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2월 14일,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모클리와 에커트가 전자식 숫자 적분 및 계산기 에니악 (ENIAC) 제작
전자식 숫자 적분 및 계산기 (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는 1943년에서 3년에 걸쳐서 1946년 2월 14일에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모클리와 에커트가 제작한 전자 컴퓨터이다.
1947년 7월 29일에 작동을 시작해 1955년 10월까지 활용되었으며, 현재는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분산해 보관되고 있다.
보통 에니악이 세계 최초의 컴퓨터라고 알려져 있으나, 현대적인 전자 컴퓨터로는 콜로서스가 최초이며, 모든 범주를 포함해서 보면 안티키티라 기계가 최초의 컴퓨터이다.

– 에니악 (ENIAC) 개요
.폭 : 1m / 높이 : 2.5m / 길이 : 25m
.총 중량 : 약 30여t
.진공관 개수 : 약 18,000여개
.릴레이(전자계전기) : 1,500여개
.작동 전력 : 150kw
.개발비 총액 : 49만 달러 (당시 미국 달러 기준)
현재와 같은 프로그램 기억식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배선판에 일일이 배선하는 외부 프로그램 방식이었다.
마크-원에서는 계산기를 제어하는 데 종이테이프가 쓰이는 데 비해 선판의 연결에 의해 계산을 수행했으므로 작업에 따라 배선판을 교체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어느 것이나 계산순서를 지령하는 일련의 명령은 그 대상인 데이터와는 별도로 주어졌다).
또한, 릴레이 중 하나가 고장이 나면 작동이 아예 불가능하였다.
20개의 변수와 300개의 정수를 기억하는 메모리가 장착되었고, 플로피 디스크 등과 같은 외부 기억장치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현재의 컴퓨터는 2진수로 계산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에니악의 내부구조에는 10진수를 채용했다.
부호 첨부 10자리수의 연산이 가능해 매초 5000회 덧셈에 14회 곱셈을 실행할 수 있었으며, 이는 십진수 10자리의 곱셈을 0.0028 (28,000분의 1초)초, 나눗셈을 0.006초 (6,000분의 1초) 이내에 처리할 수 있는, 당시에는 획기적인 컴퓨터였다.
에니악 개발은 프레스퍼 에커트와 존 모클리가 주도했으며, 개발 목적은 대포의 정확한 탄도 계산이었다. 대포의 탄도 계산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나, 기억 용량이 적고 내장 프로그램이 아니라 외부 프로그래밍 방식이어서 사용에 제약이 많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난수 연구, 우주선 연구, 풍동설계, 일기예보 등에도 이용되었다.
하지만 가동되었을 때, 펜실베이니아 시내에 있던 가로등이 모두 희미해지고, 거리의 신호등이 꺼지는 등의 오작동을 일으킬 정도로 어마무시한 전력을 소모하였다 (시간당 150kw).
게다가 한 번 가동을 시키면 엄청난 열이 발생하였으며, 고장도 많았다.
전자공학 기술의 발달로 1955년까지 사용되다가 다른 컴퓨터로 대체되어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하였다.

- 주요 특징 및 사양
거대한 규모: 무게 약 30톤, 면적은 약 170~185㎡(약 50평 이상)에 달하며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의 크기였다.
핵심 부품: 약 18,000여 개의 진공관과 1,500개의 릴레이, 70,000개의 저항기 등으로 구성되었다.
연산 속도: 1초에 5,000번의 덧셈이나 360번의 곱셈이 가능했습니다. 이는 당시 기계식 계산기보다 약 1,000배 이상 빠른 속도였다.
전력 소비: 작동 시 약 150kW~174kW의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여 엄청난 열이 발생했다.
- 역사적 배경과 목적
개발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존 모클리(John Mauchly)와 프레스퍼 에커트(J. Presper Eckert)가 주도하여 설계했다.
목적: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육군의 요청으로 포탄의 탄도 궤적을 계산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활용: 전쟁이 끝난 후 완성되었으나, 수소폭탄 개발을 위한 복잡한 수치 계산, 기상 예측, 풍동 설계 등 다양한 과학적 용도로 사용되었다.
- 프로그래밍과 운영
수동 방식: 현대의 컴퓨터처럼 소프트웨어를 입력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천 개의 플러그 보드를 직접 꽂고 스위치를 조작하는 하드웨어 배선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변경했다.
여성 프로그래머: 초기 에니악의 복잡한 배선과 프로그래밍은 6명의 여성 수학자들(Jean Bartik 등)이 담당하며 현대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기초를 닦았다.
– 최초의 컴퓨터에 대한 논쟁
후에 아타나소프사가 자신들이 개발한 아타나소프-베리 컴퓨터 (ABC)가 최초의 컴퓨터라며 이의를 제기 했고, 1973년 10월 19일 미국 법원에서 “인류 최초의 계산기는 ABC다”라고 판결하였고 아타나소프사가 승소했다.
하지만 대영제국이 발명하고, 발명 사실을 비밀로 한 콜로서스라는 컴퓨터가 최초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아직 대중 사이에서는 에니악이 최초의 컴퓨터라고 알려져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