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택 목사의 신학논단 : 천로역정강해 (제14강의, 마지막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다”
존 파이퍼 (John Piper, 1946 – )는 미국의 복음주의 목회자이자 신학자이며, Desiring God 사역을 설립하였다. 그는 「To Live Upon God That Is Invisible: Suffering and Service in the Life of John Bunyan」에서 존 번연의 생애와 사역을 단순한 위인전적 관점에서 다루지 않고, 고난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간 한 순례자의 신앙으로 해석한다. 파이퍼가 주목하는 핵심 표현은 번연 자신의 고백인 “to live upon God that is invisible,”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 것”이다.
번연은 고린도후서 1장 9절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바르게 고난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아내, 자녀, 건강을 비롯하여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이어 그가 붙든 두 번째 원칙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 것”이었다 (Bunyan 1962, §§325–326; Piper 1999). 번연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이 성경 말씀을 통하여 나는, 내가 만일 바르게 고난을 받으려 한다면, 먼저 이 세상 삶에 속한 모든 것, 곧 내 자신과 내 아내, 내 자녀들, 내 건강, 내 즐거움, 그리고 모든 것을 나에게는 죽은 것으로 여기고, 나 또한 그것들에게 죽은 자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둘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어 바울의 말씀을 따라, 낙심하지 않는 길은 “보이는 것을 바라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백은 번연의 투옥과 고난, 목회와 글쓰기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의 신앙은 고난을 피하는 데 있지 않았으며, 보이는 안전과 자유가 흔들릴 때에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데 있었다. 이러한 신앙적 태도는 이후 『천로역정』에 나타나는 순례자의 삶과도 깊이 연결된다.
존 번연은 1628년 11월 30일 영국 베드퍼드 근처 엘스토에서 태어났다. 그의 시대는 종교적 평온의 시대가 아니었다. 찰스 1세, 윌리엄 로드 주교, 청교도 개혁 운동, 의회와 왕권의 충돌, 올리버 크롬웰의 등장, 내전, 왕정복고가 이어진 격변의 시대였다. 번연의 고난은 개인적 기질이나 우연한 사건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는 영국 국교회의 통제와 청교도 운동과 영국 정부로부터 심한 탄합정책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살았다. 1660년 찰스 2세가 왕정복고로 돌아온 바로 그해, 번연은 국가의 허가 없이 설교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1662년 통일령은 기도서와 감독제 안수를 요구했고, 그 결과 약 2천 명의 청교도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쫓겨났다. 번연의 감옥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양심과 국가 권력, 복음 선포와 종교 통제 사이의 충돌 현장이었다.
그러나 번연의 고난은 정치적 박해에서만 시작되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상실을 경험했다. 열다섯 살 때 어머니와 누이를 한 달 사이에 잃었고, 곧이어 아버지의 재혼을 보았다. 십대의 슬픔 한가운데서 그는 의회군에 징집되었다. 한때 그의 대신 보초를 섰던 사람이 총탄에 맞아 죽는 사건도 겪었다. 청년 번연은 경건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저주, 거짓말, 신성모독, 불경건에서 또래들 가운데 앞장섰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셨다.
그의 회심 과정은 짧고 평온하지 않았다. 첫 아내가 결혼 생활 속으로 가져온 두 권의 경건 서적, 곧 『평범한 사람의 천국 가는 길』과 『경건의 실천』은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성경을 읽으면서도 평안을 얻지 못했다. 하나님의 존재, 성경의 진리, 그리스도의 구원, 자기 영혼의 상태에 대해 깊은 의심과 두려움을 겪었다. 그에게 결정적 전환점이 된 것은 “너의 의는 하늘에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번연은 자신의 의가 자기 마음의 상태나 감정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복음적 확신에 이르렀다. 이 순간 그의 사슬은 마음속에서 먼저 풀렸다.
