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4월 24일, M-16의 전신 AR-15 소총을 개발한 미국의 총기 발명가 유진 스토너 (Eugene Morrison Stoner, 1922 ~ 1997) 별세
유진 모리슨 스토너 (Eugene Morrison Stoner, 1922년 11월 22일 ~ 1997년 4월 24일)는 M16 소총의 원형인 AR-10 소총을 개발한 미국의 총기개발자이다.
AR-10은 7.62 × 51mm NATO탄을 사용하는 전투소총이다. 유진 스토너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가스 직동식으로 동작한다. 미군 사격도중 총열이 과열해 폭발해서 미군이 정식채용하진 않았다
AR-10은 AR-15 (M-16 소총)의 바탕이 된다.

– 유진 스토너 (Eugene Morrison Stoner)
.출생: 1922년 11월 22일, 미국 인디애나 고스포트
.사망: 1997년 4월 24일, 미국 플로리다 팜 시티
.묘지: 미국 버지니아 퀀티코 국립묘지
.국적: 미국
.중요 디자인: 아말라이트 AR-15
.설립 조직: Ares Incorporated
유진 스토너, 존 브라우닝 (John Browning), 존 개런드 (John Garand)는 20세기 최고의 미국인 총기 제작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유진 스토너와 소련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Михаил Калашников)는 세계 최고의 총기제작자의 양대산맥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인 M16 소총은 단종되지 않고 현재도 널리 보급되어 쓰이고 있다.
유진 스토너는 공군 병사로 군복무를 하던 도중 간이 돌격소총을 개발했는데 그것이 M16 소총의 전신이 된 AR-10이였고 그 후의 수정작업을 거쳐 AR-15를 거쳐 M16 소총을 개발하는 데에 성공했다.
같은 시기에 소련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AK-47을 발명했고 두 소총은 각각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양쪽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이후 유진 스토너는 M-16에 대한 특허를 내고 총기관련사업을 시작해서 백만장자가 되었다.

○ 생애 및 활동
- 출생
유진 모리슨 스토너 (Eugene Stoner)는 1922년, 미국 인디애나 주의 작은 시골 마을인 고스포트에서 태어났다. 그가 초등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전 세계적인 대공황이 몰아닥친 때였다. 그래서 그의 가족들은 모두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그 곳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인생의 전환을 맞는다. 바로 항공기 제작사인 베가 (Vega) 사에 취직한 것이다. 그 때는 2차 세계대전이 아슬아슬하게 발발하기 직전이었고, 군용기의 수요가 높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군용기에 무장을 장착하는 일을 맡게 된다. 전쟁 중, 그는 해병대 항공대에 지원한 뒤 그는 항공기 무장사가 되었고, 덕분에 직접 일선에 나서지 않고 안전한 보직을 갖게 되며 자신의 재능을 꽃피웠다.
- 2차 세계대전 이후 아말라이트 입사
태평양 전선과 중국을 오가며 군 복무를 마친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항공기 부품을 만드는 대형 항공 회사였던 페어차일드 사에 스카웃되었다. 이것은 그의 인생에서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그 곳에 취직한 그는 뜻밖에도 총기 제작을 의뢰받게 되었다. 당시 페어차일드는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친 알루미늄 합금 기술을 항공 기술을 총기에 응용한다면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개념의 총기를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했고, 그를 이용해 큰 돈을 벌 수 있으리라 기대한 마음에 자 (子) 회사인 아말라이트 (Armallite)를 만든다. 그 곳에 스토너가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는 1954년 아말라이트 수석 엔지니어로 스카웃되었고 거기서 다양한 총기를 설계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공군 조종사 생존용 총기였다. 그 때 당시 미 공군은 창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수익을 올릴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군은 이미 2차 대전에서 사용된 M4 서바이벌 소총과 이를 대체할 후계작인 M6 서바이벌 소총까지 채택한 상황에서 이 총을 채택할 이유는 없었다.
AR-10 전에 만든 소총인 AR-7, 22 LR 탄환을 사용하고, 총열, 탄창, 몸체가 모두 분리되어 개머리판에 수납되는 데다, 그 개머리판은 물에 뜬다. 그러나 공군은 채용하지 않았고, 민수용으로 그저 몇 정 팔리는 정도였다.

