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23일,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샤 무함마드 자히르 샤 (Mohammed Zahir Shah, 1914 ~ 2007) 별세
모하마드 자히르 샤샤 (Mohammed Zahir Shah, 1914년 10월 15일 ~ 2007년 7월 23일)는 아프가니스탄 왕국의 마지막 군주이다.

– 무함마드 자히르 샤 (Mohammed Zahir Shah)
.출생: 1914년 10월 15일, , 아프가니스탄
.사망: 2007년 7월 23일, , 아프가니스탄 카불
.묘지: 아프가니스탄 Maranjan Hill
.배우자: 후마이라 베굼 (1931 ~ 2002년)
.자녀: Ahmad Shah Khan, Crown Prince of Afghanistan, 프린세스 빌키스 베굼 등
.손주: Noal, Princess of the Sa’id, 프린세스 노알 자헤르
.학력: Habibia High School, Kabul Afghanistan, Janson de Sailly School, 몽펠리에 대학
아프가니스탄 왕국의 6대 국왕이자 아프가니스탄 아미르국 시기부터 존속해 온 바라크자이 왕조의 마지막 군주.
재위 기간은 1933년 ~ 1973년이며, 1973년 사촌이자 총리였던 모하마드 다우드 칸의 쿠데타로 왕위에서 물러났다.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희망이었다고 평가받는다.

○ 생애 및 활동
1914년 10월 15일,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 바라크자이 왕조의 왕 모하메드 나디르 샤 (Mohammed Nadir Shah)의 아들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에는 프랑스에 유학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 귀국한 후 아프가니스탄 육군 보병 사관 학교에 들어갔다.
1931년, 후마이라 베쿰 (Humaira Begum) 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1933년, 아버지 모하메드 나디르 샤의 암살로 왕위를 계승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53년, 사촌인 모하마드 다우드 칸을 총리로 기용했으나, 모하마드 다우드의 급진적인 개혁으로 인한 여론의 반발로 1963년, 다우드를 총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1960년대, 자히르 샤는 입헌 군주제 도입으로 출판과 정당 설립의 자유를 인정하는 등 민주화 노선을 열었으며, 냉전 체제하에서 동서양 진영 간의 균형을 갖고 외교를 하였다.
1973년, 질병 요양을 위해 이탈리아의 로마에 가 있는 동안, 모하마드 다우드의 쿠데타로 왕위에서 폐위되었다.
폐위후 그대로 아프가니스탄에 귀국하지 않고, 이후 29년 동안 이탈리아에 망명 생활을 하였다.
탈레반 정권 붕괴 후인 2002년 아프가니스탄에 돌아왔으며, 국부 칭호를 받았지만 왕정 복고는 되지 않았다.
2007년 7월 23일, 카불의 병원에서 92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그는 임종 직전 유언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난 저세상에 가면 알라께 벌을 받을 것이오! 아름답던 내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으니…”
그의 장례식에는 여러 정치인들과 대통령이 참석했다고 한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여 그의 쓸쓸한 몰락과 죽음을 슬퍼했으며 당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정권과 대립하던 탈레반 측도 그의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그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장례식장을 겨냥한 게릴라전 및 테러 공격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히르 샤의 무덤은 카불 동쪽 언덕 위에 세워졌다.
그가 사망하고 나서 약 14년이 지난 2021년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 의해 다시 정권이 넘어갔지만, 탈레반도 자히르 샤가 생전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음을 의식하고 자신들과 아프가니스탄 구 왕가들과는 별 이해관계가 없어서인지 자히르 샤의 무덤은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희망이었다고 평가받는다.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는 자히르 샤의 먼 친척에 해당된다.

– 주요생애 및 평가
무함마드 자히르 샤 (Mohammed Zahir Shah)는 아프가니스탄 왕국의 마지막 국왕으로, 1933년부터 1973년까지 40년간 재위하며 아프가니스탄의 근대화와 장기 평화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의 치세는 소련 침공과 군부 쿠데타 등으로 얼룩지기 전,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가장 평화롭고 번영했던 ‘황금기’로 기억된다.
- 출생과 섭정
어린 나이의 즉위: 1914년 카불에서 태어나 프랑스 등에서 유학했다. 1933년 아버지 나디르 샤 국왕이 암살당하자 19세의 젊은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다.
숙부들의 섭정: 집권 초기 약 30년 동안은 강력한 권력을 쥔 숙부들과 사촌들이 총리를 맡아 실질적으로 국정을 주도했다.
- 업적과 황금기
중립 외교: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철저한 중립 노선을 유지하며 양측 모두로부터 막대한 경제 원조를 받아내 도로, 병원, 대학 등 기반 시설을 확충했다.
민주주의 도입과 근대화: 1964년 근대적인 신헌법을 제정하여 입헌군주제를 도입하고 의회를 창설했다.
여성 권리 신장: 교육을 장려하고 여성들이 부르카를 벗고 자유롭게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층을 대거 양성했다.
- 쿠데타와 망명
무혈 쿠데타: 1973년 자히르 샤 국왕이 이탈리아로 의료 차 방문한 사이, 그의 사촌이자 전 총리였던 모하마드 다우드 칸이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선포했다.
망명 생활: 자히르 샤는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순순히 퇴위하였고, 이후 약 29년 동안 이탈리아 로마에서 망명 생활을 보냈다.
- 귀국과 말년
국부 (Father of the Nation) 추대: 2001년 탈레반 축출 후, 2002년 아프가니스탄으로 귀국하여 ‘국부’라는 명예 지위를 헌정받았다.
서거: 정치적 실권 없이 국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다가, 2007년 7월 23일 카불의 대통령궁에서 향년 9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자히르 샤의 치세는 오늘날 분쟁과 내전으로 고통받는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전쟁이 없던 평화롭고 풍요로웠던 시절”의 상징으로 여전히 널리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가족관계
부모: 모하메드 나디르 샤, 마흐 파르와르 베쿰
배우자: 후마이라 베쿰
.자녀: Ahmad Shah Khan, Crown Prince of Afghanistan, 프린세스 빌키스 베굼 등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