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3 ~ 1520, 4월 6일 출생하고 타계한 라파엘로 산치오 다 우르비노 (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1520)
라파엘로 산치오 다 우르비노(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년 4월 6일 ~ 1520년 4월 6일)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화가이다. 흔히 라파엘로 불린다. ‘아테네 학당’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아테네 학당’은 에피쿠로스, 피타고라스, 안티스테네스 등 고대 그리스의 학자가 학당에 모인 것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다.

– 라파엘로 산치오 다 우르비노 (Raffaello Sanzio da Urbino)
.출생: 1483년 4월 6일, 우르비노
.사망: 1520년 4월 6일, 로마
.직업: 화가, 조각가, 건축가
.스승: Giovanni Santi, Timoteo Viti, 피에트로 페루지노
.제자: Giulio Romano
.사조: 이탈리아 르네상스
.수상: 황금 박차 훈장
.부모: Giovanni Santi (부)
.동거인: Margarita Luti
.주요 작품: ‘라 포르나리나’,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의 방’ 등
라파엘로는 이탈리아 마르케 지방의 우르비노에서 태어났다. 그는 화가이자 지성인인 조반니 산티의 아들이었다. 라파엘로는 젊어서부터 조형과, 감정, 빛, 공간표현 문제까지 두루 연마하였다. 그의 천재성은 16세에 그를 대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1504년 그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있는 피렌체로 이주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였다. 1508년에 교황 율리우스2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로 간 그는 프레스코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교황청의 건축과 회화, 장식 등 미술 분야에 관한 감독 책임을 맡고 있던 라파엘로는 37세의 생일에 갑자기 죽게 된다. 그의 위대함을 알아 보고 교황 직위를 내리려 했던 추기경 레오 10세는 라파엘로가 죽자 그를 애도하며 국가 장례를 치르게 한다. 라파엘로는 로마의 판테온에 묻혔다.

○ 생애 및 활동
이탈리아 움브리아 우르비노에서 출생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고전적 예술을 완성한 3대 천재 예술가의 한 사람이다.
궁정시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11세 때 아버지마저 잃어 사제 (司祭)인 숙부 밑에서 자랐다.
시인이며 화가였던 아버지에게서 그림을 배우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동향인인 T.비테에게서 배웠고 움브리아파의 지도자인 피에트로 페루지노 (Pietro Peruggino)의 그림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다.
1500년 P. 페루지노가 완성한 페루지아 어음교환소의 벽화 중 우의상 (寓意像)은 당시 17세였던 라파엘로가 조수로서 그린 것이다.
1500년경의 작품으로 알려진 콘데미술관 (샹티유이)의 ‘삼미신’ (三美神), 내셔널갤러리 (런던)의 ‘기사의 꿈’은 청순한 색채와 감미로운 음악적 리듬이 보이며 격정이나 위대성을 강조하지 않고 부드러운 매력을 나타내려 하였다. 공간에 교차하는 화음의 물결을 민감하게 포착하는 음악적인 감각은 루브르미술관의 ‘성 미카엘’, ‘성 게오르기우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예술의 기조를 이룬다.
페루지아에 나온 후로는 페루지노풍의 최고의 기법을 급속히 익혔으며, 특히 ‘성모대관’ (바티칸미술관), ‘그리스도의 책형 (磔刑)’ (런던) ‘스포잘리치오 (성모의 결혼)’ (밀라노) 등은 페루지노 작품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공간처리나 환상적인 표현에는 그의 스승에게서 볼 수 없는 신선미를 보이고 있다.
1504년 피렌체에서 예술적 전통에 고취되면서 F. 바르톨로메오의 장대한 화면구성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암법을 배워 페루지노의 영향을 탈피하고 피렌체파(派)의 화풍으로 발전하였다. ‘도니 부처상 (夫妻像)’이나 기타 이 시기의 초상화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을 다분히 받았고, 이 시대에 가장 많이 그려진 성모자상에서도 성모의 자태나 피라미드형 구도에 있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이 뚜렷하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매장'(로마)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선의 움직임까지도 모방하였다. 그러나 그는 선인 (先人)의 기법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여 화면구성에 있어서 선의 율동적인 조화라든지 인물 태도의 고요함이나 용모의 청순함 등에는 언제나 독자성을 나타내었다.

