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7월 14일, 일본항공의 개척자 나라하라 산지 (奈良原三次, 1877 ~ 1944) 별세
나라하라 산지 (일: 奈良原三次, 1877년 메이지10년 2월 11일 ~ 1944년 쇼와19년 7월 14일)는 일본항공의 개척자이다.

– 나라하라 산지 (奈良原三次)
.출생: 1877년 2월 11일, 가고시마
.사망: 1944년 7월 14일
.성별: 남성
.국적: 일본
.직업: 항공 개척자
.경력: 일본 해군 군속 기사
나라하라 산지 (奈良原三次, 1877 ~ 1944)는 일본의 초기 항공 개척자이자 최초의 민간인 비행사다.
가고시마 출신, 일본 해군 군속 기사에서 1911년 (메이지 44년) 5월에 사제 복엽기로 비행에 성공했다가 이듬해 일본 최초의 민간 비행장을 개설한 생애에 걸친 항공의 발전에 기여했다.

– 생애 및 활동
나라하라 산지는 1877년 2월 11일, 가고시마현 출생으로, 일본 해군 군속 기사로 근무했다.
1911년 자체 제작한 국산 항공기인 ‘나라하라식 복엽기’로 비행에 성공했다.
비행 학교를 설립하여 일본 초기 항공계의 수많은 민간 비행가들을 육성했다.
1913년 4월, 자신이 개발한 ‘나라하라식 4호 비행기’인 ‘봉호(鳳號, 오토리호)’를 가지고 서울을 방문했다.
당시 용산연병장에서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시범을 선보이며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44년 7월 14일 향년 67세로 별세하였다.

– 한국과 나라하라 비행기
한국에서 비행기가 첫 선을 보인 것은 1913년 일본 해군 기술장교 나라하라 산지가 용산의 조선군 연병장에서 자신이 만든 “나라하라 4호” 비행기로 공개 비행행사를 가진 것이다.
비록 겨우 떴다 내리는 정도였지만 한국 최초의 비행으로 기록됐다.
일본인 나라하라 산지가 만든 비행기는 오토리호였다.
당시 이 행사를 보기 위해 운집한 청중이 6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 뒤로 일본인 비행사들의 비행 시범 행사는 연달아 계속 열렸다.
유료 행사였기에 수입도 꽤 되었지만, 아마 식민지 사람들에게 일제의 우월한 과학기술력을 과시한다는 의도 또한 없지 않았을 것이다.

– 주요업적
나라하라 산지 (奈良原三次, 1877 ~ 1944)는 일본의 초창기 민간 항공 개척자이자 비행기 제작자로,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비행 대회를 열어 한국 항공사에도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주요 업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일본 민간 항공의 개척 및 비행기 제작
사제 복엽기 제작 및 비행 성공: 일본 해군 군속 기사 출신으로, 1911년 5월 자신이 직접 제작한 ‘나라하라식 복엽기’를 타고 비행에 성공했다.
일본 최초의 민간 비행장 개설: 1912년 일본 최초로 민간 비행장을 개설하여 민간 항공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후진 양성: 수많은 비행가를 양성하며 초창기 민간 항공 인력 유치에 기여했다.
- 한반도 최초의 비행 성과 (한국 항공사에서의 의의)
한반도 땅에서의 첫 비행: 1913년 3월, 자신이 발명한 나라하라식 4호 비행기인 ‘오오토리호(鳳號, 봉호)’를 가지고 서울에 도착했다.
용산 연병장 비행 대회 개최: 1913년 4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간 서울 용산 연병장에서 대규모 비행 대회를 개최했다.
조선인들에게 비행기 첫 선: 당시에 무려 6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환호했으며, 이는 한반도 땅에서 비행기가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되고 하늘을 날아오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당시의 이 비행쇼는 훗날 안창남 등 한국 초창기 비행사들이 꿈을 키우는 간접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