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월 9일, 미국의 가수•인권 운동가 존 바에즈 (Joan Chandos Baez, 1941 ~ ) 출생
조안 챈도스 바에즈 (Joan Chandos Baez, 1941년 1월 9일 ~ )는 미국의 가수이며, 인권 운동가이며 반전 평화 운동가이다.

– 존 바에즈 (Joan Baez)
.본명: 조안 챈도스 바에즈 (Joan Chandos Baez)
.출생: 1941년 1월 9일, 미국 뉴욕 스태튼아일랜드
.국적: 미국
.배우자: 데이비드 해리스 (1968년 ~ 1973년, 이혼)
.자녀: 가브리엘 (1969년 12월생)
.직업: 가수, 인권 운동가, 반전 운동가
.장르: 포크 록, 컨트리 음악
.활동 시기: 1959년 – 현재
.악기: 보컬,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종교: 개신교 (퀘이커)
바에즈의 성 Baez의 올바른 발음은 바이즈 (baɪz)이지만 한국어 뿐만 아니라 영어에서도 오랫 동안 바에즈로 불려왔다.
바에즈는 언론 인터뷰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 생애 및 활동
- 성장과정
1941년 1월 9일 뉴욕의 스태튼아일랜드에서 멕시코 출신의 앨버트 비니시오 바에즈 (Albert Vinicio Baez)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조안 브리지 바에즈 (Joan Bridge Baez)의 세 딸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핵무기 제조에 반대하는 물리학자였으며 어머니는 희곡작가였다.
나중에 바에즈가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반전평화운동가로서 활동하게 된 데에는 반핵물리학자였던 멕시코계 아버지를 둔 가정적 환경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어렸을 때 개신교 종파 중 하나인 퀘이커로 개종했으며, 퀘이커의 비폭력과 진보적인 적극 행동주의에 대한 믿음은 그녀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1951년부터 52년까지 바그다드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돌아와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다. 첫 기타를 구입한 해인 1956년엔 비폭력과 시민권에 대한 마틴 루터 킹의 강의를 들었다.
그녀는 13살에 이모가 피트 시거의 콘서트에 데려가면서 포크를 처음 접했다. 중학교에서 그녀는 다민족적 혈통과 어두운 피부색으로 인해 또래들에게 조롱을 당했다. 그녀는 인기와 인정을 받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그녀는 학교 근처에서 유명해졌고, 학교 장기자랑에 오른 후론 무시와 차별이 칭찬으로 바뀌었다. 1957년엔 공습 훈련 중에 학교를 떠나는 걸 거부하며 첫 번째 시민 불복종을 행했다. 또한 같은 해 그녀는 아이라 샌드펄이란 철학자를 만나 크나큰 정치적 영향을 받았다.

- 음악계 데뷔
1958년에 팔로 알토에 있는 팔로 알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가족은 보스턴으로 이사했다. 같은 해 데모 앨범을 녹음했지만 어느 레코드도 관심이 없었다. 이후 보스턴 대학교에 다녔으나 음악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곧 그만뒀다. 그녀는 클럽 47에서 정기적으로 공연하며 팬들을 끌어모았다. 그 뒤 그녀는 빌 우드와 친분을 맺었고 그와 테드 알레비조스와 앨범을 작업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캘리포니아 (California)에서 고등학교 (Palo Alto High School)를 다닌 바에즈는 음악에 심취하여 졸업 무렵에는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여 음반회사에 보내기도 하였다.
1958년 아버지의 새로운 직장 때문에 매사추세츠로 이주한 그는 보스턴 대학교 (Boston University)에 진학하지만 직업적인 가수활동을 하기 위하여 곧 중퇴하였다.
1959년 캠브리지 (Cambridge)의 포크음악클럽인 클럽 47 (Club 47)에서 정식으로 노래하기 시작한 바에즈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The Newport Folk Festival)을 통하여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1960년 포크 전문 레이블인 뱅가드 (Vanguard Recording Society)와 장기계약을 맺고 음반들을 발매하였다.
- 반전운동
바에즈는 1961년 뉴욕에서 밥 딜런을 만나 함께 전국순회공연을 하며 흑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인종차별 철폐운동에 앞장섰다.
월남 반전평화운동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국내외에서 펼친 음악활동만큼 반전운동도 맹렬했던 그는 직접 반전시위에 가담하여 체포당하기도 하였다.
1968년 3월 26일 반전운동가인 데이비드 해리스 (David Harris)와 결혼한 바에즈는 해리스가 비폭력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로 투옥되자 우드스탁 축제 (The Woodstock Festival)에 참여하는 등 반전운동에 더욱 열중하게 되었다.

