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9일, 제35 · 36 · 37대 서울특별시장 박원순 (朴元淳, 1955 ~ 2020) 별세
박원순 (朴元淳, 1955년 2월 11일 ~ 2020년 7월 9일)은 대한민국의 변호사, 시민단체 출신의 정치인이며, 제35 · 36 · 37대 서울특별시장이었다.
서울특별시장 재임 이전에는 성고문 피해자와 성희롱 피해자를 변호해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이후 이와는 정반대로 서울특별시장 임기 중, 차후 사법부 및 국가인권위원회에 의해 사실로 확인된 여비서에 대한 성추문 문제가 불거졌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향년 65세

– 생애 및 활동
1956년 3월 26일 출생으로, 자신은 1955년 2월 11일(음력 1월 19일)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박길보와 노을석의 2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 졸업하였다. 이후 재수를 해서 1975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하였으나 입학한지 수개월만에 유신체제 반대 학생 운동과 관련하여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대학에서 제적되었다. 이후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여 졸업했다.
1978년 법원 사무관 시험에 합격하여 1978년 12월 춘천지방법원 정선등기소 소장으로 근무하였고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82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첫 발령을 받았으나, 6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1983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1980년 사법시험 합격 후 검사로 임용됐지만 6개월 만에 사표를 쓰고 그로부터 6개월 뒤에 퇴임했다. ‘사람 잡아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한 박원순은 1980년대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1990년대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등 대한민국 여성운동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도맡아 변호하였다. 특히 서울대 성희롱 사건은 6년간에 걸친 법적 투쟁 끝에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 소송으로 위법성을 이끌어 낸 역사적인 변론이며, 대한민국 여성운동 역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사건으로 언급된다. 또한 여성전범법정 운동에서 대한민국측 검사로 참여하면서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 일왕의 처벌과 배상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는 여성인권을 대표하는 인권변호사로서 명망을 쌓았고, 여성단체들로부터 대한민국 여성운동에서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또한 당시 마로니에 립싱크 사건을 변호하여 당시 가요계에서 최초로 저작권의 개념과 2차저작물과 편곡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 받아내기도 했다. 후에 이는 저작권법 개정에 배경이 된다.
1994년 박원순은 참여연대를 설립, 초대 사무처장을 맡으며 시민운동계에 투신했다. 그는 참여연대를 통해 ‘압박 시민단체’ 모델을 대한민국에 태동시키고 정착시켰다. 박원순은 참여연대를 통해 낙천·낙선 운동,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 검찰, 법원 개혁 등 사법개혁운동 등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낙선운동은 시민단체의 지나친 정치 개입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 게다가 낙선운동은 보수진영 인사에게만 선택적으로 적용되었고, 진보진영 후보는 범법, 편법 등 각종 문제가 있어도 모르쇠로 일관하여 정치적 편향 문제도 제기되었다. 박원순은 이에 대해 “현존하는 法만 지켜야 한다는 것은 공안검사의 논리와 다름없다”라며 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법이 지켜져야 한다면 시대착오적인 법률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속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惡악法법이 法법일 수는 없다” 말하며 악법이라 할 수 있는 현행 선거법을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며 낙선운동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참여연대의 낙선운동은 결국 대법원에 의해 선거법 위반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기간에는 돌연 정부 비판 활동을 중단하고 사회 활동에 주력했다. 재벌 개혁 추진과 관련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행보를 지원했고, 위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야당) 낙선 운동을 벌였다. 2001년 ‘아름다운재단’과 2002년 ‘아름다운가게’, 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하여 노무현 정부가 끝나는 2008년까지 박원순은 대정부 투쟁을 거의 하지 않고 사회적 활동에만 주력했다. 그 당시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아름다운재단과 네이버와 협력하여 기부사이트 해피빈을 출범 및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도 했다.# 한편 반미 운동에 활발히 나섰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에는 SOFA 개정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2003년에는 정부의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을 펼쳤는데, 이 반미 투쟁이 그가 노무현 정부에 반대한 유일한 활동이었다. 이 시기 민주당계 정당 등에서 정치입문에 대한 요청을 끊임없이 받아왔으나 박원순은 이를 거절하고 사회운동에만 주력하였다. 당시 사회활동을 위해 박원순은 인권변호사 시절 매입했던 자택까지 처분하면서 32억 원 이상을 기부하였다. 월급도 대부분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을 하여 이로 인하여 후에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사망할 때까지도 항상 4~6억 원의 빚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기부활동으로 2006년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1년 10월 3일 민주당 소속 박영선, 민주노동당 소속 최규엽, 무소속 박원순 세 후보는 단일화 후보 경선을 치렀다. 3만 명의 선거인단 중 60%라는 투표율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하였다. 