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74)
방학
하람이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형제가 없으니 혼자 보내는 방학이 그리 반갑지 만은 않을 것 같은데 내 생각과는 달리 무척 기다렸나 보다. 우리 집은 낮에 일하는 엄마 대신 저녁에 일하는 아빠가 하람이의 방학 시간을 같이 보낸다. 호주에 다른 식구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교대로 하람이를 돌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은혜다. 감사의 제목이다. 그러나 하람이는 늘 나에게 묻는다. “엄마! 오늘은 누가 날 지켜 줄꺼예요?” 남편도 나도 정 시간이 안되는 날은 근처에 사는 집사님댁에 잠시 맡기는데 그것 때문일까? 하람이에게 아침마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조금은 속상하고 서글프지만 호주에서의 삶을 위해서는 우리모두 참아내야 한다. 그렇게 하람이와 단둘의 방학을 시작하는 아빠는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 보인다. 뭘해야 할지 막막해 하길래 나는 부지런히 스케쥴을 잡았다.
월요일은 하람이와 실내 놀이터에 가고 화요일은 하람이 친구들을 불러다 집에서 논다. 대신 점심에 먹을 김밥이랑 간식은 내 몫이다. 수요일은 같이 바닷가에 가서 바람도 쐬고 목요일은 도서관에 가서 한나절 책을 보고 오라 했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을 짜 남편에게 말해주면 무슨 과제를 자기에게 이렇게 많이 주냐며 툴툴거린다. 하지만 계획을 짜주지 않으면 분명 하루종일 하람이는 방에서 굴러다니며 게임만 할것이 분명하다. 이러다 보니 하람이가 방학을 하면 일을 나가는 내 발걸음은 평소보다 더욱 무겁다. 나도 같이 쉬고 싶어진다. 모 프로그램에서 방학을 기다리는건 학생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를 들었다. 40대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의 나도 여전히 집안에서 뒹굴며 놀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건 철이 덜 든걸까 아니면 모두들 그런 걸까? 감질나게 껴있는 Public Holiday는 또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일주일 전부터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쉬는 날을 기다리는 그 순간이 좋은 것이지 막상 당일이 되면 다시 기분이 우울해 지고 피곤해 진다. 뭔가 특별한 것을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후회도 들고 이렇게 쉬는 날이 가 버렸구나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사실 우리와 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쉬게 되면 그만큼 타격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태평하고 백수스러운 날을 살짝 꿈꾼다.
벌써 20년도 훨씬 전,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아래로 보이는 반지하 건물 안에서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에어로빅을 하는 아주머니들을 본 적이 있다.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고 남들은 일하는 이 시간에 자신만의 취미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결혼하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면서 애 학교 보내놓고 친구 만나 차 한잔하며 수다도 떨고 취미생활도 하는 넉넉한 전업 주부로 살아야 겠다 싶었다. 그러나 이게 왠걸… 결혼을 함과 동시에 나는 더욱 치열한 삶을 살게 되었다. 사역을 하는 남편을 도와 함께 가정을 꾸리며 하람이가 태어나고 딱 1년만 집에 있었지 그 후로는 유모차에 하람이를 태워다니며 일을 했다. 유치원에 보내기엔 너무 어리기도 했고 그것조차 부담스러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람이를 옆에 두고 일할 수 있는 일터였기에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참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싶다. 지금도 가끔 길거리를 걷다보면 그때 그 시절 알던 분들을 만난다. 그러면 그분들은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던 애가 이렇게나 컸냐며 놀라신다. 그리고 늘 나늘 열심히 사는 애기엄마라 불러 주시며 빵이나 음료수를 봉지째 쥐어 주신다.
성경을 읽다보면 예수님께서도 분주한 삶을 사셨지만 때를 따라 휴식하셨던 것을 볼 수 있다. 사역이 끝나면 예수님은 들이나 산으로 가셔서 묵상과 기도로 쉬시며 영적 재충전을 하셨다. 늘 노는 사람에게는 쉬는 날이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바쁘게 달려온 사람들에게는 단 하루의 공휴일도 참으로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우리들의 삶도 늘 정신없이 바쁘지만 그런 삶이 있기에 휴식이 더욱 값지고 필요한 것 이리라.
일을 마치고 저녁에 들어왔더니 하람이가 배가 고프다며 보챈다. 급하게 냉장고에 있는 반찬과 국을 데펴 차려주고는 먼저 먹으라고 했더니 아빠랑 엄마는 왜 같이 안먹느냐고 자기도 안 먹겠단다. 왠지 그말이 기특하고 대견해서 “아빠랑 엄마 챙겨줘서 고마워. 그런데 아빠랑 엄마는 괜찮으니까 조금 쉬고 이따가 먹을께 어서 먹저 먹어.” 라는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아빠랑 엄마 둘이서만 맛있는거 먹으려고 그러지?” 한다. 우리의 예상을 깨는 하람이의 한마디에 웃음이 빵 터졌다. 하람이는 밥 대신 가끔 라면을 먹는 우리가 부러웠나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람이의 투정아닌 투정에 내내 밀려왔던 피곤함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 이다. 우리는 결국 하람이 옆에 같이 앉아 밥을 먹고 웃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람이가 우리의 에너지이며 휴식임을 느끼는 순간 이었다.
다시 회복하고 새롭게 출발하라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방학. 각자의 인생에 다른 시간 , 다른 형태로 주어지는 이 방학을 값지고 보람되게 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함으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만 삶을 버틸 힘이 오래가는 법이다. 더불어 자식의 애교까지 깍두기로 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박은정 사모(시드니우리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