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피친차 전투 기념일 : 에콰도르
에콰도르는 페루와 콜롬비아 사이에 위치한 나라다. 스페인어로 에콰도르 (ecuador)는 ‘적도’를 뜻하는데, 적도선이 영토를 통과하기 때문에 나라 이름이 에콰도르로 정해졌다.
적도 부근에 있어 일 년 내내 날씨가 따뜻할 것 같지만, 에콰도르는 의외로 쌀쌀한 고산 지대가 많다. 얇고 길게 뻗어있는 험준한 안데스 산맥이 에콰도르 가운데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수도 키토는 2,850미터에 위치해있고, 바로 옆엔 해발 4,700미터나 되는 피친차 화산이 있다.
바로 이 고산 지대에서 피친차 전투 (Batalla de Pichincha)가 벌여졌다.

에콰도르에선 매년 5월 24일 애국자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1822년 5월 24일, 독립군이 피친차 화산 부근에서 승리한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일명 ‘피친차 전투’라 불리는 이 싸움은 스페인과 벌인 사실상 마지막 전쟁이었고, 에콰도르가 독립을 달성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기도 했다.
에콰도르가 독립을 이루겠다고 처음 선언한 건 1809년이었다. 에콰도르 독립 기념일은 8월 10일인데, 바로 이날 크리오요들이 모여 독립을 이루겠다고 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콰도르가 독립을 이루기까진 많은 장애물이 넘어야 했다. 내부적으론 여전히 스페인을 지지하는 파와 독립파가 싸우고 있었고, 군대나 전쟁 물자 수에 있어서도 스페인보다 불리한 상황이었다. 호기롭게 외친 독립 선언과 달리, 현실적으로 완벽한 독립을 이루는데 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러던 와중에, 수크레 (Antonio Jose de Sucre) 장군이 전쟁에 참여하며 판세가 180도 바뀌게 된다. 베네수엘라 출신이었던 수크레는 시몬 볼리바르 명령에 따라 에콰도르 지역 사령관 자리에 오른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일곱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가 무거운 부담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참여한 전투마다 승리하며 전쟁을 에콰도르 쪽으로 유리하게 만들었다.
1822년 5월 23일. 키토 탈환을 목표로 하던 에콰도르 군대는, 어두운 밤에 피친차 산을 넘어 스페인 군을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굳이 고생하며 4천 미터 산을 넘으려 한건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산을 넘는 다면 기습 공격이 가능했고, 높은 지역에서 아래를 공격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옛날 한니발이나 나폴레옹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알프스 산을 넘어 전투에 승리한 것처럼, 수크레도 역사에 남을 만한 위대한 시도를 진행했다.

수크레의 지휘 아래 에콰도르 군대는 피친차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약 3천 명의 군대가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고산병과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했고, 결국 3500미터 지점에서 멈추게 된다. 어두운 밤이 지나고 동이 트자 그들의 작전은 적에게 발각됐고, 결국 산자락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약 3시간 동안은 누가 유리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진행됐다. 이후 독립군이 조금씩 승기를 잡기 시작했고, 스페인 군은 400명이 희생당하며 후퇴를 결정한다.
전쟁 다음날인 5월 25일. 수크레를 포함한 독립군은 그토록 바랬던 키토에 입성한다. 그리고 스페인이 항복 조약에 사인하고, 모든 무기를 버리게 만들었다. 수크레는 사실상 에콰도르의 독립을 이끈 주인공이 된 것이다. 남미의 독립 영웅 하면 시몬 볼리바르나 산마르틴이 있지만, 에콰도르에선 수크레의 이름이 더욱 특별하게 기억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