- 작품활동
1960년 바에즈는 첫 솔로 앨범 ‘Joan Baez’를 발매했다. 같은 해 그녀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솔로로 올랐고 뉴욕시에서 첫 콘서트도 열었다. 그녀의 첫 솔로 앨범은 상업적인 성공과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녀는 ‘마돈나’란 별명도 얻게 되는데, 이는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 · 긴 머리 · 아름다운 외모 덕분이었다.
다음 해 발매한 2번째 앨범 ‘Joan Baez, Vol. 2’ 또한 꽤나 성공했다. 그녀의 앨범은 1960년부터 64년까지 큰 인기를 얻었다. 1962년 11월 23일엔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다. 1960년대 중반에 발매한 앨범에선 음악적 시도를 선보였다.
그녀는 1962년에 첫 번째 투어를 진행했으며, 1963년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주역으로 출연했고 밥 딜런과 함께 전국에서 공연을 펼쳤다. 같은 해 그녀는 텔레비전의 시리즈 프로그램인 후트내니에 대한 보이콧에 참여했으며, 워싱턴 행진에서 ‘We Shall Overcome’을 불렀다. 이 곡은 이로 인해 민권 운동의 상징적인 곡이 되었다.
1964년엔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의미로 연방세 납부를 거부했다. 같은 해 판타지 레코드에서 1958년에 녹음했던 데모 앨범을 무단 발매하자 배포 금지를 신청했다. 1965년엔 캘리포니아주 카멜 밸리에 있는 본인의 집 근처에 비폭력 연구소를 공동 설립했다. 1966년엔 공정한 임금을 요구하며 파업한 노동자들과 함께 했으며 성탄절 땐 밤을 세며 샌 쿠엔틴에서 사형에 반대했다. 1967년엔 두 번 감옥에 투옥됐다.
그녀는 1968년에 내쉬빌로 떠났고 그곳에서 밥 딜런의 앨범 Blonde on Blonde 녹음의 참여진 상당수와 녹음했다. 또한 같은 해 3월 26일엔 베트남 전쟁 징병 거부 운동을 이끌던 5세 연하의 데이비드 해리스 (David Harris) 와 결혼했고 그에게 헌정하는 앨범도 만들었다. 그리고 마틴 루터 킹이 그녀에게 감옥 생활이 어땠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그곳이 천국이었다고 답했다. 다음 해 데이비드는 투옥되어 20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고[D], 그녀는 임신한 상태로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올랐다. 이후 1969년 12월 그녀는 아들 가브리엘을 출산했다.
1970년엔 2개의 앨범을 발매했고, 1971년엔 사코와 반제티 사건를 다룬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이 발매됐다. 이 앨범에서 크게 히트한 곡이 바로 Here’s to you이다. 같은 해 더 밴드의 곡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을 커버해 큰 성공을 거뒀다. 1972년 12월엔 하노이에 찾아가 미군 포로들에게 성탄절 선물과 우편물을 배달했는데, 그곳에서 미군의 폭격을 겪었다. 이 경험은 1973년 B-사이드를 23분짜리 한 곡으로 채운 앨범 ‘Where Are You Now, My Son?’에 반영된다. 같은 해 그녀는 1971년에 별거한 데이비드와 이혼했다.
1974년에 그녀는 앨범 ‘Gracias A La Vida’를 발매했다. 다음 해 그녀는 앨범 ‘Diamonds & Rust’를 발매했는데, 이 중 동명의 곡인 ‘Diamonds & Rust’는 그녀 자작곡 중 최고로 평가받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 같은 해 8월 그녀는 락 뮤직 어워드에서 상을 받았으며 애틀랜타에선 ‘조안 바에즈의 날’을 기념했다. 또한 밥 딜런과 ‘롤링 스톤 레뷰 (Rolling Thunder Revue)’에서 재회하여 듀엣을 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가면서 바에즈의 활동도 변화되어 전통 포크의 모습에서 새로운 음악스타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의 최대 명곡인 〈Diamond & Rust〉는 새로운 음반사 A&M를 통하여 1975년 4월에 발매되었다.
1978년 7월 4일엔 산타나, 비치 보이스와 레닌그라드에서 콘서트를 열려했으나 고위직들이 이를 취소시켰다. 그럼에도 그녀는 모스크바로 가서 안드레이 사하로프 등의 반체제 인사들과 만났다. 또한 같은 해 자신과 연관된 미국 국가안보국의 파일을 얻고자 소송을 제기했다. 1979년엔 2개의 상을 받았고 인권 단체를 설립해 13년 간 이끌었다. 1980년엔 2개의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1983년엔 그래미 어워드 방송에서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불렀고, 1985년엔 라이브 에이드에 참여했다. 1986년 말엔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만남이 있었는데, 그녀는 아이슬란드의 피플 서밋 콘서트에 올랐다. 1987년엔 8년 만의 앨범과 함께 자서전 ‘And a Voice to Sing With’를 발간했다. 책은 잘 팔렸다.