피렌체에서 몇 년간 그림을 그린 라파엘로는 1508년 로마로 건너갔으며 1509년 로마교황 율리우스 2세를 위하여 바티칸궁전 내부에 있는 스탄체 (Stanze) 서명실 (署名室)의 벽화를 그렸다.
이곳에 천장화를 그린 후 사면의 벽면에 ‘성체의 논의’, ‘아테네의 학당’, ‘파르나소스’, ‘삼덕상’ (三德像) 등을 그렸으며 그의 탁월한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로마의 고대유적과 고전 연구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완성단계에 있던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화에서 조형적 파악법을 배워 공교한 율동적 구도를 바탕으로 고전적인 격조 높은 걸작을 이룩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무렵 교황 측근으로부터도 계속 제작의뢰를 받아 ‘어느 추기경의 초상’, ‘토마소 잉기라미의 초상’, ‘폴리뇨의 성모’와 같은 걸작을 남겼다.
당시 유명한 은행가인 아고스티노 키지의 별장 (파르네지나 궁전)을 장식하기 위한 벽화를 의뢰받은 것도 이 무렵이며 이때 제작된 그림이 그의 대표작인 ‘갈라테아의 승리’이다.
당시 이곳에서 작업 중이던 베네치아파 화가 세바스티아노 델 피온보와 알게 되어 그의 채화법 (彩畵法)을 배웠다.
이 색채묘법(色彩描法)의 변화는 1511∼1514년에 제작한 바티칸궁전의 스탄차 데 엘리오도로의 벽화 ‘헬리오도로스의 추방’, ‘볼세나의 미사’, ‘성 베드로의 해방’, ‘로마에서 격퇴당하는 아틸라’ 등에 나타나 있는데, 빛과 그늘을 양괴적 (量塊的)으로 대치시킨 명암효과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활기를 띠었다.
베네치아파적인 색채효과는 ‘율리우스 2세상 (像)’을 위시하여 ‘베일을 쓴 여인’, ‘발타사르 카스티요네상’, ‘작은 의자의 성모’ 등에 나타나 있다.

한편 건축에도 손을 대어 1514년 동향 선배인 B. L. 브라만테의 뒤를 이어 성베드로대성당 건조에 관계하였고, 1514∼1517년 바티칸궁전의 스탄차델 인첸디오의 벽화장식에도 종사하였으며, 1515년부터는 고대유적 발굴의 감독관이 되었다.
‘산시스토의 성모’ (드레스덴)는 이 무렵의 걸작으로 아카데믹한 형식주의가 싹트고 있으며 ‘산타 체칠리아'(볼로냐)에서 그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그 사이에도 키지예배당의 설계와 장식, 바티칸궁전의 로지에의 장식, 빌라마다마의 건축 등에 종사하였다.
그런데 많은 제자들을 거느린 화려한 궁정화가로서 일에 쫓기던 그의 예술은 종교개혁운동을 계기로 차차 쇠퇴하였고, 제자들과 함께 그린 파르네지나궁의 천장화 ‘프시케의 이야기’에서는 지난날의 감미로운 리듬은 사라지고 고대 조각의 영향을 조악하게 반영하여 채색한 조상 (彫像)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1518년의 ‘레오 10세의 초상’에서는 군상 (群像)을 훌륭한 솜씨로 처리하여 뛰어난 초상화가임을 증명하였다.
만년에 심혈을 기울인 ‘그리스도의 변용’ (바티칸)을 완성하지 못한 채 37세로 요절하였으나, 천상의 신비스러운 광휘와 지상의 소란을 대조시켜 S자형의 분방한 구도로 동적 표현을 시도한 이 작품은 이미 고전양식을 해체한 것으로 바로크양식의 싹이 엿보인다.
짧은 생애에 많은 걸작을 남긴 그가 미술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며, 19세기 전반까지 고전적 규범으로 받들어졌다.
피카소를 중심으로 한 현대 초기 미술을 큐비즘 (입체파)이라 하는데, 근대주의 미술의 표본적 그림이라 할 정도도 사실적인 극치가 잘 나타났다.
피카소의 그림이 다방면 입체감이 뛰어난데, 라파엘로 작품 역시 그에 못지않게 입체감이 살아 있고, 특히 원근감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환상적이다.

○ 주요 작품
.라 포르나리나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의 방
라파엘로는 37세 생일에 요절하였다. 로마의 판테온에 묻혔고, 그의 묘비에는 당대의 유명 학자이던 뱀보 추기경이 아래와 같은 묘비문을 남겼다.
“여기는 생전에 어머니 자연이 그에게 정복될까 두려워 떨게 만든 라파엘로의 무덤이다. 이제 그가 죽었으니 그와 함께 자연 또한 죽을까 두려워하노라.”

