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70)
여행자
호주에 살면서 여행을 많이 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관광을 목적으로 호주에 오는 사람들이야 여기 저기 좋은 곳을 찾아 보고 느끼고 즐기는 것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우리와 같이 호주에 사는 사람들은 그럴 여유가 그다지 없다. 한국에서 누군가 와야 그 핑계 삼아 모시고 다니면서 둘러보는게 전부다. 하루 쉬면 그만큼 수입이 줄고 고정으로 지출되는 지긋지긋한 렌트비를 생각하면 쉴 수가 없는 것 이다. 그러다보니 호주에 와서 마음편히 여행을 다니지 못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살면서 여행을 할 수 없으니 마음이 늘 괴롭고 심란(心亂)했다.
그러다가 점점 커 가는 하람이를 바라보며 우리 가족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 오지 않는데 하람이는 무엇을 추억하며 우리를 떠올릴까? 늘 바쁘기만 했던 부모님, 혼자 놀았던 유년시절…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하려면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고 결정을 내렸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그리고 아주 근사한 곳에 가지는 못하더라도 떠나자! 그렇게 시작된 하람이네 여행. 때로는 성공적이기도 하고 괜히 갔다는 실망감이 들때도 있었다.
Berry라는 곳을 간 적이 있다. 앤틱동네가 있다고 하여 장거리 운전을 하고 갔지만 5분이면 다 둘러볼수 있는 작은 동네에 불과 했고 숙소로 정한 곳은역사와 전통을 느낄수 있는 곳이라 했건만 그냥 모기만 잔뜩 있는 초라한 농가 그 자체 였다. 애써 여행 계획을 짠 남편을 위해 실망한 티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표정에서 드러났는지 “여기 진짜 별로지? 괜히 왔나?” 하며 내 기분을 살핀다. 솔직히 이거 볼려고 여기까지 온 건 정말이지 시간 낭비 돈 낭비다 라는 말이 목까지 차오르지만 “뭐 여행인데 어때? 여기서 살 것도 아니고 오늘 봤으니 다음에 안 오면 되는 거지” 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을 하고 나니 정말 마음이 편안해 졌다. 그렇게 우리는 Berry에서의 여행을 마쳤다.
가끔 그 기억이 떠올라 하람이에게 “Berry갔던거 생각나?” 하고 물으면 “응! 거기서 불 봤잖아!” 한다. 맞다. 마침 우리가 갔을 때 근처에 불이나서 소방차가 불을 진압하는 모습을 차까지 세워두고 보았다. 불구경은 정말 재미 있다더니 그렇긴 했다. 다행이 불이 잘 꺼졌고 우리는 시커멓게 탄 농경지를 보며 돌아왔다. 여행은 아무리 잘 계획하고 준비해도 늘 완벽하지 않다. 무조건 직접 가서 체험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남의 말만 들을것도 없을게 누군가에겐 그곳이 정말 좋은 여행지였을 수도 있지만 나에겐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을 떠날 때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 보다 그냥 집을 떠나 바람쐬러 간다 생각하고 마음과 짐을 가볍게 하는게 좋다.
처음 여행을 갈 때 우리 가족의 짐은 얼마나 많았던가. 자동차 트렁크로 하나 가득 채우고도 모잘라 뒷좌석까지 채웠다. 여행을 떠나려 하면 왜이리 챙길것이 많은지…평소에는 잘 바르지 않던 영양크림에 아이크림까지 챙기고 묵혀 두었던 팩까지 넣는다. 간단한 여벌 옷이 아니라 패션쇼를 해도 될 만큼의 옷과 드라이기며 구급약, 신발 몇 켤레에 쓰레기 봉지까지 챙겨 넣어야 마음이 편한 초짜 여행자. 그래서 여행을 갔다 온 후에는 엄청나게 많은 짐을 정리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런 내가 조금씩 짐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길어야3일 짧으면 하루만에도 갔다오는 여행에 많은 짐은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단 며칠을 지내는 것 뿐인데 머리를 조금 못 감더라도 자는게 조금 불편 하더라도 어떠랴. 거기에 완전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어차피 집에 갈텐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주변이 비로소 돌아봐지고 아름다운 것 이 보이기 시작 했다. 여행을 마치고 오면 허름하고 밉상이던 우리집이 좋고 편한 것에 감사한 마음까지 든다. 여름이면 찜통 같은 푹 꺼진 침대도 마치 고급 호텔의 그것처럼 포근히 나를 감싼다. 여행지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며 하람이와 수다를 떨면 묵은 피로가 싹 풀리는 듯 개운하다.
특정한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사람은 여행자, 특정한 목적이 없이 돈이나 재미등을 위해서 이동하는 사람은 모험가로 부른다고 한다. 오늘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여행자로 살고 있는가 모험가로 살고 있는가. 이 세상이 전부인 듯 모든 즐거움과 행복을 이 땅에서 다 누리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이 세상은 단지 여행지 이니 괴롭고 힘든일도 참아내며 넘기며 그렇게 영원한 안식처인 천국을 기대하며 살고 있는가. 여행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여행이 정말 좋은 이유는 돌아갈 집이 있어서가 아닐까? 팁이니 기억 하시길…
박은정 사모(시드니우리장로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