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2월 1일, 그리스계 미국인 컴퓨터 과학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Nicholas Negroponte, 1943 ~ ) 출생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Nicholas Negroponte, 1943년 12월 1일 ~ )는 그리스계 미국인 컴퓨터 과학자로, MIT 미디어 랩의 설립자이자 디렉터로 잘 알려져 있다.
90년대 중후반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디지털이다 (Being Digital)》의 저자이기도 하다.

–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Nicholas Negroponte)
.출생: 1943년 12월 1일, 미국 뉴욕시
.성별: 남성
.국적: 그리스계 미국인
.학력: MIT
.경력: MIT 미디어 랩 설립자 및 디렉터
.직업: 컴퓨터 과학자
.활동 기간: 1966년 ~ 현재
.소속: MIT 미디어 랩
.저서: 디지털이다 (Being Digital)
그의 카리스마와 미래 기술에 전망으로 기업체들의 지원을 미디어 랩으로 끌어 모으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형 존 네그로폰테는 미국 외교관이며 전직 미국 국가정보국 (DNI) 국장, 현직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다.

○ 생애 및 활동
뉴욕시에서 그리스인 선주의 아들로 태어난 네그로폰테는 MIT에서 공부하였으며, 그곳에서 CAD 분야에 대한 대학원 연구를 했다.
1966년에는 MIT 교수진에 합류했다.
이후 몇 년간은 MIT에서의 강의와 함께 예일 대학과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의 방문교수도 겸임한다.
1968년 컴퓨터 인터페이스에 대한 새로운 시도들에 대해 연구를 위한 복합연구소 겸 싱크탱크인 MIT 아키텍처 머신 그룹을 만든다.
1985년에는 드디어 MIT 미디어 랩을 탄생시키고, 이 연구소는 많은 지원을 보장하는 유명한 연구소로 발전한다. 연구소에서는 컴퓨터 인터페이스와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첨단연구들이 진행되었다.
1992년 네그로폰테는 잡지 와이어드의 창간에 소규모 투자자로 참여하게 된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이 잡지에 월간 컬럼을 연재하며 “아톰이 아닌, 비트를 움직이라”는 그의 신조를 다양한 각도에서 제시한다.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고 모아서 1995년에는 디지털이다 (Being Digital)을 출간한다.
책에서 그는 최근 미디어 기술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이제는 모두가 동감하는 상호작용의 세계와 연예 세계, 정보 세계가 결국 하나로 합쳐질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있다.
디지털이다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20여개국어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그가 기술과 같은 수준으로 고려되었어야 할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그의 기술유토피아적인 예언을 꼬집었다.
이어진 닷컴신화의 붕괴와 함께 그의 책은 금세 그 현재성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책은 저자의 독특한 시각과 남아있는 가능성들에 대한 영감으로 차 있어 많은 독자들에게 아직도 유효하다.

– MIT
네그로폰테는 1966년 MIT 교수진에 합류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MIT와 예일대, 미시간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등 여러 대학의 방문 교수직을 맡으며 강의했다.
1967년, 네그로폰테는 MIT에 아키텍처 머신 그룹을 설립했다. 이 그룹은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연구하는 연구실이자 싱크탱크였다. 이 그룹은 DARPA와 펜타곤의 다른 부서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인간-컴퓨터 상호작용과 가상 현실에 대한 초기 연구를 진행했다.
1985년, 네그로폰테는 제롬 와이즈너와 함께 MIT 미디어랩을 설립했다. 소장으로서 그는 이 연구소를 새로운 미디어를 위한 실험실이자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연구하는 첨단 놀이터로 발전시켰다. 네그로폰테는 또한 지능형 에이전트와 개인화된 전자 신문의 지지자가 되었으며,[9] 데일리 미라는 용어를 대중화했다.
– 와이어드 (Wired)
1992년, 네그로폰테는 와이어드 (Wired Magazine)의 최초 투자자였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원자를 옮기지 말고 비트를 옮겨라 (Move bits, not atoms)”라는 주제로 매달 칼럼을 기고했다.
1995년, ‘와이어드’ 칼럼의 내용을 확장하여 베스트셀러 ‘디지털이다 (Being Digital)’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상호작용적인 세계, 엔터테인먼트 세계, 정보 세계가 결국 하나로 합쳐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디지털이다’는 약 40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한국어 번역본도 출판되었다. 네그로폰테는 컴퓨터가 모든 사람의 삶을 더 좋게 만들 것이라고 믿는 디지털 낙관론자였다. 그러나 캐스 선스타인과 같은 비평가들은 그가 새로운 기술을 바라볼 때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그의 기술낙관주의적 사상에 문제를 제기했다.

– 네그로폰테 스위치
1980년대에 네그로폰테는 전화와 같은 유선 기술이 전선이나 광섬유 대신 전파를 사용하여 무선화되고, 텔레비전과 같은 무선 기술이 유선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네그로폰테 스위치로 불린다. 이는 2000년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예측한 미래 현상으로, 전화, 인터넷 등 기존에 유선 고정망 이용이 중심이었던 것들은 무선망으로 전환되는 반면, 텔레비전 등 기존에 무선망 이용이 중심이었던 것들은 광섬유 등을 이용하여 오히려 고정망 이용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가설이다.
– OLPC (One Laptop Per Child)
2005년 11월, 튀니지에서 열린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 (World Summit on the Information Society)에서 네그로폰테는 개발도상국 학생들을 위해 고안된 100달러짜리 노트북 컴퓨터인 원 랩탑 퍼 차일드 (The Children’s Machine)의 개념을 공개했다. 그러나 가격은 180달러로 인상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네그로폰테와 다른 MIT 미디어랩 (MIT Media Lab) 교수진이 개발도상국의 인터넷 접근을 확대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 단체인 원 랩탑 퍼 차일드의 광범위한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 엡스타인 기금 지원 논란
제프리 엡스타인 (Jeffrey Epstein)이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5년 후, MIT 미디어랩이 그에게서 자금을 받은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해 네그로폰테는 MIT 직원들에게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여전히 ‘받겠다’고 말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자금 조달 세계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일이 드문 일이 아니며, 사업 관계를 끊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기타
네그로폰테는 지난 30년 동안 자가츠 (Zagats), 와이어드 (Wired), 앰비언트 디바이스 (Ambient Devices), 스카이프 (Skype), 벨 티(Velti)를 포함한 30개 이상의 신생 기업에 투자한 엔젤 투자자이다.
그는 모토로라 (Motorola)와 벨티 (Velti)를 포함한 여러 이사회에 참여했다.
또한 TTI/Vanguard의 자문위원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2007년 8월, 그는 월스트리트 저널 (Wall Street Journal) 및 기타 다우 존스 앤 컴퍼니 (Dow Jones & Company) 간행물과 서비스의 지속적인 저널리즘적 및 편집적 무결성과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목표를 가진 5인 특별위원회에 임명되었다.
이 위원회는 다우 존스와 뉴스 코퍼레이션의 합병의 일환으로 구성되었다.
네그로폰테의 동료 창립 위원으로는 루이스 보카르디 (Louis Boccardi), 토마스 브레이 (Thomas Bray), 잭 풀러 (Jack Fuller)와 고 (故) 제니퍼 던 (Jennifer Dunn) 전 하원의원이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