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년 5월 20일, 안디옥 지진 : 현재의 시리아와 터키 일대에 진도 7.0 지진이 발생해 최소 25만명 사망
526년 5월 20일에는 안디옥 (현재의 시리아와 터키 일대)에 진도 7.0 지진이 발생해 최소 25만명이 사망했다.

- 안디옥과 지진
터키 남동부 안타키아는 과거 로마 시대 ‘동방의 여왕’이라고 불렸다. 인구 50만명으로 수도 로마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은 3대 도시였다. 안티오키아라고 불렸는데, 한국어 성서에는 안디옥이라고 표시된다.
안타키아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뜻깊은 장소다. 크리스천 (Christian)이라는 단어 자체가 당시 사람들이 안타키아 교회 신도들을 부르는 말에서 유래됐다.
사도행전 11장 26절에는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기록돼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교회를 세우며 선교의 중심지가 됐다. 안타키아 근처 산기슭에는 성 베드로가 박해를 피해 동굴에서 예배를 드렸던 동굴교회가 남아 있다.
115년 안타키아에 대지진이 일어나 수십만명이 사망했다. 당시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는 파르티아 원정을 위한 행군 도중 안티오크에 머물다 대지진을 경험했다. 이 원정에는 트라야누스의 양아들이자 후계자 하드리아누스도 참여하고 있었기에 최악의 경우 자연 재해로 로마 황제와 그 후계자가 동시에 사망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뻔 했으나 다행히도 두 사람 모두 별 상처 없이 무사히 탈출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그렇지 못해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최대 2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승이 아닌 실제로 역사적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지진이며, 현재의 건물과는 달리 석조를 쌓아 만들었던 로마 건물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생매장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현대에 고고학자들이 안티오크를 발굴하니까 발굴된 거의 모든 모자이크가 이 115년 대지진 이후에 만들어진 모자이크였다고 한다. 이후 많은 로마 황제들이 이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도시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 공중 토건 사업을 진행하는 등 노력했으나 이후 서서히 쇠락하고 만다.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실제로는 수백 년에 걸쳐 천천히 쇠락했는데, 이유는 후술하는 항구 기능의 쇠퇴와 연관되어 있다.
동로마제국 시대인 526년에도 대지진이 일어나 25만여명이 죽고 도시가 폐허가 됐다.
두 세기 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세운 안티오크 대성당도 이 때 소실됐다. 초기 기독교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이 도시에 이런 큰 재난이 닥친 날은 얄궂게도 기독교 축일인 예수승천일 하루 전이었다. 살아남은 안티오크 시민들은 가까스로 도시를 재건했지만, 두 해 뒤의 또 다른 지진과 다시 10년 뒤의 페르시아군 침입으로 안티오크는 폐허로 되돌아갔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황제 유스티누스 1세가 도시 재건을 시작했으나 2년 뒤 발생한 지진으로 건물들이 다시 파괴됐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