작품명 : 천사
제작년도 : 1500
작품재료 : 성당의 제단화
소장위치 : 성 아우고스티노 성당
작품설명 : 확실히 라파엘로의 작품이라고 인정되는 최초의 그림이다. 이 작품에서 그의 스승이었던 페루지노의 감미롭고 품위있는 표현의 영향을 볼 수 있으나, 라파엘로는 이 그림을 제작하기 이전에 레오나르도와 접촉이 있었고, 그의 작품을 열심히 연구한 바 있어, 작품의 고귀한 풍은 이러한 관계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작품은 1500년 12월 10일 카스텔로시의 성 아우고스티노 성당의 예배당 제단화(祭壇畵)로 제작이 의뢰된 것이나, 1789년의 지진으로 제단화는 손상되고, 그 후 남아 있는 부분이 이 그림의 <천사>이다.

작품명 : 동정녀의 즉위식
제작년도 : 1503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267x163cm
작품설명 :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페루지아에서 머물고 있었던 시대의 후기에 제작된 것이다. 특히 작품의 구도면에서 그가 영향받은 페루지노와 핀투릭키오의 흔적이 뚜렷하다. 화면이 상하로 이등분되어 각기 독립적인 구성이 돼 있고, 또한 양면이 분리될 수 없는 내용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라파엘로 고유의 표현은 지상의 많은 성자들의 개성적인 표정에 있고 정적이고 온화한 자세에서 다시 엿볼 수 있다. 그림의 주제가 어떻든 라파엘로는 항상 채색면에서 부드럽고 감미로운 색감과 색조를 나타내며 명쾌함을 주고 있다. 이 그림의 유래는 페루지아의 명문(名門)의 여인 오디의 의뢰로 당시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위하여 제작된 것이다. 1797년 프랑스 군은 이 그림을 파리로 약탈해 갔으나, 1815년에 이탈리아로 반환되어 바티칸 궁에 소장되어졌다.

작품명 : 예수의 죽음
제작년도 : 1503
작품재료 : 패널에 유채
작품크기 : 280x165cm
작품설명 : 카스텔로 시(市) 성 도메니코 성당 내의 가바리예배당을 위하여 제작된 그림이다. 본래 이 작품은 좌우로 <3인의 사자(死者)를 소생시키는 성 히어로니무스>와 <성 히어로니무스의 기적> 등 세 폭의 작품과 연결된 것이 었다. 그리스도의 책형상 밑에는 좌우로 성모와 복음서를 쓴 성 요한이 경건한 자세의 입상으로 보이고 있고, 이들 사이에는 성 히어로무스와 막달라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애통하고 있다. 이 작품은 완전한 도식적인 구도를 제시하고 있다. 십자가상이 중심이 되어, 화면을 양분하고, 똑같은 각도에 대각선을 좌우로 만들어 인물을 둘씩 배치하고 있다. 배경은 멀리 전개되고 있는 자연 풍경이 화면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맑고 밝은 하늘로 구성되어 그림에 시원한 공간성을 주고 있다.

작품명 : 어린 코퍼와 마돈나
제작년도 : 1505
작품재료 : 패널에 유채
작품크기 : 59.5x44cm
작품설명 : <오를레앙의 聖母> 작품과 연관되는 성 모자상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스럽고 다정한 모자간의 모습은 두 작품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의 성모는 생각에 잠긴 상이며, 모정의 복잡한 세계를 엿보게 한다. 인간의 본능적인 애정과 종교적인 모자간의 거리가 동시에 성모의 심정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게 된다. 라파엘로의 인물화에 상습적으로 등장되는 자연 풍경은 여기서도 배경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물화에서의 자연 풍경은 물론 가상적이고 회화적인 구성 요소이다. 그러나 이러한 화면구성은 공간성에 대한 르네상스 미술의 해석과 그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성 모자의 주제는 라파엘로의 인간적인 해석과 종교적인 해석 밑에서 특징있게 표현되고 있으며, 이에 또한 심리적인 표출까지 보게 한다.