1993년엔 내전이 발발한 사라예보에서 공연한 최초의 유명 음악가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방탄조끼를 착용하기도 했다. 1994년엔 상을 받은 피트 시거를 위해 노래했다. 2007년엔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엔 넬슨 만델라의 90번째 생일을 축하하고자 참석했다.
2016년 1월엔 75번째 생일을 기념해 뉴욕의 비컨 극장에서 잭슨 브라운, 폴 사이먼 등의 게스트와 콘서트를 열었다. 2017년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같은 해 4월 5일엔 페이스북에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하는 신곡 ‘Nasty Man’을 발표했다. 이듬해엔 새 앨범 ‘Whistle Down the Wind’를 발매했다. 2019년엔 라틴 그래미로부터 평생 공로상을 받았고 7월 28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왕립극장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진행했다.
그녀는 위에 서술된 내용 외에도 여러 사회적 활동을 펼쳤고 많은 상을 받았다.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못하고, 대학마저 중퇴했지만 실력으로 평생 큰 업적을 이루었다.
바에즈는 8장의 골드앨범과 1장의 골드싱글을 기록하였다.
그래미상 후보에 6번 선정되었으며 2007년 그래미 평생공로상 (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수상하였다.
인권과 평화운동의 공로로 2개 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고, 2개 주로부터 존 바에즈의 날 (Joan Baez Day)을 지정받는 명예를 얻었다.

○ 평가
바에즈의 포크 음악 가운데 상당수가 사회 정의를 촉구하는 인권, 평화를 주제로 하고 있다.
20세 무렵 가수 활동을 시작하여 60년 이상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영어와 스페인어로 노래하지만 그 외에도 6개의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바에즈는 일반적으로 포크 가수로 알려져 있지만 1960년대 반문화 운동 이후 포크 록, 팝 음악, 컨트리 음악, 복음성가 등의 여러 장르를 넘나들었다.
첫 앨범은 1960년에 취입하였고 즉각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
초기 세 앨범 《Joan Baez》, 《Joan Baez, Vol. 2》, 《Joan Baez in Concert》는 모두 골든 레코드를 기록하였다.
존 바에즈는 스스로도 곡을 작곡하였지만 다른 작곡가와 함께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바에즈가 함께 녹음한 음악가로는 올맨 브라더스 밴드, 비틀즈, 잭슨 브라운, 레너드 코언, 우디 거스리, 비올레타 파라, 롤링 스톤스, 피트 시거, 폴 사이먼, 스티비 원더, 밥 말리를 비롯하여 수 없이 많다.
바에즈는 1960년대 밥 딜런의 노래를 녹음한 대표적인 가수이기도 하였다.
바에즈는 활동 초기부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후기 앨범에서는 라이언 애덤스, 조시 리터, 스티브 얼, 나탈리 머천트와 같은 70년대생 가수들과 작업하였다.
2017년 4월 7일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 골드 앨범 및 골드 싱글
바에즈의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곡은 〈Diamonds & Rust〉이다.
커버 곡으로는 필 오크스의 〈There but for Fortune〉, 더 밴드의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이 인기를 얻었다.
바에즈는 밥 딜런의 〈Farewell, Angelina〉, 〈Love Is Just a Four-Letter Word〉, 〈Forever Young〉 등을 불렀고, 엔니오 모리코네와 함께 〈Here’s to You〉를 불렀다.
복음성가로는 〈We Shall Overcome〉이 유명하다.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참여하여 14곡을 불렀다.
바에즈는 활동 초기부터 인권, 비폭력, 시민권, 반전, 환경 등의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의 대표 곡 가운데 하나였던 〈We Shall Overcome〉 은 한국에서도 〈우리 승리하리라〉로 번안되어 민주화 운동에서 많이 불렸다.
- 골드 앨범
《Joan Baez》 (1960년)
《Joan Baez, Volume Two》 (1961년)
《Joan Baez In Concert》 (1962년)
《Any Day Now》 (1968년)
《Woodstock》
《Blessed Are…》 (1971년)
《Diamonds & Rust》 (1975년)
《Live Europe ’83》 (1984년)
- 골드 싱글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 (1971년)
- 대중매체
포크의 여왕, 조안 바에즈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