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5월 23일, 미국의 가톨릭 군종 신부 에밀 카폰 (Emil Joseph Kapaun, 1916 ~ 1951) 별세
에밀 카폰 대위 (Emil Joseph Kapaun, 1916년 4월 20일 ~ 1951년 5월 23일)는 미국 육군의 군종사제이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에서 미국 육군의 군종 사제로 활동하던 중에 병사했다. 흔히 ‘한국전쟁의 성인’, ‘전장의 그리스도’라고 불린다.

– 에밀 카폰 (Emil Joseph Kapaun)
.본명: 에밀 조지프 카폰 (Emil Joseph Kapaun)
.출생: 1916년 4월 20일
.사망: 1951년 5월 23일
.성별: 남성
.국적: 미국
.별칭: 가경자
.경력: 미국 육군 군종사제
.직업: 군종사제
.소속: 미국 육군
.종교: 가톨릭
.상훈: 명예훈장, 태극무공훈장
미국의 가톨릭 사제, 미국 육군 군종장교.
한국전쟁 당시 제1기병사단 군종신부로 참전였고 1950년 11월 운산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로 잡혔다
1951년 5월 23일 포로수용소에서 35세로 선종하였다. 그는 이 훈장 추서 전에 본국인 미국에서 2013년에 명예 훈장을 받았고 그 전인 1993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되었다. 2025년 교황 프란치스코가 교령으로 가경자 (Venerable)로 선포하였다.
2021년에 유해의 신원이 확인되었고 같은 해 7월 27일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고 그의 조카가 대신 받았다.

○ 생애 및 활동
1916년 미국 중부 캔자스주의 필슨 (Pilsen)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4월 20일은 그해의 주님 만찬 성목요일, 즉 예수가 12사도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행함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했다.
필슨은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중심도시 플젠 (Plzeň)의 독일어식 이름인데, 그 유래에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령 체코에서 온 이민자들이 세운 마을이었다. 카폰 역시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이민을 온 오스트리아 독일계 아버지와 체코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성장했다.
1940년, 24세의 나이에 세인트루이스의 켄리크 신학교 (Kenrick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하였고, 캔자스주 위치타 교구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후 1944년 동부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미 육군 군종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인 군종 신부로서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군종사제 생활을 시작한 이듬해이자 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였던 1945년, 인도로 발령을 받아 버마 전선에서 복무하였다. 1948년에는 미국에 항복한 일본에서 군정을 실시하던 주일미군으로 발령받아 군종사제의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처럼 그는 줄곧 아시아에서 군종사제 활동을 하였다.
일본으로 부임받은 지 2년만에, 바로 옆의 한반도에서 북한의 침략으로 6.25 전쟁이 발발했다. 이에 카폰 신부도 7월 16일, 미국 육군 제1기병사단 8기병연대의 일원으로 한국에 참전하였다. 초반에 미국 주도의 UN군이 북한의 공세로 후퇴를 거듭하는 와중에도, 카폰 신부는 열심히 장병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신앙 활동에 주력했다. 당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던 와중에 단독으로 낙오된 병사를 구출하는 수훈을 세우기도 했으며, 그 공로로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그 역시 한반도 이북으로의 북진에 동참했다. 그러나 중국 인민지원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졌고, 운산 전투에서 제1기병사단 8기병연대 3대대가 고립되었다. 당시 카폰 신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병사들의 안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병사들의 후퇴를 돕던 도중인 11월 2일, 중국 인민지원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로 끌려갔다.
수용소에서 영양실조와 질병을 앓고 각종 가혹행위를 강요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함께 붙잡힌 포로들을 격려하면서 사제로서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수용소 생활 도중에 폐렴, 이질에 걸려 건강이 악화되었고, 결국 수용소 생활 6개월만인 1951년 5월 23일, 향년 35세로 사망하였다.
“날 위해 울지 마시오. 난 내가 항상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갈 것이니. 그곳에 도착하면 당신들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소.” _ 카폰 신부의 유언

