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한국 위안부 문제는 세계 여성의 문제’로 인식해야
세계 여성의 자유와 인권, 참정권과 경력단절 등 각 사안 구체적으로 다뤄야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에서 시작되어 올해로 106주년을 맞이하는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은 여성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업적을 범세계적으로 기리는 날이다.
여성 수난의 시대_교회법이나 관습법으로 용인된 아내 구타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시대는 영국의 최전성기 시대로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 경제를 이끌고 선진 의회민주주의 제도를 꽃피웠다. 여자가 최고 권력을 쥐고 흔든 나라에서 남편이 아내를 파는 관행이 성행했던 것은 아이너리컬한 일이다. 여성들은 목에 고삐가 매인 채로 시장에 끌려나와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사람에게 낙찰됐다. 어떤 남자는 맥주한 잔이나 담배 한 갑에 아내를 팔아치우기도 했다. 이 악습은 1533년 처음 기록에 나타난 이래 300여년 동안이나 지속됐다. 많은 서양국가들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남편이 아내를 ‘훈육’하기 위해 구타하는 것을 용인했다. 교회법이나 관습법으로 “매를 사용할 경우 엄지손가락 굵기보다 두꺼운 막대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까지 정한 나라도 있었다. 뉴잉글랜드 지역 식민지에서는 1641년에 아내 구타가 금지됐으나 영국 본토에서는 1891년에야 아내에게 벌을 내리는 남편의 권한이 폐지됐다. 역사 이래 오랜 세월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거나 종속물이었다.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도 여자는 열등한 존재라고 역설했다. 혹독한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들은 노예처럼 팔리고 학대받았다. 중국에서 성행한 전족, 서양에서 유행한 코르셋은 여성을 단순히 성의 도구로 취급한 당대인들의 의식을 보여주는 사례다.
여성의 권리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20세기가 다 돼서였다. 1857년과 1908년 3월 8일 미국이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건 개선과 여성의 지위 향상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특히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기념해 1975년 유엔에 의해 ‘세계 여성의 날’이 공식 지정되었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1만 5천여 여성 노동자들은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당시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은 먼지 자욱한 현장에서 하루 12-14시간씩 일해야 했으나, 여성들에게는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굶지 않기 위해 일하면서도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아야 했던 것이다. 이날 전 의류노동자들의 시위는 1910년 ‘의류노동자연합’이라는 조직을 탄생시켰고, 같은 해 1910년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클라제(Clara Zetkin)의 제창으로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선정하여, 1911년부터 세계 곳곳에서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펼쳐오고 있다. 매년 3월 8일이면 세계 곳곳에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리는 행사들이 열린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은 뉴욕시의 거리에 나와 저임금 및 비인간적인 작업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들의 첫 시도는 공권력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그 후 자신들의 기본권을 획득하고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여성들의 시도는 전 세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국제사회주의자대회에서 국제적인 성격을 띤 ‘여성의 날’을 지정하는 안이 17개국에서 모인 100여명의 여성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만장일치로 결의되었으나, 구체적으로 언제 그 날을 기념할 것인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이듬해인 1911년 3월 19일 백만이 넘는 남성과 여성들이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스위스에서 여성의 참정권과 노동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세계 1차 대전의 참화 속에서 희생된 2백만이 넘는 러시아 군인들을 위해, 러시아 여성들은 1917년 2월의 마지막 일요일 ‘빵과 평화’를 위한 시위를 벌였으며 이로부터 4일 후, 러시아 황제는 폐위되었으며 임시 정부는 여성들의 참정권을 보장했다. 이 날이 바로 율리우스력으로 2월 23일, 전 세계 다른 곳에서 쓰이는 그레고리안력으로 3월 8일이었다.
1975년 국제연합(UN)은 그 해를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였으며, 첫 세계여성회의를 멕시코시티에서 개최하였다. 1977년 12월 UN총회는 여성의 권리와 국제 평화를 위한 UN의 날을 지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향후 덴마크 코펜하겐(1980), 케냐 나이로비(1985), 중국 북경(1995)에서 열렸던 세계여성회의는 여성의 권리를 증진시키고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을 확대하는 데에 많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여성인권의 사각지대_WEF보고서 중동국가 여성인권 ‘모두 100위권 밖’
사우디아라비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이슬람계 중동권 여성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난해 2013년 10월 25일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의 ‘2012 세계 성차별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이슬람계 중동권 국가 14개국 중 여성 인권 수준이 100위권 안에 포함된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136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예멘이 136위로 꼴찌를 차지했으며, 시리아가 133위, 레바논 123위, 오만 122위 등을 기록했다. 중동권에서 가장 순위가 높았던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109위에 그쳤다. 최악의 여성인권국은 예멘이다. 지난해 10월 15세 소녀가 약혼자와 전화 통화를 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정도다. 예멘에서는 혼인 전 남자와 접촉하는 것이 금기시되는데, 소녀가 전화 통화를 함으로써 가문을 욕보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비정한 아버지는 명예살인의 일환으로 자신의 딸을 불에 태워 살해했고, 사건 후 곧 경찰에 붙잡혔지만 1년 미만의 징역이나 벌금형을 선고 받게 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적 공분을 샀다. 또한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예멘에서는 여성의 결혼 의사조차 존중되지 않아 어린 소녀들에게 조혼이 강요되고 있다. 여성 가운데 52%는 18세 이전에 각각 결혼하고 15세 이전 결혼도 14%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9월에는 하자주 메디 지역에서 8세 소녀가 40대 남성과 결혼한 뒤 첫날밤 성관계에 따른 내부 출혈과 장기 손상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내전이 한창일때 시리아에서는 더욱 참혹한 형태의 여성 인권 유린이 발생했다. 시리아 반군들은 ‘지하드 알니카’(성을 통한 전투)라는 명분으로 이슬람 여성들을 교전지역으로 끌어들여 위안부 형태로 동원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세계 여성의 자유와 인권, 참정권과 경력단절 등 다뤄야 할 부분들이 산적한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한국적인 정서에서 무엇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수 십년 집회와 의지표현과 전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현재진행형의 사안이다.
위안부 여성이라는 억울함 속에 한 평생을 살아온 여성분들이 한국내 50여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억울함을 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들은 지난 23년간 한 주도 빠짐없이 집회를 열었다. 포기할 줄 모르는 그분들의 열정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정부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가 먼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지만 일본은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연행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수정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에 일본의 후안무치한 태도에 분노하고 분개하며,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이나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 여성들과 인류의 자유와 인권의 이름으로 연대해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