1655년, 그의 영혼의 문제가 정리되었을 때, 교회는 그에게 권면의 말을 부탁했다. 그때 한 설교자가 태어났다. 그는 정식 목사 허가를 받기 전부터 강력한 평신도 설교자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땜장이가 설교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백 명씩 몰려왔다. 17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청교도 (Puritan) 신학자, 목회자, 성경 해석자이며, 잉글랜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개혁주의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존번연을 평가한 말이 있다. 전승에 따르면, John Owen (1616 – 1638)은 Charles II가 왜 학식있는 신학자인 자신이 “교육받지 못한 땜장이” Bunyan의 설교를 들으러 가느냐고 묻자, “그 땜장이가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내 모든 학문과도 바꾸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Piper, “To Live Upon God That Is Invisible” xix). 번연의 설교 능력은 대학 학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상한 양심, 성경의 깊은 체험, 그리고 고난 속에서 얻은 복음의 실제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Bunyan의 삶은 실제로 억압과 감옥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말하는 “짐,” “좁은 길,” “유혹,” “싸움,” “순례,” “천성”은 추상적 상징만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서 길어 올린 신앙의 언어이다. 그는 제도적 권력 앞에서 자신의 양심을 포기하지 않았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을 잃지 않았다.
그의 시대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시대였다. 설교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정치적 위험을 가진 행위가 될 수 있었다. 국가가 어떤 예배를 허용하고 어떤 설교를 금지할 것인가를 결정하던 시대에, Bunyan은 “하나님 앞에서의 양심”을 지키려 했다. 이러한 배경은 『천로역정』을 단순한 개인 영성의 책이 아니라, 양심의 자유와 신앙의 충성, 권력 앞에서의 순례자적 증언의 책으로 읽게 한다.
번연의 생애에서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번연을 빼놓을 수 없다. 첫 아내가 죽은 뒤, 번연은 네 자녀, 그중 하나는 앞을 보지 못하는 딸 메리를 남겨 둔 채 홀아비가 되었다. 그는 엘리자베스와 재혼했지만, 이듬해 체포되었다. 엘리자베스는 임신 중에 충격으로 유산했고, 이후 12년 동안 홀로 아이들을 돌보며 남편의 석방을 위해 싸웠다. 그녀가 재판관들 앞에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아무것도 설교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장면은 번연의 신앙이 가족의 고난 속에서도 함께 증언되었음을 보여 준다. 번연은 설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유보다 깨끗한 양심을 택했다. 그 결정은 영웅적이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아내와 자녀들과의 이별을 “뼈에서 살을 떼어내는 것” 같다고 표현했고, 특히 눈먼 딸 메리를 생각할 때 마음이 부서졌다고 고백했다.
파이퍼는 번연의 고난이 다섯 가지 열매를 맺었다고 본다.
첫째, 고난은 그를 고난받는 교회를 위한 작가로 세웠다. 『천로역정』은 감옥의 책이다. 조지 휫필드는 그 책에서 “감옥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번연은 감옥에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감옥에서 교회를 섬기는 언어를 얻었다. 그의 글은 단순한 문학이 아니라, 박해받는 성도들이 하늘 도성을 향해 걸어가도록 돕는 목회적 지도였다.
둘째, 고난은 그의 양 떼를 향한 사랑을 깊게 했다. 그는 자신이 순교하는 일이 교회를 깨우고 진리 안에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의 목회는 성공주의적 확장이 아니라, 작은 베드퍼드 공동체를 끝까지 사랑하는 신실함이었다. 여기서 “베드퍼드 공동체” (Bedford congregation)는 존 기포드 (John Gifford)가 이끌던 베드퍼드의 비국교도 독립교회 공동체를 가리킨다. 번연은 1650년대 초 이 공동체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였고, 1655년 정식 회원이 되어 설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공동체는 특정 교파적 경계를 엄격하게 적용하기보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중심으로 교제하는 비교적 개방적인 공동체였으며, 번연은 1671년 목회자로 선출되었다.
셋째, 고난은 그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바람을 등지고 걷는 길이 아니라, 얼굴을 향해 불어오는 맞바람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번연에게 구원은 값싼 낙관주의가 아니었다. 은혜로 구원받지만, 그 은혜는 사람을 좁은 문으로 부르고 끝까지 견디게 한다.