작품명 : 동정녀의 약혼
제작년도 : 1504
작품재료 : 패널에 유채
작품크기 : 170x118cm
작품설명 : 라파엘로의 초기를 장식하고, 페루지아 시대의 최후의 걸작이라고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카스텔로 시의 성 프란체시코 성당을 위하여 당시의 명문 알바치니가의 의뢰로 제작된 것이다. 그림의 구상에 있어서나 그 구도에서도 라파엘로의 스승 페루지노가 그린 <성 베드로에 게 천국의 열쇠를 주는 그리스도>와 직결되어 있다. 이그림의 특징은 전면과 후면과의 관계를 공간 구성으로 통일시키고 있고, 공간의 원근과 넓이를 통합하고 있는 점이다. 그것은 배후에 있는 사원 건축물의 구조에 따라 그 기본선이 광장을 규제하고, 또 전면의 인물 배치도 이에 따라 이루어 지고 있다. 르네상스 미술의 공간성에 대한 엄격한 탐구가 엿보이는 그림이다.

작품명 : 삼미신
제작년도 : 1504
작품재료 : 나무판에 유화물감
작품크기 : 17cm×17cm
작품설명 : 작품 <騎士의 꿈>과 한 쌍으로 취급되고 있는 이 그림은 고대 조각 이래, 일반적으로 삼미신으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그 소재는 그리이스 신화에서 발취한 것이다. 세 여인은 각기 손에 사과를 갖고 있으며, 정숙, 청순,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인체의 표현은 유연한 곡선과 부드러운 육체감을 미묘한 색조로 나타내고 있으나, 조형적인 구체성이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러나 젊음의 생동감은 탄력있는 육체의 표출로 시사되어 있고, 우아한 분위기는 여인들의 조용한 자세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대자연이 전개되고 있는 공간에서 세 여인의 형상은 꿈이나 환상을 연상케 한다. 주제나 그리스 신화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내용이 전설적인바, 작가는 이 성격을 존중하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작품명 : 비파의 성모
제작년도 : 1507
작품재료 : 나무판에 유화물감
작품크기 : 107cm×77cm
작품설명 : 성모자 주제의 라파엘로 작품 중에서 가장 고전적인 풍미를 나타내는 그림이 방울새가 있는 이 성모자 작품이다. 우선 구도면에서 성모가 화면 중심이 되어 크게 지배하고 있고 그 좌상의 안정감이 그림의 틀을 잡아 주고 있다. 성모 앞의 두 아기는 성모와 함께 삼각형의 구도를 형성하고, 그 좌우로 자연 풍경이 넓게 전개되고 있다. 또한 이 그림은 다른 성모자화에 비해 명암의 대조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고, 명쾌한 색채보다 통일된 색감을 주로 삼고 있다. 한편 라파엘로 특기의 부드러운 선이 묘사에서 음악적인 선율을 보이며 감미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성 요한이 잡고 있는 방울새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 미술의 이론가인 바자리에 의하면, 라파엘로의 친구인 타데오 타데이를 위하여 제작한 것이라 한다

작품명 : 카르디날의 초상
제작년도 : 1512
작품재료 : 나무판에 유화물감
작품크기 : 79cm×61cm
작품설명 : 로마 체류 시기의 작품인 이 초상화는 인물의 개성적인 표현이 강력히 표출돼 있고, 귀족적인 성품이 뚜렷이 부상된 인물화로 알려져 있다. 날카로운 골상과 안면의 선, 그리고 깊은 선이 인물의 강한 성품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으로 지극히 소박한 색채를 사용하고 있는 반면에, 인물의 표정은 그 심리적인 면까지 표출시키고 있어, 라파엘로의 초상화에 대한 깊은 탐구가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한 때는 이 그림의 주인공이 줄리우스 데 메디치로 알려져 있었으나 입증된 바 없고, 오늘날에는 볼로냐 시의 대주교 알세리 추기경이라고 있다. 인물의 정적인 면과 심리적 묘사가 개입된 이 초상화는 라파엘로 미술의 성숙을 보여 주는 대표적 작품이 되고 있다

