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10월 11일, 프랑스의 화가 모리스 드 블라맹크 (Maurice de Vlaminck, 1876 ~ 1958) 별세
모리스 드 블라맹크 (Maurice de Vlaminck, 1876년 4월 4일 ~ 1958년 10월 11일)는 프랑스의 화가이다.

– 모리스 드 블라맹크 (Maurice de Vlaminck)
.출생: 1876년 4월 4일, 프랑스 파리
.사망: 1958년 10월 11일, Rueil-la-Gadelière
.직업: 화가, 작가, 조각가, 그래픽 예술가, 시인, 데생화가
.제자: Rudolf Kronbergs, Katsuzo Satomi
.전시 장소: 뉴욕 현대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민트 뮤지엄 랜돌프, 반 고흐 미술관 등
.예술 사조: 야수파, 탈인상주의, 입체파, 근대 미술
.알려진 분야: 회화
.자녀: Madeleine Berly-Vlaminck
.부모: Joséphine Caroline Grillet, 에드몽 줄리앙 드 블라맹크
.영향: 빈센트 반 고흐, 폴 세잔
1899년 드랭과 사귀면서 자연을 대상으로 그림 공부를 하였다.
마티스 등과 더불어 야수파 운동에 참가했다.
처음에는 고흐의 영향을 받아 원색의 밝은 색조로 점과 곡선을 사용하여 유동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 후 세잔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나, 1918년부터는 새로운 사실주의의 작품을 그렸다.
주요 작품으로 <센 강변>, <강변 풍경> 등이 있다.
‘예술에 있어서 이론이란 의사의 처방과 같은 정도로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병자임에 틀림없다. 지식은 본능을 말살해 버린다. 그림의 창작은 유통 (流通)이 자재 (自在)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렇게 단언하는 모리스 드 블라맹크는 가장 포브적인 화가였으며 포비슴 속에 산 화가이기도 하였다.

○ 생애 및 활동
모리스 드 블라맹크 (Maurice de Vlaminck)는 1876년 4월 4일, 프랑스 파리 삐에르 지역에서 태어나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파리에서 출생하였으나 그 집안은 플랑드르 출신이라 한다.
어린 시절 자유롭고 반항아적인 기질로 학업에 크게 흥미를 가지지 못한 그는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워 이후 바이올린 연주가로 활동하기도 했고, 자전거 경주에서 하루에 200km 넘게 달리기도 하는 사이클 선수로도 활동했다.
어린시절 외할머니 서재에서 독서에 심취하기도 했는데, 1899년경 자유성향을 지닌 동료들과 함께 진보적 매체를 통해 혁명적인 글을 기고하는 것을 시작으로 소설·회고록 등 왕성한 집필활동을 펼치기도 한 재미난 이력을 자랑한다.
양친은 음악가로 자제의 교육에는 무관심한 보헤미안 기질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하였고, 바이올린을 켠다든지 자전거경주의 선수를 해 가면서 자수성가 (自手成家)의 인생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그는 본능에 의하여 화가가 되려고 하였던 것이다.
청년기 블라맹크는 채색 석판화를 수집해 따라 그리는 것을 즐겼다.
그런던 중 1901년 운명적인 전시 <반 고흐 회고전>에서 큰 감명을 받으며 드디어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후 세잔의 영향을 받은 작업을 하다가, 1905년 앙데팡당전과 살롱 도톤느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야수파 스타일에 집중하게 된다.

더욱이 그는 “화가란 무정부주의자와 같아 직업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며, 또 “나는 어린이의 눈으로 사물을 본다”라고도 하였다.
그는 드랭과의 교우로 마티스와 사귀어 포비슴 운동에 가담하였다.
블라맹크는 무엇보다도 생명력의 표현을 화면에서 추구해 보려던 화가이다.
“나는 미풍양속에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싶다. 진부한 이론과 의고전주의 (擬古典主義)에서 해방된 자연의 활달함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던 그의 패기는 색채의 과잉과 범람으로 화면에 마구 넘쳐 흘러 포브 중에서도 더한층 높은 음색의 절규가 되었다.
블라맹크는 고흐의 영향을 받아 생생한 컬러와 자유분방한 필치 (brush stroke)가 특징인 작업을 주로 했다.
이후 세잔의 영향을 받은 작업을 하다가 1920년대에 이르러 자신만의 독특하고 극적이며 강렬한 스타일을 완성한다.
소용돌이 같은 속도감 있는 필치와 중후한 색채를 사용해 작품을 완성한다.
이러한 작품 활동으로 서양미술사에서는 마티스와 함께 블라맹크를 야수파의 주축으로 평가한다.
블라맹크의 작품은 유화의 매력을 극대화 해 보여준다. 그는 캔버스에 직접 물감을 짜서 칠하며 선명한 색채와 두툼한 질감을 가진 실험적인 화면 구성을 전개했다. 표면에서 쏟아질 것 같은 마티에르의 느낌은 다른 유화 작품과는 차별화된 매력을 가졌다.

특히 프랑스 지방 마을을 그린 풍경화들은 마치 거리에 유화물감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듯 표현해 강렬하고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거친 날씨의 어두운 풍경화에서는 쏟아질 듯한 빛나는 터치로 강한 생동감을 부여했다. 블라맹크는 독창적인 표현력이 돋보이는 강렬하고 역동적인 작품들을 통해 야수파를 이끌어 나갔다.
○ 주요 작품
주요 작품으로 <센 강변>, <강변 풍경> 등이 있다.
Town on the Bank of a Lake, c.1909, oil on canvas, 81.3 x 100.3 cm, Hermitage Museum, Saint Petersburg
Le pont de Poissy, c.1910, oil on canvas, 46.4 x 54.9 cm
Village, c.1912, oil on canvas, 73.7 x 92.1 cm (29 x 36 1/4 in.), Art Institute of Chicago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