– 유해 신원 확인
사후 70년 만인 2021년 3월, 미국 국방부 산하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 (DPAA)은 하와이 국립태평양기념묘지 (National Memorial Cemetery of the Pacific)의 무명용사 묘지에 묻힌 유해들 가운데 카폰 신부의 유해를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1953년 휴전 후 북한에서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미군 유해들을 넘겨주었을 당시, 미군 측 기록에는 카폰 신부가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것이 아닌 운산 전투에서 실종된 것으로만 기록한 상태였다. 때문에 해당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기록이 남아있는 미군들 위주로만 신원확인을 하였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카폰 신부의 유해가 1950년대부터 하와이의 무명용사 묘지에 있었으면서도 수십년 동안이나 신원 확인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유해는 9월 29일 캔자스주의 고향으로 이장되었고, 장례 미사와 함께 고향땅에 묻혔다.
– 사후의 기념
“6.25 전쟁 당시 저는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때마다 죽음에서 구해주신 하느님의 뜻을 생각했습니다. 이후 미군 통역관으로 복무하면서 카폰 신부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먼 이국땅에서 오시어 군종 신부로 6·25 전쟁에 참여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하느님 곁으로 가신 에밀 카폰 신부님. 저는 이 책을 번역하던 신학생 때부터 카폰 신부님의 몫까지 2배로 충실한 사제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늘도, 병상에서 카폰 신부님의 시복 시성을 위한 기도를 바칩니다.” ―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이 번역한 카폰 신부의 전기 (2021년 개정판) 서문 중에서
카폰 신부의 영웅적인 행적, 신앙심은 6.25 전쟁 당시 전장, 포로수용소 등에서 함께 생활했던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으며, 사후 3년 만인 1954년에 <종군 신부 카폰> (원제: Chaplain Emil Kapaun)이라는 전기가 출간되었다. 카폰 신부의 전기를 쓴 아서 톤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사제이고, 카폰 신부의 고향이자 그가 사제품을 받은 캔자스주 위치타 교구에서 사목활동의 대부분을 수행하였다.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치면서 만년에는 몬시뇰에도 서임되었으며, 2003년 98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대한민국에서는 1956년에 당시 신학생이었던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이 번역, 출간했고, 이후 몇 차례의 개정판이 나왔다. 가장 최근의 것은 정 추기경이 2021년 4월 죽기 직전까지 작업에 몰두하였고, 결국 그의 유작이 되었다. 정진석 추기경은 젊은 시절 6.25 전쟁을 겪으면서 사제의 삶을 선택했고, 그러한 점에서 같은 시기에 종군 사제로 헌신했던 카폰 신부에게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정 추기경은 생전에 “카폰 신부의 몫까지 해내고 싶다”는 뜻을 자주 피력하였고, 자신의 사망을 불과 1달 앞두고 카폰 신부의 유해가 확인되었다는 소식에 매우 기뻐했다.
이보다 앞선 2013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 미군 최고 수훈인 명예 훈장 (Medal of Honor)을 추서받았으며, 휴전협정 체결 68주년이자 그의 유해가 확인된 후인 2021년 7월 27일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태극무공훈장 (1등급)을 추서했다. 그의 조카가 그를 대신하여 미국과 한국의 훈장 수여식에 참석하였으며, 대한민국 태극무공훈장 수여식에는 한국천주교회에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군종교구장 서상범 티토 주교 등이 동석하였다.
2022년 5월에는 경기도 평택시의 주한미군 사령부 (캠프 험프리스) 영내에 카폰 신부의 추모비가 세워졌다.
휴전 및 한미동맹 성립 70주년인 2023년, 국가보훈처에서 매달 선정하는 6.25 전쟁 영웅 (5월)으로 발표되었다.
바티칸에서도 1993년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당시 교황에 의해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되는 등, 시복 및 시성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2021년 카폰 신부의 시성 절차가 탄력을 받고 있다. 그의 유해가 발굴되면서 이후 절차가 빠르게 이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고향 캔자스주의 위치타 교구가 앞장서 성인 추대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실제 유해의 발견으로 향후 절차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미국 뿐 아니라 한국 천주교계에서도 카폰 신부의 성인 추대에 대해 관심과 기대를 갖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마티아 신부는 RFA 인터뷰에서 “유해가 있다는 것은 성인이나 복자를 공경할 때는 중요한 부분”이라며 “현재 유해 발굴이 확인됐고, 카폰 신부임을 확인됐다는 것은, 천주교에서는 시복, 시성, 복자와 성인이 되는 데 중요한 탄력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5년 2월 25일 에밀 카폰 신부를 가경자로 선포했다.
그의 행적을 기리는 사업을 위해 모금된 10만 달러로 광주광역시에 살레시오중학교가 세워졌다. 또한 위치타에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개교한 고등학교가 있다. 살레시오회가 운영하는 살레시오중학교ㆍ살레시오고등학교와 달리, 이 학교는 위치타 교구가 직접 운영한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