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3월 9일, 독일의 3대 총리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Kurt Georg Kiesinger, 1904 ~ 1988) 별세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독: Kurt Georg Kiesinger, 1904년 4월 6일 ~ 1988년 3월 9일)는 3대 독일연방공화국 총리 (1966년 12월 1일 ~ 1969년 10월 21일)를 지낸 독일의 정치인이었다.
총리가 되기 전에 그는 1958년부터 1966년까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총리와 1962년부터 1963년까지 독일 연방의회의 회장을 지냈다.
그는 1967년부터 1971년까지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의 의장이었다.
–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독: Kurt Georg Kiesinger)
.출생: 1904년 4월 6일, 독일 제국 에빙겐(Ebingen)
.사망: 1988년 3월 9일 (만 83세 11개월 3일),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튀빙겐 (Tübingen)
.정당: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1933~1945),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1946~1988)
.총리 재임: 1966년 12월 1일 ~ 1969년 10월 21일 (만 2년 10개월 20일)
○ 생애 및 활동
키징거는 법학을 전공하여 1935년부터 1940년까지 베를린에서 변호사로 일하였다.
징병제를 피하는 데 그는 1940년 독일 외무부에서 직업을 찾았고, 외무부의 방송국의 부장이 되었다.
외무부에서 자신의 근무 동안 그는 자신의 반나치 태도로 2명의 동료들에 의하여 고발되었다.
그럼에 불구하고, 1933년 그는 나치당에 입당하였으나 크게 무활동적인 당원으로 남아있었다.

1946년 그는 기독교 기독교민주연합의 당원이 되었다.
그는 1949년 하원으로 선출되어 1958년까지, 그리고 1969년부터 1980년까지 하원 의원이었다.
그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총리를 지내는 데 8년간 연방 정치를 떠났고,이어서 빌리 브란트의 독일 사회민주당과 대연정을 형성하여 총리가 되었다.
그는 뛰어난 연설자와 중개인으로서 숙고되었고, “설득력이 있는 자”로 별명이 붙었다.
그는 시집과 다양한 책들의 저자였고,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총리로서 콘스탄츠 대학교와 울름 대학교를 창립하였다.
총리직을 빌리 브란트에게 넘겨준 키징어는 총리직에 대한 야망을 버리지 못했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올것을 기다리며 1971년 7월까지 5년 더 기민당의 당수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68 혁명 이후 그는 과거의 정치인이 되어버렸으며 기민당 내에서도 건국 이후 처음으로 여당 자리를 빼앗긴 장본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재집권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후 당수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9년 동안 기민당의 원로 정치인으로서 활동했으나 1980년에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그리고 1988년 고향인 튀빙겐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 평가

2년 10개월이라는 그의 집권기간은 역대 독일 총리 중에서는 가장 짧은 편이었다.
이와 더불어 전임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와 후임 빌리 브란트 총리가 워낙 먼치킨 스러운 성과를 남겼기에 상대적으로 그의 위상과 업적은 초라해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그를 잊혀진 총리 (Der Vergessene Kanzler)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
그렇지만 그와 그의 대연정 내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법안 통과를 이끌어내면서 에르하르트 시기 정체됐던 경제 성장률을 다시 회복시키고 실업률도 낮추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오늘날 인정받고 있다.
– 동시대인들의 평가
나치 당원과 반나치 인사가 총리/부총리로 함께 일한다는 것은 독일의 현실과 화해의 필요성을 반영한다는 사실로 보기에 좋았다. – 에곤 바르
키징어를 단지 과도기의 총리로 본다면 이는 그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처해있던 상황은 독자적인 정치를 허용하지 않았다. – 헬무트 슈미트
그로부터 많은 것, 특히 무한한 인내심과 아주 침착하게 협상을 하는 능력을 배웠다. –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그는 분별력이 있는 정치가였다. 그의 정치에서는 책략만이 아니라 의미 그리고 합리적인 근거도 중요했다. –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그와 나 사이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인생 행로와 인생관을 가지고 있어 견해가 약간 다를 뿐이다. – 빌리 브란트
독일 언론 전체가 이 모호한 총리의 재선을 막아야 한다. – 하인리히 뵐
이 약골이 총리가 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절대 안 된다네. – 콘라트 아데나워
○ 어록

“나는 파워풀하게 정치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파워를 버라이어티쇼에서처럼 국민들에게 보여주진 않을 것이다.”
“지도자의 임무를 받은 사람이 다스리지 않으면 재앙이 생긴다.”
“혁명이 후손을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조상들도 갉아먹는다.” – 68혁명에 대해 언급하면서
“대연정의 총리라면, 기꺼이 말하고 싶은 것이라도 참아야 한다.”
“책임을 지게 되면 돈이나 시간, 그리고 생명도 아끼어서는 안된다.”
○ 저서
Schwäbische Kindheit. (“Swabian childhood.”), Wunderlich Verlag, Tübingen 1964.
Ideen vom Ganzen. Reden und Betrachtungen. (“Ideas from the whole. Speeches and reflections.”), Wunderlich Verlag, Tübingen 1964.
Stationen 1949-1969,. (“Stations 1949-1969.”), Wunderlich Verlag, Wunderlich Verlag, Tübingen 1969.
Die Stellung des Parlamentariers in unserer Zeit. (“The position of the parliamentarian in our time.”), Stuttgart 1981.
Dunkle und helle Jahre: Erinnerungen 1904–1958. (“Dark and Bright Years: Memoirs 1904–1958.”), Deutsche Verlags-Anstalt, Stuttgart 1989.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