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년 5월 10일, 로마제국의 35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Claudius Gothicus, 210 ~ 270) 출생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Claudius Gothicus, 210년 5월 10일 ~ 270년 7월)는 로마 35대 황제 (재위: 268년 ~ 270년)로 로마 통치 기간 동안 알레만니에 대항해 성공적으로 싸웠고 고트족과의 나이소스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고트족에 대한 승리 덕분에 그는 고트족의 정복자라는 의미의 “고티쿠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Claudius Gothicus)
.휘: Marcus Aurelius Valerius Claudius Augustus)
.출생: 210년 5월 10일
.사망: 270년 7월
.부모: 부) 고르디아누스 2세
.종교: 로마 이교
*로마 35대 황제
.재위: 268년 ~ 270년
.전임: 갈리에누스 / 후임: 퀸틸루스
로마 제국의 제35대 황제. 3~4세기 동안 등장한 일리리아 출신 로마인 황제 계보 중 첫 번째 황제로, 이전의 데키우스,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의 데키우스 왕조, 발레리아누스, 갈리에누스의 리키니우스 왕조 (발레리아누스 왕조)를 부정하고 고르디아누스 1세를 시작으로 하는 고르디아누스 왕조의 중건자로 서술되는 경우가 있다.
후대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콘스탄티누스 왕조에게 혈통적 정통성의 시작으로 칭송받은 인물로, 여러 고대기록에 따르면 “로마화된 야만족” 출신이다.
임페라토르로 즉위하기 전까지 발레리아누스와 갈리에누스 아래에서 로마군 중요 지휘관직을 역임했으며, 즉위 이후에도 오늘날 유럽 동부, 중부 지역의 게르만족들의 위협 속에서 로마의 영토와 문화를 유지하고자 노력했던 진정한 로마인 중 한명으로 칭송받았다. 그는 갈리에누스가 밀라노 포위 공격 당시 부하의 배신으로 268년 9월 암살된 직후, 이탈리아 파비아에서 예비병력을 모아 아우레올루스 등 반란자들을 제압했다. 이때 그는 병사들과 원로원의 추대로 황제에 즉위했으며, 이후에도 반역자들을 토벌하고 알레만니족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그는 269년 나이수스 전투에서 다뉴브 강을 건너 로마 제국을 크게 위협한 고트족을 섬멸해 ‘고트족을 정복한 자’라는 의미로 고티쿠스 (Gothicus)라는 존칭이 붙었다. 그러나 고트족 섬멸 직후, 고트족 군대에서 처음 발생한 전염병에 걸려 재위 2년 만에 시르미움에서 병사했다.

○ 생애 및 활동
클라우디우스의 기원은 일리리아이며, 210년 5월 10일 태어났다.
1세기의 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와 동명이인이다. 혈연관계가 있는 후손은 아니고 같은 성과 이름을 사용하는 다른사람이다.
3세기쯤 가면 로마의 명문가 (제정 이전 공화정 시기의 가문이나 황제들의 출신가문) 이름인 리키니우스, 율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플라비우스 등을 너도 나도 썼기 때문에 1세기의 클라우디우스와는 혈연적 연관이 없으며 상류층 귀족도 아니다 (심한 경우는 공화정 초기나 왕정시대의 가문으로 제정 이후 사라진 가문의 이름까지 자기 이름에 이어 붙이는 이도 존재했다). 그래서 한 때는 오히려 공화정시대나 제정시대 초기에 야만족이었던 사람의 후손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막시미누스 트락스와 필리푸스 아라부스가 트라키아 촌놈, 아라비아 촌놈이라는 비칭을 받은 것과는 달리 클라우디우스의 이름에 붙은 고티쿠스는 발칸반도로 쳐들어온 고트족을 나이수스에서 물리쳤기에 시민들과 원로원에서 부여한 것으로 존칭 고티쿠스를 얻는다 (게르마니쿠스 처럼).
그래서 여러 군인 황제 시대의 다른 황제들에 비해 평가가 좋아서 후에 콘스탄티누스가 후손을 자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즉위 당시는 이미 제노비아의 팔미라 제국과 포스투무스의 갈리아 제국으로 나뉜 상태서 제위를 받았기 때문에 제국의 중앙에서만 황제로 인정을 받았다. 이러한 삼분된 제국은 후임 황제인 아우렐리아우스 때서야 통일될 수 있었다. 또한 아우레올루스의 반란을 진압했으나 반달족에 대한 군사 작전을 준비하다가 로마 제국의 여러 지역들을 무너뜨린 전염병으로 270년 7월에 사망하였다. 반달족과의 전쟁을 준비하던 도중 전염병으로 병사한 것이다.
군인 황제 시대 타키투스와 함께 유이하게 다른 황제들처럼 암살당하거나 전쟁터에서 전사하지 않고 자연사 (병사)하였다.
클라우디우스가 사망한 후 원로원은 퀸틸루스를 황제로 추대했지만 군대는 아우렐리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두 황제는 제국의 재위를 놓고 대립했으나 곧 퀸틸루스가 사망하고 아우렐리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유일한 황제가 되었다.

○ 기타
– 성 발렌티노와 클라우디우스
5세기 또는 6세기에 출판된 ‘Passio Marii et Marthae’에 따르면, 성 발렌티노가 269년 2월 14일 클라우디우스 황제에 의해 순교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발렌티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었을 때 자신을 감시하는 관리의 양녀가 맹인이라는 걸 알고 이를 치료해주자 관리와 그의 가족이 전부 그리스도교로 개종했고, 이 소식을 들은 클라우디우스는 발렌티노를 참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학계는 발렌티노가 실존 인물인지 조차 분명하지 않으며 클라우디우스가 기독교 신자들을 박해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본다.
– 고르디아누스 가문의 사생아?
4세기 라틴어 사서 <황제의 전형 (에피토메 데 카이사리부스)>는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고르디아누스 2세의 사생아로, 고르디아누스 1세의 손자이자 고르디아누스 3세의 사촌이며 법적 형제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 저서 내용은 거짓이다. 이 주장에 대해 올리비에 헥스터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갈리에누스 일가를 멸족시킨 사실상 장본인이 클라우디우스 2세이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취약한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하고자 고향에서 큰 공을 세운 클라우디우스 2세와 자신을 연결지었음을 지적한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