넷째, 고난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확신을 깊게 했다. 번연은 고난이 원수들의 뜻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안에 있다고 믿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고난받는가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확신은 그에게 체념이 아니라 평안을 주었다. 이것은 복수심을 이기게 하고, 원수까지도 불쌍히 여기게 하는 신앙이었다.
다섯째, 고난은 성경에 대한 그의 확신을 더욱 깊게 했다. 번연은 감옥에서 이전보다 더 깊이 말씀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하늘 문을 여는 열쇠로 보았다.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의심의 성 감옥 안에서 “약속”이라는 열쇠를 기억해 내는 장면은 바로 번연 자신의 영적 체험을 반영한다. 그 열쇠는 손에만 있지 않고 “가슴”에 있었다.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이 감옥에서도 자유를 얻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스펄전은 번연을 두고, 어디를 찔러도 그의 피는 성경으로 흐른다고 말했다. 그의 문체는 학문적 장식보다 성경적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존 번연은 1672년 출옥한 뒤 베드퍼드 공동체의 목회자로 사역했고, 정식 설교 허가도 받았다. 그는 베드퍼드에만 머물지 않고 레스터를 비롯하여 베드퍼드셔, 허트퍼드셔, 케임브리지셔, 서리, 런던 등 여러 지역을 다니며 설교하고 다른 비국교도 공동체들을 방문했다. 이러한 광범위한 사역 때문에 후에는 ”Bishop Bunyan”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1688년 8월, 번연은 런던으로 가서 설교하고, 한 교인과 그의 아버지 사이의 화해를 돕는 일을 했다. 그 사명을 마친 뒤 그는 심한 비를 맞고 병들었고, 8월 31일 예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순례자처럼 멸망의 도시를 떠나 강을 건너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의 마지막 말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는 권면이었다. 그는 가난하게 태어났고 부자로 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 영적 지도를 남겼다. 존 파이퍼의 글에 따르면, 존 번연이 마지막으로 강단에서 남긴 말은 이것이다. “Live like the children of God, that you may look your Father in the face with comfort another day.”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그리하면 장차 그날에 위로와 담대함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파이퍼에 따르면 번연의 마지막 설교는 1688년 8월 19일 런던 화이트채플에서 요한복음 1장 13절을 본문으로 한 설교였다. 그 후 그는 병들었고, 1688년 8월 31일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천로역정』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알레고리를 너무 빨리 교리적 의미로만 환원하지 않는 것이다. 참고문헌에서 소개한 같은책의 서문에서 릴랜드 라이큰 (Leland Ryken, 1942 – )은 『천로역정』의 알레고리적 성격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로역정』의 알레고리적 성격을 다루는 데에는 바른 방식과 잘못된 방식이 있다. 잘못된 방식은 종교적 의미가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이유로 문자적이고 물리적인 이야기의 차원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바른 방식은 이 작품이 지닌 이야기의 힘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그 이야기 경험 속에서 두 번째 차원의 이해가 자연스럽게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천로역정에서 “실망케하는거인” (Giant Despair)는 먼저 우리의 상상 속에서 실제로 두려운 거인으로 느껴져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그는 심리적이고 신학적인 현실을 보여 주는 상징이 된다 (Leland Ryken, “Introduction,” in John Bunyan, The Pilgrim’s Progress, Minneapolis: Desiring God, 2014 PDF. 서론 P. v.). 이 말은 『천로역정』을 단순히 “이것은 저것을 뜻한다”는 방식으로 기계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먼저 독자는 이야기 자체를 생생하게 경험해야 한다. Giant Despair는 처음부터 추상적인 “절망”이라는 개념으로만 읽히기보다, 먼저 순례자를 위협하고 가두는 무서운 거인으로 상상되어야 한다. 그 후에야 그는 인간이 경험하는 심리적 절망과 신학적 어둠을 상징하는 존재로 더 깊이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알레고리는 상징 해석을 요구하지만, 그 상징은 문학적 상상력과 이야기의 생생한 경험을 통과할 때 비로소 신학적 깊이를 얻게 된다.