작품명 : 포리뇨의 성모
제작년도 : 1512
작품재료 : 나무판에 유화물감
작품크기 : 301cm×198cm
작품설명 : <아테네 학원>, 바티칸 궁의 대벽화 등을 완성한 후 라파엘로는 이 작품을 제작하였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비서였던 명문가의 시지스몬도 데 콘티가 성모에게 바치기 위해 이 작품이 있게 됐고, 로마의 아라카엘리 성당 제단화로 이용되었다. 대작과 여러 작품을 제작한 경력을 쌓은 라파엘로는 이 그림에서 새로운 색채를 나타낸다. 그것은 색채의 다채로움과 그 명도의 강조이다. 사람들은 이 점을 두고 작가가 베네치아 화풍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온화하고 감미로운 라파엘로의 채색 세계는 사실 여기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의 특유의 삼각형 구도는 상부의 성모를 기점으로 하부 좌우로 연결되어 형성되고 있다. 기증자인 콘티는 우측에 무릎을 꿇고 있고, 좌측에는 성 프란체스코가 같은 자세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작품명 : 성 게오르기우스와 악룡
제작년도 : 1504
작품재료 : 나무판에 유화물감
작품크기 : 28.5cm×21.5cm
작품설명 : 같은 주제의 일련의 작품이 있는데, 그 중의 일부가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성인전에서 발취한 것이다. 그는 3세기 로마의 군인이었고,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에서 악룡을 퇴치하여 왕녀를 구출하고, 이 나라를 기독교로 개종케 하였다. 그러나, 그는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를 받고 참수(斬首)되었다. 이 그림에서 보여지는 소녀는 카파도키아의 왕녀이며, 이야기의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이 작품은 서정적인 성격을 나타내었고, 또 이점이 라파엘로의 독특한 정취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은 다분히 설명적이고 또 지역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라파엘로 미술에서 특징이 되고 있는 정적인 면이 왕녀에 반영되고, 이에 동적인 성 게오르기우스로 대조되고 있다

작품명 : 성 게오르기우스와 악룡2
제작년도 : 1505
작품재료 : 나무판에 유화물감
작품크기 : 30cm×26cm
작품설명 : 같은 주제의 일련의 작품이 있는데, 그 중의 일부가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성인전에서 발취한 것이다. 그는 3세기 로마의 군인이었고,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에서 악룡을 퇴치하여 왕녀를 구출하고, 이 나라를 기독교로 개종케 하였다. 그러나 그는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를 받고 참수(斬首)되었다. 이 그림에서 보여지는 소녀는 카파도키아의 왕녀이며, 이야기의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이 작품은 서정적인 성격을 나타내었고, 또 이점이 라파엘로의 독특한 정취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은 다분히 설명적이고 또 지역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라파엘로 미술에서 특징이 되고 있는 정적인 면이 왕녀에 반영되고, 이에 동적인 성 게오르기우스로 대조되고 있다

작품명 : 성모자
제작년도 : 1505
작품재료 : 나무판에 유화물감
작품크기 : 84cm×55cm
작품설명 : 라파엘로의 성모자상은 우아하고 수려하며 자애감으로 성격화되고 있으며 이것이 전형적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은 라파엘로가 피렌체에 체류하기 시작한 초기 작품이다. 구도는 극히 단순한 형식으로 돼 있고 배경이 없는 것이 이 그림의 특징이다. 이 구성은 완전히 균형으로 형성되어 있고 한편 빛과 그늘은 미묘하게 인물의 심리로 반영하고 있다. 성모와 아기는 세속적인 정이 없는 심각하고 위엄있는 표정을 보이고 체념과 비애의 분위기를 엿보여 주고 있다. 그림은 배경이 없는 어두움에서 성모자가 부상(浮上)하듯이 명암을 대조적으로 표출하고 있으며 두 인물의 종교적 성격을 암시하여 준다. 색채의 조화와 명암으로의 색조가 인물 중심으로 되어 라파엘로의 고귀한 색채관을 감지하게 한다

작품명 : 그리스도의 매장
제작년도 : 1507
작품재료 : 나무판에 유화물감
작품크기 : 184cm×176cm
작품설명 : 이 작품의 제작 과정은 많은 밑그림과 구상이 필요하였고, 또한 완성된 성과에 대한 논리도 많았다. 이 작품을 제작할 무렵의 라파엘로의 화풍은 극히 종교적인 명상과 고귀한 정관의 경향이었음에 비하여, 이 그림은 너무나 동적이고 격정적이며, 극적인 세속성까지 표출되고 있다. 뿐만이 아니라 라파엘로 작품에서 특성이 되고 있는 구도의 통일성과 그 간결한 일체성은 여기서 찾아볼 수 없고, 사방으로 분산되는 동세로 복잡한 선을 구성하고 있다. 부드러운 음율적인 선은 여기서 찾아볼 길이 없다. 그리스도의 사체는 미켈란젤로의 < 피에타 像>을 연상시키며, 한편 기절한 성모를 떠받들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같은 작가의 <聖家族>에서 빌어온 상이라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영향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모르나, 지적된 점은 양자의 관계를 시사해 준다

