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9월 12일, 네 소년이 프랑스 남서부 몽티냐크 마을에서 구석기 시대의 벽화가 있는 라스코 동굴벽화 발견
프랑스 남서부의 오리냐크 지역에는 크고 작은 30여 개의 선사 시대 동굴이 있는데, 그 중에서 라스코 동굴이 가장 유명하다.

라스코 동굴 (Lascaux Caves)은 프랑스 남서쪽에 있는 동굴로, 라스코 동굴 벽화로 매우 유명하다.
라스코 동굴 벽화는 1940년 마을 소년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뒤, 1979년에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오리냐크의 라스코 동굴은 1940년 어린이들의 호기심 때문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 고장의 나지막한 언덕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있었는데 어린 아이들은 그 곳에서부터 다소 멀리 떨어진 산 중턱에 있는 작은 성까지 통하는 길이 있다고 믿었다.
마르셀을 포함한 네 명의 소년은 정말로 통로가 있는지 탐험하면서 동굴을 찾아냈다.
이 동굴 안의 기원전 17000년~15000년 경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후기 구석기 시대 그림이 매우 유명하다.

원래 동굴의 위치는 도르도뉴주의 몽티냐크 마을 근처에 있다.
라스코 동굴은 레 트루아 프레르 (Les Trois-Freres), 니오 (Niaux), 알타미라 (Altamira), 퐁 드 곰 (Font-de-Gaume), 레 콩바렐에스파냐의 어떤 동굴보다도 훨씬 크고, 유물도 더 잘 보존되어 있다.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한지 12년이 지난 1960년부터 푸른곰팡이가 기생하고 석회암 암벽에도 하얀 얼룩이 생기자 라스코 동굴은 1963년에 동굴 벽화의 일반 공개를 금지했다.
그 후로는 정부 기관의 추천장이 있는 전문가에 한해 하루 6명 이내로 동굴 벽화의 관람이 허용되고 있다.
그리고 일반 관람객을 위해서는 동굴이 발견된 바로 옆 장소에 라스코 동굴과 똑같이 모방한 동굴을 만들어 공개하고 있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 : 베제르 계곡의 선사 유적지와 동굴 벽화
베제르 계곡에는 구석기 시대 유적지 147곳과 벽화가 있는 동굴 25곳이 있다. 이 유적은 민족학적·인류학적으로 흥미로우며 특히 라스코 동굴벽화들은 미학적으로도 관심을 끈다. 1940년에 발견된 라스코 동굴 벽화는 선사시대 미술사적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동물 100여 마리를 사냥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세밀한 세부묘사와 풍부한 색채, 생동감 넘치는 묘사가 주목할 만하다.
– 베제르 계곡의 선사 유적지와 동굴 벽화
.영문명 : Prehistoric Sites and Decorated Caves of the Vézère Valley
.국가 : 프랑스 (France)
.위치 : 아키텐 주 (Region of Aquitaine) 도르도뉴 현 (Department of the Dordogne), 데 제지 드 타약 코뮌 (Communes of Les Eyzies de Tayac), 튀르삭 코뮌 (Tursac), 몽티냑-쉬르-베제르 코뮌 (Montignac-sur-Vzre), 생-레옹-쉬르-베제르 코뮌 (Saint-Leon-sur-Vzre), 마르케 코뮌 (Marquay), 마노리-루피냑 코뮌 (Manaurie-Rouffignac), 생-시르크-뒤 뷔그 (Saint-Cirq-du Bugue) 코뮌
.등재연도 : 1979년
.참고번호 : 85

– 등재기준
기준 (ⅰ) : 베제르 계곡의 동굴 벽화 가운데 몇몇 화려한 작품은 선사시대 미술의 걸작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마르케에서 발굴된 ‘로셀의 비너스’, 카프블랑의 말 모양의 높은 돋을새김 장식이 대표적이다. 특히 1940년에 발견된 라스코 동굴의 유명한 벽화는 선사시대 미술에 중요한 시기를 보여 준다. 이 벽화에서 솜씨 있게 구성된 사냥 장면들에는 동물 100여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관찰의 정확성, 풍부한 색감, 묘사의 생동감이 놀라울 정도이다.
기준 (ⅲ) : 베제르 계곡에서 발견된 유물과 미술품은 지금으로선 알기 힘든 오래전에 사라진 문명을 증언하는 매우 드문 예이다. 상고시대보다 더 이전,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유물들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아득한 시기를 이해하는 데 소중한 자료이다. 역사적 관점에서는 물론 민족학적·인류학적·미학적 관점에서도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