- 미 육군 차기 소총 테스트, 그리고 탈락
그렇지만 스토너 이외의 여러 총기회사들이 꿈꾸는 것이 있었다. 바로 미 육군의 차기 소총의 선정이었다. 당시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진행되었던 M14 소총의 개발은 느릿느릿했고, 미 육군은 FN FAL 등의 다른 해외의 소총들을 검토하기도 한다. 여기서 스토너와 다른 아말라이트의 스탭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들의 소총을 만들어 육군에 채택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들은 독일의 StG44 돌격소총, FG42 자동소총, 벨기에의 FN FAL, 스웨덴의 Ag m/42 반자동소총, 그리고 미국의 M1941 존슨 소총 등 여러 소총을 참고한다.
유진 스토너가 특허를 낸 특허 2,951,424번 “가스 작동식 노리쇠와 노리쇠 뭉치 시스템”은 M16 소총의 기본적인 작동방식이다. 개머리판 속 완충스프링은 StG44에서, 가스 직결식 작동구조는 륭만에서, 그리고 노리쇠 톱니바퀴와 회전 노리쇠는 존슨에서 참고하였다. 특히 화약의 폭발 가스가 노리쇠 뭉치에 직접 분사되어 노리쇠를 밀어내는 이 방식은 총의 부피와 무게를 대폭 감소시킬 수 있었다.
- M16의 전신 AR-15 소총 개발
AR-10의 흥행여부와는 별개로, 미국 내에서는 서서히 돌격소총에 대한 개념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전쟁에서의 교훈 때문이였는데,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의 인해전술은 당시 미군의 제식소총인 M1 개런드로는 당해내기가 어려웠다. M1은 우수한 소총이기는 했지만 반자동이라 연사력이 좋지 못해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중공군을 저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경기관총을 장비한 경우는 막아내기 수월했으나 경기관총을 모든 보병에게 쥐어줄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적절한 연사력과 휴대성을 겸비한 돌격소총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프로젝트 샐보의 개념이 시작된 것이다. 대다수의 전투에서의 교전 거리가 300m 이하였고, 그런 교전 거리에서는 반동과 파괴력이 강한 탄을 한 발씩 쏘는 것보다는 적은 반동의 소구경탄으로 탄막을 형성해 적을 제압하자는 이론이었다.
이에 미국에서는 SPIW라는 새로운 개념의 소총을 제작하게 되었다. 이것을 아말라이트 사에서 받아들여 AR-15를 드디어 제작한다.
하지만 군대라는 조직은 목숨이 오가는 전쟁을 치루어야하는 사정상 언제나 과감한 모험보다는 확실하게 검증된 것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 보수적인 조직인지라 사용 탄종도 다르고 작동법, 정비법 등 사용법이 완전히 새로운 이 소총을 채용하기를 망설였다. 결국 미군이 선택한 것은 사실상 M1을 위의 요구조건에 맞추어서 자동 사격이 가능하게 만든 물건인 M14 소총이었고, 아말라이트사는 AR-15를 만드느라 모든 저력을 다 쏟아부은 터라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아 결국 모든 라이센스를 콜트社에게 넘겨버린다. 이 유진 스토너는 이 결정에 실망하여 결국 아말라이트를 나간다.

- 아말라이트에서의 스토너의 또 다른 작품들
AR-15가 나오고 그 권리가 콜트 사에 넘어간 이후, 스토너의 그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식어 버렸다. 애초에 남의 회사의 물건이 되어버린 총에 연구개발할 이유를 못 느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관심은 철판 프레스를 이용한 소총의 개발로 기울어졌다. 그 이유는 AR-15는 알루미늄 합금의 정밀 주조 기법은 당시로서는 첨단의 기술이어서,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프레스 생산을 통해 쉬운 생산을 해 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AR-15를 보낸 스토너는 동료인 아서 밀러와 다시 7.62mm 탄환을 쓰는 총기인 AR-16을 개발한다. 이 소총은 종래의 개발 소총과는 달리 더 단순한 방식의 가스피스톤 방식을 이용했다. 그 이유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의 가스 튜브 작동방식인 가스 직동식 방식의 권리가 콜트 사로 넘어갔기 때문에 이를 따라해 만들 수 없었던 법적 이유 때문이었다.