박원순은 이날 경선에서는 박영선과의 접전 끝에 패하였으나 TV토론 배심원단 조사, 일반 시민여론조사를 포함해 이날 실시된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집계한 결과 박원순이 52.15%로 당선되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10월 3일 치러진 범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을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으로 규정하며 “유모차를 밀고 투표장에 오는 시민들의 물결은 정치와 정당에 변화를 요구하는 물결이었다, 민주당은 이를 겸허히 수용하고 시대적 흐름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쇄신’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손학규는 또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민주당 패배를 책임지고 대표직에서 사퇴의사를 밝혔으나 이후 철회했다. 손학규는 철회 의사를 밝힘과 동시에 박원순의 입당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 입당) 문제에 대해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특별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경선에 담긴 시민과 국민의 뜻이 존중돼야 한다”며 “더 큰 시야로 민주당이 민주진보진영 전체를 품어 진보진영의 용광로가 돼야 한다, 더 큰 민주당 안에서 서울시장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통합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5일 박원순은 민주당 입당 문제에 대해 이희호 이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사실 민주당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며 “민주당이 앞으로 다른 정당과 정치세력을 받아들여 더 커지는 과정을 거친다면 저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입당한 당원은 아니지만 민주당과 생각과 활동을 같이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2011년 10월 11일 박원순은 선거대책위원회 ‘새로운 서울을 위한 희망캠프’를 공식 출범시켰다. 범야권 단일화의 결과 민주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 야3당이 참여하고 있으며 시민사회, 문화계 인사, 언론계 등이 총 집결하였다.
상임선대위원장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맡았으며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노회찬, 심상정 전 진보신당의 지도 인사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정동영, 이계안, 문성근 등이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선대위원장직을 맡았다. 범야권 통합후보 경선에서 경쟁한 민주노동당의 최규엽과 민주당의 박영선 역시 경선 당시의 약속을 지켜 선대위원장직을 맡았다.
고문에는 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 특보단에 최재천 전 의원, 선대본부장에 문용식 나우콤 사장, 정봉주, 천호선 전 의원 등이 참여했다.
2011년 10월 26일 아침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이날 아침, 박원순의 홈페이지 원순닷컴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사이버 테러가 가해졌는데, 박원순 지지 성향이 많은 젊은층들이 투표소를 찾기 어렵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관이 벌인 일로 훗날 드러났다. 최종 투표율은 48.6%였으며 박원순은 전체 투표수 가운데 53.40%인 215만 8476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는 7.19%의 차이로 서울 전체 25개 자치구 가운데 서초·강남·송파·용산구를 제외한 나머지 21개 구에서 모두 나경원 후보를 앞섰다.
박원순은 별도의 인수 기간 없이 10월 27일 초등학교 5·6학년 무상급식 예산 지원 결재를 첫 업무로 시작하며 서울특별시장 집무에 들어갔다.
2014년 6월 4일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에서 56.1%의 득표율로 제36대 서울시장에 재선되었다.
2020년 7월 9일 박원순은 오전 중 연락이 두절된 상태로 실종되었다.
박원순은 7월 10일 오전 (새벽) 12시 1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북악산 삼청각 인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2020년 7월 9일에 사망한 박원순의 장례는 서울특별시장(葬)으로 5일 간 엄수되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고, 이와는 별개로 서울시청 입구 앞에 시민들이 분향할 수 있는 분향소가 설치되어 13일 밤까지 운영되었다. 서울대 빈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낙연 의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그와 정치 생활을 함께했던 동료들이 조문했다. 7월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 8층에서 박원순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영결식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100명의 최소 인원만 참석한 상태로 진행되었으며 서울시청 유튜브 계정을 통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되었다. 영결식을 마친 후 박원순의 영정은 서울시청 건물을 한 바퀴 돈 뒤 서울추모공원으로 이동, 화장되었으며 고인의 유언에 따라 경남 창녕의 부모 선영에 안장되었다. 유가족들은 박원순의 유해를 양친 산소 옆에 묻은 뒤 일부는 유언에 따라 부모의 묘에 뿌렸다. 유골 안치 장면은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 학력
장가국민학교 졸업
영산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1975년 서울대학교 입학
1975년 서울대학교 제적
1985년 단국대학교 사학 학사
.비학위 수료
1992년 LSE 국제법 단기교육수련과정 수료
– 상훈
19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제1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
2002년 제15회 심산상 학술 및 시민운동 공로부문
2002년 서울지방변호사회 공익봉사상
2003년 시민의 신문 올해의 활동가상
2003년 희망 이웃돕기 유공자 포상식 국민포장
2006년 제10회 만해대상 실천부문
2006년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
2007년 제21회 단재상 학술부문
2009년 제15회 불교인권
2014년 세계도시 전자정부 평가 특별공로상
2014년 2014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선거공약분야 최우수상

– 가족
아버지 박길보, 어머니 노을석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형이 17세가 되던 1969년 행방불명 상태였던 작은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었다.
