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59)
월남쌈
호주에 와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바로 보기만 해도 푸짐한 월남쌈 이라고 하겠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매우 흔한 음식중의 하나이지만 내가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는 월남쌈 이나 월남국수 등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이 아니었다. 그때는 분식집이면 어디든 파는 1.000원 김밥이나 컵 피자 등이 유행 이었다. 결혼 후 몇 개월의 짧은 신혼기간을 한국에서 보냈는데, 집 앞에 김밥집이 있어 참 많이도 사 먹었다. 바로 코앞에 있으니 가면 바로 둘둘 만 그래서 아직 따뜻한 김밥을 먹을 수 있으니 굳이 밥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런 내가 호주에 와서 처음 가는 구역모임에 월남쌈 이라는 특별한 음식을 먹게 되었는데, 솔직히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온통 채소뿐 인 것 같고 중간에 떡 하니 자리 잡은 커다란 물그릇도 이상하게 보였고 말이다. 그리고 처음 먹어보는 고수와 민트, 아보카도 등도 썩 맛이 있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삼겹살 먹을 때도 상추에 싸먹기 귀찮아 안 먹는 나에게 라이스페이퍼에 계속적으로 싸 먹어야 하는 월남쌈은 배만 부를 뿐 도대체 메인 요리도 그렇다고 샐러드도 아닌 그저 그런 음식에 불과 했던 것 이다. 그런데 며칠 후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 월남쌈 이라는 게 묘하게 다시 먹고 싶어 진 것 이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월날쌈 사랑은 벌써 10년째에 이른다. 월남쌈 또는 베트남 쌈은 라이스페이퍼에 돼지고기, 새우, 채소, 소면, 쌀면 등을 싸먹는 베트남 음식이다. 양념으로는 까나리액젓(어장)에 청양고추를 썰어 담은 것을 쓰는데, 영어권에서는 춘권과 혼동해서 부르기도 하고, 구별하여 하권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그냥 채소를 싸서 뜨거운 물에 라이스페이퍼를 적셔 싸먹기도 하고, 샤브샤브처럼 뜨거운 물에 고기와 새우를 데친 후 싸먹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먹는 푸짐한 월남쌈은 원래 베트남 음식이 아닌 변조된 호주의 한인사회 음식이라고 하겠다. 자장면이 중국 음식이 아닌 것과 같은 원리다. 월남쌈에는 참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간다. 양상추, 양배추, 적채, 피망, 깻잎, 양파, 버섯, 당근, 숙주, 민트, 고수, 새싹, 토마토 등의 채소류. 파인애플, 사과, 아보카도 등의 과일류, 그리고 남편이 골라 먹는 달걀지단, 맛살, 어묵볶음, 두부, 고기, 칵테일새우, 국수 등이다. 재료를 빼도 되고 더 해도 되는 자유로운 음식으로 생각보다 준비가 간단한 것에 비해 접대용 음식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푸짐하고 맛이 있다. 지금은 라이스 페이퍼가 찬 물에도 잘 녹아 끓는 물을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월남쌈을 먹을 때는 꼭 가운데에 샤브샤브 냄비가 필요 했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샤브샤브용 고기를 데치고 거기에 라이스페이퍼도 담궜으니 여러 명이 사용한 냄비의 물은 고기 육수에 짭조름한 손맛이 더해져 진하게 끓어올랐고 나중에는 남은 재료를 다 넣어 월남국수까지 끓여 먹었다. 분명 배가 터지게 월남쌈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월남국수로 마무리 하지 않으면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 굳이 샤브샤브용 고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대신 보쌈 고기나 구운 닭, 또는 소불고기를 볶아 먹기도 한다니 참 다양해졌다. 그래도 끓는 냄비 덕분에 먹다 보면 땀이 송글송글 나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그래서 겨울에 더 생각나는 그런 월남쌈도 가끔 생각이 나고 그립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리도 월남쌈에 중독되는 것일까? 나는 당연히 월남쌈의 그 특별한 소스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짭짤하면서도 달콤하고 매콤한 소스에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피쉬소스와 다진 마늘, 레몬즙, 설탕, 파인애플과 약간의 물 그리고 월남고추가 들어간다. 맑게 소스를 만드시는 분이 계신가 하면 본인은 흘러내리는 것이 싫어 약간 됨직하게 만드는 편인데 모든 재료를 넣고 믹서로 마구마구 갈아버린다. 얼마 전엔 파인애플이 없어 혼합 과일 캔을 사용했는데(망고도 들어간) 약간 주황빛의 색깔이 나면서 달콤하고 맛도 괜찮았다. 나는 여전히 만두편 에서 말한 것처럼 형식에 별로 구애 받지 않고 요리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요리는 맛이 없을 때도 있지만 마음만은 편하다. 피쉬소스 외에도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곁들여 땅콩소스를 만들어도 좋다. 땅콩버터에 마요네즈와 머스터드 약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장을 살짝 넣어주면 맵지 않고 고소한 소스가 완성 된다. 더불어 다진 땅콩을 함께 넣어주면 식감을 좋게 해 주니 한번 도전 해 보시길. 얼마 전 갑자기 또 월남쌈 병이 도져 일이 끝나자마자 가족끼리 월남쌈을 메인으로 파는 식당에 갔더랬다. 집에서 해 먹는 것도 좋지만 사람이 많지 않을 때는 식당에서 파는 포장 월남쌈도 저렴하니 괜찮고, 또 식당에서 사먹으면 먹고 싶은 재료만 골라 먹을 수 있고 얼마든지 리필이 되니 그것도 좋다. 정말 편한 세상이다.
이번 주에는 월남쌈 약속이 2건이나 된다. 구역모임이 있는데 권사님이 숙주2봉을 부탁한다는 말씀에 왠지 가슴이 설렜다. 직접 만들어 주실라나 보다. 얼마나 먹음직스럽고 근사할까. 그리고 다른 사람의 특별한 소스를 경험할 수 있다니 정말 신난다. 누군가 그랬다. 모든 일이 꼭 한꺼번에 터진다고. 맞다. 맞는 말이다. 사실 2016년 첫날부터 예기치 않은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 우리 가족을 들었다 놨다 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런 상황에 난 늘 약하다. 기도가 가슴에 머물다가 나오지 못할 정도로 답답했다. 그러다 보니 호주에서의 삶도 지긋지긋 해진다. 조금이라도 뭔가 나아져야 하는데 더 힘들어 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평안할 때보다 어려울 때 더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반대다. 내가 힘드니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왠지 너무 속물 같아 기도할 수가 없다. 그러니 몇 배는 더 힘든 시간을 보낸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실 것 이다. 부디 모든 힘든 분들께 올해는 더욱 풍성한 한해가 되어 지길 바란다. 그렇게 힘들지만 살아가는 이모든 순간이 주님의 은혜라는 찬양을 떠 올리며 가슴에는 하나님의 위로를 그리고 배에는 월날쌈의 든든함으로 채운다. 그러나 너무 욕심 부리지 말 것! 월남쌈도 너무 많이 먹으면 탈나는 법이다.
박은정 사모(시드니우리장로교회 양화영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