이 소총은 철판 프레스 방식으로 만들어져 제작이 간단했고, 개머리판을 접을 수 있어서 전차나 차량 승무원들이 가지고 다니기 좋았다. 그러나 총이 지나치게 작아 화염과 반동이 심하였다. 그들은 이 소총을 미 육군 전차 사령부에 제출했지만 그 곳에선 2차 대전에 사용된 M3 기관단총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5.56mm 탄환의 화기와 미군에서 구매했던 AR-15가 콜트 사에서 M16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있는 판국에 반동이 강한 7.62mm 소총이 주목받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AR-16 이후 아말라이트 사에서는 AR-18을 제작한다. 다만 이 때에는 스토너는 아말라이트 사를 퇴사하였고 남은 스탭들이 이 소총을 제작한다. 이미 제 3세계 등 다른 나라에서는 FN FAL 등을 사용하고 있었으니 열심히 미 육군에 판촉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미 육군은 XM16E1을 잘 사용하고 있는데 또 다른 소총을 사용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개머리판이 접히는 등의 휴대성 등의 이점이 있긴 했지만, 굳이 새로운 소총을 도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5.56mm 소총은 사용하고 싶어도 제작 기술과 구매 자본이 부족해 사용하지 못하는 나라에 이 소총의 제작 기술이나 소총 자체를 팔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의 호와 공업에 생산권을 팔기로 했고, 호와 공업에서는 이것을 생산하여 치안이 취악한 동남아시아의 경찰용으로 팔기 시작했고, 미국 민수용인 AR-180도 슬슬 성장의 가도가 열리는 듯 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IRA에서 미국을 통해 북아일랜드로 AR-180을 밀반입한 뒤 테러에 사용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호와 공업은 결국 AR-18, AR-18의 생산/수출을 중단한다. 그래도 1974년 영국의 스털링 사에 생산권이 옮겨져 생산이 되지만,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진 못한다. 그렇지만 영국은 이를 통해 소총의 개발 노하우를 알게 되었고, SA80을 제작할 수 있게 된다.

- 아말라이트 퇴사 이후
스토너가 AR-16을 만들고 나서, 그는 아말라이트를 퇴사한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M16 제작자’타이틀 덕에 다른 총기 메이커들이 그를 영입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유진 스토너는 자동차 메이커인 제너럴 모터스의 자회사인 캐딜락 게이지 사에 영입된다. 원래 이 회사는 장갑차나 자동차의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는데 총기 업계에 뛰어들고 싶어했다. 그들은 얼른 스토너를 영입했고, 새로운 총기 제작에 돌입한다.
그가 캐딜락 게이지에서 처음 만든 총은 7.62mm탄을 사용하는 스토너 62(Stoner 62)였다. 그렇지만 이미 대세는 5.56mm 탄환으로 기울어진 것을 안 그는 5.56mm 탄을 사용하는 스토너 63(Stoner 63)을 만든다. 이 소총은 AR-18의 프레스 가공과 가스 피스톤식의 작동방식을 채택했지만, 쇼트 스트로크 가스 피스톤 방식이 아닌 AK 계열과 유사한 롱 스트로크 가스 피스톤 방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스토너 63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스템 모듈화’방식이었다. 하나의 몸체로 총열이나 거치대 등 일부의 부품만 바꿔주면 카빈, 일반형 소총, 기관총, 거치식 기관총 등 다양한 모델로 변형 가능한 획기적인 구조였다.
이 총에 대해 미 해병대에서는 이 총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었으나 결국 높은 비용 문제와 부품 호환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된다.
결국 네이비 씰에서 Mk.23이란 이름으로 스토너 63의 경기관총 버젼을 사용했지만, 소총이 베이스였기 때문에 다소 한계가 있었다. 결국 베트남 전쟁 이후 캐딜락 게이지는 이것을 차기 분대지원화기로 채택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알다시피 미 육군에선 FN 미니미를 M249로 채택했다. 결국 스토너 63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그는 M63 시리즈가 실패한 뒤에도 총기나 무기 설계를 계속하였다. 그는 TRW사에서 25mm 기관포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ARES 사에서 가방형태로 들고다닐 수 있는 FMG 기관단총을 제작했다.
많은 총을 만든 그이지만, 그가 제작설계한 것의 거의 대다수는 군에 채용되거나 대량생산되지 못한 채 끝났다. 징크스? 아이러니한 것은 가장 성공했던 M16조차 그가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7.62mm의 강한 탄을 사용하는 자동소총을 만들고 싶다는 것을 항상 말했다.