이에 박원순과 그의 형 모두 호적상으로는 독자(獨子)가 돼 병역 단축 혜택을 받았다.
생부: 박길보 (1915년 전~1984년)
생모: 노을석
종조부(양부): 박두책
종조모(양모): 이애자
종고모(양누나): 박화자 (1937년)
형: 박우순
누나: 박순녀
자형: 권상이
조카: 마약 사범으로 중국 교도소에 복역 중이었으나 한중간 체결한 범죄자 인도 조약으로 2016년 한국으로 이송되었다.
배우자: 강난희
아들: 박주신 (1985년~)
딸: 박다인 – 박원순 실종 당시 신고자, 서울대학교 미대에서 서울대학교 법대로 전과.
사돈: 맹경호 – 롯데호텔 상무
며느리: 맹혜영

– 주요 경력
1978년 제8회 법률사무관
1978년 ~ 1979년 춘천지방법원 정선등기소장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1981년~ 1982년 사법연수원 12기
1982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1986년 초대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위원회 변호사
1989년 ~ 1991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1994년 ~ 2001년 참여연대 사무처장
1998년 감사원 부정방지위원대책위원회 위원
1999년 국회 제도운영개혁위원회 위원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전범국제법정 공동검사
2000년 법무부 민사소송개정 심의위원
2000년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 공동대표
2001년 ~ 2010년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2002년 ~ 2009년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
2002년 ~ 2003년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2003년 국세청 세정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2003년 사법개혁위원회 위원
2003년 ~ 2004년 한국방송공사 이사
2003년 ~ 2011년 풀무원홀딩스 사외이사
2004년 ~ 2009년 포스코 사외이사
2005년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방문교수
2006년 ~ 2011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무소속, 야권단일)
2011.10.27. ~ 2014.6.30. 제35대 서울특별시장
2011년 ~ 2015년 제4대 한국상하수도협회 협회장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새정치민주연합)
2014.7.1. ~ 2018.6.30. 제36대 서울특별시장
2017년 대통령비서실 아세안 특사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더불어민주당)
2018.7.1. ~ 2020.7.9. 제37대 서울특별시장[48]
2018년 ~ 2019년 제12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2018년 ~ 2019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당연직위원
2018년 ~ 2019년 국가기후환경회의 지차제위원

– 저서
.본인 저작
저작권법 – 법경출판사 (1986)
국가보안법 연구 (총 3권) – 역사비평사 (1990)
아직도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 – 박원순 지음, 한겨례 출판사 (1996)
역사를 바로 세워야 민족이 산다 – 박원순 지음, 한겨례 출판사 (1996)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 박원순, 세기의 재판이야기 – 박원순 지음, 한겨레출판사 (1999)
NGO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 박원순 지음, 위즈덤하우스 (1999)
악법은 법이 아니다 – 박원순 지음, 프레스 21 (2000)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 기행 – 박원순 지음, 아르케 (2001)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나눔 – 박원순 지음, 중앙M&B (2002)
한국의 시민운동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 박원순 지음, 당대 (2002)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다 – 박원순 변호사 참여연대 실천경영론 – 박원순 지음, 나남 (2002)
부패추방 어떻게 하나 – 박원순 지음, 나남 (2002)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한국인권변론사,가시밭길을 선택한 변호사들) – 박원순 지음, 두레 (2003)
독일사회를 인터뷰하다 – 박원순 지음,논형 (2005)
고문의 한국현대사 – 야만시대의 기록 (총 3권) – 박원순 지음, 역사비평사(2006)
프리윌(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 – 박원순지음, 중앙북스 (2007)
고속도로 통행권에 복권을 붙이면 정말 좋겠네 – 전유성, 박원순, 박준형, 희망제작소 지음, 위즈덤하우스 (2007)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 박원순 지음, 샘터 (2008)
