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년 10월 3일,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 (Theodosius I, 347 ~ 395)가 서고트족과 평화 협정 (포이데라티) 맺고 제국영내 발칸 반도에 정주 허락
378년 황제에 즉위한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시조이며 동서 양대 로마제국의 마지막 단독 황제테오도시우스 1세 (Theodosius I, 347년 1월 11일 ~ 395년 1월 17일)는 뛰어난 정치적, 군사적 수완을 발휘하여 4세기 말의 정치 안정에 기여했다. 그의 공적으로는 야만족에 대한 군사적인 승리를 들 수 있다. 그는 유능한 장군이기도 했기에 야만족의 침공에 잘 대처했다. 야만족의 침입으로 사기가 저하되고 자신감을 잃었던 로마군 병사들에게 자신감도 심어주었다. 또한 야만족의 정착을 원만하게 이끌었다.

그러나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 이후 고트족을 비롯한 야만족의 로마 제국으로의 침입은 더욱 거세어졌다. 게다가 훈족의 이동으로 발칸 반도로 밀려오는 고트족을 더 이상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테오도시우스는 그들에게 도나우 강 남쪽에 영지를 주어서 받아들이기로 결단을 내렸다.
서고트족은 도나우 강의 하류의 트라키아 북부 (오늘날의 불가리아)를, 동고트족은 도나우 강 중류의 판노니아의 동부를 정착지로 받았고 로마와 포이데라티 (라: foederati)를 맺었다. ‘포이데라티’는 공화정 로마 초기에는 조약 (foedus)으로 맺어진 군사동맹자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포이데라티에게는 속주민 (socii)과 달리 로마 시민권을 보유하지도, 로마의 지배를 받지도 않았지만 전시에는 병력을 제공할 것이 요구되었다. 90년 율리우스 법 (Lex Iulia)가 통과됨에 따라 포이데라티에게 로마 시민권이 부여되었다. 로마 제국 말기에는 포이데라티의 의미가 확장되어 로마 제국 내의 영주권을 인정받는 대가로 병력을 제공할 의무를 띠게 된 이민족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 이민족들은 보통 반달족, 프랑크족, 알라니족, 그리고 서고트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테오도시우스 1세의 고트족 승인은 이후 로마 제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로마 군단에 게르만족 병사들이 많이 들어와 로마군이 게르만화 되어 간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건실한 자영농민이 사라지고 농노로 바뀐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평화적인 게르만화’로 불리지만 이러한 게르만족의 로마 영토의 진입으로 로마 제국의 붕괴가 가속화 되는 계기가 되었다.

– 고트족의 로마제국 영내 정주와 로마의 멸망
로마와 포이데라티를 맺기 1년 전인 381년 사망한 서고트족의 뛰어난 지도자 (족장) 아타나리크 (Athanaric, 369년 ~ 381년)는 374년 훈족이 동고트족을 물리치고 서고트 진영으로 쳐들어 오자 드네스트르 강에 방어진을 쳤다. 훈족은 순식간에 서고트 방어진을 무너뜨렸다. 서고트족은 퇴각해 로마제국 국경인 다뉴브강에 이르렀다. 훈족왕 발람베르는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초원으로 돌아갔다. 얻은 영토가 넓은데다 쉬어갈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다.
서기 376년 당시 로마황제 발렌스 (Valens)는 파르티아 (이란)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 머물고 있었다. 황제는 고트족이 다뉴브강 건너편에 몰려와 살아갈 토지를 달라는 보고를 받았다. 아타나리크는 발렌스 황제에게 사절을 보내 고트족을 로마군에 합류시켜 북방을 방어할 터이니, 다뉴브 강 남쪽의 트라키아에 살 곳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발렌스는 아타나리크의 제안을 매력적으로 보았는데 첫째, 다뉴브 강을 지키는 병력이 증강된다. 둘째, 야만족의 습격으로 인구가 줄던 국경지대에 새로운 인구 유입으로 농작물 생산이 가능하게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발렌스는 트라키아 주둔 사령관에게 파발을 띄워 고트족을 트라키아에 들어오도록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376년 가을이 깊어갈 무렵, 서고트족은 다뉴브강을 건너 지금의 불가리아 땅으로 들어오게 된다. 로마제국은 앞서 프랑크족, 반달족, 앵글로족, 색슨족 등 다양한 야만족의 침공을 받았고, 방어벽이 뚤려 영내에 들어온 종족도 있었지만, 합법적으로 거주를 인정한 적이 없다.
하지만 발렌스 황제는 로마역사에 처음으로 서고트족의 영토내 진입을 합법적으로 허용했다. 그는 서고트족이 로마법을 준수하며 국경수비대 역할을 해줄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서고트족은 곧이어 로마제국에 반란을 일으키고 제국을 휘젖고 다닌다. 그들이 로마 땅에 합법적으로 들어온 지 100년만인 476년에 서로마는 멸망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