작품명 : 푸른 들판의 성모
제작년도 : 1507
작품재료 : 나무판에 유화물감
작품크기 : 122cm×80cm
작품설명 : 프랑스어로 ‘라 벨라 쟈르디니에르’라 불리우는 이유는 꽃이 피고 있는 초원에 아름다운 성모가 앉은 모습을 두고 말한 것이다. 여인은 성모라 불리우기보다 청순하고 우아한 젊음의 아름다움을 상징하고 있다. 작품 <목장의 성모>에 비하면 모자의 정은 좀더 자연스럽고 서민적임을 양자의 자세와 정에 어린 눈길로 알게 된다. 라파엘로는 이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의 환희를 그 환경과 배경에 주고 있다. 당대의 이탈리아 학자 바지리에 의하면 이 작품은 시에나 시의 귀족 필립 셀루가르디를 위하여 제작된 것이며, 그 후 프랑스의 왕 프랑소와 1세가 입수하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성모의 연민이 모정에 얽힌 표정은 안보이며, 모자간의 은은한 정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융합되어진 걸작이다

작품명 : 외뿔짐승과 귀부인
제작년도 : 1505
작품재료 : 나무판에 유화물감
작품크기 : 65cm×51cm
작품설명 : 이 작품은 <라 그라비다> 초상화 제작 시기와 같은 때에 그려진 또 하나의 여인 초상화이다. 여인의 의상, 손 등 여러 부분이 손상되어 수정이 가해진 상태의 그림이다. 특히 여인이 안고 있는 순결을 상징하는 일각수도 손상되어 그 흔적이 아직도 역역하다. 작품의 구성은 <모나리자>를 연상시키고 있으며, 이에 다 빈치의 영향을 생각하게 한다. 구도는 배경에 좌우로 원주를 두고 여인의 좌상이 크게 중간에 배치하고 있다. 따라서, 방향은 실내에서 외부로 향하게 된다. 여인의 격(格)있는 의상과 장신구, 머리의 질감, 개성 있는 얼굴의 표정 등이, 모델이 되고 있는 여인의 품위를 알려 주고 있다. 넓게 멀리 내다보이는 자연과 하늘은 원근의 법칙에서 인물상을 돋보이게 한다

작품명 : 갈라테아의 승리
제작년도 : 1511
작품재료 : 프레스코
작품크기 : 295cm×225cm
작품설명 : 라파엘로 작품 중에서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삼은 것은 드물다. 라파엘로의 후견인이었던 당시의 은행가 아고스티노 기지의 별장 파르네지나의 벽면을 장식하기 위하여 작품이 제작되었다. 바다의 여신 갈라테아는 두 마리의 돌고래에 이끌려 개선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반인반어의 바다의 신 트리톤과 바다의 요정들이 환희에 찬 모습으로 갈라테아를 반기고 있다. 이 그림의 내용은 생의 즐거움과 찬미를 나타내는 비유적인 것이다. 한편 라파엘로는 이와 같은 신화의 소재를 통하여 당대의 고전에 대한 가치관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자못 그림은 동적이고 또한 극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의 종교화의 정적인 숭고함에 비교를 할 수 있다. 이 그림의 형상은 형체 구조의 정확한 묘사로 입체감을 주는 조각적인 성격을 보이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작품명 : 성녀 카다리나
제작년도 : 1507
작품재료 : 나무판에 유화물감
작품크기 : 71cm×56cm
소장위치 : 런던 국립 미술관 소장

작품명 : 카니지아의 성가족
제작년도 : 1507
작품재료 : 나무판에 유화물감
작품크기 : 131cm×107cm
작품설명 : 이 그림은 원래 피렌체 시의 카니지아니 가(家)의 소장 작품이었던바, 이 작품을 그 가문의 이름에 따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1801년 프랑스군의 약탈을 피하기 위해 뮌헨으로 옮겨졌었다고 한다. 라파엘로가 제작한 많은 성가족 작품은 구도가 간결하고, 분위기 또한 정적이며 명상적인데 비하여, 이 작품은 그 예외가 되고 있다. 우선 삼각형 구도를 형성하는 인물의 수가 많고, 자세나 표정이 동적이고 다양하다. 감미롭고 우아한 표정 대신 감정적이고, 설명적인 표현과 자세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성가족의 분위기는 속된 기미를 풍기고 있다. 이 성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 또한 설명적인 경관(景觀)이며, 변화되고 있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어 영구한 정적인 종교적 정취(情趣)를 멀리 하고 있다. 이 정적인 변화는 배경에 감동적인 색채를 또한 보게 한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