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69)
씨씨씨를 뿌리고
2007년1월에 호주에 처음 왔는데 그해 연말쯤 부모님이 호주를 방문하셨다. 둘째딸이 호주에서 산다며 한국을 떠났는데 도대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 하셨던 게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도 아니고 무려 비행기로 10시간. 생전 여행으로도 가본 적 없는 호주를 두 분이 오신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엔 나 또한 호주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초짜였다.
막상 부모님이 오셨어도 어디가 좋은 곳인지 어느 식당이 맛있는 식당인지 모를때 였다. 그래서 부모님이 먼 길 오셨지만 제대로 좋은 곳에 모시고 가지 못했다. 그래도 가시기 전날 호주에서 처음 먹어 본 월남쌈이라도 해드려야 겠다 싶어 이것 저것 장을 보며 식재료를 샀다. 월남쌈은 채소가 많다보니 여자들이 좋아하는 메뉴인데 역시 아버지는 그다지 입에 맞지 않으신 듯 몇 번 드시더니 배가 부르시단다. 그렇게 쉽게 배가 부르실 분이 아닌데 그나마 몇 개 드신 것도 딸의 성의를 봐서였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맛있게 드신 것이 바로 아보카도다.
한국 대형 마트에서 가끔 보긴 했지만 한 번도 사 먹은 적 없는 아보카도. 매끄러운 것도 있지만 악어등처럼 울퉁불퉁해서 도대체 과일인지 채소인지 늘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그런 아보카도를 호주에 와서 먹어보니 식감은 약간 고소하고 담백한게 마치 버터나 기름을 먹는 듯한 느끼함도 있지만 달지 않아 좋았다. 아버지도 역시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입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좋으셨단다.
아보카도는 과일을 먹고 난 후의 공 처럼 딱딱한 씨앗을 보는 재미도 있다. 탁구공 만한게 꽤 무겁기도 하다. 너무 둥글거려 버리기가 아까웠는지 아버지는 이 커다란 씨앗을 심어보자고 하셨다. “이거 지금 심어서 언제 커요? 키워놓고 다른 사람 먹으라구?” 내가 농담처럼 말하자 “잘 자라 다른 사람도 먹을 수 있으면 더 좋잖아. 마음을 예쁘게 가져야지” 하셨다. 그런데 그게 벌써 몇 해 전 일이다. 아직 한 번도 이사를 가지 않고 살고 있으니 아버지 말대로 그때 씨앗을 심어 정성으로 키웠다면 지금쯤 몇 번이나 아보카도를 수확했을지 모른다. 열매가 맺을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것이라 생각하고 포기한 일 이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러가 버릴 줄이야.
나는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 하는 소심한 타입이나 예전 그 기억을 떠 올리며 늘 용기를 낸다. 뭔가 늦었다고 또는 안된다고 생각되어지는 그때가 가장 적당한 때라고 믿는다. 그 후 나는 날씨가 조금씩 풀리는 이맘 때 쯤이면 분주하게 모종이며 씨앗을 심는다. 손바닥 만한 라벤더가 언제 자라나 싶었는데 지금은 나무 처럼 줄기도 굵어지고 크기도 커졌다. 추운 겨울내내 마치 죽은 것 처럼 가지만 앙상 하던 것이 매년 이때쯤 다시 보라색 꽃을 피우는 것이다.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데 혼자 참 굳건히도 자랐다.
작년에는 오이며 가지를 심었는데 키우는 방법을 잘 몰라 물만 부지런히 줬더니 2~3개 달리는가 싶다가 이내 시들어 버렸다. 지지대를 세워 잎이 잘 자라도록 해 주고 비료나 벌레도 잡아 주는 정성이 필요 한데 너무 방치 했던 것이다. 그렇게 작년은 몇 개의 수확물로 끝냈다. 그래서 올해는 종류를 달리해 좀 쉬운 것으로 상추와 깻잎모종을 얻어 심었다. 한쪽에는 돼지 호박과 방울 토마토를 심었는데 현재까지는 잘 자라고 있다. 호박잎이 넓게 커지니 남편이 이 호박잎 삶아서 먹어도 되냐고 묻는다. 왠지 그건 아닌거 같다고 했더니 너무 아쉬워 한다. 한국에서 가끔 먹긴 했었는데 까실까실한 호박잎을 잘 쪄내 멸치 육수낸 강된장에 혹은 고추넣은 양념간장에 싸서 같이 먹었던 기억이 났다. 아…먹고싶다.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달걀껍질도 버리지 않고 잘 말려 나오는 족족 화분에 섞는다. 꼭 먹기 위해서 라기 보단 흙을 만지며 쏟은 정성만큼 열매를 맺는 그것이 기특해 재미가 있다. 이렇듯 땅은 얼마나 꾸밈없고 솔직한지 모른다. 한달간 학생부 친구들과 예배에 대해 나눴다. 그리고 이번주에는 마지막으로 누가 복음 말씀을 읽으며 각자 자신의 마음밭을 점검 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 씨앗을 심지만 전부 결실하는 것은 아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인내로 지켜야 하는게 우리에게 필요하다. 씨 뿌리는 자가 기대 할 수 있는 땅. 호주에 열매로 증인된 삶을 보여주는 크리스천의 계절이 오고있는 듯 하다.
박은정 사모(시드니우리장로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