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일, 영국의 인도주의자 니컬러스 윈턴 (Nicholas Winton, 1909 ~ 2015) 출생
니컬러스 윈턴 경 (Sir Nicholas Winton, (Kt.), MBE, 1909년 5월 19일 ~ 2015년 7월 1일)은 영국의 인도주의자이다.
2008년 체코 정부는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 니컬러스 윈턴 (Nicholas Winton)
.본명: 니콜라스 조지 윈턴 (Nicholas George Winton)
.별칭: 영국의 쉰들러
.출생: 1909년 5월 19일, 잉글랜드 런던 햄프스티드
.사망: 2015년 7월 1일 (106세), 잉글랜드 버크셔 주 슬라우
.국적: 영국
.직업: 금융인, 군인, 펜싱 선수
.학력: 스토우 학교
.배우자: 그레테 기엘스트루프 (1948 ~ 1999, 사별)
.자녀: 2남 1녀
.종교: 개신교 (침례회) → 무종교 (무신론)
.서훈: 1983년 대영 제국 훈장 5등급(MBE) 수훈, 2003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 서임
니컬러스 윈턴 경은 1909년 5월 19일, 런던 햄프스티드에서 은행 지점장 루돌프 월트하임과 그의 아내 바바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독일 유대인이었고, 2년 전 런던으로 왔다. 그들의 성은 원래 Wertheim이었으나, 런던으로 오면서 Winton으로 바꾸었다. 또한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침례를 받았다.
1923년, 새로 개교한 스토우 스쿨 (Stowe school)에 입학한 그는 미들랜드 은행 (Midland bank)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밤에 공부했다.
영국 공군에 복무하며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나치에 의해 억류된 아동들을 구출하는 데에 앞장섰고, 그에 의해 1939년 한 해 동안 669명이 안전하게 영국으로 옮겨졌다. 이에 따라 ‘영국의 쉰들러’라고 불렸다.
2015년 7월 1일 (106세), 잉글랜드 버크셔주 슬라우에서 별세했다.

○ 생애 및 활동
니컬러스 윈턴 (Nicholas Winton)은 1909년 5월 19일, 잉글랜드 런던 햄프스티드에서 침례계 개신교로 개종한 유대계 영국인 은행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상당한 부자였던 니콜라스 윈턴 경은 1920년대 중반 은행원으로 재직하였으며 1938년에 그저 그런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런던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휴가를 받아 스위스에 스키를 타러 갔는데, 그의 친구 마틴이 그를 체코로 불렀다.
당시 체코는 나치 독일에 점령되어 있었고, 때문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수용소에 갇혀 지냈다.
수용소의 참상을 본 윈턴 경은 인도적 행위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아이들을 대거 양자와 양녀로 받아 나치로부터 목숨을 구해주려는 행동이 한창이었지만 체코까지는 그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었다.

윈턴 경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유대인 아이들을 영국으로 입양보내는 절차를 밟았다.
윈턴 경은 도린 워리너, 트레버 채드윅, 나콜라스 스탑포드, 비틀릭 웰링톤, 조세핀 파이크, 빌 바라젯티 등 뜻을 함께한 사람들과 체코에서 사무실을 연 후 나치의 위협을 받아가면서도 자신의 재산을 털어 나치 장교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고, 영국에서 법적 절차를 밟아 수용소에 갇혔던 669명의 유대인 아이들을 무사히 영국으로 입양보냈다.
이 유대인 아동들을 영국으로 구출하는 작전을 킨더트랜스포트 (kindertransport) 라 했다.
윈턴 경은 마지막으로 250여 명의 아이들을 태운 기차를 보내려 했지만, 그때 나치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그 아이들은 모두 행방불명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 조사 결과 이 아이들 중 겨우 두 명만이 살아남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1939년부터 1988년까지 49년간 자신의 선행을 세상에 숨겼는데, 이는 자신이 마지막 250여 명의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이후 그의 선행의 증거를 다락방에서 아내가 우연히 발견했고, 자료를 없애자고 하는 그를 설득한 끝에 세상에 의로운 업적이 알려지게 되었다.
니콜라스 윈턴 경이 구한 669명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가족을 이루어 6000여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니콜라스 윈턴 경이 구한 이들 중엔 영화감독, 소설가, 이스라엘 공군 건립자, 영국 노동당 의원 등도 있다.
니콜라스 윈턴 경은 영국에선 1983년 대영제국 훈장 5등급 (MBE)을 수훈하고 2003년 기사작위 (Knight Bachelor) 서임을 받았고, 체코에선 2014년 최고 권위의 백사자 훈장을 받았다. 니콜라스 윈턴 경의 생애는 그의 생전 3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니콜라스 윈턴 경 자신이 유대인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당대에 니콜라스 윈턴 경처럼 본인 재산까지 써가면서 목숨 걸고 도와준 사람은 드물었다.
니콜라스 윈턴 경은 “가능한 일이라면 방도가 있기 마련이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자신은 쉰들러와는 달리 전쟁중에 목숨을 걸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선행이 쉰들러만큼은 아니라고까지 말하며 겸양을 보였다.
사실 조금 더 자세히 윈턴 경의 개인적 배경을 파고들자면 윈턴 경 본인은 부모 대부터 기독교인인 데다 조상이 유대인일 뿐이었고, 나치의 악행을 보고 나서는 큰 충격을 받아 아예 신앙생활까지 그만둔 엄연한 무교인이었다.
그렇기에 윈턴 경이 그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혹은 기독교인이어서 그랬다는 식으로 그의 선행에 담긴 인류애적 동기가 부정당할 이유는 없다.
니컬러스 윈턴 (Nicholas Winton)는 2015년 7월 1일, 잉글랜드 버크셔 주 슬라우에서 별세했다. 향년 106세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