– 본문
베제르 계곡에서 발견된 유물과 예술품은 지금은 거의 알 수 없는 오래전에 사라진 문명을 증언한다. 이 유물들은 역사적 관점에서는 물론 민족학적·인류학적·미학적 관점에서도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 베제르 계곡 동굴들의 일부 회화 작품은 선사시대 미술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로 셀(Laussel)의 비너스 (마르케, Marquay), 카프블랑 (Cap-Blanc)의 말 모양의 높은 돋을새김 장식, 특히 유명한 라스코 동굴 벽화 등이 그것이다.
베제르 계곡이 특히 민족학적·인류학적·미학적 관점에서 흥미를 끄는 이유는 동굴 벽화 때문이다. 그중 1940년에 발견된 라스코 동굴 벽화는 선사시대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동물 100여 마리를 사냥하는 장면의 묘사는 세부 묘사와 풍부한 색채, 실물 같은 생동감으로 주목할 만하다.
베제르 계곡의 선사시대 유적지는 약 30㎞×40㎞의 면적에 유적지 147개와 벽화 동굴 25개로 이루어져 있다. 유골 외에도 이곳에서는 중요한 유물, 즉 50만 점이 넘는 부싯돌, 동물 유골 148구, 생활도구 844점과 다양한 종류의 미술작품이 발굴되었고 이것들은 유럽 제4기 선사시대 문명의 골자를 연대순으로 재구성하게 해준다. 발견된 유물의 양·질·다양성 면에서 이 유적지에 버금가는 선사시대 유적지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라스코는 레 트루아 프레르 (Les Trois-Frères) · 니오 (Niaux) · 알타미라 (Altamira) · 퐁 드 곰 (Font-de-Gaume) · 레 콩바렐 (Les Combarelles) 등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어떤 동굴보다도 훨씬 뛰어나다. 라스코 동굴이 이들 동굴보다 훨씬 크고, 유물도 더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스코 동굴의 고대 암벽은 동물 그림과 채색화, 새김조각들로 덮여 있지만, 이 암벽에 손이 닿기는 힘들다. 하지만 학자들은 1만 7000년 전에는 동굴 바닥이 지금과 달라서 암벽의 그림에 손을 대기가 훨씬 쉬웠을 것으로 추정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닥이 점점 깊이 꺼져 선사시대 그림에 접근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앙리 브뢰이 (Henri Breuil) 신부는 이 동굴을 탐사하던 중 매우 두꺼운 탄산칼슘 결정층 (방해석)을 발견했는데, 보존 상태가 좋은 일부 동물화가 그 위에 그려져 있었다. 라스코 동굴의 모든 벽화가 부패하거나 변색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보존되어 온 이유는 동굴의 공기가 자연적으로 환기되어 벽화의 퇴색을 막았기 때문이다.
동굴 안의 벽화에는 황소 · 들소 · 말 등 다양한 동물이 묘사되어 있다. 많은 동물과 함께 인류 또는 원시인을 그린 형상도 있다. 인류의 형상은 동물의 형상만큼 정밀하거나 주의 깊게 그려져 있지 않다. 사냥 장면에 나타난 동물 묘사는 사냥꾼들의 성공적인 사냥을 보장하거나 확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 문화유산 속 과학 : 크로마뇽인이 그린 그림 라스코 동굴 벽화

