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세인트 헬레나 데이 (Saint Helena Day)
세인트헬레나 (Saint Helena)는 앙골라 서쪽 해안으로부터 2,800km 떨어진 남대서양 가운데에 있다.
세인트헬레나 섬은 1502년 5월 21일, 포르투갈의 항해가 조안 다 노바가 발견해 5월 21일은 ‘세인트헬레나 데이’이다.

– 세인트헬레나 (Saint Helena)
.표어: Loyal and Unshakeable (나의 세인트헬레나 섬)
.수도: 제임스타운
.정치체제: 영국 자치령
.역사: 영국 자치령 – 1659년부터
.공용어: 영어
.인구: 2016년 조사 4,534명
.통화: 파운드
영국의 해외 영토인 세인트헬레나 어센션 트리스탄다쿠냐 속하며, 수도는 제임스타운이다.
나폴레옹이 이 섬으로 유배온 것으로 유명하다.

○ 역사
– 발견
세인트헬레나 섬은 1502년 5월 21일, 포르투갈의 항해가 조안 다 노바가 발견하였다.
섬 이름은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였던 기독교의 성녀 세인트 헬레나의 이름에서 비롯한 것이다.
처음 무인도일 때, 포르투갈인들은 항해에 필요한 풍부한 재목과 신선한 물을 구할 수 있었던 점에서 착안하여 섬에 생활 물품과 과일 및 야채를 반입하였다.
또한 예배당과 두 채의 가옥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이들 포르투갈인들이 섬에 정착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세인트헬레나 섬은 유럽과 아메리카를 오가는 선박의 보급기지로 이용되었다.
기록 상의 첫 정착자는 포르투갈인 페르난도 로페즈이다. 1584년 5월 27일에는 덴쇼 소년사절단이 일본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도중 잠시 쉬어간 적이 있다.
세인트 헬레나에 내항한 최초의 영국인은 토마스 카벤디쉬이다.
네덜란드는 1633년에 이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네덜란드가 섬을 점거하거나 요새를 지은 증거가 남아 있지 않았다.
1651년 네덜란드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 주변에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한 무렵까지 섬은 버려진 상태였다.

– 영국 동인도회사령
1657년 올리버 크롬웰은 영국 동인도 회사에 이 섬의 행정권을 인정하였다. 동인도 회사는 이 섬의 요새화와 식민지화를 결정하고 1659년에 초대 총독 존 다톤이 부임하였다. 이로써 세인트 헬레나는 버뮤다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식민지가 되었다.
1660년 왕정 복고 이후 동인도회사는 국왕의 인정서를 얻어 섬의 요새화와 식민지화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동인도회사에 의해 1658년 건설된 요새가 현재의 수도인 제임스 타운이 되는데, 이 이름은 당시의 요크 공, 후일 제임스 2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당시 주민의 절반은 아프리카 흑인노예였다.
1676년부터 에드먼드 핼리가 이 곳에 천문대를 설치하고 천체 관측의 거점으로 삼았다.
1810년 이후에는 동인도 회사의 광동 무역 기항지로 쓰이게 된다.

– 나폴레옹과 세인트 헬레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엘바 섬을 탈출한 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자, 빈 회의는 그의 신변 처리를 영국에 일임하였다. 영국은 나폴레옹의 망명 수용을 거부하고 보호를 명목으로 세인트 헬레나 섬에 가두기로 하였다. 나폴레옹은 1815년 10월 세인트 헬레나에 도착, 1821년 5월에 사망할 때까지 섬 중앙의 롱우드 하우스에서 살았다. 영국은 허드슨 로 총독에게 나폴레옹의 감시를 지시했다. 이를 “유배”라고 표현하나, 이는 재판이나 조약에 근거하지 않은 불법 구금이었으며, 허드슨 로는 나폴레옹에게 온갖 가혹행위를 자행했으며 심지어는 나폴레옹이 병으로 몸져눕자 나폴레옹의 주치의를 영국 본토에 강제로 내보냈다.
나폴레옹이 유폐된 시기에 이 섬은 동인도 회사령으나, 영국 정부의 개입이 커진 상황이었다. 나폴레옹을 경계하여 섬에 부대가 주둔하였고, 해군 함선이 섬의 주변을 경계하였다. 또한 근처의 섬이었던 어센션 섬과 트리스탄다쿠냐 제도에도 영국군이 파견되었다.
1817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섬에는 821명의 백인 주민들이 있었고, 820명의 군인과 618명의 중국인 노동자, 500명의 흑인 자유민, 1540명의 노예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폴레옹의 사후 수 천명의 체류자들은 섬을 떠났고, 동인도회사가 섬의 통치를 계속하였다. 나폴레옹이 유배 중에, 섬에서 나는 커피를 호평한 적이 있었는데 이후 파리에서는 세인트 헬레나산 커피의 명성이 높아졌다.
세인트 헬레나 섬이 속령상 특이한 부분이 있다면 다른 모든 곳은 전부 영국령이지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사망했던 그 자리만 프랑스령이다.
– 왕령 식민지
1833년에 공포된 ‘인도법’에 따라 세인트 헬레나는 1834년 4월 22일 왕령 직할섬이 되었다. 1870년대 중반까지, 대서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항해의 요충지로 번성하였으나 수에즈 운하 (1869년)가 개통하면서 교통량이 격감하게 된다. 제2차 보어 전쟁 시기인 1899년과 1902년 사이에는 수 천 명의 보어인 포로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