찬송가 “나같은 죄인 살리신 (Amazing grace)” 저작자 존 뉴턴 (Newton, John)은 1776년 재출판된 『천로역정』 서문에서 이 책을 그리스도인의 신앙 여정을 보여 주는 “지도”라고 평가했다. 그 지도는 매우 정교하게 그려져 있어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사건들 속에서도 『천로역정』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면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이 세상에서, 번연은 순례자의 길을 그려 주었다. 그러므로 존 번연의 생애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한 작가의 과거를 연구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고난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지, 어떻게 말씀을 붙들 것인지, 어떻게 교회를 사랑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끝까지 하늘 도성을 향해 걸어갈 것인지를 배우는 일이다 (John Newton, “Preface,” in John Bunyan, The Pilgrim’s Progress 1776; repr., Desiring God, 2014).

.현재까지의 영향
『천로역정』은 1678년 출판 이후 거의 끊임없이 읽혀 왔다. 이 책은 기독교 경건 문학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영문학의 중요한 알레고리 작품으로 평가된다. 단순한 문체, 강력한 상징, 극적인 이야기 구조 때문에 어린이와 성인, 평신도와 목회자, 문학 독자와 신학 독자 모두에게 영향을 주었다.
『천로역정』의 영향은 영국을 넘어 세계로 확장되었다. 이 책은 Bunyan 생전에도 이미 다른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했고, 이후 여러 세기를 거치며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Bunyan400에 따르면 『The Pilgrim’s Progress』는 Bunyan 생전에 Welsh와 Dutch로 번역되었고, 이후 약 30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것은 『천로역정』이 단지 영국 청교도 문학에 머물지 않고, 세계 기독교의 순례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 『천로역정』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현대인은 Bunyan의 시대와 다른 방식으로 살지만, 여전히 불안, 죄책, 상실, 유혹, 정체성의 혼란, 공동체에 대한 갈망을 경험한다. 그래서 『천로역정』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짐을 지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도시를 떠나야 하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삶을 해석하고, 어떤 공동체 안에서 회복되며, 어떤 유혹 앞에서 신실하게 서야 하는가?
Bunyan의 생애와 『천로역정』의 역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준다. 참된 신앙의 이야기는 감옥 안에서도 쓰일 수 있고, 억압의 시대에도 자유를 말할 수 있으며, 한 평범한 사람의 양심에서 시작되어 세계 교회의 고전이 될 수 있다. 『천로역정』이 오늘까지 읽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종교 문학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해 길 위에 선 인간의 깊은 현실을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순례의 이야기이다. 번연의 『천로역정』은 단지 과거 청교도 작가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번연이 고난 속에서 발견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 것” (Bunyan 1962, §§325–326)은 오늘의 독자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고백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표현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보이는 것을 잃어버릴 때에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번연의 고난과 신앙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순례자의 삶에도 계속해서 제기되는 신학적 질문이다.
