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년 6월 2일, 교황 레오 1세 (Papa Leone I)와 반달족의 왕 가이세리크 (Geisericus, 389 ~ 477) 회담
교황 레오 1세 (이: Papa Leone I)는 제45대 교황 (재위: 440년 9월 29일 ~ 461년 11월 10일)이다.

그는 서로마 제국의 귀족 출신으로 ‘대교황’이라는 호칭을 받은 첫 번째 교황이다. 그러한 연유로 대교황 레오, 대 (大) 레오 (이: Leone Magno) 등으로도 불린다.
훈족과 반달족의 침공을 받을 때 용감한 태도로 로마를 구출하여 교황의 위엄과 권위를 크게 드러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후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진 서로마 제국은 사방에서 봉기하는 외세의 침공 앞에서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아틸라는 451년 샬롱 전투에서의 패배 (실제로는 서로마 측 피해가 더 많았지만)를 딛고 일어나, 452년 이탈리아 반도를 침략하여 아퀼레이아를 비롯한 일부 도시를 약탈하고 로마로 진격하였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아틸라는 당시 서로마 황제였던 발렌티니아누스 3세에게 지참금을 보낼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전 유럽을 유린한 훈족의 군대가 로마에까지 당도하자 민심은 극심하게 동요되었고, 황제는 하는 수 없이 아틸라의 요구에 응답하여 세 명의 사절을 보내 그와 협상을 벌였다.
황제가 보낸 세 명의 사절은 집전관 중의 한 명인 젠나디우스 아비에누스와 옛 로마 시 장관이었던 멤미우스 애밀리우스 트리게티우스 그리고 교황 레오 1세였다.
황제의 사절단과의 만남을 가진 후, 아틸라는 군대를 이끌고 철수하였다.
당시 이들이 나눈 협상의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아틸라가 순순히 물러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역사학계에서 많은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교황이 아틸라에게 많은 양의 금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해서 물러났거나, 이탈리아 북부의 역병 및 식량 부족 그리고 다뉴브 전선에서 동로마 황제 마르키아누스와의 전투 등으로 인한 병참 및 전략상의 문제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역사학자들은 당시 레오 1세의 영웅적인 행동과 공로를 인정한다.
레오 1세는 로마를 구출하여 교황으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크게 드러내었다.
아키텐의 프로스페르에 의하면, 아틸라는 자신을 순순히 물러나게 한 레오 1세에게 무척 감명받았다고 한다.
요르다네스는 아틸라가 과거 410년에 로마를 약탈한 직후 급사한 서고트 왕의 운명을 자신도 맞게 될까봐 두려워했다고 한다.
8세기 후반의 파울루스 부제는 아틸라와 레오 1세가 강화 회담을 하던 중에 사제복 차림에 칼을 든 덩치 큰 사람이 나타났는데, 오직 아틸라의 눈에만 그 사람이 보였다고 한다.

그가 아틸라에게 칼을 들이대며 순순히 물러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겁에 질린 아틸라가 승복했다고 주장하였다.
이 이야기가 나중에 각색되어 《황금전설》에서는 아틸라가 레오 1세의 양쪽에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가 칼을 빼들고 함께 오는 것을 보고 놀라 퇴각했다는 이야기로까지 발전하였다.
455년에는 반달족이 로마를 공격해 왔다.
이번에도 레오 1세는 용감하게 나아가 6월 2일 반달족의 왕 가이세리크와 대면하고 그와 담판을 벌였다.
불행하게도 반달족의 로마 약탈은 레오 1세의 중재로도 막을 수가 없었지만, 최소한 살인과 방화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적 덕분에 레오 1세는 순식간에 로마의 구원자로 부각됐고, 로마 시민들은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와 충성을 보냈다.
대외적으로 교황은 사실상 로마의 수호자로 인식되었다.
이후 위신이 점차 높아져가던 교황직은 단순한 종교적 영역을 초월하여 정치 영역에까지 그 힘이 서서히 미치기 시작하여, 훗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교황이 서로마 황제를 대신하여 로마를 통치하기에 이른다.

가이세리크 / 게이세리쿠스 (Geisericus, 389년 ~ 477년)는 반달족의 왕이며 군데리크의 동생이다. 가이세리크 (Gaiseric), 겐세리크 (Genseric) 또는 게이세리크 (Geiseric)라고도 불렸다.
게이세리쿠스는 서로마 제국 말기의 내전을 이용하여 히스파니아 남부에 자리잡고 있던 반달족 전체를 이끌고 로마 제국의 곡창지대인 북아프리카를 공격, 차지하게 되었다.
이어 동로마 제국과의 전투에도 승리하고, 서로마 제국으로부터 반달 왕국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게이세리쿠스는 북아프리카의 옛 카르타고계 로마인들을 선원으로 부리며 대규모함대를 조직, 사르데냐, 코르시카 등을 점령했다.
455년 6월에는 로마를 공격, 서고트족의 수령 알라리크에 이어 두 번째로 로마를 약탈했다.
이에 455년 6월 2일, 교황 레오 1세와 반달족의 왕 가이세리크 (Geisericus, 389 ~ 477)는 회담을 갖는다.
460년, 서로마제국의 황제 마요리아누스는 반달 왕국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추진했다. 그러나 게이세리쿠스는 서로마 제국 함대가 출항하기도 전에 기습적으로 화공을 가해, 함대를 모두 불살라 버렸다.
또한 468년에는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의 연합 함대가 게이세리쿠스를 공격했으나, 이 또한 실패로 끝났다.
게이세리쿠스 사후 아들 훈네리크가 뒤를 이었다.
한편 레오 1세는 461년 11월 10일 선종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재위기간은 21년이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