이런 그를 알아본 나이츠 아마먼트 (knight Armament, KAC)사의 사장인 리드 나이트와 새로이 관계를 맺게 되었다. 리드 나이트 주니어 (Reed Knight Jr.)는 젊었을 때부터 총기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나름대로 재능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재력이 총기를 제작하는 데 제약을 없게 해 주기도 하였다. 그는 일찍이 M16을 발명한 유진 스토너를 존경했다. 그는 KAC 사를 설립했고 피카티니 레일 시스템을 만들어 어느 정도의 자리를 잡고 그는 스토너를 찾아가 새로운 소총을 개발하고자 했다. 이 둘의 바람은 과거의 AR-10을 부활시키자는 것이었다.
물론 그 당시의 AR-10을 그대로 내놓을 수는 없었다. 시대가 많이 변했고 그 상태 그대로 내놓았다가는 실패할 것이 뻔했으므로, 그들은 그 동안 변화된 상황을 감안해 새로운 형태의 AR-10을 만들게 된다.
그들은 7.62mm 탄을 사용하는 반자동의 저격 소총을 만들기로 하였다. 저격 소총이야 7.62mm에 대한 수요가 아직은 있었고, 그래서 나온 것이 KAC SR-25이다. SR은 스토너의 소총 (Stoner’s Rifle)의 약자이고 25는 AR-10과 AR-15의 숫자를 합친 것이었다. AR-10을 기초로 했지만 호환되는 부품은 탄창뿐이며, 나머지는 거의 새롭게 만들다시피하여 격발기구는 최대한 M16 시리즈와 기본적인 부품이 호환되게끔 했다. 또한 반자동 저격총 치고는 1MOA이 되는 명중율을 발휘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AR-10에서 사용된 가스 직동식 방식이 가스 피스톤 계열보다 반동이 적고, 총열과 가스 튜브 등의 부품이 다른 곳에 최대한 닿지 안는 구조 즉, 프리플로팅 배럴이기 때문이다.
결국 반자동 저격 소총을 원하던 미 해군 네이비 씰이 드디어 이 소총을 채택하게 되고, 2000년, 개량형인 Mk.11 Mod.0를 드디어 채택하게 된다.
AR-10(어찌 보면)의 첫 미군용 제식 모델인 Mk.11 Mod.0. 드디어 스토너의 소총은 40여년이 지나서야 제식으로 채택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 사망
스토너가 사망한 해인 1997년, 그는 죽기 직전 자신의 소총의 라이벌이라고도 할 수 있는 AK-47의 개발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있는 러시아로 간다. 여기서 그들은 서로의 소총을 들어 보이며 서로 미소지었다.
사실 1990년에도 이미 칼라시니코프가 미국을 방문하여 두 사람이 만나 서로 각자가 설계한 두 총을 시험사격한 적이 있었다. 이때 스토너가 “베트남에서는 당신의 승리였습니다”라고 AK의 내구성을 극찬했으며, 동시에 칼라시니코프가 받은 훈장에 대해서도 부러워했다.
비록 살아서 그의 손 안에서 빛을 본 작품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가 개발한 AR-15의 특허권은 아직 전적으로 그의 소유였기 때문에 특허가 효력을 발휘할 때까지는 M16의 로열티를 받기도 하였다. M16은 자유세계를 대표한다고 불릴 정도로 아주 크게 성공한 소총이라서 그가 받는 로열티는 엄청난 수준이었고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하게 살았다.

○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와의 관계
1997년에 유진 스토너는 라이벌이자 AK-47 소총의 개발자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와 만났다.
두 사람은 상대방이 개발한 소총을 보며 평가했다. 유진 스토너의 M16 소총과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AK-47 소총은 각각 미국과 소련을 대표하는 소총으로서 둘 다 각각 1억정이 넘게 생산 및 판매되었다.
M16을 개발해 재벌이 된 미국의 유진 스토너와 달리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당시 소련 제도 때문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월 55만원쯤 되는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생활고를 타개하기 위해 최근 자기 이름을 붙인 보드카 판매에 나섰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91세 생일이었던 2009년 11월 10일, 러시아 대통령 메드베데프는 칼라시니코프에게 러시아 영웅 칭호를 수여했다.
2013년 12월 23일 지병으로 인해 94세로 숨을 거두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