글쓰기의 최소원칙 – 박원순 지음, 룩스문디 (2008)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 진중권, 홍세화, 유시민 외 지음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 박원순의 희망 찾기 1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09)
희망을 심다(박원순이 당신께 드리는 나눔) – 박원순 지음, 알마 (2009)
원순씨를 빌려 드립니다 – 박원순 &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은? 새로운 발상으로 세상을 바꾸는 CEO! – 박원순 지음, 21세기북스 (2010)
아름다운 세상의 조건 – 나눔과 희망의 전도사 박원순 에세이 – 박원순 지음, 한겨레출판사 (2010)
마을이 학교다, 함께 돌보고 배우는 교육공동체 – 박원순의 희망 찾기 2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10)
마을 회사,공동체를 살리는 대안 경제 – 박원순의 희망 찾기 3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11)
마을 생태가 답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생활문화 공동체 – 박원순의 희망 찾기 4 – 박원순 지음, 검둥소 (2011)
박원순의 아름다운 가치사전 – 박원순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1)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의 로마인 이야기 로마 천년 제국을 이룬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 박원순 지음, 석세스티브이 (2011)
올리버는 어떻게 세상을 요리할까 –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의 영국 사회혁신 리포트 – 박원순 지음, 이매진 (2011)
희망을 걷다 – 박원순의 백두대간 종주기 – 박원순 지음, 하루헌 (2013)
정치의 즐거움 – 오연호가 묻고 박원순이 답하다 – 박원순,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2013)
박원순의 어린이를 위한 응원 – 권경률, 박원순, 엄윤숙 지음, 생각을담는어린이, (2015)
경청 – 박원순의 대한민국 소통 프로젝트 – 박원순 지음, 서울시청 사진, 휴먼큐브 (2014)
원순씨, 배낭 메고 어디가세요? –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한 새로운 선거 이야기 – 박원순, 하승창 공저 (2015)
박원순과 도올, 국가를 말하다 – 도올 김용옥, 박원순, 지승호 지음, 통나무 (2016)
국민에게만 아부하겠습니다 –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박원순의 말과 생각 – 박원순, 김홍국 지음, 더봄 (2016)
박원순, 생각의 출마 – 나라다운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정책과 비전 – 박원순 지음, 더봄 (2017)
몰라서 물어본다 – 박원순의 퇴근길 청춘수업 – 박원순 지음, 행복한책읽기 (2018)
한국 경제규칙 바꾸기(Rewriting the Rules of the Korean Economy) – 박원순, 전병유 지음, 서울연구원 (2018)

.논문
일본 전쟁 범죄 처벌, 지금도 가능한가: 1993년
동경전범재판, 그 능욕과 망각의 역사: 1994년
세계 각국은 과거사를 어떻게 처벌했는가: 1995년
부패방지의 제도적 개혁방안: 1997년
한국시민사회의 제도적 개혁과제: 1998년
도쿄역사여성법정 참가기: 2000년
비영리단체의 재정 투명성: 2004년
.타인 저작
우유곽 대학을 빌려 드립니다. (세계적인 명사 28인의 명강의) – 강우현, 이길여, 안성기, 박원순 외 지음, 21세기북스 (2010)
청소년을 위한 박원순의 가상 콘서트 – 박원순의 응원 – 원순씨 청소년에 답하다 – 권경률 지음, 폴머 (2012)
박원순의 서재 – 박원순 책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찾다 – 권안 지음, 푸른영토 (2013)
박원순이 걷는 길 – 임대식 지음, 한길사 (2015)
W캠프의 비밀 – 서울시장 3선, 박원순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 이인수 지음, 21세기북스 (2018)
박원순 죽이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황세연 지음, 중원문화 (2020)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 이일영 , 이인미 , 이재경 , 도이 , 황인혁 지음, 지식공작소 (2020)
비극의 탄생 – 50인의 증언으로 새롭게 밝히는 박원순 사건의 진상 – 손병관 지음, 왕의서재 (2021)
박원순은 살아있다 – 흑서, 잃어버린 9년에 대한 서울시정 평가 – 나연준 , 여명 , 우성용 , 이순호 , 이옥남 , 이종원 , 주한규 , 허현준 , 김재원 지음, 글통 (2021)
서울을 바꾸다(혁신가 박원순의 도시혁명 10년) – 서왕준, 김수현, 김영준, 김용창, 윤순진, 이태수, 정선애, 유창복, 이창현 지음, 비타베이타 (2021)
서울10년혁명(박원순 서울시정 10년 기록) – 혁신네트워크디딤 지음, 해피스토리 (2021)
박원순을 기억하다 – 벗들의 기억으로 그려낸 인간 박원순 이야기, 유석인 외 20명 지음, 메디치미디어 (2022)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