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62)
4월의 어느 날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확실히 바람은 틀리지만 한국과 호주의 날씨가 이 시기에는 묘하게 비슷해 더욱 한국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렇게 계절 얘기만 나오면 난 항상 사람들에게 묻는다. 더운 게 좋은지, 추운 게 좋은지 말이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늘 “난 추운 것도 더운 것도 싫어요. 선선하면서 따뜻한 게 좋아” 라고 대답하는 누군가가 반드시 한명은 있다. 내 질문의 요점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지 굳이 다른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추운 것도 더운 것도 싫다. 요즘 같은 날씨가 누구나에게 좋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래서 질문한 것인데 저런 대답을 들으면 나는 괜히 심통이 난다. 어쨌거나 난 더운 것 보다는 차라리 추운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것에 관한 이유를 나름 정리해 보았는데, 추울 때는 옷을 겹쳐 입거나 하는 방법으로 보완 할 수 있지만 더울 때는 옷을 다 벗어도 덥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겨울에는 여름만큼 벌레가 많지 않다는 사실. 특히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바퀴벌레가 조금은 잠잠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멸망해도 살아남는 다는 독종들 때문에 며칠 전에 좀 짜증을 냈더니 남편은 뭐 그런 것에 신경을 쓰냐며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이 안 되니 나 또한 미칠 노릇이다. 특히 남편이 없을 때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하람이와 나는 온 집에 불을 다 켜고 불안함에 떨어야 한다. 그러니 추운 계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낮은 약간 더운 것 같지만 따뜻함을 품고 있고 저녁은 시원하면서 향기로운 이 계절이 가장 좋긴 하다. 해가 일찍 저물어 하람이와 마음 편하게 산책 하진 못하지만 그냥 거실 문을 열어 놓고 옆집에서 뭘 해 먹는지 바람에 실려 온 나무 타는 냄새를 맡으며 추가로 하람이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는 것만으로 행복이 잔잔히 밀려온다. 최근에 집에 작은 커피 머신이 생겨서 캡슐을 넣고 스위치를 올려 커피 내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물론 내가 옆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말하고는 몇 번 보여 주었더니 재미가 있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엄마! 커피 만들어 줄까?” 한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옆에 앉아서는 “커피 마시고 싶어? 마시고 싶지? 그치?” 하며 제발 커피 한 잔 내리게 해 달라고 사정사정 하는데, “엄마 이빨 닦았다” 하니까 그제야 포기한다. 이빨 닦으면 먹는 것은 끝이라는 걸 하람이도 안다. 그것만큼은 지독하리만큼 철저하게 지키는 하람이. 이빨 닦았어도 괜찮아 먹는 거. 먹고 싶으면 먹어라 그렇게 얘기해도 그러면 다시 또 이빨 닦아야 하니 싫단다. 특히 저녁 때 만큼은 절대로. 그런 너의 철학을 아빠도 엄마도 닮아야 하건만 아무래도 우린 조금 부족한 것 같다.
밤이 길어져서 일까. 잠도 많아 졌다. 따뜻한 극세사 이불 속에 들어가 조금만 꼼지락 거리면 금방 잠이 들어 버린다. 창문 옆 어딘가 에서는 귀뚜라미 소리도 들린다. 평온하고 고요한 밤 이다. 금새 많이 커 버린 아들과 마음 편하게 먹을 거라곤 옥수수 밖에 없다며 (식단조절 중인 관계로. 하지만 내가 없을 때 다 먹고 있다는 걸 안다) 밤낮으로 옥수수를 삶아대느라 바쁜 남편과 나는 평범한 4월의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자랑 할 것도 특별히 더 나아진 것도 없는 조금은 느리고 답답한 삶이 그래도 이 계절에는 따스하게 다가오니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 어느 날 기도가 안 나올 만큼 답답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그래서 대신 찬송가를 펴놓고 하루 종일 찬양을 부르며 이 찬양의 가사가 제 기도가 되게 해 주세요 라고 했단다. 기도도 쉽게 안 나올 만큼 삶을 누르는 여러 문제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다. 나 또한 펼쳐 놓자면 끝이 없겠지만 사랑스런 계절 4월만큼은 그런 생각들을 행복감으로 밀어내고 소소한 기쁨들을 찾아보길 바란다. 복음 안에서 정답을 찾고 진정한 기쁨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한다. 이렇게 글을 마치려 하는 순간 옆에서 뭔가 휙 하고 지나가는 것 같아 순간 깜짝 놀랐다. 너무 예민하다. 아니, 너무 예민해 졌다. 남편이 삶아 놓은 금쪽같은 옥수수 하나 먹으며 마음 좀 다스려야겠다. 설마…옥수수 숫자 까지 세어 놓은 것은 아니겠지 불안해 하면서 말이다.
박은정 사모(시드니우리장로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