존 번연 역사 연대기
| 연도 | Bunyan의 생애와 작품 | 영국의 역사적 배경 |
| 1628 | John Bunyan, Elstow 근처에서 출생 | Stuart 왕조 시대. 국교회와 청교도 사이의 긴장이 커짐 |
| 1642 | Bunyan은 청소년기 | 영국 내전 시작 |
| 1644 | Bunyan, 의회파 군대에 참여 | 왕당파와 의회파의 충돌 격화 |
| 1649 | Charles I 처형 | 영국 공화정 시작 |
| 1653 | Bunyan, Bedford의 비국교도 공동체와 연결 | 국교회 밖 신앙 운동 활발 |
| 1656 | Bunyan, 공적 설교 시작 | 비국교도 설교자들의 활동 증가 |
| 1660 | Bunyan 체포 및 투옥 | Charles II 왕정복고. 비국교도 탄압 시작 |
| 1662 | Bunyan 수감 중 | Act of Uniformity 시행 |
| 1664 | Bunyan 수감 중 | Conventicle Act 시행 |
| 1665 | Bunyan 수감 중 | Five Mile Act 시행 |
| 1666 | 『Grace Abounding to the Chief of Sinners』 출판 | 런던 대화재. 사회적 불안 심화 |
| 1672 | Bunyan 석방, Bedford 공동체 목회 | 일시적 관용 분위기 확대 |
| 1675–1677 | Bunyan 재투옥 또는 짧은 투옥 시기 | 비국교도 압박 지속 |
| 1678 | 『The Pilgrim’s Progress』 제1부 출판 | 청교도·비국교도 경건 문학 확산 |
| 1682 | 『The Holy War』 출판 | 정치적·종교적 긴장 지속 |
| 1684 | 『The Pilgrim’s Progress』 제2부 출판 | 『천로역정』의 영향 확대 |
| 1688 | Bunyan 사망 | Glorious Revolution 발생 |
| 1689 | Bunyan 사후 | Toleration Act로 일부 비국교도에게 예배 자유 확대 |
Reference
참조 : Desiring God. PDF (2014). Edition. Bunyan, John. The Pilgrim’s Progress. Minneapolis: the PDF pagination.
https://document.desiringgod.org/the-pilgrim-s-progress-en.pdf?ts=1446648353 1/7/2026.
존 번연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참고 문서들
John Bunyan Society, “Introducing Bunyan” and “John Bunyan Chronology.” John Bunyan Society는 Bunyan이 1628년 Elstow 근처에서 태어났으며, 평범한 장인의 가정 출신이었음을 설명한다.
Bunyan, John. 1962. Grace Abounding to the Chief of Sinners. Edited by Roger Sharrock. Oxford: Clarendon Press.
Christian History Institute, “John Bunyan and Pilgrim’s Progress Timeline.” 이 연표는 Bunyan이 1644년 의회파 군대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Britain Express, “The Clarendon Code, 1661–1665”; EBSCO, “Clarendon Code”; UK Parliament, “Act of Uniformity 1662.” Clarendon Code는 Corporation Act, Act of Uniformity, Conventicle Act, Five Mile Act를 포함하며, 왕정복고 이후 비국교도들의 예배와 공적 활동을 제한하였다.
Christian History Institute, “John Bunyan and Pilgrim’s Progress Timeline”; Bunyan Meeting Museum, “About John Bunyan.” 두 자료는 Bunyan이 1660년부터 1672년까지 설교 문제로 투옥되었음을 설명한다.
Bunyan Meeting Museum, “About John Bunyan.” 이 자료는 Bunyan이 감옥에서 『Grace Abounding to the Chief of Sinners』를 썼고, 『The Pilgrim’s Progress』도 감옥에서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John Bunyan Society, “John Bunyan Chronology”; Bunyan400, “More about The Pilgrim’s Progress.” 두 자료는 『The Pilgrim’s Progress』 제1부가 1678년에 출판되었음을 제시한다.
Bunyan Meeting Museum, “About John Bunyan.” 이 자료는 『The Pilgrim’s Progress』 제2부가 1684년에 출판되었고, Christiana의 여정을 다룬다고 설명한다.
Bunyan400, “The Pilgrim’s Progress in Translation.” Bunyan400은 『The Pilgrim’s Progress』가 Bunyan 생전에 Welsh와 Dutch로 번역되었고, 이후 여러 세기를 거치며 약 30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설명한다.
Piper, John. To Live Upon God That Is Invisible, Suffering and Service in the Life of John Bunyan, 1999 Bethlehem Conference for Pastorshttps://www.desiringgod.org/messages/to-live-upon-god-that-is-invisible?utm_source=chatgpt.com
Piper, John. The Hidden Smile of God: The Fruit of Affliction in the Lives of John Bunyan, William Cowper, and David Brainerd. https://document.desiringgod.org/the-hidden-smile-of-god-en.pdf?ts=1439242055&utm_source=chatgpt.com

이상택 목사
(아이오나 콜럼바 대학 학장, 신학과 실천신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