탄핵을 목적으로 열린 순회 미술전람회로서 20세기 모든 전위 미술작품이 압수대상이었다. 작품의 대상은 표현주의, 종교미술, 현실비판적 작품 및 추상화 등이 주를 이루었으며 표현주의 작가들이 시도했던 추상표현 작품들이 비독일적인 타락으로 지목되어 창작을 금지 당했고 작품은 몰수당했다.

○ 저서
- 주요 저서
자연연구의 길
교육적 스케치북
- Publications
Jardi, Enric (1991). Paul Klee, Rizzoli Intl Pubns.
Kagan, Andrew (1993). Paul Klee at the Guggenheim Museum (exhibition catalogue) Introduction by Lisa Dennison, essay by Andrew Kagan. 208 pages. English and Spanish editions. 1993.
Cappelletti, Paolo (2003). L’inafferrabile visione. Pittura e scrittura in Paul Klee (in Italian). Milan: Jaca Book.
Partsch, Susanna (2007). Klee (reissue) (in German). Cologne: Benedikt Taschen.
Rudloff, Diether (1982). Unvollendete Schöpfung: Künstler im zwanzigsten Jahrhundert (in German).
Baumgartner, Michael; Klingsöhr-Leroy, Cathrin; Schneider, Katja (2010). Franz Marc, Paul Klee: Dialog in Bildern (in German) (1st ed.). Wädenswil: Nimbus Kunst und Bücher.
Giedion-Welcker, Carola (1967). Klee (in German). Reinbek: Rowohlt.
Glaesemer, Jürgen; Kersten, Wolfgang; Traffelet, Ursula (1996). Paul Klee: Leben und Werk (in German). Ostfildern: Hatje Cantz.
Rümelin, Christian (2004). Paul Klee: Leben und Werk. Munich: C.H. Beck.
Lista, Marcella (2011). Paul Klee, 1879-1940 : polyphonies. Arles: Actes Sud.
- Books, essays and lectures by Paul Klee
1922 Beiträge zur bildnerischen Formlehre (‘Contributions to a pictorial theory of form’, part of his 1921–22 lectures at the Bauhaus)
1923 Wege des Naturstudiums (‘Ways of Studying Nature’), 4 pages. Published in the catalogue for the Erste Bauhaus Ausstellung (First Bauhaus Exhibition) in Summer 1923. Also published in Paul Klee Notebooks vol 1.
1924 Über moderne Kunst (‘On Modern Art’), lecture held at Paul Klee’s exhibition at the Kunstverein in Jena on 26 January 1924
1924 Pädagogisches Skizzenbuch (‘Pedagogical Sketchbook’)
1949 Documente und Bilder aus den Jahren 1896–1930, (‘Documents and images from the years 1896–1930’), Berne, Benteli
1956 Graphik, (‘Graphics’), Berne, Klipstein & Kornfeld
1956 Schriften zur Form und Gestaltungslehre (‘Writings on form and design theory’) edited by Jürg Spiller (English edition: ‘Paul Klee Notebooks’)
1956 Band I: Das bildnerische Denken., (‘Volume I: the creative thinking’). 572 pages review. (English translation from German by Ralph Manheim: ‘The thinking eye’)
1964 Band 2: Unendliche Naturgeschichte (‘Volume 2: Infinite Natural History’) (English translation from German by Heinz Norden: ‘The Nature of Nature’)
1964 The Diaries of Paul Klee 1898–1918 ed. Felix Kle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1976 Schriften, Rezensionen und Aufsätze edited by Ch. Geelhaar, Köln,
1960 Gedichte, poems, edited by Felix Klee
1962 Some poems by Paul Klee ed Anselm Hollo. London

○ 작품
Dame mit Sonnenschirm, 1883–1885, pencil on paper on cardboard, Zentrum Paul Klee, Bern
Hilterfingen, 1895, ink on paper,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Third Invention: Jungfrau im Baum, 1903, etching,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Sixth Invention: Zwei Männer, einander in höherer Stellung vermutend, begegnen sich, 1903, etching, Zentrum Paul Klee, Bern
Aged Phoenix, 1905, etching,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Fenster und Palmen, 1914, watercolor on grounding on paper on cardboard, Kunsthaus Zürich, Zurich
In den Häusern von St. Germain, 1914, watercolor on paper on cardboard, Zentrum Paul Klee, Bern
Föhn im Marc’schen Garten, 1915, watercolor on paper on cardboard, Lenbachhaus, Munich
Acrobats, 1915, watercolor, pastel and ink on paper,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In Engelshut, 1931, watercolor and colored inks on paper, mounted on paper, Guggenheim Museum
Red/Green Architecture (yellow/violet gradation), 1922, oil on canvas on cardboard mat, Yale University Art Gallery, Yale University, New Haven, Connecticut
Senecio, 1922, oil on gauze, Kunstmuseum Basel, Basel
Fright of a Girl, 1922, Watercolor, India ink and oil transfer drawing on paper, with India ink on paper mount,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Puppet without title (self – portrait), 1922
Zeichen in Gelb, 1937, pastel on cotton on colored paste on jute on stretcher frame, Fondation Beyeler, Riehen near Basel
Nach der Überschwemmung, 1936, wallpaper glue and watercolors on Ingres paper on cardboard
Revolution des Viadukts, 1937, oil on oil grounding on cotton on stretcher frame, Hamburger Kunsthalle
Die Vase, 1938, oil on jute, Fondation Beyeler, Riehen near Basel
Heroische Rosen (Heroic Roses), 1938, oil on canvas,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Düsseldorf
Insula dulcamara, 1938, oil color and colored paste on newsprint on jute on stretcher frame, Zentrum Paul Klee, Bern
Ohne Titel (Letztes Stillleben), 1940, oil on canvas on stretcher frame, Zentrum Paul Klee, Bern
Tod und Feuer (Death and Fire), 1940, oil on distemper on jute, Zentrum Paul Klee, Bern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