– 말 · 황소 등 역동적 그림 100점 넘게 출토
라스코 동굴의 경우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1만5천 ~ 1만7천년 전으로 추정하며, 유명한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은 이보다 약간 늦은 1만4천500년 전으로 추정한다.
크로마뇽인이 그린 그림은 라스코 동굴의 것이 최고 연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근래 발견된 프랑스의 쇼베 동굴의 벽화는 무려 3만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제석기를 사용하던 구석기인들이 현대인들도 그리기 어려운 정교한 그림을 그렸다는데 놀라움보다도 인류의 문화생활 여건이 매우 오래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증거라는데 큰 가치가 있는 것이다.
라스코 동굴의 입구에 있는 중앙 홀에는 유명한 말과 황소들이 그려져 있다. 조사 결과 벽화는 모두 800점이 넘었다. 들소, 야생마, 사슴, 염소 따위가 주로 그려져 있고 드문드문 고양이나 주술사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중앙 홀에 그려진 검은 소는 가로가 5m도 넘는다. 빨강, 검정, 노랑, 갈색을 칠한 채색화가 많지만, 홈을 판 선각 그림도 있다. 벽화의 짐승들은 하나 같이 역동적이고 생생한 모습을 라스코 동굴의 사슴과 말 띠고 있다. 뛰어 다니는 들소, 쉬고 있는 사슴,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는 말 등 그림들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지구상에 서식하던 어느 동물과도 닮은 데가 없는 일각수 그림은 상상의 동물을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동굴 안에 그려진 동물은 당시에 그들의 기술로 사냥이 가능했던 대상물일 것으로 여겨진다. 사자나 이리 따위의 맹수는 결코 사냥의 대상물이 아니기 때문에 많이 그리지 않았으며, 또 이 무렵에 무수히 번성하고 있었던 순록도 사냥하는데 별로 힘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그리지 않았으리라고 추측한다.
– 사냥 전 주술적인 용도로 동굴 벽화 그려
전문가들은 이처럼 사냥의 광경을 그린 그림 등을 감안할 때 동굴 벽화란 두 가지 목적으로 그려졌다고 추정한다. 첫째는 주술 용도이고, 두 번째는 사냥시의 요행을 바랐다는 것이다.
우선 벽화에 묘사된 동물의 형상이 토템으로서 아마도 그 형상들이 상징하는 힘과 속성에 일체감을 느끼는 집단이나 부족에 의해 의식이 진행되는 중에 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들소나 코뿔소들은 인간보다 힘이 세고 위험하므로 동물들의 힘을 억누르거나 줄이기 위해 사냥에 앞서 뭔가 주술적인 행사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이런 예는 현대에도 종종 볼 수 있다. 독일의 인류학자 프로베니우스가 1905년 아프리카를 탐험했을 때의 일이다. 예비식량이 바닥나자 안내원인 피그미족에게 영양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피그미족은 수렵이 주업이라 영양 한 마리쯤은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피그미족은 오늘은 준비가 안 되었으니 다음 날에 사냥을 하자고 거절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 피그미족은 새벽에 적당한 장소를 잡고 의식을 치르기 시작했다. 먼저 주문을 외우면서 집게손가락으로 영양의 그림을 그린 다음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아침 햇살이 땅 위에 그려 놓은 그림 위에 비치자 영양의 그림을 향해 활을 쏜 다음에야 사냥에 나섰다.
두 번째는 사냥꾼들이 사냥물을 많이 잡을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나 묘사된 동물이 더 많이 나타나도록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다른 동굴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그림이 있다. 바로 크로마뇽인의 그림이다. 한 남자가 창에 찔려 창자가 쏟아져 나온 들소 옆에서 두 팔을 벌린 채 커다란 성기를 내보이며 뒤로 벌렁 자빠져 있는 모습이다. 들소에게 치명상을 주기는 했지만, 자신도 역시 상처를 입고 쓰러진 상황을 그린 것이다.

– 7만년 전 블로보스 동굴 추상화가 가장 오래 돼
빙하기 직후의 인류는 동굴 안에서도 햇빛이 비치는 곳이라든가 바위틈에서 생활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동굴 그림들은 동굴 안에서도 깊숙한 구석에 그려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고고학자 혹스는“벽화를 그린 화가들은 우선 사자와 거대한 곰의 서식처로서 화랑으로 쓰일 동굴을 찾아야 했다. 또 고작 횃불이나 동물과 고래 기름 등불을 밝혀놓고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다가 불이 꺼졌을 때 부싯돌로도 불을 켤 수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이들이 익숙한 외부 세계와 동굴 입구에 있는 가족들의 생활공간과 멀리 떨어진 땅속 깊숙한 곳에 동물의 형상을 재현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렬했는지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가축을 사육하면서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자 더 이상 주술적인 의미의 그림은 필요 없게 된다. 오히려 인간은 고대 인류가 지녔던 그림 솜씨를 잊어버리고 만다. 인간이 크로마뇽인의 그림 솜씨를 되찾게 된 것은 고대 인류가 동굴 그림을 그린지 적어도 몇 천년 후의일이다.
학자들은 인간이 그린 가장 오래된 예술작품을 7만 년 전으로 추정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290㎞ 떨어진 블로보스 동굴에서 인간이 그린 추상화가 그 주인공이다.
이 추상화는 철광석의 일종인‘오커 (ocher)’의 표면을 평평하게 한 다음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해 균등한 간격으로 대각선 여러 개를 긋고 다시 반대방향으로 대각선을 그어 마름모꼴과 삼각형을 표현했다. 학자들은 이 작품을 증거로 인류가 그 동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추상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고 추측한다. – 이종호 (과학저술가)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