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4일, 대한민국의 성악가 오현명 (吳鉉明, 1924 ~ 2009) 별세
오현명 (吳鉉明, 1924년 10월 10일 중국 만주 / 평안북도 철산군 ~ 2009년 6월 24일 대한민국 서울)은 대한민국의 성악가이다.
오현명은 양명문의 시에 변훈이 곡을 붙인 <명태>를 불러 대중적으로 유명해졌다.
‘한국 성악계의 거목’이자 ‘한국 가곡의 대부’로 불린 성악가 오현명은 2009년 6월 24일,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 오현명 (吳鉉明)
.출생: 1924년 10월 10일, 중국 만주 (또는 평안북도 철산군)
.사망: 2009년 6월 24일 (85세), 대한민국 서울
.교육: 경성음악전문학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약력: 1948년 <라 트라비아타>로 오페라 무대 데뷔,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명예교수,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학장 역임, 1964년~1982년 국립오페라단 단장
.대표곡 : 명태
.수상: 1975년 문화예술상 대통령상, 1990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9년 보관문화훈장 등
1948년 <라 트라비아타>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였다.
1948년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 <춘희>와 1962년 국립오페라단 창단 공연 <왕자 호동>에 출현했다.
1964년~ 1982년 국립오페라단 단장, 1984년 종신단원,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1999년 목원대학교 음악대학교 초빙교수 등을 지냈다.
1975년 문화예술상 대통령상, 1990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9년 보관문화훈장 등을 받았으며 사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강원도 춘천시 경춘공원묘원에 안장되었다.
오현명은 대한민국 성악계의 거목으로, 오페라뿐만 아니라 한국 가곡 발전과 성악 교육에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다.

○ 생애 및 활동
1924년 10월 10일, 중국 만주 (또는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국립오페라단장, 한양대 음대 학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가곡 보급에 앞장서서 평생을 가곡 발전과 성악 교육에 힘써왔다.
서울대 음대 학생 시절이던 1948년 명동 시공관에서 공연된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 ‘라 트라비아타’에 단역(춘희)으로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1962년 국립오페라단 창단 공연 ‘왕자 호동’ 등 50여 편의 오페라 무대에 섰다.
1964년부터 18년 여 년 동안 국립오페라단 단장으로 재직하면서 40여 편의 오페라를 연출, 한국 오페라의 기틀을 잡았으며, 한국가곡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 1963년부터 국내 최초로 한국가곡만으로 구성한 독창회를 꾸준히 열어 ‘가곡의 전도사’, ‘노래의 시인’이라 불리기도 했다.
특히 그가 묵직한 저음으로 기품 있고도 익살스럽게 부른 변훈의 가곡 ‘명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이자 한국가곡사의 명곡으로 남아 있다.

1975년 문화예술상 대통령상, 1990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9년 보관문화훈장 등의 상을 받은 바 있다.
한양대 음대 교수로 제자 양성에도 힘써 온 그는 소프라노 박정원, 베이스 이요훈과 김명지 등 국내의 대표적인 성악가들을 길러냈다.
암 선고를 받고 투병하면서도 오페라 한국 도입 60주년 기념으로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라 트라비아타’ 콘서트 무대에 서기도 했다.
‘한국 성악계의 거목’이자 ‘한국 가곡의 대부’로 불린 성악가 오현명은 2009년 6월 24일,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성악가 박수길 한양대 교수와 소프라노 이규도, 테너 박성원씨 등 성악인들은 고인의 업적을 기려 성악인장을 치르기로 뜻을 모았다.
고인의 구술을 받아 회고록 출간을 준비해온 세일음악문화재단도 부고를 접하고 서둘러 500쪽 분량의 <다시 부르고 싶은 노래>를 출간했다.
가족은 영인 (오페라 연출가), 영석 (사업), 영진 (성악가), 딸 순방 (주부) 등 3남 1녀가 있다.

○ 약사
1924년 중국 만주 푸순[撫順]에서 출생 (평안북도 철산군이라는 자료도 있음)
경성음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했다.
1948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춘희)로 데뷔했다.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인 <춘희>와 1962년 국립오페라단 창단 공연 <왕자 호동>에 출연했다.
60여 편의 오페라에 출연했으며, 1950년 오페라 ‘카르멘’에서 성악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서울예고 교감, 한양대학교 음대 학장을 역임했다.
1964년부터 1982년까지 18년간 국립오페라단 단장으로 재직하며 40여 편의 오페라를 연출하여 한국 오페라의 기틀을 잡았다.
‘가곡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한국 가곡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1960년대부터 한국 가곡만으로 독창회를 열기도 했다.
변훈의 ‘명태’를 비롯해 해학적 정서를 지닌 한국 가곡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3년 ‘문학의 집. 서울’로부터 ‘노래의 시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2006년 가곡문화예술협회 명예회장을 맡아 가곡 부흥에 힘썼다.
2009년 6월 24일, 향년 85세로 별세.
2019년 6월 25일, 오현명 교수 서거 10주기를 맞아 추모 음악회가 열렸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